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같은 프로듀서는 없었다-95화 (95/273)

95화

이성현과 천소울이 처음으로 함께 작업한 결과물이 세상에 공개되는 순간.

성현은 이 사실에 숨이 막힐 것처럼 긴장되어서 팔짱을 낀 채로 무대 위로 오르는 천소울의 뒷모습만을 쳐다봤다.

조명이 꺼진, 어두운 무대 위.

무대 끝 의자에 천소울이 앉아있고 한 줄기 조명이 어둠 속 천소울을 밝히고 있었다.

잠시 동안의 정적.

천소울은 살짝 시선을 아래로 내려 무대를 응시하고 있었다.

성현은 백스테이지를 벗어나 무대 바로 아래에서 그런 천소울을 바라봤다.

자신의 등 뒤로 숨을 죽인 관객들의 기척이 느껴졌다.

성현 역시 그들과 함께 숨을 죽인 채로 자신의 가수가 내뱉을 첫 소절을 머릿속으로 끝없이 되풀이하고 있었다.

수도 없이 함께한 연습 속에서 천소울의 노래를 들었건만, 왠지 지금 저 무대에서 천소울이 노래를 부르는 모습은 차마 끝까지 상상할 수가 없었다.

‘시작된다.’

무대에 허윤의 하늘 위로의 반주가 흘러나왔고 천소울이 입을 열어 첫 소절을 부르기 시작했다.

“가슴이 떨렸지. 누군가는 내 뒤를 쫓고 있었고. 절벽 끝엔 발 디딜 곳도 없었어. 자꾸 목이 말라 간절하게 네 이름을 소리쳤을 때.”

천소울의 탄탄한 중저음으로 시작된 첫 소절.

천소울은 최대한 감정을 억누르며 말하듯 담담하게 노래를 불렀고 그것은 어둠 속 천소울한테만 떨어지는 조명 연출 효과 덕분인지 더욱 깊은 몰입도를 만들어냈다.

성현 역시 자신이 프로듀서라는 걸 잊은 채로 한 사람의 관객이 되어 천소울의 노래에 빠져들고 있었다.

도입부 파트가 끝나갈 때쯤 갑자기 의자에서 일어난 천소울과 동시에 노래 역시 빠른 템포로 전환됐다.

“귓가에 들리는 당신의 뜨거운 외침이 그게 내겐 구원이었어.”

천소울은 샤우팅하듯 창법을 락으로 바꾸더니 진성으로 시원하게 고음을 내뻗었다.

객석에 있던 관객들은 갑작스러운 분위기 전환에 모두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

천소울은 오랜만에 무대에 서서 노래하는 것임에도 확실히 기본 성량부터 다른 참가자들과는 달랐다.

넓은 무대 끝에서 중앙으로 뛰듯이 움직이면서도 목소리는 전혀 떨리지 않았다.

공백을 느낄 수 없는 무대였다.

이 넓은 공연장을 자신의 목소리로만 가득 채운 그는 관객석을 응시하며 자신의 성량을 마음껏 뽐냈다.

“하늘 위로 올라가 나 당신에게 달려갈 수만 있다면 내 몸 타버린대도 좋아. 내 마음은 영원히 그대를 향해 달려갈 거야.”

두성과 진성을 오가며 완벽한 테크닉으로 정확하게 고음을 짚어내면서도 노래에 강약조절 또한 완벽하게 해내고 있었다.

무아지경의 얼굴로 열창을 계속하는 천소울은 관객과 밀당하듯 무대 중앙과 끝을 오가며 폭발적인 가창력을 뽐냈다.

그의 모습에 어느새 객석에 있는 사람들 모두 박수를 치며 천소울과 호흡하고 있었다.

익숙한 곡에 흥에 겨워 천소울의 노래를 따라 부르는 사람도 여럿이었다.

이 모든 걸 지켜보는 성현의 눈엔 빛이 반짝였다.

‘내가 편곡한 곡. 내가 준비한 무대에서 완벽히 몰입하고 있어.’

천소울은 단순히 성현이 편곡한 곡을 잘 부르는 것을 떠나서 노래에 스스로를 완전히 몰입하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무대 전체를 누비면서 스스로 무대와 곡에 완전히 녹아들었다.

이건 가수가 자신의 노래와 무대에 확신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천소울이 성현이 준비한 곡과 무대를 완벽히 신뢰하고 있었고 스스로도 만족하고 있기에 지금의 무대가 가능했다.

“지금이야.”

성현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갑자기 리프트가 올라오기 시작했고 천소울만이 무대 위로 솟아 올랐다.

