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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같은 프로듀서는 없었다-112화 (112/273)

112화

참가자들에게 주어진 30분의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초반의 소란스러움도 잠시, 대기실에 모인 합격자들은 모두 2인 1조로 팀을 이루었다.

“그럼 다음 단계로 넘어가겠습니다.”

팀 구성이 완료됐을 때 진행요원은 곧 있을 본선 4라운드에서 무대를 함께 준비하게 될 프로 가수 명단을 공개했다.

[ 가수 명단 ]

저스트 미

김재한

정범주

나준석

리지

정해영

김유나

우효 밴드

.

.

.

띠링, 띠링-

참가자들의 커넥트 앱 알림이 울리고 참가자들은 재빠르게 가수 명단을 확인했다.

명단을 본 요하와 임하나는 크게 놀라 입 밖으로 자신들이 확인한 가수를 외치고 말았다.

“어! 우효다!”

“저스트 미?!”

그밖에 명단을 확인한 멤버들은 모두 놀라 일제히 성현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진행요원이 밝힌 가수 명단 속에는 성현이 한 달 동안 연습하라며 추천했던 가수들이 잔뜩 포진해 있었다.

“서, 성현씨 무슨 족집게 과외 선생님도 아니고. 어떻게 안 거예요?”

조은별은 자기 눈으로 봐도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성현의 곁에 와서 물었다.

성현은 진실을 말해줄 수 없기에 시선을 허공에 둔 채로 어물쩍 넘어갔다.

“그러게요. 음악 스타일 비슷한 가수들로 추천해준 것뿐인데 운이 좋았네요.”

그런 성현의 반응을 크게 이상하다고 생각 못 한 멤버들은 감탄하며 명단을 보고 또 들여다 보기 바빴다.

“운도 실력이라잖아요. 겸손 떨 거 없어요.”

“맞아요. 매번 고마워요, 정말.”

릴리와 서지현은 성현을 쳐다보면서 말했다.

연줄이 있는 것도 아닌데 성현은 매번 미래를 예측하는 사람 마냥 연습 매뉴얼을 주곤 했다.

본선에 못 올라올 뻔해서 패자부활전을 하질 않나, 이번에는 신촌과의 경연에서 조작 사건으로 억울하게 떨어질 뻔해, 성현이 겪은 사건을 떠올리면 연줄이 있을 리가 없는데도 참 신기했다.

“신기가 있나….”

임하나는 이쯤 되자 이런 생각밖에 들지 않아 혼자 중얼거렸다.

그렇다고 성현이 실력이 또 없는 것도 아니었다.

그 사실은 지난 한 달간 죽어라고 함께 연습한 자신이 제일 잘 알았다.

“좋게 생각하자구요! 요하야, 너 무슨 곡 할래?”

“음, 음…. 형은 뭐가 좋을 거 같아요?”

서자명은 더 이상 깊게 생각할 필요도 없다는 듯 고개를 젓더니 요하를 불러다 앉히고 물었다.

둘의 선택은 당연히 우효 밴드였다.

입밖으로 내진 않았지만 요하 역시 바로 알아듣고는 가수 선택은 건너뛰고 무슨 곡을 할지 열심히 고민하는 모습이었다.

본선 4라운드 또한 간절했던 일행들이기에 성현의 추천은 크나큰 도움이 되었다.

한 달 동안 성현이 추천한 가수와 곡 위주로 연습을 했기 때문에 무대를 준비하는 것도 다른 참가자들에 비해 수월하기만 했다.

“참가자들 모두 함께하고 싶은 가수를 결정하여 주시길 바랍니다.”

참가자들 사이에서 어느 정도 웅성거림이 가시자 진행요원이 참가자들한테 말했다.

진행요원의 공지에도 성현의 일행만 어떤 가수를 선택할지 결정을 끝낸 모습이었다.

그들은 여유롭게 매칭되는 가수들과 무슨 곡을 할지 상의하기까지 했다.

조금 시간이 지나자 새로운 공지 하나가 또다시 올라왔다.

[ 본선 4라운드가 시작됩니다. ]

[ 첫 번째, 가수 선택이 시작됩니다. ]

***

첫 번째, 가수 선택의 시간이 다가왔다.

대기실에 모두 모여 있는 참가 팀들 모두 자신의 순서가 오기를 기다렸다.

“호명된 참가자들은 복도로 나가 원하는 가수의 이름이 붙여진 대기실로 이동하시면 됩니다. 먼저 이대윤, 김진솔 팀 나와주세요.”

진행요원 말에 남녀 참가자 둘이 일어나 대기실을 나갔다.

그 이후에 다른 참가자들도 차례로 대기실을 나갔다.

