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화
자제해달라는 말이 기폭제가 되는 건 연예계 SNS에서 흔한 일이었다.
조작을 언급한 릴리의 SNS 글은 단순하지만 확실한 기폭제가 되어 주었다.
이것이 바로 릴리의 영향력을 이용한 성현의 전략이었다.
이 글이 올라간 뒤로 참가자들에게도 자세한 투표 결과를 공개하지 않는 것이 말이 되느냐는 여론이 대한민국을 뒤덮었다.
긴가민가하던 사람들까지 나서서 이번 결과가 조작일 수도 있다는 댓글을 수두룩하게 달기 시작했다.
-아니 아무리 봐도 조작 같은데. 릴리가 무슨 죄임?
-얼마 전에도 오디션 프로그램 조작 사건 있지 않았나? 지들끼리 짜고 치는 거지 뭐.
-누가 봐도 시청자 반응이 홍대팀이 더 좋았는데 수상하긴 함. 당당하면 투표수 공개하면 됨.
‘좋아. 이제 시작이다.’
성현은 퍼지기 시작한 조작론을 보면서 여론이 어느 쪽으로 기울고 있는지 확인했다.
관련 뉴스 기사, 각종 커뮤니티, SNS에서 ‘더 넥스트 슈퍼스타 조작설’이 연일 실시간 키워드가 되어 인터넷을 달궜다.
이런 의견들이 점점 많아질수록 여기저기서 조작과 관련된 이야기가 쏟아져 나왔다.
결국 이 논란은 공론화됐고, 기사까지 나가게 됐다.
언론사에서도 이슈가 되자 본격적으로 문제 제기에 나서게 된 것이다.
[ 조작 논란, ‘더 넥스트 슈퍼스타’ 한국 지사의 입장 발표는 언제? ]
[ ‘더 넥스트 슈퍼스타’ 왜 아무런 해명을 하지 않는가? ]
[ 야심차게 시작한 ‘더 넥스트 슈퍼스타’ 이대로 조작이라는 암초에 무너지나? ]
[ ‘더 넥스트 슈퍼스타’ 한국 지사, 조작 논란에 여전히 묵묵부답 ]
논란이 점점 더 거세지자 이를 무시하기는 힘들어졌고, 결국 주최 측에선 한발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더 넥스트 슈퍼스타’ 주최 측, 계속되는 조작 의심에 한국 지사를 포함한 전 세계 상세 투표수 자료를 공개하기로 결정.]
이례적으로 본선 3라운드 시청자 투표 상세 자료를 공개하기로 결정했다.
주최 측은 이런 논란이 일었다는 것 자체가 불쾌한 듯 논란이 시작된 한국을 포함해 오디션이 열리고 있는 모든 나라에서 투표 자료를 공개하게끔 조치했다.
주최 측의 뜻을 따른 한국 지사는 자신들은 절대 조작을 하지 않았다는 입장문과 함께 총 3가지 자료를 공개했다.
연령별 투표.
성별 투표.
시간대별 투표.
그 중, 논란이 된 신촌과 홍대 측의 경연 결과 자료에 많은 관심이 쏠렸다.
< 첫 번째 무대 >
홍대 신촌
10대 – 2439 1564
20대 - 2371 3482
30대 - 1996 3108
40대 - 1631 1669
50대 이상 - 1094 1171
< 두 번째 무대 >
홍대 신촌
10대 – 2507 2863
20대 - 3172 2061
30대 - 2846 1734
40대 - 381 2179
50대 이상 - 1026 2010
< 세 번째 무대 >
홍대 신촌
10대 – 2231 2354
20대 - 2595 3706
30대 - 2357 3469
40대 - 1749 1683
50대 이상 - 1183 1006
[투표 결과 공개까지 마다하지 않은 ‘더 넥스트 슈퍼 스타’, 과연 투표 조작 의혹을 벗을 수 있을까?]
[자료 공개에도 불구하고 ‘더 넥스트 슈퍼스타’ 조작 의혹을 피하지 못하다]
공개된 투표 결과는 명백했다.
연령대별 투표를 보면 미세한 차이이긴 해도 신촌팀이 이긴 것에 반박할 여지가 없었다.
하지만 투표 결과가 공개된 이후에도 여론은 잠잠해질 기미가 없어 보였다.
-이걸 누가 믿냐.
-세부 투표 결과 발표했음 된 거지 여기서 뭘 더 공개해야 함?
