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같은 프로듀서는 없었다-96화 (96/273)

96화

“이 정도면 역대급 반응 아니에요?”

“제 버스킹 영상 조회수도 곧 넘길 거 같아요. 지금 속도로 보면 500만 찍는 건 문제도 아니겠네요.”

릴리도 천소울의 공연 영상이 지닌 화력에 감탄을 표했다.

너튜브 스타까지 천소울의 영향력을 언급하자 멤버들은 새삼 천소울의 실력을 실감하게 됐는지 한층 놀라서 영상을 한 번 더 봤다.

폭발적인 무대를 보고 여운에 잠긴 멤버들은 처음 무대를 했음에도 이 정도 결과를 낸 천소울을 신기하게 바라보는데 정작 그는 동영상의 주인공 치고 너무나 태연한 모습이었다.

“원래 웬만한 일엔 잘 반응 안 하세요.”

주선아는 시선을 집중시키고 반응이 없는 천소울의 모습이 익숙한 듯 대신 반응했다.

“역시 좋아하면 닮는다더니.”

이를 들은 조은별은 마찬가지로 태연하게 앉아서 생각에 잠긴 성현을 가리키며 말했다.

“음악밖에 모르는 바보들.”

임하나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하자 다들 고개를 끄덕이며 성현을 봤다.

자신의 팀에 저런 괴물들이 두 명이나 있다는 생각에 든든한 한편으로 무시무시하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성현은 천소울과 함께한 첫 무대를 생각하고 있었다.

‘또 하고 싶다. 상상보다 별로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괜한 걱정이었어.’

성현에게 천소울과 함께 꾸민 무대는 다른 참가자들의 무대보다 더욱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메이크 유 어 스타.’라는 게임을 시작하고부터 꿈꿔왔던 일이 드디어 실현된 것이다.

막상 꿈에 그리던 무대를 함께했을 때 기대보다 별로면 어쩌나 걱정이 들기도 했지만, 정작 함께 무대를 해보고 천소울의 무대까지 지켜보니 이것이 괜한 걱정이었단 걸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또 하나.

천소울의 경연 무대가 상당한 관심을 받으며, 단숨에 서울 본선에서 홍대 지역이 가장 큰 관심을 받게 됐다는 것이 성현에게 중요했다.

‘그럼 이제 마PD를 이길 발판은 마련한 건가.’

조작 PD, 마PD로 인해 생길 수 있는 위기를 벗어나기 위한 첫 번째 계획은 성공했다.

그러나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이것으로 끝난 건 아니었다.

겨우 첫 번째 단계를 마쳤을 뿐 가장 중요한 작업이 남아 있었으니까.

“압구정과 지역 대결에선 승리했지만, 아직 끝난 게 아니에요.”

성현의 말에 너튜브 영상을 보던 팀원들 모두 휴대폰을 집어넣고 성현에게 시선을 집중했다.

“신촌과의 대결이 남았잖아요.”

“프로듀서 회의 바로 시작할까요?”

성현의 말에 조은별은 가장 먼저 일어나 빠르게 회의 진행을 맡았다.

프로듀서들은 둘의 모습을 보고 앞서서 아지트 가운데로 모였다.

“가수 참가자들은 각자 휴식 시간을 가져도 좋습니다.”

성현의 말에 천소울이 가장 먼저 알겠다면서 일어나더니 연습실로 향하고 뒤이어 서지현을 비롯한 다른 가수 참가자들도 각자 연습실로 흩어졌다.

단 한 순간도 허투루 쓰지 않으려는 모습이 이미 몸에 배어 있었다.

가수들이 떠나고 성현과 조은별, 서자명, 주영준이 모이자 프로듀서 회의를 시작했다.

“당연한 얘기지만 이번 경연에서도 가장 중요한 건 음악이에요. 우린 음악으로 승부를 봐야 해요.”

성현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성현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음악으로 승부를 보는 건 당연한 거였다.

다른 팀은 모르겠지만 홍대팀에게 이 말은 항상 맨 처음에 왔고 그걸 지킬 수 있는 무대만 올렸다.

“그럼 무대 순서부터 정해볼게요. 첫 번째 무대는 릴리씨가 준비하면 좋겠는데, 주영준씨 생각은 어때요?”

성현은 주영준과 릴리가 압구정과 대결에서 혹시나 모를 세 번째 무대를 준비했었기 때문에 누구보다 빠르게 준비를 마칠 수 있을 거라 판단했다.

“릴리씨가 저번 무대에서 음악을 향한 진지한 태도를 보여준 만큼 이번에 제대로 자신만의 음악을 보여준다면 그 임팩트가 더 크게 다가갈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구요.”