무대 가장 높은 곳으로 올라간 천소울을 따라 모든 사람의 시선이 그에게 향했다.

무대의 변화는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갑자기 무대 밑에서 폭죽이 터지기 시작하면서 하늘에서 깃털 같은 연출 소품이 흩날렸다.

그에 맞춰 폭발적인 천소울의 노래가 뒤따랐다.

“태양 가까이 달려 내 두 다리 모두 녹아내린다 해도 나약한 내 영혼에 그대라는 구원을 얻을 수 있다면 영원토록 날아갈 거야.”

사람들 갑작스러운 무대 연출에 모두 환호했다.

천소울은 무아지경으로 노래를 부르면서 점점 위로 올라가고 있었다.

폭죽이 터진 뒤 뿌연 연기가 무대를 가득 메우자 마치 하늘 위에서 노래를 부르는 것 같은 모습이 연출됐다.

넓은 무대를 압도하는 화려한 무대 장치와 퍼포먼스였다.

이것들 모두 성현이 그동안 모았던 캐시로 커넥트 앱을 통해 이번 무대를 위해 비싸게 구매한 것들이었다.

이번 압구정과의 경연으로 처음 경연 신청을 하는 지역에 지급하는 1000캐시의 보상도 큰 몫을 했다.

방금 화려하게 무대를 빛낸 순간을 확인하자 비싸게 지불한 캐시가 하나도 아깝지 않았다.

서자명 역시 적절한 타이밍에 터진 무대효과에 만족한다는 듯이 웃으며 무대를 지켜보고 있었다.

성현과 몇 날 밤을 머리를 맞대고 설계한 보람이 있었다.

‘이 순간을 위해서 모아둔 거니까.’

카메라는 정신없이 천소울을 찍기 바빴다.

천소울은 이를 의식해 열창을 하면서도 카메라와 아이컨텍을 하며 살짝 웃어 보이는 여유까지 보였다.

누가 미리 지시한 것도 아닌데 자연스럽게 행동하는 천소울을 보며 성현은 가볍게 웃었다.

‘스타야. 천소울은 스타가 되기 위해 스타로 태어난 사람이야.’

천소울이 타고난 스타인 이유는 그가 단순히 노래를 잘해서가 아니었다.

그는 라이브 방송이 처음이라는 사람이라고 하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보컬부터 시작해서 무대 매너, 퍼포먼스, 카메라 아이컨텍까지 완벽하게 해내고 있었다.

-미친. 방금 뭐야?

-웃는 거 봤어? 완전 섹시해

-남자가 저렇게 섹시해도 되는 거냐?

-남잔데 성정체성을 의심하게 됐다 방금.

그리고 천소울이 카메라를 향해 살짝 웃어줄 때마다 너튜브 실시간 채팅창은 폭발했다.

대기실에서 천소울의 무대를 지켜보던 조은별과 다른 팀원들도 난리가 났다.

“방금 웃은 거 봤어요?!”

“저거 도대체 누구야? 우리 팀에 저런 사람 없어….”

“와, 천소울 형 진짜 멋있다.”

그들은 천소울이 보여주는 능숙하고 여유로운 무대매너와 편곡에 맞는 퍼포먼스, 표정 연기, 디테일한 손짓 하나하나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노래는 점점 클라이막스로 치달았다.

쉴 틈 없이 몰아치는 구간에도 천소울을 여유를 잃지 않고 오히려 노래를 이끌어가는 듯이 박자를 가지고 놀았다.

천소울은 연습 때보다 훨씬 더 좋은 모습을 보였다.

스튜디오에서 팀원들 앞에서 연습할 때, 리허설을 하면서 무대 위에서 동선을 맞출 때와는 차원이 다른 공연이었다.

어느새 관객들은 천소울의 숨소리 하나, 가사 한 마디로 들썩이고 모두가 기립한 채로 박자에 맞춰 박수를 치며 환호하고 있었다.

흥겨운 노래인데도 눈물을 흘리며 감격하고 있는 관객마저 있었다.

‘완벽한 귀환이군.’

성현은 천소울의 무대를 보며 자신이 깔아준 판을 100프로 아니 그 이상으로 활용하는 천소울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이번 무대로 천소울은 자신이 완벽한 무대 체질이란 걸 모두에게 각인시켰다.

천소울은 이번 라이브 방송을 통해 처음으로 자신의 음악 실력을 선보이는 사람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의 기량이었다.

이미 오래전부터 무대를 해왔던 사람처럼 그에게 무대가 자연스러웠고 무대에서 태어났다 해도 부족한 사람처럼 보였다.

