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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같은 프로듀서는 없었다-104화 (104/273)

104화

모든 무대가 끝나고 임하나 그리고 임하나와 겨뤘던 신촌 팀 가수 참가자가 나와서 엠씨 곁에 섰다.

결과 발표를 기다리며 엠씨가 진행을 이어갔다.

“양 팀의 무대가 모두 끝이 났습니다. 와아, 이번 경연은 진짜 우열을 가릴 수 없었던 거 같습니다. 이제 결과 발표만을 앞두고 있는데 과연 신촌과 홍대, 두 팀 중 어떤 팀이 본선 4라운드에 진출하게 될까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홍대! 신촌!

홍대!

엠씨의 말과는 다르게 객석 분위기는 임하나의 승리가 확실시된 느낌이었다.

신촌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대다수가 홍대팀을 불렀고 임하나를 향해 환호가 끝이질 않았다.

라이브 채팅창 반응 역시 뜨거웠다.

-닥 홍대.

-이건 누가 봐도 홍대팀이 더 잘함.

-한국에 비욘세 출몰한 줄. 무대 개 잘하더라.

-바이브가 한국인 바이브가 아님. 비욘세 사촌의 사촌 아닌지 조사해봐야 함.

대다수 사람들은 임하나의 승리를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임하나도 무대 위에서 관객석의 공기를 읽은 듯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정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경연을 치룬 신촌팀 참가자조차 그렇게 생각하는지 표정이 굳어 있었다.

‘지금쯤 꽤 곤란하겠지.’

시청자 반응을 보던 성현은 천소울이 없는 마지막 무대에서 조작을 할 계획을 세웠을 마PD가 적지 않게 당황했을 거란 걸 예상할 수 있었다.

성현은 궁금하기까지 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마PD는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을까?

성현은 그가 과연 어떻게 나올지 기다려 보기로 했다.

***

한편, 생방송 부스에서 모니터로 무대를 지켜보던 마PD는 혀를 차고 있었다.

평소에 여러 명의 엔지니어를 데리고 생방송을 진행하지만 오늘은 그럴 수 없었다.

엠씨는 마지막 무대라는 것을 강조하면서 계속해서 투표를 독려하고 있었다.

하지만 엠씨가 듣는 투표 종료라는 소리는 이쪽에서 사인을 보내야만 했다.

홀로 모니터를 부여잡고 머리를 싸매던 마PD는 중얼중얼 혼잣말을 내뱉었다.

“아씨, 진짜…. 오늘따라 왜 이러냐. 내가 그동안 받아먹은 게 얼만데… 아이씨.”

마PD는 자신의 생각과는 다르게 흘러가는 무대 양상을 보면서 골머리를 썩히는 중이었다.

조작도 웬만큼 실력이 비등해야 할만하지, 이번 경연은 영 그림이 안 나오고 있었다.

-투표 집계 멀었습니까, 마PD님!

투표 집계가 너무 늦어지고 있었다.

백스테이지에서 온 무선을 들은 마PD는 거칠게 뒷머리를 긁으며 욕을 내뱉었다.

그는 모니터를 조작해 지금까지 모인 표가 어느 정도인지 확인했다.

압도적으로 홍대팀에게 쏠린 표.

“돌아버리겠네 진짜.”

-PD님?

메인 무대 앞에 있는 AD까지 마PD를 재촉했다.

마PD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미 돌이킬 수 없었다. 결단을 내려야 했다.

2만 표가 훌쩍 넘어가는 투표수를 본 마PD는 급하게 몇 가지의 기기를 만진 후에 무전을 때렸다.

“투표 결과 띄웠다! 공개해.”

백스테이지에 있는 스탭은 투표가 완료되었다는 무전을 받고 무대 바로 앞으로 뛰어갔다.

스탭에게 투표가 종료되었다는 신호를 받은 엠씨는 환한 얼굴로 이 소식을 알렸다.

“마지막 경연 결과 발표하겠습니다!”

엠씨의 말과 동시에 스크린에서 10, 9, 8, 7, 6......카운터가 떠올랐다.

임하나와 신촌팀 참가자들 모두 차마 스크린을 보지 못하고 기도하듯이 두 손을 부여잡고 무대 바닥만 쳐다보고 있었다.

관객들 모두가 마지막 카운트 다운을 함께했고 드디어 결과가 나왔다.

커다란 스크린에 양 팀의 투표수가 발표됐다.

< 세 번째 무대 결과 >

홍대 측 공연자 : 10,115표

신촌 측 공연자 : 12,218표

역시나 조작PD는 조작PD였다.

이번 무대 역시 미세한 차이로 임하나의 패배였다.

성현은 허탈한 미소를 지으면서도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바로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투표 결과를 이해할 수 없는 시청자 댓글과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난리가 났다.

