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화
자신의 말이 끝나자 혼란스러워하는 것이 여실히 느껴지는 임하나의 표정을 본 성현이 설명을 덧붙였다.
“고음을 내는 건 임하나씨를 더 완벽한 가수로 만들 수 있겠지만 그것만으로 관객에게 감동을 줄 수 없어요.”
“......어렵네요.”
성현의 설명에도 임하나는 감을 잡지 못하는 것 같았다.
성현은 임하나가 바로 알아들을 수 있는 설명이 뭐가 있을까 궁리하다가 입을 열었다.
“어려울 거 없어요. 하나씨, 춤출 때 어떤 감정을 느껴요?”
“자유로워요. 아무 생각 안 들고.”
“그래요. 노래도 그렇게 하면 되는 거예요. 하나씨만의 스타일로 하나씨만의 리듬으로 춤추는 것처럼 즐기면 돼요.”
“춤추는 것처럼...... 무슨 말인지 알 것도 같아요.”
이제 알았다는 듯이 밝게 웃으며 말한 임하나는 성현에게 허리를 숙여 인사를 건넸다.
“감사합니다. 이번 기회로 정말 많이 배웠어요.”
“고마우면 무대로 보답하세요.”
대수롭지 않게 꺼낸 성현의 말에 임하나는 별생각 없이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도 잠시, 성현의 말뜻을 생각하던 임하나는 이내 눈이 휘둥그레져서 성현에게 물었다.
“무대에 제가 올라가는 건가요?”
“그건 아직 모르죠.”
성현은 하루 만에 고음을 완성해 온 임하나를 보고 마음이 꽤 기운 상태였다.
그 바람에 저도 모르게 속내를 내비치고 말았지만 재빠르게 정정했다.
이번 주 일요일 최종 연습무대를 갖기로 했었다.
서지현도 만만치 않은 실력자이기에 임하나로 결정할지는 아직 모르는 일이었다.
“일요일, 잊지 않았죠? 서지현씨도 준비 많이 해올 겁니다.”
“네, 알고 있어요.”
그래도 성현은 이번 기회를 놓칠 생각은 없었다.
임하나가 진정한 디바로 거듭날 수 있도록 제대로 도울 생각이었다.
“네. 마지막 연습 무대도 끝까지 최선을 다해봐요.”
“네!”
다시 돌아온 성현의 말에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간 임하나는 기운 넘치게 대답했다.
지금 대답 소리만 들으면 성량을 더 키우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 같았다.
성현은 임하나의 앞날이 더욱 기대가 됐다.
***
신촌 측으로부터 경연 신청이 오지 않았고 두 팀은 준비된 시간을 모두 할애한 후에 자동으로 매칭이 이루어졌다.
마지막 주 토요일에 신촌 지역과 홍대 지역의 본선 3라운드 마지막 경연이 펼쳐지게 된다.
‘예상대로네.’
매칭 날짜가 마지막 주 토요일로 정해졌다.
성현은 자신의 예상대로 흘러가는 상황을 확인했다.
본선 3라운드 마지막 주 토요일.
이날은 가장 많은 경연이 라이브로 펼쳐지는 날이었다.
당연히 여러 개의 라이브 방송이 열리기 때문에 시청자들의 관심이 분산될 수밖에 없었다.
‘조작을 할 거면 아무래도 관심이 적을수록 편하겠지.’
마PD의 계획을 예상했지만 이미 그의 계획은 무산시킬 준비는 충분했다.
지난 압구정과의 경연에서 보여준 천소울의 엄청난 무대 덕에, 홍대측은 사람들 사이에서 이미 뜨거운 감자였다.
이런 반응은 성현이 일부러 압구정 측과 먼저 경연을 하면서 압도적인 퍼포먼스를 보여주기 위해 집착했던 나날의 결실이었다.
‘마PD를 깨기 위한 핵심 키는 대중의 관심이니까.’
그렇게 찾아온 공연 당일.
첫 번째 무대를 하게 될 릴리를 시작으로 천소울이 최종 리허설을 끝냈고 세 번째 무대 리허설 차례가 됐다.
“하나 언니 파이팅!”
서지현은 마지막 무대를 장식하게 될 임하나를 목이 터져라 응원했다.
뒤늦게 나타난 조은별과 다른 프로듀서 참가자들도 함께 임하나를 응원했다.
곧 리허설이 시작됐고 그녀는 리허설도 대충하지 않았다.