“전 괜찮습니다. 준비 기간도 길었던 만큼 지금 당장 무대에 오르는 것도 가능합니다.”

주영준은 바로 자신감을 보이며 말했다.

이번 릴리와의 무대가 주영준에게 3라운드 마지막 무대가 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해 준비했었다.

2차 경연에서 무대에 오를 일이 없었다는 것은 무엇보다 다행인 일이었기에 지금 투지가 넘쳐흐르고 있는 둘이었다.

무엇보다 자신을 믿고 맡겨준 성현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 평소보다 더욱 열심히 준비했었다.

“첫 무대 시작을 릴리씨가 한다면 화제성도 확실하고 좋을 것 같습니다.”

서자명도 동의를 표했다.

확실히 너튜브 스타인 릴리가 시청자들에게 주는 영향력은 무시할 수 없었다.

게다가 잠실팀에서 떨어진 릴리가 다시 홍대팀으로 살아돌아온 후에 처음으로 보여주는 무대였기에 팬들과 많은 사람이 주목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마지막 무대에서 릴리가 보여준 행동 때문에 모두 릴리의 행보를 궁금해하고 있었다.

“그럼 릴리씨랑 주영준씨가 J.KIM 노래를 준비하는 거죠?”

“네. J.KIM 달빛이요.”

조은별은 주영준의 말을 듣고 꼼꼼하게 메모를 하고 성현은 뒤이어 남은 무대 순서를 정했다.

“그럼 두 번째 무대는 저와 천소울씨가 신촌 측 리빙 레전드로 준비하겠습니다.”

“존 킴이었나? 맞죠?”

“네. 천소울씨 음색은 어디 내놔도 뒤지지 않으니까요.”

폴킴은 주로 감미로운 발라드를 부르는 가수로 호소력 짙은 목소리와 진솔한 가사로 유명한 가수였다.

성현은 저번 무대에서 천소울의 가창력과 무대 퍼포먼스를 내세웠다면 이번엔 오로지 천소울의 보컬, 음색으로 승부를 볼 생각이었다.

“혹시 모르니까 세 번째 무대도 준비해야 할 텐데…. 현재 무대에 설 수 있는 가수는 지현이랑 하나씨죠?”

룰상 무대에 이미 두 번 오른 가수들은 무대에 오를 수 없었다.

현재 남은 가수 참가자 중 무대에 오를 수 있는 건 서지현과 임하나였다.

“네. 안 그래도 이미 준비시켜 놨어요.”

“벌써요?”

조은별은 성현이 미리 계획을 했단 말에 놀라서 되물었다.

성현은 다른 프로듀서들의 반응에도 태연하게 대답했다.

“네. 이미 저번 주에 두 사람 모두에게 연습곡을 줬고 둘 중 노래를 더 잘 소화하는 사람을 무대에 세울 생각이에요.”

“대체 성현씨는 어디까지 내다보는 거예요?”

저번주에 곡을 줬었다는 말에 놀란 조은별의 반응에도 성현은 어깨를 으쓱하며 웃을 뿐이었다.

여기서 모두에게 우리 세 번째 무대까지 해야 할 거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성현은 다른 프로듀서들이 감탄해서 이것저것 물어보기 전에 재빠르게 말을 돌렸다.

“그럼 두 사람의 곡 먼저 들어보고 결정하시죠.”

***

프로듀서들은 서지현과 임하나를 연습실로 불렀다.

둘은 프로듀서들이 자신들을 부를 줄 알고 있었다는 듯이 멀지 않은 연습실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자신들을 부른 이유를 아는 둘은 살짝 긴장한 표정이었다.

“J.KIM이랑 존 킴 노래 하나씩 불러주세요. 듀엣으로 갈지 두 분 중에 한 분으로 갈지는 모르지만, 제일 좋은 곡으로 무대를 할 생각이니까.”

성현의 말에 서지현과 임하나는 곧바로 고개를 끄덕이더니 각각 물을 한 모금씩 마시고 가볍게 목을 풀었다.

성현이 부르기 직전까지도 둘은 호흡을 맞춰보고 있었다.

이번에야말로 성현을 실망시킬 수는 없었다.

저번에 성현이 연습 시간에 둘에게 노래를 시켰을 때 준비가 덜 됐다는 소리를 할 수밖에 없던 것이 내심 분했던 둘이었다.

둘은 서로를 마주 보고 서서 천천히 호흡을 골랐다.

첫 곡은 존 킴의 발라드 곡이었다.

“네가 없는 난 웃을 수 있을까. 상상만 해도 눈물이 나.”

서지현의 감미로운 미성으로 도입부가 시작됐고 이어 임하나의 그루브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힘든 날 나를 지켜주던 너. 이젠 내가 널 지켜주고 싶어.”

