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같은 프로듀서는 없었다-110화 (110/273)

110화

“와, 플레이 스퀘어 진짜 오랜만이다.”

“나도 학교 졸업하곤 처음 오는 거 같은데.”

임하나는 신난다는 듯이 제일 먼저 건물에 들어서며 외쳤다.

그 뒤로 줄줄이 멤버들이 들어서며 들뜬 마음을 숨기지 않았다.

결국 멤버들 모두 릴리의 제안대로 대형 쇼핑몰에 방문한 참이었다.

멤버들은 하나같이 오랜만에 연습실에서 벗어난 것에 한껏 들떠 있었다.

“사고 싶은 거 있으면 가격표 신경 쓰지 말고 그냥 고르세요.”

릴리는 신이 나서 이리저리 둘러보는 멤버들에게 미리 일렀다.

쿨하기 그지없었다.

멤버들 모두 조용히 그녀에게 쌍 따봉을 들어 올렸다.

이제 와서 하는 말이지만 성현이 릴리를 살린 것은 참 잘한 선택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누나 전 이거요!”

요하는 누구보다 빠르게 옷을 하나 가져와서 말했다.

릴리는 그런 요하가 귀엽다는 듯 웃으며 바로 결제를 해줬다.

“진짜 아무 옷이나 골라도 되는 거예요?”

상의로 커피 묻은 자국을 가리고 있던 서지현은 아직도 믿기지 않는지 조심스럽게 물었다.

“네. 그럼 각자 옷 고르면 연락 주세요. 저도 오랜만에 쇼핑 좀 해야겠어요.”

평소에도 쇼핑을 좋아했지만 최근 오디션에 집중하면서 쇼핑을 전혀 못 했다.

릴리 역시 오랜만에 쇼핑에 들떠서 쇼핑을 하러 떠났다.

돈을 내는 물주가 사라지자 멤버들은 눈치 볼 것도 없이 모두 각각 원하는 옷을 고르기 위해 흩어졌다.

“지현이 넌 트레이닝복 살 거야?”

“네. 언니는요?”

“나도. 연습하는 덴 츄리닝이 최고지.”

임하나와 서지현은 통했다는 듯이 서로를 보고 웃고는 함께 트레이닝복을 고르러 사라졌다.

나머지 멤버들 또한 각각 원하는 스타일의 옷을 하나씩 골랐다.

“할부하시겠어요?”

“아니요. 일시불이요.”

모두가 비싼 명품을 고른 건 아니더라도 절대 싼 값의 옷들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릴리는 가격엔 전혀 개의치 않으며 망설임 없이 결제를 했다.

이를 본 멤버들 모두 그녀를 부럽다는 눈빛으로 쳐다봤다.

저게 바로 인기 너튜브의 삶이구나 싶었다.

“성현씨는요?”

“전 괜찮습니다.”

남은 멤버들의 옷을 모두 결제해줄 때까지 성현은 옷을 고르지 않았다.

릴리의 말에 성현은 정말 괜찮다며 손사래를 쳤다.

그런 성현을 가만히 두고 볼 릴리가 아니었다.

“다른 분들은 몰라도 성현씨한텐 꼭 보답하고 싶어요.”

괜찮다는 성현을 데리고 남성복 매장이 있는 층으로 간 릴리는 곧장 양복 매장으로 향했다.

성현은 차마 릴리의 손을 뿌리치지도 못하고 그대로 질질 끌려가는 중이었다.

다른 멤버들은 모두 그런 성현의 모습이 재밌다는 듯이 구경하면서도 절대 도와주지 않았다.

“프로듀서면 비싼 양복 하나는 있어야 되잖아요.”

“양복은 저도 있어요. 저 정말 괜찮-”

“여기 이분 치수 좀 재주세요. 결제는 이걸로 하시면 돼요.”

릴리는 성현의 대답은 듣지도 않고 곧장 직원을 불렀다.

성현의 말은 가볍게 무시하고 양복의 사이즈까지 맞추더니 결제까지 순식간에 끝내버렸다.

“그럼 이쪽 주소로 열흘 뒤에 보내드리겠습니다.”

양복 매장 직원의 환한 미소를 뒤로 하고 둘은 매장을 나올 수 있었다.

그렇게 성현까지 옷 구매가 끝난 후 모인 멤버들은 오랜만에 외출에 이대로 연습실에 돌아가기 아쉬워했다.

누구 한 명 연습실로 가자는 소리 없이 우물쭈물하는 모습을 보던 성현이 말했다.

“이대로 가기 아쉬운데 아이스크림이라도 먹고 갈래요?”

