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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같은 프로듀서는 없었다-94화 (94/273)

94화

본선 3라운드 2차 공연을 위해 주어졌던 1주일의 준비 기간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1주일이 지난 오늘부터 경연 신청이 가능해지며, 본격적인 본선 3라운드 2차 그룹 경연이 시작됐다.

“그럼 마지막으로 최종 점검 한 번 할까요?”

압구정 지역에 본격적인 경연 신청을 하기 전에 성현과 팀원들은 리허설을 위해 아지트로 모였다.

성현은 자신감이 넘치는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팀원들을 둘러보고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선아랑 요하 준비해. 둘이 또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지 말고. 노래에도 연기가 필요하다 했다, 응?”

조은별 말에 주선아와 요하는 한숨을 푹 내쉬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팀원들 앞에서 각자 자리를 잡고 지금까지 연습한 성과를 보여줬다.

방금 전까지 둘은 서로 노려볼 땐 언제고, 노래가 시작되자 눈빛을 싹 바꾸더니 사랑에 빠진 풋풋한 10대들을 연기했다.

‘주선아씨가 확실히 리드하고 있네.’

확실히 경험이 많은 주선아가 살짝 어색해하는 요하를 리드하고 있었다.

밴드와 협연을 하며 무대 위를 방방 뛰어다닌 적은 있지만, 노래하는 동안 상대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며 듀엣을 한 경험은 전무한 요하였다.

아무래도 이런 연기가 쑥스러운지 요하는 노래를 하면서도 조금씩 움츠러드는 모습을 보였다.

이 와중에 주선아의 리드는 요하의 살짝 어리숙한 리액션마저 사랑 앞에 부끄러워하는 남학생으로 보이게 만들었다.

주선아와 요하의 무대가 끝나고 천소울의 차례가 되었다.

아지트에 모인 성현 일행은 모두 숨을 죽이고 그의 노래를 기다렸다.

어쩌면 이번 압구정과의 경연에서 가장 사람들의 기대가 큰 무대였다.

모두의 기대 속에서 그가 노래를 시작했을 때 다들 어떤 말도 하지 못하고 넋이 나갔다.

“왜 성현씨가 천소울씨한테 집착하는지 알겠네요.”

“최고의 가수니까요.”

멍하니 내뱉는 조은별 말에 성현은 자신이 더 뿌듯해하며 말하고 팀원들은 모두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완벽한 무대였다.

여기에 서자명이 이를 갈고 준비한 무대 연출이 더해진다면?

팀원들은 벌써 들리는 것만 같은 뜨거운 환호성을 상상하며 몸에 돋은 소름을 쓸어내렸다.

“그럼 이제 경연 신청만 하면 되는 거죠?”

조은별은 이어지는 릴리와 주영준의 무대까지 보고 난 후, 모든 것이 완벽하단 생각이 들어 성현에게 물었다.

당연히 끝이라고 할 줄 알았던 성현이 고개를 저었다.

“아직이요.”

성현은 그 말을 하며 서지현과 임하나를 쳐다봤다.

둘은 갑자기 자신들에게 꽂히는 시선에 놀라서 눈을 크게 떴다.

“1주일 동안 연습한 거 지금 들려주세요.”

“지, 지금요? 다음 경연에서 올리는 거 아니었어요? 아직 많이 부족한데......”

“저도 아직 완성이 덜 되어서......”

임하나와 서지현은 당황해서 더듬거리며 말했다.

둘의 모습에 성현은 잠시 표정이 굳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알겠습니다.”

성현은 곧바로 커넥트 앱을 통해 팀원들이 보는 앞에서 압구정 지역과 경연 신청을 했다.

팀원들 모두 이를 숨죽이고 지켜봤다.

[압구정 지역과 경연 신청이 완료됐습니다.]

경연 신청이 완료됐다는 알람이 울리자 모두 떨리는 표정으로 서로의 얼굴을 쳐다봤다.

“선아랑 요하, 첫 무대니까 무조건 이겨야 한다. 알았지?”

“네! 파이팅!”

조은별 말에 요하는 자신감을 보이며 외치고 요하의 파이팅에 다들 파이팅을 외쳤다.

***

드디어 다가온 경연 날 당일.

압구정 측과의 경연 무대를 위해 성현과 서자명은 새벽부터 나와 무대 세팅을 준비했다.

“제 아무리 천소울이라도 입이 떡 벌어질걸요.”

“천소울씨 성격에 그럴 일은 없겠지만 그랬으면 좋겠네요.”

서자명의 자신만만한 말에 성현은 여느 때와 다르게 긴장으로 굳은 목소리로 말했다.

천소울과 처음 함께 무대를 준비하는 만큼 그가 만족할 수 있는 최고의 무대를 만들어주고 싶었다.

