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같은 프로듀서는 없었다-113화 (113/273)

113화

[1차 가수 선택이 끝났습니다. 참가자들 모두 진행 요원의 안내를 따라 이동해주시길 바랍니다.]

모든 참가자가 가수 선택을 마쳤다.

1차 가수 선택이 끝났다는 커넥트 알람이 울릴 때까지 저스트미를 선택한 팀은 더 이상 없었다.

최종적으로 저스트미를 선택한 팀은 성현 팀을 포함해 총 3팀이었다.

‘이 정도면 무난한 지원율이겠지.’

서울 지역에는 대략 60여명 정도의 참가자가 있었고 이들이 2인 1조로 팀을 이루면 총 30여팀.

선택할 수 있는 가수가 10팀이기에 3팀 정도가 딱 평균적인 지원 숫자였다.

그때 대기실로 진행 요원이 들어와서 알렸다.

“지금부터 무대로 이동할 거니까 소지품 전부 챙겨서 나와주세요.”

진행요원의 갑작스러운 말에 성현을 제외한 모든 참가자들이 패닉에 빠졌다.

“무대?”

“오늘 바로 무대에 서야 해요?”

“우리 준비한 거 아무것도 없는데?”

다른 대기실도 마찬가지였다.

무대라는 말에 여기저기서 웅성거림이 점차 커지고 있었다.

심지어 방금 2인 1조가 된 팀들이었기에 그들이 준비해온 것은 아무것도 없는 상황.

모두가 오늘은 단순한 공지를 듣고 준비 기간을 줄 거라고 예상했기에 당황스러움은 더욱 컸다.

“가죠, 하나씨.”

“네.”

유일하게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는 성현은 덤덤하게 임하나를 챙겼다.

무대로 이동한다는 말에 잠시 놀란 임하나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을 한 성현을 보고 금세 안정을 되찾고 대기실을 벗어났다.

성현의 팀원들에게는 한 달 동안 준비한 성과를 조금 빠르게 보여주게 된 것뿐이었다.

미리 일러준 성현의 선곡 리스트도 있었지만, 지난 한 달 동안 성현의 팀원들은 누구보다 부지런히, 바쁘게 연습을 소화했다.

임하나는 한달 동안 숨 쉬는 것처럼 자연스러워진 연습곡들 여러 개를 떠올리곤, 긴장한 기색 없이 저스트미를 만나러 향했다.

***

진행요원은 빠른 걸음으로 복도를 지나 그들을 작은 소규모 무대가 설치된 곳으로 안내했다.

무대에는 특별한 무대 장치가 있는 건 아니었고 건반과 마이크 정도만 세팅이 되어 있었다.

“진짜잖아….”

성현의 팀을 제외하고, 무대를 확인한 두 팀은 정말 무언가를 보여줘야 한다는 실감이 났는지 어두운 얼굴로 빠르게 무언가를 의논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스탭들은 빠르게 왔다 갔다 거리며 무전을 주고받았다.

텅 비어 있던 무대에도 여기저기 카메라가 배치되고 카메라맨들이 자리를 잡고 앉았다.

“입장합니다.”

스탭의 말과 동시에 저스트미가 모습을 드러냈다.

무대 앞에 세팅된 심사위원석에 앉는 그의 모습은 여유롭기만 했다.

“성현씨 이거 실화 맞죠? 지금 제 앞에 저스트미 있는 거 맞죠?”

임하나는 연예인 저스트미를 봤다는 것에 넋이 나가 물었다.

이내 다른 참가자들과 함께 조금이라도 그의 얼굴을 가까이서 보기 위해 까치발을 들으며 터져 나오는 비명을 주먹으로 틀어막았다.

“대박, 진짜야! 실물이에요, 성현씨!”

신난 임하나 옆의 성현 또한 살짝 상기된 표정이었다.

평소에도 저스트미의 음악을 즐겨들을 만큼 좋아하는 뮤지션이었다.

언젠가는 저스트미와 같이 작업을 하고 싶다고 상상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이번 미션에서 뽑히게 되면 가능했다.

꿈에서만 그리던 저스트미와의 작업이.

‘함께 어떤 무대를 만들 수 있을까.’

성현은 상상만으로 너무나도 설레고 짜릿한 기분이었다.

한 달간 열심히 곡 작업에 매진한 이유 중 하나였다.

저스트미와 협업.

그만큼 이번 무대에 성현이 가지고 있는 기대는 컸다.

“세 팀 모두 무대로 올라와 주세요.”

진행요원 말에 성현을 비롯한 참가자들 모두 무대 위로 올랐다.

저스트미는 그들을 살펴보며 천천히 마이크를 집어 들었다.

특색 있는 악센트로 가득한 저스트미의 음성이 마이크를 통해 흘러나왔다.

