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같은 프로듀서는 없었다-111화 (111/273)

111화

성현과 일행이 충무로 아트 센터로 들어가니 각 지역에서 살아남은 약 30팀 정도의 참가자들이 로비에 모여 있었다.

딱 봐도 처음 예선장에 모여 있던 사람들에 비해 그 숫자는 눈에 띄게 줄었다.

잠실 예선장 여러 곳의 대기실에 치러지던 서울 지역 오디션.

이제는 이 로비에서 전체 참가자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그 수가 준 것이다.

아마 이번 본선 4라운드가 지나면 더욱 줄어들게 될 숫자였다.

“영상에서 한 번씩 봤던 얼굴들이라 그런가 처음 보는 것 같진 않네요.”

오디션장에 모인 참가자들을 찬찬히 훑어보던 조은별이 작게 속삭이듯 말했다.

본선 4라운드에 올라왔다는 건 그들 모두 본선 3라운드 생방송 경연에서 전승을 거두었단 의미였다.

이 중에는 영상에서 화제를 모은 참가자들도 많았다.

“이번 라운드는 확실히 쉽지 않을 거예요.”

성현의 말에 이전까지 파이팅 넘치던 멤버들도 모두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확연하게 기가 죽은 듯한 멤버들을 보고 성현은 웃으며 분위기를 돋웠다.

“긴장할 거 없어요. 이럴 줄 알고 한 달 동안 열심히 노력한 거잖아요.”

긴장을 풀어주러 멤버들에게 이런저런 말을 걸고 있는데 멀리서 자신을 쳐다보는 한 참가자와 눈이 마주쳤다.

문희진.

성현을 먼저 알아본 그녀가 성현을 가만히 쳐다보고 있었다.

성현은 문희진인 것을 확인했지만 그녀에게 굳이 아는 척을 하지 않고, 멤버들과 함께 대기실로 향했다.

“잠깐 얘기 좀.”

자신의 시야에서 벗어나려는 성현의 모습에 결국 먼저 말을 건 쪽은 문희진이었다.

“먼저 들어가 계세요.”

성현은 마지못해 일행들을 먼저 보내고 다른 참가자들이 모여 있는 로비기에 시끌시끌한 분위기 속에서 문희진과 대화를 나눴다.

문희진은 성현의 일행들이 모두 사라지자 바로 말을 꺼냈다.

“신촌팀을 이기는 게 쉽지 않은 일이었을 텐데 솔직히 조금 놀랐습니다.”

“그런가요.”

신촌을 언급하는 문희진의 말에 성현이 여상하게 대답하고 바로 대기실로 향하려고 했다.

겨우 이거 말하려고 자신을 붙잡았나 싶기도 했다.

바로 들어가려는 성현을 문희진이 다시 붙잡았다.

“아직도 저랑 함께할 생각은 없는 겁니까? 피차 손해 볼 일은 아니라고 보는데.”

문희진의 말에 성현은 걸음을 멈추고 그녀를 바라봤다.

이번에 본선 4라운드에 관한 소문을 흘린 것도 그렇고 방식이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이었다.

조용히 넘어가려던 성현은 결국 참지 못하고 문희진을 똑바로 바라보며 따져 물었다.

“조작 PD 사건 당신이 벌인 겁니까? 그거야말로 쉽지 않은 일이었을 텐데.”

성현의 말에 문희진은 깜짝 놀란 표정을 짓더니 곧 사나운 표정이 되어 발끈했다.

“오해가 있는 것 같은데 신촌 대표와 친분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조작PD를 신촌에 심은 건 제가 아닙니다. 저에 대해 그런 말도 안 되는 오해를 하고 계셨던 거예요?”

바로 튀어나오는 것 보니 꽤나 억울한 것 같았다.

물론 성현도 다시금 생각해보니 한 명의 참가자에 불과한 문희진이 그렇게까지 하지는 못했을 거라 결론을 내리긴 했었다.

하지만 아직 확신이 부족했다.

그도 그럴 것이 신촌팀과의 경연에 맞물려 자신과 손을 잡자고 제안한 문희진의 타이밍이 너무 공교로웠다.

“그 말을 제가 어떻게 믿습니까.”

성현의 말에 문희진은 잠시 할 말을 잃었다.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성현을 유심히 보던 문희진은 진지하게 물었다.

“설마 진지하게 제가 주최 측에서 정한 PD를 바꿀 정도로 영향력이 있다고 생각하는 겁니까?”

어이없다는 듯한 뉘앙스까지 묻어 있는 말에 성현은 대답 없이 몸을 돌렸다.

단순히 문희진이 어떤 영향력이 있을까 해서 떠본 것이니 미련은 없었다.

문희진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가 직접적으로 마PD를 움직인 것이 아닐 수 있었다.

하지만 게임 속 주요 변수인 자신과 문희진이 지금 이 상황에 영향을 미친 건 분명해 보였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성현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의혹까지 파헤쳐 보기로 했다.

“저기요!”

문희진은 제 할 말만 하고 돌아선 성현을 향해 크게 외쳤다.

