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화
재경연이 결정된 날로부터 3일 후, 홍대와 신촌의 경연이 다시 치러졌다.
예정에 없던 재경연은 모든 이들에게 관심이 집중되었다.
다른 지역의 본선 3라운드는 모두 종료된 상태.
서울 지역에서만 총 다섯 개의 지역이 본선 3라운드를 통과할 예정이었다.
그중 본선 4라운드에 올라갈 네 개의 지역은 이미 결정되었다.
마지막 하나 남은 자리를 두고 열리는 재경연인데다,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논란의 당사자들이 펼치는 경연이다.
거기다 본선 4라운드는 홍대와 신촌의 재경연밖에 남지 않은 상황까지.
-저번 경연부터 본 사람들 손.
-홍대팀 힘내라! 너네 아니면 이길 사람 없음.
-아니 그러면 신촌팀 애들은 무슨 죄야. 괜히 욕이나 더 먹고.
라이브 방송은 시작 1시간 전부터 폭발적인 시청자 수를 기록했고, 댓글창에는 조작과 관련해서 이렇게 될 줄 알았다는 의견과 참가자들을 향한 동정표까지 어마어마한 댓글이 달리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더 넥스트 슈퍼스타 본선 3라운드 진짜 진짜 마지막 무대 진행을 맡게 된 가수 임시온입니다.”
저번 무대 진행을 맡았던 가수 임시온이 다시 또 마지막 라운드 진행을 맡게 됐다.
그는 저번 경연보다 훨씬 더 뜨거워진 객석과 너튜브 반응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마지막으로 남은 본선 3라운드이기에 방청객 신청이 어느 때보다 치열했다고 듣기는 했었다.
그런데 실제로 본 객석의 분위기는 자신의 콘서트 분위기보다 더욱 열기가 가득한 것 같았다.
“다들 이 경연을 기다리셨을 텐데요. 방금 들어온 소식 하나 전해드리겠습니다. 지금 너튜브 실시간 시청자 수가 저번 무대보다 무려 5배가 많다고 합니다.”
엠씨의 말처럼 현재 너튜브 생방송 채널은 갑자기 몰린 시청자 때문에 렉이 걸릴 정도였다.
라이브 입장이 지연되고 있다는 소식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번 무대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를 보여줬다.
“재경연 첫 번째 무대를 장식할 참가자는 바로 홍대 팀의 릴리씨입니다! 박수로 맞이해주세요!”
저번과 마찬가지로 홍대 팀에서 첫 번째 무대를 맡게 된 가수는 릴리.
그녀의 등장으로 댓글창이 폭발하기 시작했다.
-솔직히 릴리 보러 왔다, 손.
-어쩐지 저번 무대 릴 리가 이겼어야 되는 건데 이상하다 했음.
-아 릴리 누나 오늘도 리즈 갱신하네. 치인다 진짜.
그리고 반응을 확인하고 있던 성현의 일행들은 새삼 릴리의 인기를 실감하여 놀랄 수밖에 없었다.
저번보다 훨씬 많은 댓글들이 달리고 있어서 제대로 읽기조차 어려웠다.
“릴리 누나 진짜 인기 많네요.”
요하는 댓글창이 터질 것 같다고 생각하며 감탄을 흘렸다.
이미 데뷔를 한 사람도 이만큼의 관심을 받고 있지 않은 것 같았다.
“예쁜데 노래도 잘하니까 많을 수밖에 없지. 요하 너도 데뷔하면 장난 아닐걸?”
“네? 저는 잘생긴 건 아닌데......”
요하는 화들짝 놀라서 팔짝 뛰었다.
아무리 그래도 릴리처럼 인기를 얻을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우리 요하가 천소울씨랑 같이 있다 보니 기가 많이 죽었네. 선아야 요하 칭찬 좀 해주고 그래.”
“제가 왜 해줘요, 그걸.”
“바라지도 않거든요?”
임하나의 말에 주선아는 틱틱 거리며 말하고 요하도 주선아의 칭찬은 필요 없다며 툴툴 거렸다.
두 사람의 모습이 그저 귀엽다는 듯이 흐뭇하게 지켜보는 동료들 사이로 서지현의 시선은 오로지 무대에만 향해 있었다.
임하나는 그런 서지현을 눈치채고 슬그머니 그녀의 곁으로 가서 물었다.
“무슨 생각해?”
“그냥요. 이번엔 어떤 무대를 준비했을지 궁금해서요.”
릴리의 사정을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서지현은 릴리가 매 무대를 설 때마다 과연 어떤 음악을 할지, 그녀의 재능을 성현이 어떤 식으로 꽃피워줬을지 궁금했다.
