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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같은 프로듀서는 없었다-115화 (115/273)

115화

이미 합격한 멤버들은 초조한 마음을 감추며 대기실을 서성거리고 있었다.

임하나는 손톱을 물어뜯으며 대기실 벽에 걸린 시계를 계속해서 쳐다봤다.

요하 또한 계속 목이 타는지 물을 마셔대며 대기실 의자에 앉을 생각을 안 했다.

어느덧 시간은 오후 6시.

2차 가수 선택이 시작된 지 한 시간이 훌쩍 넘었다.

“왜 이렇게 안 와? 무대 사고라도 난 거 아니야? 진행요원한테 물어보고 와야……!”

결과가 계속 늦어지자 서자명은 참지 못하고 진행요원을 찾아 자릴 박차고 일어났다.

그와 동시에 대기실 문이 열리고 서자명, 일어나려 했던 어정쩡한 자세 그대로 몸이 굳어 그쪽을 쳐다봤다.

“갈 필요 없을 것 같네요.”

대기실에 있던 성현과 일행들 모두 문 쪽으로 시선이 향했다.

어정쩡하게 서 있는 서자명을 다시 앉히며 말하자 이내 대기실로 합격한 팀이 줄줄이 들어왔다.

성현을 비롯한 일행들 빠르게 들어오는 합격팀 참가자들의 얼굴을 확인하는데 마지막 사람까지 낯선 이들인 것을 확인하고 힘이 빠졌다.

조은별 팀과 주영준 팀의 모습을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말도 안 돼…….”

“형, 이거 아니죠? 아직 합격팀 더 있을 수도 있는 거죠?”

요하는 이 상황이 도저히 믿겨지지 않는지 성현을 붙들고 물었지만, 성현 또한 말이 없었다.

이미 합격한 7팀에서 3팀이 추가 합격 된 이상 조은별, 서지현, 릴리, 주영준 넷의 탈락은 확실시 됐기 때문.

그리고 안타까워할 시간도 주지 않고, 진행 요원이 등장했다.

“여러분 모두 합격하신 것 축하드리며, 이번 본선 4라운드 진행 상황 말씀드리겠습니다. 1차에서 7팀, 2차에서 3팀 총 10팀이 합격했으며…….”

진행요원이 건조하게 본선 라운드와 관련된 진행 상황을 말하지만, 그의 말이 성현에 귀엔 들어오지 않았다.

지금 성현의 일행들은 하나같이 탈락한 이들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했기에 다른 말을 들을 정신이 아니었다.

‘설마 이번 가수 매칭전에서 떨어질 거라곤 상상도 못 했는데…….’

언젠가 누군가는 탈락할 거란 건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막상 현실이 되니 허무함과 아쉬움이 밀려왔다.

성현은 자신이 무언가 부족하게 준비했나 싶어서 더욱 마음이 무거워졌다.

한 달 동안 조은별, 서지현, 릴리, 주영준 모두가 분명히 성장한 것을 두 눈으로 지켜봤기에 안타까움은 더욱 크기만 했다.

‘정말 이게 끝이라고……?’

특히나 조은별과 서지현은 다른 참가자들보다 성현과 더 많은 시간을 함께한 참가자들이었기에 이 상황이 쉬이 믿기지 않았다.

예선전에서부터 자신과 함께하며 울고 웃었던 이들이었다.

되도록이면 오래도록 남아 그들과 계속해서 선의의 경쟁을 하며 같이 성장하고 싶었는데….

“합격자들은 이만 오디션장을 떠나셔도 좋습니다.”

진행요원의 덤덤한 마지막 말이 끝났을 때, 성현은 비로소 이것이 현실이며 팀원들이 떨어졌다는 사실을 아주 조금 실감할 수 있었다.

***

진행 공지가 끝난 뒤, 이성현을 비롯한 합격자 멤버들은 모두 곧장 합격자 대기실을 빠져 나왔다.

그들 모두 합격한 사람들 같지 않게 얼굴이 밝지 못했다.

다른 합격자들이 매칭된 가수와 어떤 무대를 하게 될지 설레하며 떠나는 것과 확실히 대비되는 모습이었다.

비록 서바이벌이지만 항상 붙어서 연습하던 멤버들이 탈락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모두가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터덜터덜 걸어가고 있는데 임하나가 고개를 번쩍 들며 외쳤다.

“지현아! 은별씨!”

저 앞 벤치에 조은별과 서지현이 앉아 있는 걸 발견한 임하나는 한달음에 그쪽으로 달려갔다.

임하나의 말에 멤버들 모두 그쪽으로 바쁘게 향했다.

