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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같은 프로듀서는 없었다-108화 (108/273)

108화

마PD 문제로 본선 4라운드까지 한 달간의 여유 기간이 생겼다.

성현은 어찌 보면 이것이 다행이라 생각했다.

본선 3라운드까지 성현을 비롯한 모든 참가자들이 숨 가쁘게 달려왔으니 숨 돌릴 틈이 없었다.

이 기회에 한 번쯤 쉬어가는 타이밍을 가지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본선 4라운드의 미션 내용을 알고 있는 성현은 주어진 한 달 동안 자신뿐만 아니라 일행들을 준비시킬 필요성을 느꼈다.

‘남은 시간 동안 확실히 대비를 해야겠다. 다음 라운드부터는 진짜 실력자들만 밀집해 있을 테니까.’

이제부터는 정말 실력 있는 참가자들이 밀집해 미션을 진행해 나갈 것이다.

프로듀서 참가자든 가수 참가자든 분명 상당한 실력 혹은 강점을 가지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성현은 너튜브에 올라오는 서울 지역 참가자들 영상을 꼼꼼하게 체크하고 있었다.

‘그들에 대한 단편적인 정보는 있을 수 있어도 그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전략으로 나올지는 알 수 없어.’

다행히 주최 측에서 당장 오디션을 중단하긴 했어도 아지트는 여전히 개방해 놓은 상태였다.

연습할 수 있는 공간은 자유롭게 오픈되어 있었다.

한 달 동안 일행들은 연습실 이용이 가능했고, 성현은 곧장 연습 스케줄을 조정하기 위해 멤버들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성현: 내일 오전 10까지 아지트 연습실에서 모이는 거 어떨까요?

성현의 메시지에 모두가 시간이 된다는 답장이 돌아왔다.

내일을 기대하는 마음으로 성현의 마지막 준비를 위해 작업실에 들어갔다.

***

다음 날 오전.

성현이 가장 먼저 연습실에 도착해서 멤버들을 기다렸다.

이어서 하나둘씩 멤버들이 도착했다.

“다들 잘 쉬었어요?”

“네. 언니는요? 며칠 안 봤는데 엄청 오래된 것 같아요.”

조은별의 따듯한 말에 서지현이 반가워하며 말했다.

매일매일 보던 사람들인데 며칠 안 봤다고 괜히 아쉬웠다.

이제는 아지트에서 연습을 위해 매일 모이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겨질 정도로 너무 익숙해지고 말았다.

“나도! 요하야 선아는 어딨어?”

임하나는 바로 요하 곁으로 가서 일부러 주선아의 소식을 슬쩍 물었다.

아니나 다를까 요하는 짜증을 내듯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걸 왜 저한테 물어요.”

“너랑 선아랑 친하니까.”

“안 친해요. 친해질 생각도 없고.”

“에이, 거짓말. 그래서 진짜 선아 어디 있는지 몰라?”

임하나 말에 요하는 조금 머뭇거리더니 대답했다.

“천소울 형이랑 따로 연습한다나 그런가 봐요.”

자신도 주선아의 행방을 다 알고 있는 것이 민망했던지 점점 대답 소리가 기어들어갔다.

요하의 대답에 하나를 비롯한 다른 멤버들은 짓궂게 웃었다.

모르기는 다 아는구만.

요하는 이런 점 때문에 멤버들이 자신을 계속해서 놀린다는 것은 모르고 툴툴거리며 성현에게로 도망갔다.

멤버들이 자신을 괴롭힌다는 요하의 말에 성현은 웃음을 삼키며 어깨를 두들겨줄 뿐이었다.

“주영준씨는 아직인가요?”

“지금 앞이래요.”

릴리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아지트 문을 열고 주영준이 들어왔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주영준은 뛰어왔는지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늦었다고 말을 하긴 했지만 이제 겨우 10시에서 1분이 지난 시간이었다.

천소울과 주선아를 제외한 멤버들이 모두 모이자 성현은 그들을 불러모아 이야기를 꺼냈다.

“본선 4라운드는 이전 라운드에 비해 난이도가 많이 올라갈 거예요. 그래서 제 개인적인 생각으론 남은 한 달이란 시간을 본선 4라운드 준비를 하는 시간으로 사용했으면 하는데 여러분들 생각은 어때요?”

“그러려고 모인 거 아니에요?”

“성현씨도 참, 당연한 소릴 하시네요.”

성현의 말에 멤버들 모두는 오히려 놀라서 되물었다.

그들 중 아무도 한 달이라는 시간을 정말 쉴 생각 따위 해보지도 않았다.

그건 당연한 거 아니냐는 반응에 성현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주머니에서 메모지 한 장을 꺼냈다.