본무대처럼 혼신의 힘을 쏟아 모든 소절의 노래와 춤에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이를 지켜보고 있던 조은별을 비롯한 다른 프로듀서 참가자들 모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렇게 가파른 성장세를 보여준 참가자는 처음이에요.”
“단순히 성장으로도 설명이 안 되지 않나. 그냥 원래 가지고 있던 걸 뒤늦게 깨달은 느낌인데.”
프로듀서들은 임하나의 성장세를 두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았다.
저번에 아지트에서 성현과 부딪힌 후로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말도 안 되는 속도로 성장하고 있었다.
하루 만에 고음을 뚫더니 노래가 지닌 감정선까지 완벽하게 마스터했다.
“성현씨 말대로 확실히 솔로 무대에 있어선 지현이 보단 하나씨가 임팩트가 더 강하긴 하네요.”
“음색부터가 강렬하잖아요.”
성현은 경연 무대인 만큼 다른 무엇보다 임팩트가 가장 강한 무대를 하길 원했다.
그래서 서지현 대신에 임하나를 무대에 세우기로 결정한 것이었는데 이는 정확히 들어맞았다.
서지현과 임하나는 각각 스타일이 다르지만 아무래도 임하나의 음색이 더 독특하다 보니 임팩트 면에 있어선 임하나가 더 뛰어났던 것이다.
그런 임하나에게 고음까지 더해지니 춤이 아니라 노래만으로도 강한 임팩트를 줄 수 있게 되었다.
‘무대를 꽉 채우고 있네.’
성현의 도움으로 디바로서 재능을 꽃피운 임하나가 혼자서 그 넓은 무대를 오로지 노래만으로 꽉 채우고 있던 거다.
거기다 승부사 기질을 가지고 있는 임하나는 오디션의 특성상 짧은 준비기간에 다른 참가자들보다 더 빠르게 성현이 원하는 것을 캐치하는 능력도 갖추고 있었다.
‘여기에 메이크업이랑 의상까지 제대로 갖추면 얼마나 더 멋있을까.’
비록 당장은 드라이 리허설이라 사복을 입고 리허설 중이었다.
그런데도 스탭들 마저 임하나의 무대를 보고 웅성거릴 정도로 엄청난 존재감을 뽐내고 있었다.
촬영이 시작되고 본격적으로 무대를 준비하면 지금보다 얼마나 더 멋진 무대가 나올지 심장이 뛰었다.
실제로 무대 위에서 노래를 자유자재로 가지고 노는 임하나의 모습은 자신의 상상 그 이상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 맛에 프로듀싱 하는 거지.’
성현은 비록 오디션에서 만난 참가자들이었지만 각각 참가자들의 잠재력을 끌어 올려주고 그들이 더 완벽한 무대를 할 수 있게 도와줄 때마다 프로듀서로서 뿌듯함을 느낄 수 있었다.
임하나를 포함해서 아직 리허설이었지만 모두가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신촌팀의 리허설과 비교해 봤을 때, 단순히 실력만으로 보면 신촌과의 무대는 전혀 걱정이 없어 보였다.
‘이대로 마PD 조작 때문에 떨어질 순 없어.’
실력이 아닌 조작 때문에 떨어지게 놔둘 순 없었다.
성현은 기대감으로 가득 차서 서로의 무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팀원들을 보고 다시 한번 결의를 다졌다.
***
[ 5분 후, 라이브 방송이 시작됩니다. ]
그렇게 각 팀의 리허설이 끝이 나고 라이브 방송이 시작되기 5분 전.
수많은 시청자들이 ‘더 넥스트 슈퍼스타’ 채널에 접속해 있었다.
대기 시간 중에도 라이브 방송의 댓글창은 쉴 새 없이 새로운 댓글이 올라오고 있었다.
-홍대팀 보러 온 사람.
-저요.
-저도.
-천소울인가 그 남자 존잘이던데.
-노래도 개잘함.
-외국에서 먹힐 거 같음. 잘생긴 얼굴은 둘째 치고 음색이 미쳤음. 외국에서도 저런 음색 찾기 힘듦.
채팅창에선 확실히 저번 무대에서 임팩트가 강했던 천소울에 대한 이야기가 대다수였다.
홍대팀과 천소울에 대한 이야기가 한번 나오자 댓글창은 다른 팀과 참가자에 대한 이야기는 싹 빠지고 모두가 천소울에 대한 이야기로 단합되어 갔다.
[ 라이브 방송 시작됩니다. ]
보조 PD의 신호와 함께 라이브 방송이 시작됐고 엠씨가 무대에 올랐다.