결과를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부터 이거 조작 아니냐며 방송사를 조롱하는 반응까지 다채로웠다.

상황은 성현의 뜻대로 서서히 흘러가고 있었다.

***

무대가 모두 끝난 후, 대기실에 모여있는 홍대 지역 참가자들은 무거운 분위기였다.

다들 허무한 결과에 어떤 말도 꺼내지 못했고 넋을 놓은 채 앉아 있었다.

치열하게 준비했던 지난 날들이 단 몇 초 만에 무용지물이 된 순간이었다.

그러던 중 대기실로 진행요원이 들어오고 성현과 일행의 시선이 모두 진행요원에게로 쏠렸다.

“신촌 측에서 구제권을 사용하지 않았으므로 홍대 팀 전원 탈락입니다.”

스탭은 그 말을 남기고 곧장 대기실을 나갔다.

방금 말을 듣고서야 탈락을 실감한 홍대팀 멤버들은 눈물을 터트렸다.

“미안해요. 제가 더 잘했어야 되는데......”

마지막 무대를 했던 자신이 패하고 떨어지자 멤버들에 대한 미안함으로 가장 먼저 울음을 터트린 건 임하나였다.

아직까지도 믿을 수가 없었다.

무대가 끝난 뒤의 관객들의 반응, 경쟁했던 신촌팀의 패색 짙은 얼굴까지 보고 임하나는 자신이 이겼으리라 확신했다.

하지만 결과는 잔인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서지현에게 무대를 양보했어야 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임하나의 눈물을 시작으로 이어서 릴리 또한 눈물을 터트렸다.

“저도 미안해요. 첫 번째 무대에서 이겼어야 되는 건데......”

“왜 울어요...... 울지마요.....”

둘의 모습을 보던 조은별도 마침내 눈물을 터트렸고 요하까지 조용히 눈물을 훔쳤다.

그만큼 이번 경연의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이들의 눈물은 슬픔보다는 분함과 억울함이 더 컸다.

하지만 결과는 결과, 이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동안 감사했어요. 여기 나가서도 연락해도 되죠?”

“당연하지. 밴드 필요하면 연락해. 형도 그동안 즐거웠다.”

울먹이며 하는 요하의 말에 서자명은 바로 대답했다.

멋에 살고 멋에 죽는 서자명조차 이번만큼은 눈물을 참을 수 없었고 곧 요하를 껴안고 울었다.

“쌤 진짜 이대로 떨어진 거예요? 말도 안 돼…. 쌤이, 쌤이 그렇게 잘했는데!”

주선아도 눈물을 훔치며 천소울에게 물었다.

천소울도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일 뿐이다.

그에게도 이번 결과가 받아들이기 힘든 것은 마찬가지였다.

“이게 말이 돼? 누가 봐도 우리가 이긴 무대였잖아. 난 이번 대결 인정 못 해.”

“결과가 조금 찝찝하긴 하네요......”

“분명 시청자 반응도 우리 팀이 더 좋았는데 왜 진 건지 모르겠어요.”

서자명의 말에 여기저기서 동조하는 말들이 오고 갔다.

서자명의 말을 시작으로 슬퍼하던 멤버들조차 서서히 분노하며 자신들이 확인했던 시청자 댓글을 짚어가며 얘기했다.

아직 이들은 패배를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이를 지켜보던 성현은 조용히 자리를 옮겼다.

***

한편 스탭실에 모인 홍대 측 AD들 또한 투표 결과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홍대팀이 최종 경연에서 패배하게 되면서 이들 역시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게 된 상태였다.

“이렇게 끝날 줄은 몰랐는데. 허무하네요.”

“당연히 홍대가 이길 줄 알았는데. 내가 담당한 지역이라 하는 말이 아니라 객관적으로 더 잘했잖아.”

“그러니까요. 시청자 반응도 홍대가 더 좋았어요.”

“뭐 어쩌겠어. 이미 결과는 나왔는데. 한동안 백수 생활이나 해야지.”

AD들은 카메라를 내려놓고 솔직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김인호AD는 그들의 대화를 말없이 듣고만 있었다.

그 역시 지금의 탈락이 믿겨 지지 않았다.

사실 지금도 현실로 다가오지 않았다.

“인호 넌 왜 아무 말도 없냐? 너 이번 오디션에서 우승자 하나 만들어서 승진할 거라고 잔뜩 기대하고 있었잖아.”

“맞아. 저 자식 우리 중에 제일 열정 넘쳤잖아. 애착도 심하고.”

“인호가 그랬어?”

“그래. 힘들다면서 툴툴대면서 입은 웃고 있더라니까?”

한 AD의 말에 김인호는 씁쓸하게 웃을 뿐이었다.

‘아쉽긴 하네.’