“여러분들이 그럴 것 같아서 제 나름대로 본선 4라운드 준비 곡들을 가져와 봤어요. 강요는 아니지만 추천한 곡들 위주로 연습을 진행하는 건 어떨까요.”

추천곡이라는 말에 가수들의 눈이 반짝였다.

역시 한 마음이 되어 있는 홍대 팀다웠다.

이미 성현의 말에 다 같이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프로듀서들 역시 무슨 곡이 튀어나올지 기대하고 있는 눈빛이었다.

성현은 각각 멤버들에게 미리 준비한 가수와 곡들을 추천해줬다.

“먼저 요하. 요하는 밴드 우효 노래를 위주로 준비를 하는 게 어떨까 싶은데.”

요하는 락과 밴드 음악 보컬로서 확실한 강점을 가지고 있었다.

단점은 아직까지 다양한 음악을 접해보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성현은 그런 요하를 위해 특색 있는 밴드의 노래를 준비했다.

“우효요? 저한테 어울릴까요?”

“어울리게끔 네 것으로 만들면 되지.”

우효는 부담스럽지 않은 톤과 부담스럽지 않은 편한 사운드로 많은 이들에게서 사랑받을 만한 요소를 가져가면서도 브릿팝, 피아노 팝, 서프 록과 대중들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색깔의 음악을 시도하는 밴드였다.

성현이 보기에 요하가 그들의 음악을 연습하는 것이 좋아 보였다.

“이번 기회를 통해서 어떤 음악이 요하 너에게 잘 맞을지 생각해봐.”

요하는 성현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열심히 메모를 했다.

성현은 이어서 다음 멤버들에게도 추천 가수와 곡들을 말해줬다.

멤버들 모두 바짝 귀를 기울이고 성현의 말을 들었고 아지트에는 성현의 말소리를 제외하고는 그 어떤 것도 들리지 않았다.

그들 모두 프로듀서로서 성현이 가진 감각을 확실히 인정한 상태였다.

그리고 성현이 내준 과제를 완수한다면 그것이 자신들에게 도움이 될 거라는 믿음도 충만했다.

“어제 줬던 곡 피드백은요?”

“아, 지금 말씀 나눌까요.”

서자명은 언제든 도움을 청해도 된다는 성현의 말을 기억하고 있었다.

자신이 편곡한 곡에 대한 피드백을 요청했었던 서자명과 이야기를 나누려는데 갑자기 성현에게 주영준이 다가왔다.

“저, 따로 조용히 드릴 말씀이 있는데......”

평소와 다르게 은밀하게 접근한 주영준 말에 성현은 서자명을 한번 돌아봤다.

서자명은 괜찮다는 듯이 흔쾌히 양보하며 자릴 비켜줬다.

“말씀 먼저 나누세요.”

개인 연습을 하러 서자명이 떠나자 성현과 주영준은 함께 연습실을 나갔다.

***

연습실 밖으로 나온 성현과 주영준.

주영준은 자신이 먼저 불러냈으면서도 성현에게 시원하게 말하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그 모습을 본 성현은 주영준의 표정을 조심스럽게 살폈다.

‘뭐지? 중요한 얘기인가.’

성현은 그의 표정이 이전에 릴리의 얘길 하러 왔던 때와 똑같다는 걸 느꼈다.

심상치 않은 소리가 튀어나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 성현은 먼저 말을 꺼냈다.

“편하게 말씀하셔도 돼요.”

성현의 말에 주영준은 이내 결심했다는 듯 입을 뗐다.

그러면서 품 안에서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어제 건너 건너 이름만 아는 참가자한테 문자가 왔어요. 그런데 내용이 조금 꺼림칙해서......”

주영준이 말끝을 흐리며 문자 메시지 하나를 보여줬다.

-김진솔: 본선 4라운드에서 가수 김재한과 정범주를 선택하면 유리할 거라는 소문이 있어요.

김재한과 정범주 모두 본선 4라운드 미션에 함께하는 가수들이었다.

본선 4라운드가 기성 가수들과 함께한다는 공지는 어디에도 밝혀진 바가 없었다.

콕 짚어서 두 가수를 언급한 것을 보면 아직 참가자들에게 공개되지 않은 사실을 알고 퍼뜨리는 존재가 있다는 의미였다.

성현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이 말이 사실이라 해도 아직 공개되지도 않은 4라운드 미션에 대해 알고 있는 게 수상해서요.”

“…소문의 출처가 어딘지 알아요?”

성현은 가타부타 말은 하지 않고 주영준에게 물었다.

그리고 소문으로 퍼뜨리고 있는 정보도 어딘가 좀 이상했다.

본선 4라운드의 룰을 밝히지는 않으면서 카더라처럼 특정 가수 두 명만 지목한 이유는 뭘까?

