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같은 프로듀서는 없었다-109화 (109/273)

109화

멤버들은 각자 성현이 추천한 곡들을 연습하는 데 매진했다.

모두가 출근 도장을 찍듯이 매일 아지트로 모였다.

‘다들 흡수력이 더 빨라졌어.’

팀원들은 전보다 훨씬 적극적인 모습이 되어 프로듀서들을 불러 세워다가 연습한 성과를 보여주고 의견을 나누었다.

너나 할 거 없이 서로의 연습을 체크해주고 격려를 하기도 하고 칭찬을 건네기도 했다.

그 사이 1주일이라는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각자 개인 스케줄을 짜서 그대로 소화하고 연습하느라 바쁜 나날들을 보냈다.

오랜만에 서로의 연습 현황에 대해 물을 겸 오랜만에 다 같이 점심을 함께하기로 했다.

서로의 얼굴을 마주하고 하릴없이 수다를 떠느라 점심을 먹는 일행들은 복작복작했다.

배부르게 식사를 마친 멤버들은 입가심을 하러 카페에 모였다.

“다들 연습은 잘 돼가고 있어요? 릴리씨는 요새 지현씨랑 연습 같이 하는 거 어때요?”

성현은 충분히 회포를 푼 것 같은 팀원들의 모습에 슬슬 본론으로 들어갔다.

“네. 아무래도 지현씨 음악 스타일이 저랑 비슷하다 보니까 도움이 많이 되네요.”

“언니 연습에만 매진한다고 너튜브 활동도 중단하시고 완전 열심히 하세요.”

서지현은 자신이 좋아하던 릴리와 함께 연습을 하는 과정이 굉장히 만족스러웠는지 릴리를 제치고 말했다.

멤버들에게 릴리가 얼마나 열성적으로 연습에 참여하는지 설명하는 서지현의 모습에 모두들 놀라서 릴리를 쳐다봤다.

“정말요? 소속사에서 가만있던가요?”

“가만 안 있겠다는 걸 크게 한 번 들고 일어났더니 그 뒤로 잠잠하더라구요.”

놀라 팀원들의 반응에 릴리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김태구 사건을 이후로 소속사에게 자신의 의견을 전보다 적극적으로 어필하게 된 그녀였다.

덕분에 예전보다 널널한 관리를 받을 수 있게 됐다.

원하는 노래를 하고 필요한 연습만 요청해서 소속사의 도움을 받았다.

소속사는 릴리가 다시 너튜브를 시작하길 은근히 바라고 있었지만 릴리는 그것도 무시하고 연습에 열심이었다.

과거에 거절할 줄 모르던 릴리의 모습은 온데간데 사라지고 없었다.

“지현이 말로는 릴리씨가 박연주 보컬 코치님 섭외했다는데 어떻게 했어요? 그분 웬만한 아이돌 그룹도 섭외하기 힘든 분인데.”

조은별은 서지현의 설명 속에서 아까부터 신경 쓰였던 이름 하나를 언급했다.

예전에 소속사에서 아이돌을 육성할 때 섭외하려다가 실패한 경험이 있었던 사람이었다.

“옛날에 저 어릴 때 한 번 가르쳐주신 적 있거든요. 그때 연이 돼서 아직까지 종종 연락하고 있어요.”

“박연주? 와, 부럽다. 지현아, 언니 빼놓고 그런 비싼 과외 받으니까 좋아?”

“언닌 성현씨가 봐준다면서요. 전 그게 더 부러운데.”

릴리의 말에 임하나는 제법이라는 듯이 서지현의 어깨를 치며 물었다.

서지현은 뿌듯하게 웃으면서 임하나에게 장난스럽게 눈을 흘겼다.

그러면서 조금 서운하다는 듯 성현을 보고 말하는 서지현의 시선을 눈치챈 성현은 미안하다는 듯 어색하게 웃었다.