성현은 뒤돌아보며 자신이 들은 소문에 대해 말했다.

“오늘 라운드에 나올 가수, 김재한과 정범주에 관한 정보를 흘린 이유는 뭐죠? 당신이 남성 보컬리스트를 선택할 거 같지는 않은데.”

성현의 날카로운 물음에 문희진은 살짝 당황하지만 이내 숨기지 않고 의도를 시인했다.

“맞습니다. 단순히 실력만으로 서바이벌에서 승리하기 힘들다는 건 그쪽도 잘 알지 않나요. 굳이 알고 있는 정보를 써먹지 않을 이유는 없다고 봅니다.”

문희진의 당당한 말에 성현은 곧장 인상을 썼다.

음악으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정보를 이용해 이득을 취해 위로 올라가려는 문희진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런데 왜 두 가수의 정보를 남자 참가자들 사이에 흘린 겁니까?”

성현의 의문에 문희진은 아무말 없이 성현을 똑바로 쳐다보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천소울을 견제하려고요.”

같은 홍대팀인 성현은 그 말을 바로 알아들었다.

이어질 라운드에서 천소울이 미리 떨어지게 하고 싶다는 말.

성현은 주먹에 절로 힘이 들어갔다.

“알다시피, 세 명의 남자 보컬리스트 중에 남은 사람, 나준석은 가창력보다는 다른 능력에 중점을 둔 가수니까. 천소울이라면 당연히 그 둘 중 한 명을 선택하지 않겠어요?”

이미 말했으니 숨기지 않겠다는 듯이 자신의 계산을 조곤조곤 설명하는 문희진.

그런 모습은 본 성현은 확실하게 마음을 굳히고는 문희진에게 말했다.

“그래서 문희진씨와는 함께할 수 없는 겁니다. 전 실력만으로 우승하고 싶거든요.”

확고한 대답에 문희진은 순간 표정이 굳지만 이내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군요.”

문희진은 이제 미련 없다는 듯이 먼저 자리를 떴고 성현 또한 대기실로 향했다.

***

성현이 대기실로 가자 천소울과 주선아까지 도착해 성현을 기다리고 있었다.

로비로 가서 성현을 불러와야 하나 고민하던 멤버들은 때마침 들어온 성현을 향해 안도의 미소를 보였다.

“성현씨, 곧 4라운드 시작될 거 같아요.”

임하나는 대기실을 분주하게 오가는 카메라맨들과 스탭들을 보며 말했다.

그 말이 끝나자마자 대기실로 진행요원이 들어왔다.

“한 달 동안 잘 쉬셨나요?”

진행요원의 말에 여기저기서 작게 네, 라는 소리가 들려왔다.

모든 참가자들이 모인 것을 확인한 진행요원은 본격적으로 4라운드 설명을 진행했다.

“열심히 쉰 만큼 이번 라운드 또한 치열하게 준비하시길 바라겠습니다. 그럼 본선 4라운드 미션 공개하겠습니다.”

진행요원 말에 대기실에 모인 참가자들의 커넥트 앱으로 일제히 알람이 떴다.

[ 본선 4라운드 : 너랑 나랑 가수랑! ]

* 미션 : 여러분들이 좋아하는 가수와 함께 작업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집니다! 참가자들끼리 자유롭게 2인 1조로 팀을 구성, 원하는 가수와 파트너를 이뤄 최고의 무대를 완성하세요.

* 조건 : 1) 본선 4라운드는 가수/프로듀서 상관없이 2인 1조가 한 팀을 이뤄 진행합니다.

2) 총 10팀의 스타 가수가 함께합니다. 원하는 가수와 매칭 하세요.

3) 한 가수는 한 팀과 매칭할 수 있습니다.

4) 참가자들의 가수 선택은 블라인드로 진행합니다.

5) 만약 한 가수를 원하는 팀이 두 팀 이상일시, 최종 매칭 결정권은 가수에게 있습니다.

6) 1차 선택에서 매칭에 실패한 참가자는, 2차 선택에서 아직 매칭이 완료되지 않은 가수에게 매칭 신청을 할 수 있습니다.

7) 모든 가수의 매칭이 완료될 때까지 위 과정을 반복합니다.

8) 최종 매칭 실패 시, ‘더 넥스트 슈퍼스타’ 최종 탈락입니다.

9) 매칭된 가수와 함께 무대를 준비하세요.

10) 특별 심사위원들의 투표를 통해 본선 4라운드 합격 여부가 결정됩니다.

11) 다음 라운드로 향할 수 있는 팀은 총 4팀입니다.

합격자들 모두 빠르게 공지사항을 읽어 내려갔고 이내 여기저기서 당황한 듯한 반응이 튀어나왔다.

“단 4팀이면 총 8명만 살아남는다는 거잖아.”

“지금 여기 있는 참가자들 수만 60명 좀 넘게 있는데 8명이면 80프로 이상이 탈락한다는 거야?”

당황한 건 성현의 일행 또한 마찬가지였다.