“세 팀이면 딱 평균이네요. 그쵸? 방금 재한이 형한테 5팀 몰렸다고 문자 왔는데 자존심 상하네요.”

저스트미 말에 참가자들 모두 당황해서 눈만 껌뻑이자 이내 그가 피식 웃었다.

“농담이에요. 선택해줘서 너무 고맙고, 저 또한 이번 무대 최선을 다해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저스티미 말에 참가자들 그제서야 얼굴을 풀고 그에게 환호하며 박수를 보냈다.

“갑자기 등장한 무대에 당황하셨을 텐데, 이제부터는 더 정신 바짝 차려야 할 겁니다.”

저스트미의 설명에 나머지 두 팀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의 등장에 잊고 있던 본인들의 상황이 떠오른 탓.

“지금부터 30분 드리겠습니다. 조를 이룬 분과 함께 최고의 무대를 보여주세요. 짧은 시간이지만 여기까지 올라오신 분들의 능력을 믿고 기대해 보겠습니다.”

저스트미는 그렇게 말하고는 굿럭을 외치며 다시 대기실로 사라졌다.

갑작스러운 공지에 두 팀은 서둘러 무대를 내려가 의논할 장소를 물색했다.

성현과 임하나는 서두를 필요가 없었다.

임하나는 두 팀의 모습이 사라진 후에 성현을 돌아보며 물었다.

“어떻게 할까요, 성현씨?”

“하나씨가 하고 싶은 곡으로 정하죠.”

성현은 그렇게 말하고 세팅된 건반 앞으로 가서 상태를 확인했다.

임하나는 성현의 말에 잠시 생각하더니 저스트미의 곡 중 하나를 골라 말했고 성현은 곧바로 연주를 선보였다.

이미 아지트에서 두 사람이 합을 맞춰 연습한 곡 중 하나였고 임하나는 리허설을 하듯이 살짝살짝 리듬을 타며 가볍게 노래를 선보였다.

***

30분의 시간은 금방 흘렀다.

저스트미가 다시 등장해 무대 앞에 자리 잡았다.

무대에는 여유로운 표정에 살짝 상기된 얼굴을 한 성현팀과 불안한 얼굴을 하고 있는 두 팀이 올라있었다.

“무대를 보기 전에 제가 어떤 팀을 고를 건지 제 심사 기준을 명확하게 설명 드리겠습니다.”

심사기준이란 말에 참가자들은 긴장한 표정으로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일부러 연습 시간 전에는 심사기준에 대해 말을 아낀 그였다.

저스트미는 날 것 그대로 어떤 팀이 자신의 음악과 어울릴지를 판단하고 싶었다.

저스트미는 아까와는 전혀 다른 진지한 표정으로 심사기준에 대해 설명해갔다.

“노래나 춤을 잘하는 것도 당연히 중요하지만 제가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있어요. 뭐일 거 같아요?”

저스트미의 질문에 참가자들은 아무도 쉽게 말을 꺼내지 못했다.

저스트미는 선글라스 너머로 그런 참가자들을 한 명 한 명 확인하더니 말을 이었다.

“재미. 전 음악은 재밌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건 음악을 하는 사람한테도 듣는 사람한테도 포함되는 얘기예요. 가수가 자기 음악을 즐기면서 재밌는 무대를 만들 때 음악을 듣는 사람도 재밌게 들을 수 있어요. 전 여러분들이 얼마나 재밌는 무대를 만들 수 있느냐를 중점으로 볼 겁니다. 재치 있는 가사를 쓰든 재밌게 편곡을 하든 절 즐겁게 해주시면 됩니다.”

그 말을 끝으로 마이크 내려놓은 저스트미를 보고, 진행요원이 참가자들을 무대 밑으로 안내했다.

순서는 주최 측에서 무작위로 선정해놓은 상태.

세 팀은 긴장감 속에서 첫 번째로 불리게 될 이름을 기다렸다.

“정윤아 참가자, 최민성 참가자 올라가 주세요.”

진행요원 말에 프로듀서로 보이는 남자 참가자와 함께 있던 여자 참가자가 무대에 올랐고 이내 첫 번째 무대가 시작됐다.

성현은 반주만 듣고도 곡을 알 수 있었다.

저스트미의 hello.

저스트미의 데뷔 앨범에 수록된 재즈 힙합의 분위기의 곡으로 경쾌한 사운드와 재치 있는 가사가 유명한 곡이었다.

원곡이 저스트미의 중저음의 싱잉랩이 돋보이는 곡이었다면 후렴구에 멜로디라인을 추가하여 파워풀한 보컬이 돋보이게 새롭게 편곡한 노래를 선보였다.

성현이 보기에도 나쁘지 않은 무대였다.

확실히 짧은 시간이었음에도 두 사람 모두 만만찮은 실력자인 걸 증명하듯이 완성도까지 나쁘지 않았다.