“보컬은 저보단 박연주 선생님께서 더 잘 봐주실 거예요.”

“치, 됐어요.”

성현의 변명에 서지현이 살짝 토라진 듯 말하는데 카페로 뒤늦게 요하가 들어왔다.

서둘러서 뛰어왔는지 요하의 양 볼이 살짝 상기되어 있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연습하다 늦은 건데 뭘 죄송해. 요하 뭐 먹을래?”

모두가 반갑게 요하를 맞이하고 바로 자리를 내줬다.

성현은 바로 일어나서 요하와 함께 음료를 주문하러 가려는데 서자명이 따라 일어났다.

“저 때문에 밥도 못 먹고 온 건데 요하 건 제가 계산하겠습니다.”

서자명은 자신의 곁으로 온 요하의 머리를 마구 헝클어트리며 뭐 먹고 싶냐고 메뉴판을 가리켰다.

“트레이너 선생님이 많이 빡센가 봐요?”

“그 친구가 뭐 하나 꽂히면 시간 가는 줄 모르는 녀석이거든요. 저랑 작업할 때도 밥도 안 먹이고 연습시키는 바람에 공연 기간만 되면 멤버들 살이 몇 킬로씩 쭉쭉 빠졌습니다.”

최근에 요하는 서자명이 과거 함께 했던 밴드 보컬에게 보컬 코칭을 받고 있었다.

덕분에 요즘 그 누구보다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오늘도 혹독하게 연습을 마치고 왔는지 바로 달달하고 시원한 음료를 제일 큰 사이즈로 주문하고 있었다.

“너무 힘들면 말해. 밥은 먹어가면서 해야지.”

같이 점심을 못 먹은 게 신경 쓰인 성현의 걱정스러운 말에 요하는 아니라며 싱긋 웃었다.

“쌤이 그만하자는 걸 제가 더 하자고 해서 늦은 거예요. 보컬 말고도 기타나 무대 퍼포먼스 같은 것까지 배우려면 두 시간으론 부족해요.”

덧붙여서 씩씩하게 레슨 시간이 부족하다고까지 한다.

성현은 피식 웃으며 서자명과 요하를 한데 묶어 경연을 준비하라고 했던 자신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느꼈다.

서자명의 연줄이 이래저래 경험이 적은 요하에게 많은 도움이 되고 있는 것 같았다.

요하는 서자명이 소개시켜 준 밴드 보컬에게 많은 걸 배울 수 있었고 그 어느 때 보다 음악에 대한 열정이 엄청났다.

‘다들 후회 없이 열심히 구나.’

성현은 요하를 비롯한 멤버들이 이 기간 동안 성장하고 있는 걸 보고 더욱 뿌듯함을 느꼈다.

비록 이번 본선 4라운드에서 멤버들 전원이 붙으리란 보장은 없었지만 열정을 가지고 준비한 만큼 후회는 없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은별씨랑 영준씨도 스튜디오에서 산다는 소문이 있던데.”

주문을 마치고 돌아온 성현이 은별과 주영준을 보며 말했다.

두 사람은 성현이 추천한 가수들의 음악을 멤버들에게 어울릴만한 편곡을 하는 데만 온 신경을 쏟느라 연락도 잘되지 않는 날이 점점 많아지고 있었다.

“말이 나와서 말인데 오늘 아침에 완성한 곡인데 다들 들어보시고 평가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

기다렸다는 듯한 주영준 말에 멤버들 모두 빨리 틀어보라며 성화였다.

생각보다 격한 반응에 주영준은 조금 부끄럽다면서도 곧장 자신이 편곡한 곡을 들려줬다.

주영준이 준비한 곡은 인디팝 계열의 곡으로 평소 그의 스타일이 잘 묻어나는 곡이었다.

“요하한테 가장 잘 어울릴 것 같은데, 요하 넌 어때? 괜찮을 것 같아?”