성현의 제안에 멤버들은 신이 나서 모두 아이스크림 가게로 향했다.

“전 잠깐 화장실 좀 들렀다 갈게요.”

“어! 저도 같이 가요!”

릴리와 서지현은 함께 화장실로 향하고 나머지 멤버들은 각각 아이스크림을 고르는 데 여념이 없었다.

그때 여고생 무리가 아이스크림 매장에 들어왔다.

저들끼리 열심히 떠들던 여고생들 중 한 명이 웃다가 이쪽을 쳐다봤다.

다시 일행들을 향해 뭐라고 말하려던 여고생의 고개가 휙 하고 꺾여 멤버들이 있는 쪽을 주시했다.

여고생의 눈이 점점 더 커지고 옆에 있는 친구의 팔을 툭툭 쳤다.

“야, 야. 저분들 그 사람들 맞지? 홍대 팀 참가자들.”

“뭔 소리야. 여기서 그 사람들이 왜…. 헐, 대박. 하나 언니다. 얼굴 완전 작아.”

“미친. 김요하도 있어. 실물 개쩐다.”

여고생들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아이스크림을 고르고 있는 성현의 무리를 보고는 단번에 그들이 누군지 알아본 무리는 이내 자기들끼리 흥분해 소곤거리기 시작했다.

소곤거림이 점점 커질 무렵 서로 툭툭 치면서 뭔가를 논의했다.

그중 한 명이 조금 눈치를 보더니 사인과 사진을 요청하러 쭈뼛거리며 멤버들에게 다가왔다.

“저… 하나 언니 저 진짜 팬인데 사진 한 번만 찍어주시면 안 돼요?”

“저두요. 저 본선 3라운드에 나오는 언니 무대 다 챙겨봤어요. 진짜 춤도 잘하고 노래도 잘하고 못하는 게 뭐예요?”

“어? 나, 아, 아니, 저요?”

갑작스러운 팬의 말에 임하나는 일행들과 웃고 떠들다가 깜짝 놀라 말을 더듬었다.

임하나는 특유의 걸크러쉬 이미지 때문에 여고생들에게도 인기가 많았다.

“꺅! 언니 맞죠!”

“언니 멋있어요! 제가 투표도 언니한테 했는데!”

자신들의 생각이 맞자 기쁨에 얼굴이 발갛게 상기된 여고생들이 고개를 마구 끄덕이며 임하나의 곁으로 바짝 붙었다.

그 모습에 곧 아이스크림 가게에 있던 다른 손님들도 성현의 일행을 알아보기 시작하더니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저 진짜 죄송한데 손 한 번만 잡아봐도 될까요?”

“저도 여기 사인 한 번만 해주시면 안 될까요?”

요하 또한 많은 여성팬들에게 인기가 많았고 여기저기서 사인과 사진 요청이 쇄도했다.

요하와 임하나에게 밀려서 다른 멤버들은 휘청이며 옆으로 밀려날 정도였다.

확실히 대중들에게 보여지는 가수 참가자들 주변으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성현은 한 발짝 떨어져 팬들과 사진을 찍는 가수 참가자들을 뿌듯하게 지켜봤다.

‘프로듀서의 역할이란 이런 거겠지.’

프로듀서의 역할은 자신의 가수를 가장 빛나는 스타로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성현에겐 이것이 당연했고 단 한 번도 개인적인 인기를 원했던 적은 없었다.

반면 서자명은 성현과 다른 생각인 건지 팬들과 사진을 찍는 가수 참가자들을 부러운 듯 쳐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시선을 느꼈는지 사인을 해주던 임하나가 서자명과 눈이 마주치고 이내 그를 놀렸다.

이런 건수를 그냥 넘어갈 임하나가 아니었다.

“부럽죠? 인기 많아서?”

임하나의 조금 놀리는 듯한 말에 서자명은 입을 꾹 다물었다.

저기에 반응하면 지는 거다, 그렇게 서자명이 되뇌고 있는 그때, 아이스크림 매장 안으로 릴리와 서지현이 들어왔다.

그러자 릴리를 발견한 임하나 앞에 몰려있던 팬들이 순식간에 썰물처럼 빠지더니 릴리에게 돌진했다.

“리, 릴리 언니? 언니 맞죠?!”

“언니 사랑해요!”

“언니 저 진짜 언니 너튜브 초창기 때부터 팬이었어요.”

어느새 아이스크림 매장에 있던 대부분 사람들이 릴리 앞으로 몰려들었고 임하나 앞에는 아무도 남지 않았다.

그리고 이를 본 서자명은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으며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임하나를 쳐다봤다.

“부럽죠? 인기 많아서?”