‘역시 모건과의 일이 기폭제가 됐던 걸까.’

성현이 2년전 싸클에서 처음 천소울의 목소리를 들었을 때와는 또 달랐다.

천소울은 엄청나게 성장해 있었다.

확실히 천소울은 모건과의 일로 독기를 품고 무대를 준비했다는 것이 느껴졌다.

오늘 그는 지금까지 보여줬던 완벽한 무대를 넘어선 더 완벽한 무대를 보여주었다.

그 일이 있었을 당시에만 해도 그에게 시련이었던 일이 이젠 그의 성장하게 된 좋은 밑거름이 됐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무대였다.

‘앞으로 여기서 얼마나 더 빠르게 성장할지 가늠도 안가.’

그의 재능을 무대에서 실시간을 확인하는 성현은 소름이 돋았다.

자신도 성장하고 있지만 천소울의 성장 속도가 생각보다 너무나 빨랐다.

‘나도, 여기서 더 좋은 프로듀서가 되고 싶어.’

천소울의 무대를 지켜보던 성현은 비록 천소울이 가수였지만 프로듀서로서 많은 자극을 받았다.

당장이라도 스튜디오로 돌아가 오늘 본 무대를 복기하며 다른 곡을 준비하고 싶었다.

이런 색은 어떨까, 혹은 저 노래를 천소울이 부른다면?

무대 하나로 끝없는 영감을 얻은 느낌이었다.

성현은 넘치는 생각 속에서 언젠가 천소울과 대등한 실력으로, 아니 그보다 더 월등한 실력으로 그와 함께하고 말겠다는 다짐을 조용히 했다.

‘꼭 내 손으로 만들 거야. 최고의 가수, 최고의 무대.’

성현이 천소울 보며 다짐하는 사이, 천소울의 무대가 끝이 났다.

온몸이 땀에 젖은 천소울이 관객석을 향해 인사를 건네자 관객들은 난리가 났다.

라이브 댓글창에도 한 곡으로는 아쉽다는 댓글이 읽을 수도 없는 속도로 빠르게 불어나고 있었다.

격한 환호성을 뒤로 하고 천소울이 내려오자 가장 먼저 박수를 친 사람은 서자명이었다.

“인정하기 싫지만 멋있었습니다. 역시 천소울 당신은 멋진 가수예요.”

서자명의 가감 없이 솔직한 칭찬에 이어서 다른 일행들 또한 천소울의 무대를 극찬했다.

천소울은 아직 무대의 열기가 식지 않았는지 가볍게 숨을 몰아쉬며 상기된 얼굴로 고맙다고 대답했다.

팀원들의 차례가 지나가고 어느덧 그의 시선은 성현을 향했다.

성현의 평가를 기다리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답지 않게 왠지 굳어 있는 천소울의 표정을 보면서 성현은 옅게 웃음 지었다.

“최고였어요. 지금까지 봤던 무대 통틀어서.”

성현의 칭찬에 천소울은 그제서야 웃을 수 있었다.

아지트에서는 본 적도 없고 무대 위에서 팬서비스로 볼 수 있었던 천소울의 환한 웃음을 본 팀원들은 멍하게 천소울을 쳐다보기 바빴다.

“두 분 덕분에 좋은 무대 할 수 있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려요.”

천소울은 성현과 서자명을 인정하며 말했다.

먼저 자신의 입으로 앞으로도 프로듀서를 부탁한다는 말까지 하는 천소울의 모습에 놀란 것은 성현이었다.

오디션 예선전에서 만날 때만 해도 프로듀서 따위는 필요 없다고 차갑게 자신을 내쳤던 천소울이 아닌가.

천소울에게 인정받기 위해 지금껏 많은 일이 있었지만 방금 그 말로 지난날의 고생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지기까지 했다.

옆에서 같이 이 말을 들은 서자명은 쑥스러워 아무 말도 못 했고 성현은 앞으로 천소울에게 더 멋진 무대를 만들어줄 생각만 가득했다.

***

다음 날, 아지트에 모인 멤버들은 모두 휴대폰으로 너튜브 영상을 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들이 계속 반복해서 보는 영상은 딱 한 개였는데 바로 천소울의 경연 무대였다.

“인기 동영상 1위예요 지금!”

요하가 호들갑을 떨며 하는 말에 다들 올라온 영상 반응을 확인했다.

[인기 동영상 1위]

조회수 1,317,923회.

좋아요 3만 개, 싫어요 129개

단 하루 만에 무대 영상은 큰 화제가 됐고 댓글 반응 역시 엄청났다.

압도적인 무대로 천소울은 홍대팀에게 승리를 가져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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