조금 긴장해서 요하에게 묻는데 노래를 들은 요하의 표정이 밝았다.

“네. 이따 오후에 당장 연습해 봐도 돼요?”

“그럴래? 그럼 내가 파일 먼저 보내줄게.”

주영준은 요하의 시원한 대답에 신이 나서 대답했다.

“지금쯤 천소울씨랑 선아도 연습하느라 바쁘겠죠?”

“우리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을걸요.”

완벽주의자 천소울과 그에 못지않게 연습벌레인 주선아였다.

아마 지금쯤 어디에 선가 맹연습이 한참일 것이 뻔했다.

“어! 다들 주목!”

그리고 그때 휴대폰을 확인하던 임하나가 다급하게 멤버들을 불렀다.

“두 시 됐어요!”

임하나 말에 멤버들 모두 빠르게 휴대폰을 꺼내 확인했다.

오후 두 시마다 더 넥스터 슈퍼스타 서울 편 영상이 너튜브에 업로드 됐다.

성현과 멤버들 모두 너튜브에 들어가니 서울 편 영상 3화가 막 업로드 되어 있었다.

차례차례 풀리고 있는 영상 덕분에 최근 한국은 물론 전 세계가 ‘더 넥스트 슈퍼스타’가 최대 이슈였고 한국에선 역시 한국의 예선 영상이 상당한 인기 몰이를 하고 있었다.

“와. 서울 편 1화는 일주일 만에 1000만뷰 돌파했네요.”

“2화 영상도 이틀 됐는데 벌써 500만 뷰예요.”

멤버들은 엄청난 조회수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 정도로 더 넥스트 슈퍼스타는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화제성이 있는 프로그램 중 하나였다.

그 덕에 오디션에 출연하는 참가자들 또한 많은 관심을 받고 있었다.

“천소울씨는 또 실검 올랐네.”

임하나는 매번 영상이 하나씩 공개될 때마다 천소울의 출연 여부와 상관없이 실검에 오르는 것에 혀를 차며 말했다.

요즘 천소울의 인기는 웬만한 연예인 저리가라 할 정도로 엄청났다.

만약 천소울이 스폰서가 있었다면 지금 인기를 힘입어 협찬이나 광고 촬영을 하고 있을 수도 있었다.

물론 그 성격에 음악에 전념한다며 다 거절했겠지만.

‘벌써부터 이 정도 인기라니.’

천소울을 비롯한 많은 참가자들은 종종 실검에 오르면서 주목을 받았다.

성현은 앞으로 더 많은 영상이 공개되면 홍대팀 멤버들이 이보다 더욱더 인기를 얻을 수 있을 거란 생각에 더욱 가슴이 뛰었다.

영상이 올라오자 카페에 모인 멤버들은 일제히 수다를 멈추고 휴대폰 화면에 얼굴을 박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 떠들썩했던 것이 거짓말인 양 막 올라온 따끈따끈한 영상을 보기 바쁜 모습이었다.

이를 보던 성현이 한 가지 제안을 했다.

“연습실 들어가서 TV로 다 같이 보는 게 어때요?”

“저도 그게 좋을 것 같아요.”

서지현은 성현의 말에 바로 그러자며 일어나다가 순간 테이블에 있던 커피가 쏟아졌다.

커피는 서지현 쪽으로 죄다 흘러내렸다.

“괜찮아요?”

성현은 테이블에 있던 티슈를 건네며 물었다.

생각보다 많은 커피의 양에 멤버들 모두 서지현을 걱정하는데 서지현은 괜찮다며 트레이닝복에 묻은 커피를 닦아냈다.

“이미 식어서 뜨겁진 않은데 영상은 같이 못 볼 것 같네요.”

서지현은 커피로 흥건히 젖은 바지를 가리키며 일부러 더 밝게 말했다.

“연습복 가져온 거 없어?”