점점 빈 자리가 많아지는 대기실을 보던 주영준이 슬그머니 성현의 곁에 와서 물었다.

“김재한, 정범주 참가자한테 많이 몰렸을까요?”

“그거야 두고 보면 알겠죠.”

주영준이 언급한 이들은 유리하다는 소문이 돌았던 두 가수.

성현은 주영준의 말에 고개를 살짝 저었다.

현재까진 각 팀들이 어떤 가수를 택했는지 다른 팀들은 알 수 없었다.

‘이렇게 하면 서로 눈치 싸움을 벌일 수도 없겠지.’

참가자들이 상대적으로 경쟁률이 낮은 가수를 택하는 꼼수를 부리는 걸 막기 위한 주최 측의 장치였다.

반대로 어떤 가수의 방이 경쟁률이 높은지 모르게 하려는 의도도 가지고 있었다.

어쨌든 이번 가수 매칭으로 80프로가 넘는 참가자들이 본선 4라운드에 진출할 수 없게 되니까.

“서자명, 김요하 참가자 나와주세요.”

그리고 마침내 성현의 일행 중 가장 처음으로 서자명과 요하가 호명됐다.

두 사람은 기다렸다는 듯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본선 5라운드 진출턱은 제가 쏘겠습니다.”

“비싼 거 얻어먹을 거예요!”

“서자명씨 스타일대로 멋진 무대 보여주고 오세요. 기대 하겠습니다.”

서자명은 자신감을 보이며 나갔고 멤버들 모두 그들을 응원해줬다.

이어서 다른 성현의 일행도 차례로 대기실을 나갔다.

참가자 팀의 반 정도가 대기실에서 나갔을 때쯤 드디어 성현과 임하나의 이름이 불렸다.

“이성현, 임하나 참가자 나와주세요.”

진행요원 말에 성현과 임하나는 서로 눈을 맞추고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대기실을 나갔다.

복도에 위치한 10개의 대기실엔 각 가수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굳게 닫힌 문 뒤로 어떤 참가자가 어떤 방에 가 있는지는 전혀 알 수 없었다.

“성현씨만 믿을게요.”

나열된 하얀 문들을 보던 임하나는 속삭이듯 말했다.

성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어떤 망설임도 없이 복도를 걸어 한 대기실 앞으로 향했다.

임하나는 성현의 뒤를 묵묵히 따랐다.

문앞에 붙어 있는 이름은 저스트미.

그는 힙합 계열의 곡을 베이스로 여러 장르를 넘나들며 폭넓은 음악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는 남성 솔로 가수였다.

최근엔 가수 활동을 하면서 프로듀서로도 영역을 넓혀 음악적 재능을 꽃피우고 있었다.

발표된 그의 곡들은 한 장르에 갇히지 않고 폭넓은 음악 스펙트럼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성현이 가는 방향과 비슷했다.

‘꼭 한 번 같이 작업해 보고 싶었는데.’

그의 문 앞에 선 성현은 조금 설레는 마음에 호흡을 가다듬었다.

자신이 추구하는 음악성과 비슷한 음악을 하는 사람이었기에 성현은 언젠가 그와 작업하는 날이 오길 기다렸다.

그런데 이렇게 빠르게 작업을 함께 할 수 있는 기회가 오다니.

성현은 10대 소녀가 된 것처럼 두근거리는 심장을 다독였다.

얼마나 멋진 작업이 될지 벌써부터 기대됐다.

“안에 사람들 많겠죠?”

“그게 중요한가요? 어차피 작업은 저희랑 같이하게 될 건데.”

임하나는 직접 그를 만날 생각에 긴장되는지 성현에게 물었지만, 성현은 긴장감이라곤 없는 대답을 내놓았다.

그도 그럴 것이 성현의 머릿속에는 이미 떨어진다는 생각은 없었고, 저스트미와의 작업이 어떨지에 대한 것으로 꽉 채워져 있었다.

임하나는 자신감이 가득한 성현의 태도에 혀를 내둘렀다.

“와. 성현씨 오늘따라 자신감 넘치네요?”

“네. 준비 많이 했으니까요. 저스트미랑 작업 꼭 해보고 싶었거든요.”

자신감을 있는 대로 내비치며 문을 열고 들어가자 역시 먼저 와 있는 다른 지역의 팀이 보였다.

먼저 와 있는 팀은 한 팀.

성현의 예상보다 적은 수였다.

두 명의 남성이 한 팀을 이루고 있었는데 그들은 성현과 임하나를 보고도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자기들끼리 무언가 소곤소곤 상의를 하고 있었다.

성현은 해당 팀의 참가자들 모두 구면이었다.