두 사람이 무대 세팅을 끝내갈 때 즈음 천소울이 도착했고 성현과 서자명은 말없이 무대를 바라보는 천소울을 지켜봤다.

성현은 그렇다 쳐도 서자명도 막상 천소울이 무대를 살피자 긴장이 됐는지 침을 꿀꺽 삼켰다.

“뭐, 괜찮네요.”

이리저리 무대 위를 살피고 서자명에게 무대 연출에 대한 설명도 실제 무대를 보며 들은 뒤에 나온 천소울의 말이었다.

담담하기 그지없어서 칭찬 같지 않은 말에 성현 그제서야 싱긋 웃을 수 있었다.

성현은 알았다. 천소울이 괜찮단 말은 다른 사람의 말로는 아주 마음에 든다,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는 걸.

“고생 많으셨습니다. 그럼 전 리허설 때문에 대기실 가보겠습니다.”

형식적인 인사말처럼 들리는 말을 끝으로 천소울은 백스테이지로 넘어갔다.

흐뭇하게 그 뒷모습을 바라보는 성현과 어딘지 모르게 불만에 가득 찬 서자명은 그의 뒷모습을 거의 노려보고 있었다.

“역시 천소울씨 입을 벌리는 건 쉬운 일이 아니네요.”

만족스럽다는 듯이 말하는 성현의 모습에 서자명의 얼굴을 펴질 줄을 몰랐다.

“뭐, 괜찮네요? 괜찮긴. 이 정도면 쩌는 거지!”

성현에게 그렇지 않냐고 묻고 싶었지만, 돌아서 본 성현의 표정은 만족 그 자체였다.

아무도 동조해주지 않아 혼자서 툴툴거리는데 그걸 조금도 신경 쓰지 않는 성현의 시선은 빈 무대를 향해 있었다.

‘이제 이곳을 온전히 천소울로만 가득 채우면 돼.’

성현은 다른 것은 아무것도 상관없었다.

천소울이 무대에 설 생각만으로 심장이 벅차올랐다.

***

“안녕하십니까. 더 넥스트 슈퍼스타 본선 3라운드 2차 경연 진행을 맡게 된 배우 김현수입니다.”

이번엔 배우가 엠씨를 맡게 됐고 인기 배우의 등장에 객석에 있는 사람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엠씨는 평소와 다름없이 간략하게 경연 룰에 대해 설명했다.

스탭들은 그 사이 백스테이지를 분주하게 오가며 참가자들을 스탠바이 시켰다.

“그럼 홍대와 압구정 팀 경연 시작하겠습니다. 첫 번째 무대는 우리 어린 친구들이 준비했는데요, 박수로 맞이해주세요. 홍대팀 참가자 주선아, 김요하 학생입니다!”

엠씨의 말에 객석에 있는 사람들 모두 환호를 질렀고 무대에는 산뜻하게 교복을 맞춰 입은 주선아와 요하가 등장했다.

무대가 시작되자 조은별이 메인으로 프로듀싱을 맡아 편곡한 곡이 흘러나왔다.

김요하와 주선아가 가지고 있는 특기에 맞춰 원곡의 발랄함은 조금 덜어내고 리듬감과 미니멀한 멜로디라인을 살린 곡이었다.

간결하게 느껴지도록 편곡한 곡이었기에 원곡이 가지고 있는 대화하는 듯한 노랫말을 둘이 어떤 식으로 연기해내느냐로 무대의 완성도가 달라질 수 있었다.

“넌 늦게 다니지 마. 다른 남자들 보고 웃지도 좀 마. 열 살짜리 애처럼 왜 자꾸 말을 안 들어.”

“넌 왜 내 맘을 몰라. 잠깐이라도 네 얼굴 보려고 늦게 다니는 거잖아.”

교복을 입은 요하와 주선아의 서로 이야기하듯 주고받는 가사가 오갔고 이를 보는 객석에 있는 사람들 얼굴에 흐뭇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처음부터 끝까지 다 널 위한 소리. 내 말 안 듣는 너에겐 다 뻔한 잔소리.”

훅에서 주선아와 요하의 목소리가 합쳐지기 시작하더니 감미로운 화음을 만들어냈다.

그전에는 내내 서로 툴툴거리던 두 사람은 훅의 시작과 동시에 서로에게 시선을 맞추며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살짝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다른 무대 장치는 필요 없었다.

오직 목소리로만 완벽한 하모니를 완성했다.

-뭐야? 뭐야? 둘이 사귀어? 눈에서 꿀 떨어지네.

-아. 연애하고 싶다.

-너무 달달해서 이빨이 녹아버릴 거 같다.