“네. 괜찮아요. 집에 가서 갈아입고 오면 돼요.”

집에 다녀올 생각에 일어나는 서지현을 갑자기 릴리가 붙잡았다.

“뭐하러 귀찮게 집까지 다녀와요. 저랑 같이 옷 사러 가요. 제가 사줄게요.”

“네......?”

갑작스러운 릴리의 말에 서지현은 당황해서 되물었다.

그 말에도 릴리는 별일 아니라는 듯 짐을 챙기며 일어났다.

갑자기 옷을 사준다는 말에 서지현뿐만 아니라 다른 멤버들 모두 황당해서 릴리를 쳐다보는데 릴리는 신경도 쓰지 않고 말을 이어나갔다.

“혹시 따로 원하는 브랜드 있어요?”

“예? 아뇨, 언니가 제 옷을 왜 사줘요. 저 진짜 괜찮아요. 버스 타면 집까지 20분도 안 걸리고.”

“20분이면 한참이네. 제가 사주고 싶어서 그러니까 같이 가요.”

“저 진짜 괜찮은데......”

너무 갑작스러운 상황에 계속해서 제안을 거절해봐도 릴리는 물러서지 않았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멤버들은 점차 황당함에서 벗어나서 서지현을 부러운 눈길로 쳐다봤다.

“지현이 좋겠네. 너튜브 스타 릴리씨한테 옷도 선물 받고.”

“하나씨도 사줄까요?”

“네?”

장난으로 한 말에 릴리가 진지하게 받아치자 되려 임하나가 당황했다.

릴리는 멤버들을 둘러보다가 말했다.

“아니다. 그냥 다 같이 가요. 제가 옷 한 벌씩 사드릴게요.”

물 흐르듯이 자연스러운 릴리의 발언에 멤버들은 진심으로 당황했다.

“저흰 괜찮으니까 두 분이서 다녀오세요.”

“그럴 순 없어요. 꼭 전부 사드릴 거예요.”

결국 성현이 나서 괜찮다고 릴리에게 말하는데 그사이 생각을 고쳐먹었는지 릴리는 단호하게 말했다.

오늘 무슨 일이 있어도 기필코 옷을 사주겠다는 의지가 느껴지는 말이었다.

“왜, 왜요? 이유라도 들어봅시다.”

서자명도 황당해서 묻고 릴리는 잠시 가만히 있다가 곧 자신의 진심을 멤버들에게 전했다.

“…저를 항상 너튜브 스타가 아니라 한 명의 참가자로 대해줘서 고마워서요. 이번 일이 아니더라도 언젠가 꼭 보답할 생각이었어요.”

릴리의 말에 멤버들은 일제히 서로 눈치를 봤다.

그 가운데에서 주영준이 한숨을 내쉬더니 먼저 입을 뗐다.

“릴리가 이 정도로 말하는 거면 고집 못 꺾어요. 고맙게 받으면 될 것 같습니다.”

“그럼 이 근처에 할인매장 있으니까 거기로 가요.”

멤버들은 주영준까지 저렇게 말하자 이대로는 끝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지 조은별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요. 플레이 스퀘어로 가요.”

그러자 릴리는 이미 다 계획이 있다는 듯이 말하고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릴리의 말에 멤버들 여전히 서로 눈치를 보며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플레이 스퀘어는 대형 쇼핑몰로 여러 종류의 옷이 있었지만 대체로 비싼 값이기 때문.

“돈 때문에 그러는 거면 신경 안 쓰셔도 돼요. 저 너튜브 순이익만 한 달에 1억 넘어요.”

그런 멤버들을 돌아보며 쿨하게 말하는 릴리의 모습에 모두들 어색하게 웃으면서 자리에서 일어나야 했다.

1억이라니, 쉽게 생각할 수 없는 액수에 헛웃음만 나오는 멤버들이었다.

다시 한번 릴리가 얼마나 굉장한 스타인지 실감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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