-그 세부 투표가 조작된 거면 어쩔 건데?
-이래서 음모론이 무서운 거다. 왜 팩트를 믿지 못하지?
자료가 전부 공개되자마자 언론과 대중들 모두가 달려들었다.
온갖 커뮤니티 사이트에 폭발적으로 게시물이 올라왔고, 추측성 기사들이 줄을 이었다.
특히 대중들은 조작이냐 아니냐를 가지고 과격하게 의견이 나뉘었다.
성현은 자신의 생각대로 흘러가는 상황을 지켜보는 한편, 노트북을 켜놓고 뭔가를 찾기 바빴다.
‘시간이 많지 않아.’
성현은 마우스를 빠르게 클릭하며 이곳저곳 유저들이 많이 모여있는 커뮤니티를 뒤졌다.
이번에 공개된 투표 결과를 보고 이상한 점을 찾아내는 유저들이 없을 리 없었다.
어느 커뮤니티가 그렇듯 논점은 희석되고 서로 자신의 말이 맞다고 우기는 쪽으로 흘러가고 있었지만 한 명쯤 있을 것이 분명했다.
빈틈을 찾아내 집요하게 파고들어 진실을 찾을 수 있는 사람.
‘반드시 한 명은 나온다.’
집중하면 그것만 파는 덕후 기질을 가지고 있으면서 동시에 놀라운 추리력을 가지고 있는 네티즌.
성현은 그런 사람을 찾고 있었다.
원래 게임 시나리오대로라면 마영진 PD 사건은 플레이어가 인맥을 쌓은 후에 등장하기 때문에 혼자서도 충분히 해결할 수 있었다.
문제는 지금 현실에서 조작PD가 성현의 예상보다 빨리 등장했기 때문에 당장 진실을 밝힐 인맥이 없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릴리의 팬덤을 필두로 한 네티즌 수사대.
마PD가 투표에 장난질을 한 것이 분명했기에 성현은 누군가 한 명은 이에 대한 단서를 찾아낼 거라 믿고 있었다.
‘한국의 네티즌 수사대의 힘을 믿을 수밖에.’
온갖 커뮤니티를 돌아다니던 성현은 이것이 자신의 희망 사항은 아니라는 확신에 차올랐다.
이미 각종 커뮤니티에 이번 ‘더 넥스트 슈퍼스타’ 본선 3라운드 홍대 팀과 신촌 팀의 공개된 경연 결과를 분석한 게시물들이 꽤 올라와 있었다.
[이번 더 넥스트 슈퍼스타 3라운드 홍대, 신촌 대결이 조작인 이유]
[이과생이 생각하는 채팅창 반응을 기반으로 한 예상 투표수와 우승 확률]
[홍대팀이 무조건 이길 수밖에 없는 이유]
성현은 게시글 하나하나를 눌러보며 확실한 증거를 찾아보려 했다.
하지만 생각만큼 쉬운 일은 아니었다.
‘생각보다 어그로성 글이 많은데.’
기지개를 켜며 의자에서 일어났다.
일단 조금 더 기다려봐야 할 것 같았다.
벌써 몇 시간 째 노트북을 보고 있었더니 눈에 피로도 상당했다.
‘얼마나 걸리려나….’
오늘은 여기까지 해야 하나 생각하는데 휴대폰 벨소리가 울렸다.
발신자는 릴리였다.
누구에게서 온 것인지 확인하고 곧장 전화를 받자 평소 릴리답지 않게 흥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릴리는 항상 차분한 목소리였는데 이번 일만큼은 그럴 수 없는지 잔뜩 들뜬 목소리였다.
“찾았어요!”
그 말에 성현 역시 기다리고 있던 소식이라고 생각했지만 일단 들뜬 릴리를 진정시키는 게 먼저였다.
“뭘 찾았단 거예요? 진정하고 차근차근 설명해 보세요.”
그렇게 말하는 성현 역시 기대감에 입꼬리가 올라가고 있었다.
성현의 말에 릴리는 심호흡을 하며 흥분을 가라앉히더니 평소의 차분한 목소리로 돌아가 설명했다.
“방금 SNS 메시지로 팬한테 연락이 왔어요. 이번 세부 투표 결과를 분석했는데 수상한 점이 있대요.”
“의혹이 아니라 객관적 증거가 필요해요. 객관적인 분석 자료가 있는 건가요?”