성현은 차마 뛰어가지 못하고 그쪽으로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이런 게 서바이벌 오디션이겠지….’

멤버들 중 가장 오랫동안 두 사람을 봐왔던 임하나가 로비 벤치에 다다르자마자 여지껏 참고 있었던 울음을 터뜨렸다.

그 모습에 뒤따르던 요하까지 울먹거리기 시작했다.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앉아있던 서지현과 조은별은 서럽게 우는 임하나를 보고 놀라서 일어났다.

“왜 울어요. 떨어진 건 난데.”

서지현이 울음을 터트린 임하나를 달래며 말하다가 이내 그녀 또한 참았던 눈물이 터지고 곧 로비는 울음 바다가 됐다.

팀원들의 울음소리를 배경으로 성현은 엉엉 울고 있는 요하를 달래는 조은별에게 다가갔다.

“괜찮아요?”

성현은 아직 넋이 나가있는 듯이 멍한 표정의 조은별에게 물었다.

그제서야 조은별도 애써 참고 있던 눈물을 터트렸다.

요하는 그 모습에 제가 더 서러운지 더 크게 울기 바빴다.

“미안해요. 꼭 다 같이 올라가고 싶었는데. 지현아, 미안해.”

“언니가 왜 미안해요. 제 노래가 부족해서 떨어진 건데.”

조은별은 프로듀서인 자신 때문에 서지현까지 떨어졌다는 죄책감에 사과하고 서지현 또한 자신 때문에 조은별이 떨어진 것 같아 사과했다.

서로를 부둥켜 안고 미안하다며 우는 조은별과 서지현 옆에서 아쉬워하는 릴리와 주영준 역시 눈에 눈물이 고여 있었다.

“괜찮아요?”

성현이 뒤늦게 둘에게 묻자 릴리와 주영준은 애써 웃어 보일 뿐이었다.

“떨어진 게 아쉽긴 하지만 원래 이루려던 목표는 이뤄서 그렇게 슬프진 않네요.”

성현의 말에 릴리는 고여 있던 눈물을 훔치며 의연하게 대답했다.

그 옆에서 주영준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원하는 음악을 하는 것.

너튜브 스타이기에 이미 인지도가 높은 릴리가 애초에 이번 서바이벌에 참가한 이유였다.

한참을 말없이 있던 주영준이 한 발짝 나와 성현에게 말을 전했다.

그의 얼굴에는 잔잔한 미소가 서려 있었다.

“저도요. 원래대로라면 본선 3라운드에서 떨어져야 하는 건데 여기까지 온 것도 운이 좋았다고 봐요. 그리고 무엇보다 이성현씨 덕분에 음악 하는 즐거움을 다시 되찾았으니 그걸로 만족합니다. 고마워요.”

주영준은 성현에게 새삼 악수를 청하며 말했다.

그의 손을 꽉 맞잡는데, 성현의 얼굴을 보던 주영준 눈가가 촉촉해졌다.

이제, 정말 끝이었다.

자신에게 음악을 하는 이유를 되찾아준 성현과 함께하는 요 며칠 간의 일들이 꿈처럼 느껴질 만큼 그 모든 일들이 한순간에 값진 추억이 되어버렸다.

“조금 아쉽긴 하네요.”

주영준은 끝까지 애써 덤덤한 척하려 했지만 떨어진 것이 아쉬워 말했다.

그런 주영준을 보는 릴리의 눈가가 다시 촉촉해졌다.

2인 1조로 심사를 거치다 보니 가수는 가수대로 프로듀서는 프로듀서대로 아쉬움과 죄책감을 가지고 있었다.

이를 보는 성현 또한 아쉬운 마음을 숨기지 못하고 조금 울컥하고 말았다.

‘예상은 했지만, 예상보다 힘든 게 현실이구나.’

분명 미션이 시작되기 전부터 이번 라운드에서 동료인 멤버들 중 탈락자가 생길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상 이것이 현실이 되니 당분간 함께 음악을 할 수 없음에 아쉬움을 감추기 힘들었다.

성현은 씁쓸함을 숨기지 못하고 얼굴에 그대로 이 심정을 내비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성현을 지켜보던 천소울은 그동안의 침묵을 깨고 한 마디 던졌다.

“서바이벌이 끝은 아닙니다.”

로비에서 울고 있는 일행들을 천소울 말에 모두 눈물을 멈추고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오디션은 오늘로 끝난 일인데 끝이 아니라니?

영문을 몰라하는 멤버들을 둘러본 천소울이 얕게 한숨을 내쉬었다.

천소울은 왜들 그러냐는 듯이 일부러 어깨를 으쓱이며 말을 이었다.