서로 주거니 받거니 16마디 정도가 흘렀을까 서지현과 임하나는 서로 눈을 맞추고 화음을 넣으며 주제 마디에 돌입했다.

“고단했던 나의 삶에 한 줄기 희망이 되고 날 가슴 뛰게 해주던 너.”

둘은 만만치 않은 연습량을 소화했다는 것을 보여주기라도 한 듯이 실수 없이 노래를 이어나가고 있었다.

프로듀서들은 내심 놀랐다.

디렉팅도 없이 두 사람이 이렇게까지 심도 있는 연습을 진행했을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역시나 화성학을 잘하는 서지현이 임하나의 조금 개성 강한 목소리를 보듬어주며 화음을 맞춰주었고 둘의 케미는 묘하게 잘 어울리며 하모니를 만들었다.

노래가 정점에 이르자 서지현의 깔끔한 고음이 스튜디오를 가득 울렸다.

예전과 다르게 안정적으로 서지현의 목소리를 방해하지 않으면서 화음을 쌓아주고 있는 임하나도 대단했다.

이를 증명하듯 둘의 노래를 들은 조은별을 비롯한 프로듀서들의 입가에 미소가 피었다.

“사실 두 사람 음색이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진 않았는데 이렇게 들어보니 꽤 괜찮네요.”

“저도요. 이번에 들어보니 묘한 매력이 있어요.”

“이대로 여성 듀오로 데뷔해도 될 것 같은데요?”

프로듀서들의 칭찬이 이어졌고 임하나와 서지현, 허릴 숙여 감사하다고 인사했다.

허리를 펴는 둘은 서로를 보며 살짝 웃었다.

이전까지 긴장했던 마음이 이제야 조금 풀리는 것 같았다.

모두가 한 마디씩 둘의 노래에 감상평은 내놓았는데 이 와중에 성현은 조용히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정작 둘에게 곡을 줬던 성현의 표정이 밝지 않았다.

‘서지현씨가 아니라 임하나씨 문제인 건가.’

두 사람의 곡을 들으며 서지현의 솔로 무대를 준비했을 때처럼 어딘가 부족한 느낌을 받은 성현은 처음에 그것이 서지현의 문제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계속 노래를 들어보니 서지현의 문제가 아니라 임하나의 문제란 생각이 점차 들었다.

서지현의 보컬은 깔끔했다.

저번에 성현에서 본심을 털어놓은 영향인지 감정선도 매끄럽게 잡혀 어떤 가사를 불러도 마치 자신의 이야기처럼 소화해내 듣는 이의 심금을 울릴 수 있게 되었다.

템포를 바꾸거나 갑작스럽게 노래의 높낮이가 바뀌어도 바로 대응할 수 있을 정도로 성대도 탄탄하게 단련이 되어 있었다.

‘이번에도 고음 파트는 서지현씨가 도맡았지.’

문제는 임하나였다.

서지현의 장기 중 하나가 안정적이고 듣는 사람 속을 뚫어주는 것 같은 맑은 고음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둘이 듀엣을 하게 되면 서지현이 고음 부분을 도맡았다.

하지만 확 성장한 서지현과 호흡을 맞추는 임하나는 예전처럼 빛나 보이지 않았다.

딱히 거슬리는 지점은 없지만, 서지현과 비교해서 눈에 띄는 지점이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만약 둘이 함께 무대에 서는 것이 결정된다면, 그 무대는 서지현의 독무대로 끝나서는 안 됐다.

둘의 시너지가 최고로 발휘되어야지만 조작이 벌어질 수도 있는 경연에서 승기를 잡을 수 있었다.

‘분명 디바로서 재능은 충만한데 알을 깨고 나오지 못하는 모습 같아.’

생각을 마친 성현은 감정이 드러나지 않은 표정으로 임하나를 불렀다.

이대로는 경연에 둘을 내보낼 수 없었다.

성현은 둘의 노래를 들으며 가장 마음에 걸렸던 지점을 언급했다.

“하나씨는 고음 자신 없어요?”

“네?”

이제껏 어느 누구에게도 터진 적 없는 날카로운 일갈이 임하나에게 꽂혔다.

성현의 갑작스러운 물음에 임하나는 깜짝 놀라 되묻기만 할 뿐이었다.

그 말에 놀란 것은 임하나 만이 아니었다.

처음 들어보는 성현의 낮게 깔린 목소리에 프로듀서들과 서지현 역시 놀라서 성현을 응시했다.

성현은 주변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재차 물었다.

“고음 자신 없냐구요. 안 올라갑니까?”

앞뒤 아무런 설명 없이 정확히 임하나를 향한 송곳 같은 말에 임하나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순식간에 연습실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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