단순 의혹은 누구나 제시할 수 있었다.
문제가 있다는 건 증명하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였다.
단순 의혹을 제시한 게시물은 성현 역시 충분히 찾아본 참이었다.
지금 홍대팀에게 필요한 것은 팬들의 지지보다는 객관적인 자료였다.
“잠시만요. 지금 물어볼게요.”
정적이 흘렀다.
릴리의 대답을 기다리는 동안 성현은 자신도 모르게 쥐고 있던 커피잔을 세게 쥐었다.
경연 결과를 기다리던 어떤 순간보다 지금이 더 긴장되는 것 같았다.
1분이 좀 넘게 흘렀을까 릴리가 수화기 너머에 등장했다.
“자료 있대요!”
“그거 지금 당장 저한테 보내주세요.”
성현의 말에 릴리 잠시 기다리란 말을 하고 사라지더니 얼마 후에 다시 돌아왔다.
“파일 보내드렸어요.”
“고마워요. 다시 연락줄게요. 아, 그분보고 잠깐만 기다려달라고 해주세요.”
성현은 곧장 릴리와 전화를 끊고는 파일을 확인했다.
릴리의 팬이란 사람이 말한 수상한 점은 연령별 투표 결과였는데, 제시한 자료에는 어떤 점이 의심스러운지에 대한 것들이 세부적으로 적혀 있었다.
‘이건 생각지도 못했는데.’
분석글을 본 성현은 헛웃음이 나왔다.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증거를 잡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알고 보니 이만큼 허술할 수가 없었다.
어지간히 마PD가 급했던 모양이었다.
성현은 확실한 승기를 잡은 사람처럼 미소 지었다.
‘역시 대한민국 네티즌의 힘은 상상초월이지.’
예상보다 빠르게 증거를 잡은 성현은 곧장 릴리에게 문자를 보냈다.
완벽한 승리를 위해서는 밑작업이 가장 중요했으니까.
-이성현: 분석 파일 어디에 공개된 적 있나요?
-릴리: 아니요. 저한테 처음 보낸 거래요.
-이성현: 좋네요. 자료에 관한 건 당분간 비공개에 부쳐달라고 해줄래요?
-릴리: 알겠어요.
자료를 독점하게 된 성현은 곧장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초조하게 기다리던 성현은 금방 전화를 받은 상대방에게 급하게 말했다.
“김인호 AD님, 혹시 지금 만날 수 있을까요?”
***
성현은 김인호 AD가 말한 장소로 빠르게 향했다.
김인호는 둘 빼고는 아무도 없는 조용한 카페에서 성현을 기다리고 있었다.
마주한 김인호 AD의 표정은 그다지 좋지 못했다.
이성현이 자신을 찾아온 이유를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었기에 각오한 듯한 표정이었다.
“이성현씨… 설마, 아니죠?”
김인호의 말에 성현은 아무 말 없이 릴리에게서 받은 자료를 건넸다.
다른 말은 필요치 않았다.
누구라도 이 자료만 보면 지금 성현이 무슨 이야기를 꺼내려는지 명백했으니까.
“확인해보세요.”
김인호 AD는 불안한 눈빛을 한 채 자료를 확인했다.
자료 차례대로 넘기며 읽어가면 갈수록 그의 얼굴이 점점 더 굳어졌다.
믿을 수 없다는 듯 여러 번 자료를 다시 보는 걸 반복한 김인호는 떨리는 손을 부여잡으며 물었다.
“이거, 확실한 겁니까?”
김인호의 목소리가 떨렸다.
성현에게 물으면서도 이미 모든 걸 직감하고 있는 사람의 목소리였다.
“네. 확실한 자료입니다.”
성현의 확답에 김인호는 깊게 한숨을 내쉬며 믿을 수 없다는 듯 자료를 내팽개치고 마른 세수를 했다.
“이건 말도 안 되잖아.”
방금 확인하고도 스스로를 믿을 수 없는지 김인호는 혼잣말인지 모를 말을 중얼거렸다.
“확신이 필요하면 주최 측에서 공개한 연령별 투표수를 가지고 직접 비교해 보세요.”
확신에 찬 성현의 말에 김인호 AD는 잠시 고민하더니 이내 노트북을 꺼냈다.
“잠깐 기다려봐요.”
김인호는 저 말이 사실이 아니길 바라며 성현이 준 자료를 토대로 직접 일일이 투표수를 비교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