서자명은 팬들에게 둘러싸인 릴리를 가리키며 방금 임하나가 자신에게 했던 말을 똑같이 되돌려 줬다.

그 말에 임하나는 뻘쭘해져서 얼굴이 빨개졌다.

그리고 둘의 모습을 지켜보던 성현도 함께 웃는데 성현에게 한 중학생 아이가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저..... 싸인 받을 수 있을까요?”

아이는 조금 머뭇거리며 성현에게 물었고 성현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어쩌지. 내가 아직 싸인이 없는데.”

“그럼 이름이라도 적어 주시면 안 될까요? 아니면 아무 말이라도......”

성현이 생각보다 쉽게 해주겠다고 하자 약간 용기가 생겼는지 아이는 적극적으로 나서서 사인이 아니어도 괜찮다고 재차 말했다.

“이름이 뭐야?”

“강시윤이요. 저요, 형이 만든 생방송 무대 다 봤어요. 저도 프로듀서가 꿈이거든요.”

아이는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성현은 아이가 건넨 공책에 자신의 이름과 함께 음악을 열심히 하라는 메시지를 적어서 돌려주었다.

“열심히 해서 나중에 꼭 현장에서 만나자.”

“네. 그때까지 저 잊으시면 안 돼요!”

성현은 그렇게 말하면서 요하에게 그러는 것처럼 가볍게 머리를 쓰다듬어 줬다.

아이는 처음에 머뭇거리던 것은 언제냐는 듯 힘차게 대답하며 매장 밖으로 뛰어나갔다.

밖에는 아이의 부모처럼 보이는 사람이 성현의 사인을 확인하고 잘 됐다며 아이에게 웃어주고 있었다.

성현은 그런 아이를 향해 흐뭇하게 웃어 보였다.

***

이후, 빠르게 시간이 흘렀고 어느새 주최 측이 준 한 달간의 시간이 모두 지났다.

지하철을 타고 어디론가 향하는 성현은 커넥트 앱을 실행했다.

거기에는 주최 측이 일주일 전에 보낸 공지가 띄워져 있었다.

[ 2022년 4월 18일 월요일. 오후 13:00까지 서울 구로구에 위치한 충무아트센터로 모이세요. ]

‘충무로라…. 한 달도 금방이구나.’

성현뿐만 아니라 멤버들 모두 개인 연습을 하느라 바쁜 나날을 보내느라 한 달이란 시간은 결코 길지 않게 느껴졌다.

오히려 순식간에 지나갔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그리고 다행인 건 짧다면 짧은 시간 동안 성현을 비롯한 홍대 멤버들 모두 앞으로 있을 본선 4라운드에 대한 대비를 어느 정도 끝낸 상태였다.

‘이번엔 또 어떤 무대를 만들 수 있을까.’

성현은 다시 시작되는 서바이벌에 마음이 조금 들떴다.

어서 빨리 무대를 하고 싶었다.

혼자 작업하는 것만으로는 이제 부족했다.

그동안 무대에 대한 갈망이 더욱 커진 성현은 긴장보다는 기대감이 가득한 표정이었다.

준비한 곡들을 들어보는 성현은 이번엔 어떤 음악을 보여줄까 설레기까지 했다.

그때 갑자기 휴대폰 진동이 울렸다.

조은별에게서 걸려온 전화였다.

“네, 은별씨.”

“성현씨 얼마나 남았어요?”

“이제 두 정거장이요.”

노선표를 확인한 성현이 그렇게 대답하자 조은별은 알겠다며 말했다.

“저흰 다 도착했거든요. 충무아트센터 앞에 광장에서 기다리고 있을게요.”

은별과 전화를 끊은 성현은 발걸음을 서둘렀다.

매번 멤버들을 기다리는 것은 성현의 몫이었다.

아직 집합 시간보다 이른 시각이었는데 멤버들은 모두 모여 있었다.

아무래도 무대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성현 혼자만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저 왔어요.”

먼저 도착해있던 멤버들이 손을 흔들며 성현을 반겼다.

경연을 앞두고 있는 사람들답지 않게 하나같이 표정들이 밝았다.

“그럼 다들 힘내서 시작해볼까요.”

성현의 말에 멤버들은 갑자기 성현을 재촉했다.

왜 그러냐는 성현의 말에 둥글게 모인 멤버들은 한 손씩 모으고 성현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성현은 피식 웃으며 마지막으로 동료들의 손 위에 자신의 손을 얹었다.

모두 파이팅을 외치며 하늘을 향해 손을 뻗었다.

멤버들은 결의가 넘치는 표정을 지으며 다 같이 오디션장으로 향했다.

다시 또 서바이벌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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