예전부터 릴리의 팬이기도 했지만, 이번에 같이 팀을 이루게 된 뒤로부터 더욱 각별하게 생각되었다.
서지현이 릴리의 무대에 집중하고 있는데, 조용히 무대에 올라선 릴리는 관객들을 향해 한 번 꾸벅 인사를 했다.
그 행동에 다들 환호를 하며 박수를 보냈다.
관객들이 조금 잠잠해지자 릴리는 자리에 앉아 눈빛을 바꾸더니 이내 기타 연주를 시작했다.
아련하고 쓸쓸한 감성의 저번 무대와는 다르게 이번엔 기타 하나를 들고 올라온 모습에 많은 사람들이 그녀에게 기대를 했었다.
릴리는 기타를 튕기면서 통통 튀는 멜로디의 노래를 불렀고, 이는 그녀만이 가지고 있는 사랑스러움을 극대화시켰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조은별이 한숨처럼 말했다.
“사랑스럽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건가 봐요.”
그 곁에서 함께 무대를 지켜보던 프로듀서들도 다들 고개를 주억거렸다.
“역시 아련한 릴리도 좋지만 러블리한 릴리도 못지않게 좋네요.”
“원래 릴리 성격이 엄청 밝아서 그런 것 같아요.”
릴리에 대해 더 잘 알고 있는 주영준 또한, 그녀가 다시 밝고 사랑스러운 성격을 되찾아가자 뿌듯해하고 있었다.
릴리의 밝고 긍정적인 에너지는 객석과 너튜브 시청자들한테 전달됐다.
다음으로 신촌팀의 공연이 이어졌지만, 관객들은 릴리의 무대에 여운에 젖어 제대로 집중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릴리는 1000표 이상의 표 차이로 신촌 팀 참가자를 이길 수 있었다.
“그럼 곧바로 두 번째 무대 시작하겠습니다.”
릴리의 이름을 연호하는 관객들을 겨우 진정시키고 이어지는 두 번째 무대.
“이번 무대는 볼 것도 없네요.”
조은별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이며 무대로 올라가는 천소울의 뒷모습을 쳐다봤다.
“그냥 즐기면 될 것 같아요.”
성현은 어떤 걱정도 없이 마음 놓고 천소울의 무대를 즐겼다.
천소울의 무대가 끝이 났을 때, 더 넥스트 슈퍼스타는 역대 시청자 수를 돌파하며 엄청난 호응을 받았다.
바로 천소울의 상대 팀이 올라와 공연을 했지만, 라이브 댓글창에는 여전히 천소울에 관한 내용만 올라올 정도로 파장이 엄청났다.
압도적인 실력으로 깔끔하게 압승을 해버린 천소울을 끝으로 경연이 종료됐다.
“축하드립니다. 홍대 팀 앞선 2개의 경연을 모두 승리하면서 본선 4라운드 진출 확정됐습니다!”
엠씨의 멘트로 마침내 최종 결정이 확정되자 무대에서 결과를 기다리던 맴버들은 서로를 부둥켜안고 울면서 기뻐했다.
한번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가 살아서 돌아온 만큼 이번 승리는 그 어느 때보다 값졌다.
“홍대 팀 너무 축하드려요. 4라운드 진출 확정됐는데 소감을 안 듣고 갈 수 없겠죠? 천소울 참가자, 어때요, 기분이?”
다들 천소울에게 마이크가 넘어가자 조용해졌다.
관객들, 팀원들 라이브 시청자들까지 숨을 죽이고 그의 대답을 기다렸다.
“좋습니다.”
“아, 그게 끝인가요? 좋습니다?”
“네.”
엠씨의 말에 평소처럼 단답형으로 말한 천소울을 두고 엠씨는 크게 당황했지만, 객석에 있는 사람들 박수를 치며 웃었다.
천소울이 보여준 무대 매너에 어울리기도 했고 그의 외모로는 무슨 말을 해도 재미있기만 했다.
“그럼 이번 무대 총괄 프로듀싱을 맡았다는 이성현 참가자 소감 들어보겠습니다. 미리 말씀 드리는데 세 마디 이상 말씀하셔야 합니다.”
천소울에게 단단히 데인 엠씨의 말에 성현은 웃으며 마이크를 잡고 객석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쭉 훑어봤다.
“한 번 탈락했다 돌아왔기 때문에 이번 무대가 더욱 절실했습니다. 홍대팀을 응원해주신 시청자 여러분들의 관심과 사랑이 아니었다면 본선 4라운드 진출은 어려웠을 거라 생각해요. 지금 이 순간이 더욱 완벽할 수 있는 건 저희 노래에 관심을 가지고 사랑을 주신 여러분들 덕분입니다. 앞으로도 항상 진심으로 음악 하는 음악인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성현의 길고 진심 어린 말에 객석에 앉아 있던 사람들 모두 일어나 박수를 치며 응원을 보냈다.