“물어봤는데 자기도 어디서 들은 거라고 하더라구요.”

주영준 말에 생각에 잠겨있던 성현은 이내 이 소문을 퍼트린 것이 누군지 알 수 있었다.

문희진.

자신을 제외하고 유일하게 게임을 알고 있는 사람.

지금 상황에서 성현이 알기로 본선 4라운드 미션 내용에 대해 미리 알고 있는 사람은 성현과 문희진뿐이었다.

그렇다면 답은 정해져 있었다.

‘이번 정보는 문희진이 일부러 흘린 정보일 가능성이 커.’

소문을 퍼트린 것이 문희진이라면 그녀가 왜 이러한 소문을 퍼트린 걸까?

성현은 일단 범인이 문희진이라고 점찍은 후에 그녀의 목적이 무엇일까 생각해봤다.

본선 4라운드에서는 참가자와 프로 가수가 함께 합동 공연을 펼치게 된다.

이때 참가자들과 짝을 이뤄 참여하는 프로 가수는 총 10팀.

10팀 중에는 현재 가요계에서 내로라하는 남성 보컬리스트 3팀이 포함되어 있다.

‘그중에 김재한과 정범주가 있는 거고.’

그런데 문희진은 노골적으로 다른 참가자들이 김재한과 정범주를 노리게끔 소문을 퍼트리고 있는 상황이라면?

‘왜 두 팀이지? 나머지 한 명은….’

문희진은 남성 보컬리스트 3팀 중 두 팀은 김재한과 정범주에 대한 소문을 퍼트렸지만 남은 남성 보컬리스트 한 팀에 대한 정보는 주지 않고 있었다.

바로 나준석.

본선 4라운드는 기성 가수와의 매칭하여 팀을 꾸리는 것부터 시작하게 된다.

가수와 매칭을 이루지 못하는 참가자는 탈락이었다.

이 말은 곧 한 가수에게 너무 많은 가수들이 몰리면, 그만큼 경쟁이 치열해진다는 것과 같았다.

지금 성현의 추측으로 문희진은 자신과 경쟁을 펼치게 될 다른 가수 참가자들을 정범주와 김재한에게 몰아넣으려는 것으로 보였다.

‘나준석이라….’

나준석은 확실히 김재환과 정범주처럼 보컬 하나로 승부수를 던지는 가수는 아니었다.

댄스와 화려한 퍼포먼스를 곁들인 파워풀한 보컬리스트.

보컬 하나로 승부 보려는 참가자들을 견제하기 위함인가?

‘굉장한 실력자들만 본선 4라운드에 올라올 테니까.’

물론 첫 번째 매칭에 실패했다고 곧장 탈락은 아니다.

하지만 어쨌든 가수는 10팀이라는, 한정된 수가 있었다.

자연히 참가자들끼리의 경쟁은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2차 매칭에서도 선택되지 못하는 참가자는 탈락할 가능성이 컸다.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단 하나.

1차 매칭에서 최대한 경쟁자의 수를 줄여야 했다.

게임 플레이 중에 본선 4라운드 전에 한 달이라는 휴식 기간이 주어진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성현은 이번 변수를 이용해 미리 팀원들을 단련시킬 생각이었지만, 문희진이 생각하는 건 조금 다른 듯했다.

‘문희진은 아마 이걸 노린 거겠지.’

성현은 대충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문희진의 계책을 알아냈다고 해도 직접적으로 무언가를 하기 위해 나설 생각은 없었다.

그렇다 해서 크게 달라지는 건 없었으니까.

‘음악만 열심히 하면 되는 거니까.’

문희진이 어떤 계획을 세우든 성현과 성현의 팀은 한 달이란 기간 동안 각각 최선을 다해 준비를 한 음악을 선보이면 그만이었다.

어떤 계획을 세우든 그것을 뛰어넘는 기량을 보여주면 끝날 일이었다.

그리고 성현은 자신 있었다.

“신경 쓰실 필요 없어요. 남은 한 달 동안 각자 연습만 열심히 하면 될 것 같습니다.”

한참 후에 나온 성현의 말을 들은 주영준 역시 그의 말뜻을 바로 이해했다.

출처 모를 소문에 휘둘릴 필요는 없었다.

“맞네요. 우리만 잘하면 되는 거죠. 아, 추천해주신 곡은 감사했습니다. 말씀하시면 방향대로 편곡 준비해볼게요.”

주영준은 한결 편해진 얼굴로 성현이 해줬던 조언에 감사해하며 아지트로 돌아갔다.

성현 역시 그의 뒤를 따랐다.

문희진처럼 이상한 방법을 쓰진 않을 테지만 성현에게는 성현만의 방법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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