“정윤아 참가자 음색이 개인적으로 제 취향이기도 하고 훅이 상당히 중독성 있네요.”

저스티미 역시 마찬가지로 좋은 무대였다는 평가를 남겼고 이어지는 두 번째 무대.

“임하나 참가자, 이성현 참가자 올라가 주세요.”

성현과 임하나 차례였다.

진행요원 말에 임하나는 성현과 함께 밝게 파이팅을 외치며 곧장 무대에 올랐다.

저스트미는 이 상황에 개의치 않고 씩씩하게 올라오는 임하나를 흥미롭게 바라봤다.

성현은 건반 앞에 자리를 잡고 임하나는 무대 가운데 있는 스탠드 마이크 앞에 섰다.

빠르게 감정선을 잡기 시작한 임하나가 성현을 돌아보며 싸인 보내자 곧 잔잔한 반주가 시작됐다.

저스트미는 무슨 노랜지 모르겠다는 듯 몸을 조금 당기며 귀를 기울였다.

“넌 괜찮니. 나 때문에 힘들었다며. 잘 지내고 있다고 들었어. 나도 좋은 사람 만나 잘 지내고 있어. 너무 자상한 사람.”

임하나가 담담하게 첫 소절을 내뱉자 저스트미는 그제서야 무슨 노랜지 알아채고는 살짝 웃었다.

저스트미가 반주만 듣고 곡을 알아차리지 못한 이유는 성현의 편곡 스타일 때문이었다.

임하나가 택한 저스트미의 곡은 ‘Fine’이라는 댄스곡이었는데 성현은 이를 차분한 R&B 스타일로 편곡해서 임하나의 끈적한 음색을 돋보이게 만든 것이다.

“간단해 난 그저 행복 바랐어. 그게 언제든 넌 알 바 아닐 걸.”

그뿐만이 아니었다.

원래 원곡이 남자의 입장에서 헤어진 연인에게 보내는 후회 섞인 가사로 유명했다면, 성현은 여자의 입장에서 헤어진 남자에게 보내는 아련함을 담은 메시지의 곡으로 개사했다.

원곡과 완전히 다른 듯하지만, 마치 같은 앨범에 수록된 것처럼 시너지를 만드는 곡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개사까지 해가면서 이번 무대를 준비할 수 있었던 건 성현과 임하나가 한 달이란 시간 동안 준비해 놓았기에 가능한 일.

임하나 역시 곡이 가지고 있는 아련한 감정을 담담하면서 동시에 절절하게 표현하며, 연습 때 보다 더욱 섬세하게 감정을 전달했다.

짝짝짝.

그렇게 임하나의 노래가 끝났을 때 저스트미는 벌떡 일어나 박수를 보냈다.

“저 지금 너무 충격 받았어요. 편곡도 진짜 신선했고 가사도 너무 좋았어요, 가사 본인이 썼어요?”

“아니요. 편곡이랑 개사는 전부 프로듀서분께서 했습니다.”

임하나는 뒤에 앉아 있는 성현에게 두 손을 펼치며 말했다.

그 말에 저스트미는 지원자 명단 확인하고 성현의 이름을 발견했다.

“이성현 프로듀서. 기억해 놓을게요.”

저스트미 말에 임하나는 성현을 보며 활짝 웃었고 성현 또한 미소를 숨길 수 없었다.

“마지막 팀 무대 준비해주세요.”

그리고 곧 마지막 팀까지 무대에 올랐다.

그들 역시 실력으로는 뒤지지 않는 무대를 보여줬다.

“네, 잘 들었습니다.”

마지막 무대가 끝나고 저스트미는 스탭들과 몇 마디 얘기를 주고받았다.

그동안 세 팀은 무대에 올라 나란히 서서 저스트미의 최종 선택을 기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저스트미가 자신과 함께 무대를 준비할 팀을 발표하겠다며 마이크를 들었다.

“다들 오늘 너무 멋진 무대 보여줬고 고르기 힘들었지만, 이분들 무대가 너무 충격이라서 안 고를 수가 없었습니다. 이성현, 임하나 참가자, 축하드립니다.”

이성현과 임하나, 둘이서 1차 선택에서 저스트미에게 선택을 받게 됐다.

저스트미의 발표에 다른 참가자들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누가 보더라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멋진 무대였다.

임하나는 저스트미의 발표에 소릴 지르며 기뻐했다.

임하나는 고개를 꾸벅 숙이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저 진짜 너무 팬이에요. 정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호들갑을 떨며 좋아하고 상기된 건 임하나 뿐만이 아니었다.

성현 역시 평소와 다르게 얼굴이 상기되어 있기는 마찬가지.

드디어 동경하던 프로 가수와 첫 무대를 준비할 수 있게 되었다.

‘진짜 프로와의 무대는 얼마나 더 재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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