두 사람 모두 문희성과 같은 이태원 지역의 참가자였다.

이태원 지역의 버스킹 무대가 너튜브에서 화제가 되었기 때문에 둘의 얼굴이 낯이 익었다.

‘보컬이 상당히 섬세했던 걸로 기억나는데.’

성현은 두 남자 중 가수 참가자를 보며 그의 음악 스타일에 대해 떠올려보는데 이내 또 다른 한 팀이 저스트미 대기실로 들어왔다.

이번에는 남녀 혼성으로 구성된 팀으로 여성 참가자가 보컬을 담당하는지 계속 목을 풀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 역시 성현의 기억 속에 있었다.

예쁘장한 외모와 다르게 상당히 파워풀한 보컬을 구사해서 화제가 됐었던 인물이었다.

경쟁자들을 확인한 성현은 남은 참가자들의 실력을 다시금 피부로 확인한 느낌이었다.

‘역시 이번 라운드는 쉽지 않겠어.’

당장 저스트미 대기실에 모인 참가자 팀만 해도 모두 실력자들이었다.

본선 4라운드까지 올라왔다는 것부터가 그들이 만만한 참가자들이 아닐 거라는 건 알고 있었다.

그런데 막상 인터넷에서 나름 화제까지 모은 참가자들이 눈앞에 앉아있자 성현뿐만 아니라 임하나도 조금 긴장한 기색을 보였다.

“쫄 거 없어요. 너튜브 조회수는 우리가 제일 높으니까.”

임하나가 긴장한 걸 알고는 성현이 일부러 낮게 말을 건네자, 그 말에 어이가 없어 웃을 수 있었다.

경연장에 도착하기 직전 서울 지역 영상 중 홍대와 신촌의 재경연 영상의 조회수는 2,546,803회를 기록하고 있었다.

***

1차 가수 선택이 거의 마무리 되어가는 상황에서 가수 김재한을 선택한 사람들의 대기실에는 다른 가수보다 많은 참가팀이 몰려들었다.

문희진의 계산대로였다.

최대 경쟁자가 될 것이 분명한 천소울에게 최대한 많은 경쟁자가 몰리게 해, 이번 가수 매칭전에서 일찌감치 천소울을 떨어뜨리겠다는 그녀의 전략.

문희진이 흘린 소문을 들은 참가자들은 혹시나 싶은 마음에 김재한과 정범주에게 많은 사람들이 몰리게 됐다.

현재까지 모인 팀만 총 5팀.

그중에는 각 지역의 대표로 활동했던 참가자가 포함된 팀이 2팀이나 있었다.

한 지역의 대표를 맡았던 참가자답게 실력 측면에서 상당히 높은 평가를 받는 참가자들이었다.

그들 역시 서로를 의식하는지 보컬 연습과 같은 앞으로의 무대와 관련되어 힌트가 될 수 있는 어떤 것도 하지 않으며 경계하는 모습을 보였다.

‘여기서 선택되기만 하면….’

그들은 하나같이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많은 팀이 몰리긴 했지만 김재한에게 뽑히기만 하면 유리하다.

참가자들 사이에 돌았던 정보가 하나만 믿고 더 이상 다른 팀이 들어오지 않길 바라고 있었다.

그들은 핏발 선 눈으로 들어오는 문을 쳐다보며 1차 가수 선택이 끝나길 기다렸다.

그러던 중 갑자기 대기실 문이 열리더니 한 팀이 들어오고 대기실에 있던 모든 시선이 그쪽으로 쏠렸다.

새롭게 합류한 팀의 얼굴을 확인했을 땐 모두 표정이 굳을 수밖에 없었다.

마지막으로 김재한 대기실로 들어온 참가자는 가장 강력한 우승 후보기도 한 천소울과 주선아 팀이었다.

모두가 탄식 같은 한숨을 내쉬는 순간이었다.

“천소울이 왜 여기서 나와?”

“하...... 왜 하필 천소울이냐고. 돌아버리겠네.”

“주선아까지 있으면 이번엔 글렀다. 2차 노리자 그냥.”

이미 포기선언을 하면서 같은 팀인 참가자에게 다음을 노리자는 말을 꺼내는 사람까지 있었다.

“진행요원님 가수 선택 다시 해도 될까요?”

그리고 참가자 중 한 명은 마지막 희망을 품고 손을 들고 묻기까지 했지만, 돌아오는 진행요원의 대답은 단호했다.

“안 됩니다. 천소울, 주선아 참가자 자리에 앉아 주세요.”

천소울과 주선아는 진행요원의 말에 술렁거리는 참가자들을 무심하게 한 번 쳐다보더니 별일 아니라는 듯 자리에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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