-나도 잔소리해줄 여친있으면 좋겠다ㅜ

-쟤들은 무슨 대형 엔터 연습생들 같네. 비주얼도 그렇고 노래도 잘하고.

두 사람의 무대를 본 너튜브 시청자들도 난리가 났다.

귀엽고 잘생기고 예쁜데다가 서로가 맞춰가는 호흡도 완벽했다.

서로에게 귀여운 잔소리를 퍼부으며 애정을 확인한 두 사람의 듀엣 무대는 격한 환호성을 받으며 마칠 수 있었다.

무대 위에서 완벽한 호흡을 선보인 요하와 주선아는 묵묵히 무대에 내려가더니 마침내 서로를 인정했다.

“너, 무대 좀 늘었더라.”

“누나가 연기 도와준 덕이죠. 고마워요.”

여전히 틱틱거리는 말투였지만 웬일로 서로에게 칭찬을 건네는 둘을 지켜보던 서지현과 임하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임하나는 옆에 앉은 서지현의 팔을 찰싹찰싹 내리치며 호들갑을 떨었다.

“쟤네 둘이 진짜 정분난 거 아니야?”

“언니. 고딩들한테 정분이 뭐예요, 정분이. 근데 신기하긴 하네요.”

서지현과 임하나가 두 사람을 보며 신기해하는 사이 압구정 팀의 무대가 이어졌다.

그리고 백스테이지에 남아 무대를 지켜보는 조은별의 표정은 점점 굳어졌다.

확실히 라운드가 진행될수록 실력자들의 무대가 이어졌고 압구정팀의 가수들 또한 기술적으로 완벽한 무대를 선보이고 있었다.

에이, 설마하는 마음이 자꾸만 커져 조은별을 불안하게 만들었기에 팀원들이 기다리고 있는 대기실로 돌아가지 못하고 내내 그 자리에 못 박힌 듯이 서 있었다.

“첫 번째 경연 결과 발표하겠습니다.”

각 팀의 무대가 끝이 나고 결과가 발표됐다.

[홍대팀: 10234표]

[압구정팀: 9691표]

“꺄아!”

결과를 본 조은별이 가장 먼저 소릴 질렀다.

힘든 경연이었지만 요하와 주선아의 완벽한 하모니 덕분에 500표 정도의 아슬아슬한 차이로 이겼다.

“누나 울어요?”

조은별이 소릴 지르고 그 자리에 주저앉자 요하는 조금 걱정돼서 물었다.

결과를 기다리는 조은별의 모습이 심상치 않아 백스테이지에 나와 있었다.

조은별은 요하의 물음에 괜찮다며 손을 저었지만 여전히 고개는 숙인 채였다.

“눈치 없긴. 언니, 여기요.”

주선아는 그런 요하에게 핀잔을 주며 조은별에게 휴지를 건넸다.

“첫 무대라 긴장을 좀 했나 봐. 이번에 이겨야지 4라운드 올라가잖아.”

그동안 티는 못 내도 긴장을 하고 있었는지 마음껏 승리를 만끽하는 조은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어서 두 번째 리빙 레전드 무대가 바로 시작됐다.

이제는 성현이 긴장할 차례였다.

결과 발표를 들으려고 나와 있던 성현은 무대에 설치된 거대 스크린에 두 번째 경연 순서를 알리는 글자가 크게 나타났다.

“그럼 두 번째 리빙 레전드 발표하겠습니다. 이분 노래는 대한민국 노래 좀 한다는 사람치고 노래방에서 안 불러본 사람이 없을 것 같아요. 대한민국 보컬 3대장 허윤입니다!”

엠씨의 말에 객석에 있는 사람들 환호성을 지르고 분위기는 더욱 후끈 달아올랐다.

“이번 무대는 가창력 싸움이 될 것 같기도 하네요. 그럼 두 번째 경연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홍대팀 준비해주세요!”

엠씨의 말에 백스테이지에 있던 스탭들은 천소울을 대기시켰다.

천소울은 리허설을 마친 후에 무대에 대해 완전히 숙지했다는 듯이 그다지 긴장된 모습이 아니었다.

오랜만에 무대에 천소울이기에 당사자보다 긴장하고 걱정했던 성현에게 천소울의 저 모습은 든든하기만 했다.

천소울은 대기 장소에서 무대로 올라가기 전 가볍게 목을 풀었다.

“잘 부탁드려요.”

다른 무대와 다르게 조금 긴장한 상태인 성현이 괜찮은 척 천소울에게 여유롭게 웃어 보이며 말했다.

천소울은 잠시 성현의 얼굴을 살피더니 고개를 끄덕인 뒤 무대로 올라갔다.

조명이 밝아지고 성현과 천소울이 함께하는 첫 번째 무대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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