“다들 계속 음악 할 거잖아요. 언젠가 현장에서 다시 만납시다.”

그의 말뜻을 이해한 성현도 이내 다시 마음을 다잡고 울고 있는 멤버들에게 말했다.

성현 역시 여기서 끝낼 마음은 조금도 없었다.

“천소울씨 말이 맞아요. 끝이 있어야 시작도 있는 거잖아요. 전 지금 이 순간이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라고 봐요. 나가서도 지금처럼 음악을 사랑하고 노력하면 분명 더 좋은 아티스트가 될 수 있을 거예요. 그리고 그때 우리 다시 만나서 더 좋은 무대 만들어봐요.”

성현은 천소울의 말에 뒤이어 떨어진 멤버들을 향해 진심 어린 목소리로 말하고 멤버들은 그제야 하나둘 울음을 멈췄다.

가장 먼저 나선 건 서지현이었다.

온 얼굴이 젖을 정도로 울고 있던 그녀는 두 손으로 얼굴을 쓱쓱 훔치고 씩씩하게 말했다.

“진짜 꼭 다시 만날 거예요.”

“저두요. 다들 꼭 약속 지키셔야 돼요. 음악 포기하기 없기예요.”

서지현과 조은별은 다시 만나자는 성현의 말에 꼭 그러겠노라 말하며 릴리와 주영준을 봤다.

릴리와 주영준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앞으로도 함께 음악을 하자고 다짐하듯 말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오디션 내내 성현씨한테 신세만 진 것 같아서 미안해요. 쉴 때 꼭 연락해요. 비싼 밥 사드릴 테니까. 알겠죠?”

조은별의 말에 릴리도 뒤처질세라 얼른 말을 보탰다.

“저도 불러주세요. 제가 쏠게요.”

마지막으로 오디션장을 떠나기 전 성현에게 감사 인사를 하는 멤버들.

다들 앞으로의 일을 기약하며 다짐했지만 성현과 마지막으로 악수를 나누는 멤버들 모두 다시 눈시울이 붉어져 있었다.

성현은 다시금 마음을 다잡았다.

한 명 한 명과 악수를 나누면서 꼭, 이들과 함께 음악 하게 될 나날을 그리겠노라고.

“그동안 수고 많으셨어요.”

성현과 마지막 인사를 끝낸 그들은 삼삼오오 오디션장을 떠났다.

뒤에 남은 합격한 멤버들은 모두 그들의 뒷모습을 쳐다보며 한동안 자리를 뜨지 못했다.

***

본격적으로 본선 4라운드가 시작된 후 다음날 오전.

성현은 일찍부터 연습실 근처 카페로 향했다.

어젯밤, 복잡한 마음에 쉽게 잠을 이루지도 못하고 작업에도 매진하지 못한 성현이었다.

하지만 그런 사람치고 마냥 어둡지만은 않았다.

떨어진 사람들에 대해 생각하던 성현은 나름의 생각을 정리한 뒤였다.

“주문하시겠어요?”

직원의 말에 성현, 메뉴판을 보며 망설임 없이 주문을 했다.

이어지는 주문의 양은 혼자서 먹기에는 조금 많았다.

“총 다섯 잔 맞으세요?”

“네.”

“앉아 계시면 자리로 음료 가져다드릴게요.”

계산을 마친 성현은 자리에 앉아서 휴대폰을 꺼내 저스트미, 임하나와 함께 주고 받은 메시지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

-저스트미: 세시까지 제 작업실로 오시면 됩니다.

-임하나: 주소 저번에 알려주신 곳 맞죠?

-저스트미: 네. 올 때 메로나.

-임하나: ……네?

-저스트미: 농담입니다. 이따 봬요.

오늘 오후 저스트미와의 첫 연습이 잡혔다.

연습이 처음이니만큼 착오가 없도록 대화방 스크롤을 위로 올려 저스트미가 보내준 작업실 주소를 확인한 성현은 카페에 걸린 시계를 보며 시간을 가늠했다.

‘작업실까지 여기서 30분 정도 걸리니까 하나씨랑 2시까지 만나면 되겠다.’

넉넉하게 임하나를 만나 작업실까지 갈 시간을 계산을 마친 성현은 곧바로 임하나에게 2시까지 만나자는 메시지를 보냈다.

그때 카페 문이 열리더니 조은별과 서지현, 릴리, 주영준이 들어 왔다.

“왔어요? 여기 앉으세요.”

이들이 이곳에 온 이유는 단순했다.

어젯밤, 성현이 갑자기 만나자는 메시지를 보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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