“반갑습니다. 더 넥스트 서바이벌 본선 3라운드 마지막 경연의 진행을 맡게 된 가수 임시온입니다.”
임시온. 아이돌 그룹에서 랩을 맡고 있는 남자의 등장에 객석에서 몇몇 팬들이 임시온의 이름을 외치며 환호했다.
엠씨가 본선 라운드 룰을 설명하며 진행하는 사이 백스테이지에 있는 성현은 누군가를 찾고 있었다.
‘왜 안 보이지.’
마영진 PD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리허설 도중에 보이지 않아 다른 곳에 가 있나 싶었지만, 방송국 내 어디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현장에서 방송을 진행하는 것도 다른 보조 PD였다.
‘분명 어디선가 역겨운 미소로 지켜보고 있겠지.’
결국 마PD를 찾는 걸 포기한 성현은 앞으로 남은 경연에 집중하기로 마음먹었다.
첫 번째 무대는 신촌 팀이었다.
확실히 여기까지 올라온 만큼 마PD의 조작 사건이 아니라도 누가 이길지 모를 정도로 실력이 출중했고 이는 홍대팀 프로듀서들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확실히 라운드가 올라갈수록 실력들이 상향 평준화 되고 있는 것 같아요.”
“걱정 마요. 우리한테 릴리씨가 있잖아요.”
조은별은 신촌팀의 무대를 보면서 걱정스럽게 중얼거렸다.
서자명은 릴리의 프로듀싱을 맡은 주영준을 보며 자신 있게 말하고 주영준은 역시 꽤나 자신감 넘치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주영준과 협의해서 릴리 무대 연출을 기획하던 서자명은 살짝 놀랐다.
그동안 잠실팀의 다른 참가자들에게 가려져 주영준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몰랐는데 무대를 보는 시야각이 넓은 사람이었다.
이번에 함께 무대를 준비하던 서자명은 성현이 괜히 주영준을 살린 것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고 둘은 부쩍 친해져 있었다.
“릴리씨 저랑 했던 약속 기억하죠?”
“네. 하고 싶은 음악 마음껏 하고 올게요. 빨리 보여주고 싶어요. 진짜 제 모습.”
성현은 무대 뒤에서 기다리고 있는 릴리에게 다가가 마지막 당부를 했다.
누군가가 원하는 음악이 아니라, 릴리 자신이 원하는 음악.
성현의 당부에도 릴리는 전혀 움츠러들지 않고 두고 보라는 듯이 성현을 향해 웃기까지 하는 여유를 보이고 있었다.
릴리는 지난 기간 동안 그 답을 찾은 듯했다.
그 모습을 보고 성현은 안심했다.
‘이게 내가 알던 릴리지.’
처음에 이 중요한 경연의 첫 무대라 했을 때 불안해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그때와 달리 자신감이 조금씩 드러나며 자신의 음악을 빨리 들려주고 싶어 하는 릴리의 모습만이 남아 있었다.
드디어 성현이 알던 릴리의 모습이 나오고 있었다.
그런 그녀를 보고 있는 것만으로 기분이 좋았다.
오늘 공연을 보고 릴리의 팬들이 어떤 찬사를 쏟아낼지 벌써부터 기대되었다.
지난번 잠실과의 경연에서 애쓴 보람이 있었다.
“홍대팀 준비해주세요.”
때마침 스탭이 와서 릴리의 차례를 알렸고 릴리는 무대에 오르기 직전 휴대폰을 꺼내 SNS에 게시물 하나를 올렸다.
성현과 했던 마지막 약속이 하나 남아 있었다.
[제 마지막 무대가 될 수 있으니 잘 지켜봐 주세요.]
“홍대팀 참가자 올라갑니다.”
릴리가 게시물을 올리자마자 스탭이 무전을 치며 말했다.
릴리는 쥐고 있던 휴대폰을 주영준에게 넘기고 길게 호흡을 쉬며 무대에 올랐다.
“릴리 파이팅!”
주영준은 무대에 오르는 릴리를 향해 마지막 파이팅을 외치고 릴리는 마침내 환한 무대로 모습을 드러냈다.
릴리의 등장과 함께 객석에선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릴리는 차분한 sns 글과는 다르게 꽤 상기된 모습이었고 앞에 신촌 지역 가수 무대가 좋았음에도 전혀 주눅 들지 않고 있었다.
무엇보다 가장 눈에 띄는 점은 이전 잠실 지역에서 공연할 때와는 달리, 얼굴에 미소를 머금고 있다는 거였다.
모든 이들에게 사랑받는 릴리의 부활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