성현을 포함 조은별, 서지현, 임하나 등 일행들 수만 합쳐도 이미 8명이 넘었다.

즉 성현의 일행 중 누군가는 필연적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단 걸 의미했다.

이전까지 한 지역에서 팀으로 활동했던 이들은 한순간에 전부 경쟁자가 된 것이다.

이 사실을 이해한 일행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모두 침묵에 잠겼다.

“눈치 볼 거 없어요. 다들 이렇게 될 줄 알고 있었잖아요.”

성현이 먼저 무거운 침묵을 깨고 말했다.

서바이벌에서 언제까지 팀으로 붙을 수 없다는 걸 성현뿐만 아니라 팀원들 또한 의식하고 있었다.

각오하고 있었던 그날이 이렇게 빨리 올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을 뿐.

“우리 지금 오디션 참가 중인 거고 오디션에서 더 잘하는 사람이 올라가는 건 잘못이 아니에요. 당연한 거지. 그러니까 다들 최선을 다해서 준비해봅시다.”

“전 떨어지더라도 원망 안 해요. 솔직히 여기까지 즐기면서 무대 할 수 있었던 게 운이 좋았던 거잖아요.”

성현에 말에 서지현이 씩씩하게 말했고, 다른 멤버들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그래도 벌써 떨어질 생각은 하지 마. 이길 생각으로 죽기 살기로 해. 알았어?”

“언니도 죽기 살기로 하세요. 저 안 봐줄 거예요.”

서지현의 말에 임하나는 일부러 장난스럽게 말했다.

서지현은 두고 보라는 듯이 웃으며 그 말을 받아쳤다.

“우리 진짜 서로 봐주기 없기예요.”

누군가 탈락한다는 사실에 조금 시무룩해졌던 멤버들은 다시 파이팅을 외치고 곧 4라운드 미션으로 관심을 돌렸다.

“그런데 특별 심사위원들은 누굴까요? 엄청 유명한 가수들이 하려나.”

“전문 음악 평론가들이 올 수도 있을 것 같기도 하고.”

저마다 모두 특별 심사위원의 존재가 누굴까 추측을 하고 있는 와중에 성현은 조용히 있을 뿐이었다.

당연히 성현은 특별 심사위원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특별 심사위원의 정체는 공개가 되면 합격자들 모두가 놀랄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었다.

띠링-

그리고 이어지는 또 하나의 공지.

[ 30분 내로, 자유롭게 2인 1조로 팀을 구성한 후, 명단을 제출하세요. ]

“30분 초과시 자동 탈락되니 정해진 시간을 준수해 주시길 바랍니다.”

요원의 말에 대기실에 있는 참가자들 모두 당황했다.

이미 미션 내용을 알고 미리 팀을 짜두었던 성현은 전혀 당황하지 않고 멤버들을 불렀다.

“팀을 구성하는 데 따로 제한을 두지 않은 걸로 봐서 반드시 프로듀서와 가수가 한 팀을 이룰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여기도 나와있죠.”

성현은 모두가 받은 룰을 가리키며 차분하게 설명했다.

멤버들은 갑작스럽게 팀을 짜라는 말에 당황했지만 언제나처럼 여유를 보이는 성현을 보며 평정을 되찾았다.

아직 30분이 남아 있었다.

멤버들은 침착하게 성현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팀 구성 제한이 없다 해도 아무래도 프로듀서와 가수가 한 팀을 이루는 게 미션을 진행하는 데 수월하겠죠?”

그렇게 말한 성현은 멤버들이 볼 수 있게끔 빠르게 팀을 구성해 적었다.

이성현 – 임하나 / 조은별 – 서지현 / 서자명 – 김요하 / 주영준 – 릴리 / 천소울 - 주선아

“아무래도 그동안 호흡을 맞춘 참가자들끼리 팀을 이루는 게 서로한테 좋을 것 같아서 대충 짜봤는데 어디까지나 제 의견이니 판단은 여러분들이 하시면 됩니다.”

성현은 멤버들 간 기존 케미나 음악 스타일이 맞는 팀을 구성했다.

그것을 확인한 멤버들 모두 성현이 짠 팀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전 좋아요. 영준 오빠랑 작업하는 게 제일 편하기도 하고.”

“저도 지현이만 괜찮으면 이대로 가도 좋을 것 같아요.”

“언니, 저야 당연히 좋죠.”

그렇게 멤버들이 모두 좋다고 외치는 와중에 성현은 지금까지 조용히 있던 천소울 쪽을 봤다.

천소울은 속을 알 수 없는 표정을 하고 성현이 적어놓은 명단을 내려다 보고 있었다.

“천소울씨? 기본 편곡 능력이 있으니까 일부러 주선아씨랑 넣었는데.”

성현의 말에 천소울은 단박에 대답했다.

“문제없습니다.”

“너무 좋아요.”

그에 이어 주선아 또한 성현의 결정에 불만 없이 오케이를 외쳤다.

그렇게 성현의 팀은 모두 빠르게 팀 결성을 완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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