홍대팀원들의 인사를 끝으로 더 넥스트 슈퍼스타 본선 3라운드 미션이 끝이 났다.
***
오랜만에 지하방 작업실에서 작업 중인 이성현은 하던 작업을 잠시 멈추고, 휴대폰을 확인했다.
키보드에 올려둔 휴대폰이 커넥트 앱 메시지 알림 때문에 계속 진동이 울렸기 때문이었다.
[ 본선 4라운드는 약 한 달 후에 진행될 예정입니다. ]
[ 이후, 진행 상황에 변동이 생긴다면, 공지로 알리겠습니다. ]
‘결국 중단하게 되는구나.’
공지를 확인한 성현은 곧장 인터넷에 접속하여 연예란 메인 기사를 확인했다.
성현의 예상대로 연예 뉴스는 온통 더 넥스트 슈퍼스타에 관련된 내용으로 도배되어 있었다.
[ ‘더 넥스트 슈퍼스타’ 한 달간의 재정비 시간을 갖기로 결정. ]
[ 법원 마영진PD 도주 우려 있다 판단, 구속영장 발부]
[ 마영진PD, 투표 조작 외 성 접대 의혹까지 파문 확산]
본선 3라운드는 끝이 났지만 마영진PD의 조작 사건과 관련된 일은 사안이 사안인 만큼 쉽게 일단락되지 못했다.
결국 주최 측에선 이에 대한 재정비 시간을 갖기로 결정한 모양이었다.
기사를 확인한 성현이 곧장 포털 사이트 메인화면에 들어가 보니 실시간 검색어 순위 대다수가 ‘더 넥스트 슈퍼스타’와 관련된 것들로 가득했다.
-더 넥스트 슈퍼스타 서울 지역 영상
-더 넥스트 슈퍼스타 홍대 투표 조작
-릴리
-천소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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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걸 보고 성현은 쉽게 짐작했다.
‘영상 떴구나.’
실시간 검색어를 확인한 성현은 더 넥스트 슈퍼스타 서울 지역 영상이 1위인 것을 보고 곧장 너튜브에 들어갔다.
서울 지역, 이라고 검색하자 이내 주최 측에서 올린 더 넥스트 슈퍼스타 서울 지역 편집 영상이 떴다.
오디션이 중단되는 동안 주최 측은 지금까지 촬영한 본선 3라운드 무대를 편집해 너튜브 채널을 통해 공개하기로 했다.
긴 정비 시간 동안 시청자들에게 계속해서 오디션의 존재를 각인시키기 위함이었다.
그중 가장 화제가 된 건 서울 지역, 특히 성현이 있는 홍대팀의 무대였다.
투표 조작 논란 때문도 있었지만 릴리와 천소울 등 화제성이 있는 참가자들이 대거 포진해 있었기에 이미 팬층이 많았다.
게다가 그들이 준비한 무대 또한 다른 지역에 비교해봤을 때 하나같이 엄청났기 때문에 원곡들이 음원 차트 역주행을 하고 있기까지 했다.
‘더 넥스트 슈퍼스타’는 잠시 중단하지만, 오디션을 향한 관심과 인기는 더욱 높아지고 있었다.
성현은 휴대폰을 끄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김태구 대표와 릴리 사이의 일, 그리고 문희진의 등장과 조작 PD까지.
게임 속에선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상황들이 연속적으로 들이닥치고 있었다.
‘문희진의 개입 때문인 걸까......’
계속되는 변수의 등장에 성현의 사고는 문희진 쪽으로 흘렀다.
이렇게 게임 내용이 바뀐 이유에는 역시 문희진이란 인물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하면서도 다른 한 편으로는 다른 사람이 의심이 가기도 했다.
‘내가 끼친 영향도 있지 않을까.’
바로 성현 자신.
확실히 성현은 지금까지 기존 게임의 내용과 다른 선택들을 해왔다.
그건 본선 1라운드에서 조진석을 떨어뜨린 사소한 것에서부터 시작됐다.
자신이 게임 내에서 마주치지 못해서 캐릭터 정보가 없는 사람들까지 동료로 끌어들였고, 메인 캐릭터가 아니었을 인물들까지 무대에 세워 인기몰이에 성공하기까지 했다.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야.’
게임의 원래 내용이 바뀐 것엔 여러 이유가 있을 터.
당장 성현이 그 원인을 찾아내긴 힘들었지만, 이대로 가만히 있을 생각은 없었다.
자신이 가는 길에 방해물이 있다면 치우면 그만이다.
어쩌면 앞으로 더 머리를 굴려야 할지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