김인호는 동료 AD 말처럼 이번 오디션에 애착이 심했다.

촬영하는 동안 진심으로 즐거움을 느낀 건 이 프로그램이 처음이었다.

“아쉽긴 하죠. 참가자들 성장하는 맛에 밤새 작업해도 재밌었는데...... 이제 그것도 더는 못 보겠네요.”

김인호에게 이번 오디션을 진심으로 즐길 수 있었던 건 단순히 오디션이 재밌어서가 아니었다.

‘이성현…. 지켜보는 맛이 있는 참가자였는데….’

김인호는 이성현이란 참가자 덕분에 이번 오디션을 진심으로 즐길 수 있었다.

처음엔 단순히 채널 관리를 잘해서 승진할 생각만 가득했던 김인호였다.

하지만 음악에 대한 성현의 열정과 진지한 태도를 보면서 점차 자신도 모르게 성현을 응원하게 되었고 자신 또한 진지하게 이 채널을 대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오늘로 그것도 끝이네.’

김인호는 다른 AD들의 말을 들을수록 씁쓸해져서 스탭 대기실을 나가는데 마침 공연장 밖으로 나가는 성현을 발견했다.

김인호는 빠르게 성현을 뒤쫓아 가서 말을 걸었다.

“아쉽게 됐네요.”

김인호가 갑작스럽게 말을 걸자 순간 놀란 성현이었지만 이내 김인호의 얼굴을 뚫어져라 보더니 입을 뗐다.

“아무래도 조만간 연락할 일이 생길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성현의 말에 김인호 AD는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탈락한 참가자가 자신에게 연락할 만한 일은 없으니까.

“뭐, 연락이야 할 수 있죠. 하세요.”

김인호는 약간 벙쪄서 말하고 성현은 김인호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이며 빠른 걸음으로 공연장을 빠져나갔다.

‘탈락한 주제에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가만히 성현의 뒷모습을 보던 김인호는 혼자 생각에 잠겼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지금까지 겪어본 성현의 성격상 빈말을 할 사람은 아니었다.

‘의미심장한 말을 던지고 그래. 괜히 기대되게….’

***

다음 날, 오랜만에 잠을 푹 자던 성현은 일어나자마자 확인하고 싶은 것이 있어 휴대폰을 먼저 확인했다.

휴대폰에는 이른 아침부터 조은별에게 메시지가 와 있었다.

-조은별: 성현씨, 지금 포털사이트 난리 났어요!

‘됐구나.’

안 그래도 확인하려고 했는데 조은별 문자를 보니 더욱 확실해졌다.

기대감에 바로 포털사이트에 들어가 보니 ‘더 넥스트 슈퍼스타’가 인기 검색어 1위에 떠 있었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관련 기사 또한 수두룩하게 나와 있었다.

단순히 경연 결과에 대한 기사들도 있었지만, 압도적인 수의 기사가 홍대와 신촌의 경연 결과에 대해 다루고 있었다.

마지막 날에 여러 지역에서 경연이 치러졌음에도 확실히 압구정과의 대결에서 천소울이 보여준 퍼포먼스 덕분인지 신촌 측과의 대결에 많은 관심이 쏠린 모양이었다.

성현은 홍대팀 관련 기사들을 하나씩 읽어보는데 홍대 측의 아쉬운 패배에 관한 기사도 적지 않았다.

-솔직히 말이 안 됨. 임하나가 어떻게 짐.

-난 릴리도 더 좋았음.

-천소울이 겨우 저 정도 표차로 진 것도 이상.

-뭐야. 조작 아님?

-장난하냐. 음모론 ㄴㄴ. 신촌 지역도 잘하긴 함.

댓글들 중에는 투표 조작을 의심할 정도로 이번 경연 결과를 이해하지 못하는 참가자들이 많았다.

지금이 타이밍이라 생각한 성현은 곧장 릴리한테 메시지를 보냈다.

-성현: 릴리씨, 지금이에요.

성현이 메시지를 보내고 1분도 지나지 않았을 때 릴리에게서 답장이 왔다.

-릴리: 올렸어요.

릴리의 답장을 확인한 성현은 곧장 그녀의 SNS로 들어가자 새로운 게시물 하나가 떠있었다.

게시물에는 릴리의 무대 모습과 함께 짧은 글들이 적혀있었다.

- 조작이라고 하지 말아주세요. 그렇게 몰고 갈 생각은 전혀 없어요. 최종 투표수만 발표되니까 팬분들이 의심하고 여러 의견을 제시하는 건 이해하지만, 그래도 자제해주셨으면 좋겠어요.

릴리의 게시물에 순식간에 좋아요 수가 10만을 돌파하더니 댓글 역시 수천 개가 달렸다.

이제 마PD가 짜둔 판을 뒤집을 차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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