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같은 프로듀서는 없었다-93화 (93/273)

93화

천소울의 반응에 성현은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중이었다.

이내 그의 입에서 좋다라는 말이 나오고 나서야 성현은 긴장을 풀 수 있었다.

긴장이 풀리는 것뿐만 아니라 천하의 천소울에게 ‘좋다’는 말까지 들었으니 성현은 날아갈 것만 같았다.

2년 전부터 꿈꿔왔던 목소리의 주인에게 인정을 받은 최초의 순간.

이보다 짜릿할 수는 없었다.

성현이 감상에 젖어있는데 천소울의 질문이 날아와 꽂혔다.

“이 세 곡을 고른 이유가 있나요?”

프로듀서로서 성현의 편곡 의도가 궁금하여 물어온 질문에 성현은 기다렸다는 듯 빠르게 설명을 시작했다.

“일단 이 세 곡 모두 락발라드 장르로 천소울씨의 음색과 가창력을 모두 보여줄 수 있으면서 경연곡으로도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중 첫 번째 곡은 ‘하늘 위로’는 리드미컬 하면서도 신나는 분위기의 곡으로 천소울씨의 미성을 가장 잘 살릴 수 있는......”

성현은 며칠 동안 말을 하지 못한 사람처럼 끊임없이 자신의 곡에 대한 설명을 이어갔다.

도가 지나친 설명은 천소울이 그만해도 된다는 말을 할 때까지 이어졌다.

누가 봐도 지금 성현은 흥분상태였다.

“곡에 대한 설명은 충분하니까 그만해도 됩니다.”

“더 할 수 있는데......”

성현이 조금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시자 천소울은 정말 됐다는 듯 손을 내젓고 선택을 내렸다.

“가져오신 곡 중 첫 번째 곡으로 하겠습니다. 하늘 위로.”

천소울이 고른 곡은 허윤의 2집 미니 앨범 수록곡에 담긴 대표곡 하늘 위로였다.

“경연에서 고음만큼 관객을 압도하기 좋은 무기도 없으니까요.”

“역시 천소울씨는 센스가 있네요.”

천소울의 망설임 없는 선택에 성현은 감탄했다는 듯 말했다.

자신 역시 천소울이 하늘 위로를 골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기에 통했다는 느낌이 들어 더 기뻤다.

다른 노래들도 다 좋긴 했지만, 가창력만 받쳐준다면 ‘하늘 위로’만큼 관객을 압도할 수 있는 곡은 없었다고 생각했다.

물론 다른 두 곡 역시 천소울의 압도적인 음색과 감정을 실은 전달력으로 승부한다면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지만, 성현은 이번 무대에서 천소울의 최고 기량을 선보이고 싶었다.

성현은 천소울의 센스에 혼자 감탄하느라 정작 천소울이 자신을 빤히 보고 있다는 것도 눈치채지 못했다.

천소울은 이전과 다르게 성현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중이었다.

‘제법이네. 생각했던 것보다 음악 센스가 상당하잖아. 말로만 일하는 놈이 아니었어.’

천소울은 성현의 프로듀싱 능력이 특출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단기간에 곡 세 개를 준비해올 줄 몰랐다.

그것도 단순히 리스트업을 해온 것이 아니라 경연이란 환경과 자신의 음색과 보컬 특징에 맞춰 편곡해왔다는 것은 보통 감각으로는 해낼 수 없다는 걸 잘 알기에 더욱 그랬다.

그의 디렉팅은 과연 어떨지.

천소울은 생각지도 못한 성현의 편곡 감각을 눈으로 확인하고 기대에 차올랐다.

프로듀서를 기피하던 그가 성현과 일하고 싶어지고 있었다.

***

압구정 지역과의 경연을 대비한 연습을 시작한 지 3일째 되는 날.

성현은 압구정 근처 카페에서 아침부터 누군가를 기다리며 휴대폰으로 너튜브 영상을 봤다.

영상은 너튜브 ‘더 넥스트 슈퍼스타’ 계정으로 올라온 영상이었다.

이번 본선 3라운드 라이브 방송했던 경연 중에서 각 지역 경연의 잘한 무대들을 종합적으로 편집한 클립 영상이었다.

당연히 영상에는 성현 일행의 공연 무대는 물론, 다른 지역 참가자들의 공연 영상 또한 들어가 있었고 성현은 그들의 무대를 하나하나 확인했다.

앞으로 이들 모두가 강력한 경쟁자다.

지금은 라이브 방송까지 시작했기에 대중들의 인지도도 쌓여가고 있는 중이었다.

부지런히 확인해두고 기억해놔야 할 상대들이었다.

동성로 지역 김찬혁.

서면 지역 박예림.

이태원 지역 문희진.

광주 지역 이소연 등등..

다양한 지역에 많은 실력자들이 포진해 있었다.

한국 본선뿐만 아니라 외국 영상도 보는데 역시나 글로벌로 넘어가니 각양각색의 개성을 가진 참가자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계속 위로 올라간다면 언젠가 만날 수도 있겠지.’

실력자들을 보고 있자니 자신도 모르게 심장이 뛰었다.

다양한 언어의 사람들이었지만 그들은 모두 음악이란 언어로 소통하고 있었다.

그들의 무대를 보는 것만으로 성현에게 많은 자극을 주었다.

“뭘 그렇게 봐요?”

그때 카페로 서자명이 들어오며 성현을 불렀다.

“오셨어요.”

기다리고 있던 사람이 도착하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 둘은 함께 압구정 지역 공연장 답사를 가기로 했다.

곡이 어느 정도 완성됐기에, 이제 무대 구성을 생각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더 넥스트 슈퍼스타 클립 영상을 봤어요. 역시 세상은 넓고 실력자는 많은 것 같아요.”

“어째 즐거워하는 것 같은데?”

성현은 자신이 보고 있던 영상을 서자명 쪽으로 돌려서 보여주며 말했다.

서자명은 영상과 성현을 번갈아 보다가 웃으며 물었다.

분명 서바이벌 오디션 중이고, 참가자이기도 하면서 저렇게 여유롭게 즐기고 있는 것이 신기했다.

“즐겁지 않아요? 더 다양한 음악을 접할 수 있는 거잖아요. 전 이런 데서 받는 자극이 좋아요. 영감을 주기도 하고.”

서자명이 생각하기에 실력자가 많다는 건 그만큼 다음 라운드에 진출하기 어렵다는 걸 의미했지만 성현에겐 당장 다음 라운드에 진출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더 높은 목표가 있는 성현에게 한국 영상은 새로운 자극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성현에게 중요한 건 더 다양하고 더 재밌는 음악을 접할 수 있다는 것, 그것뿐이었다.

그런 성현을 조금 신기하듯 보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범상치 않은 인물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저도 열심히 하겠습니다. 언젠가 성현씨한테 영감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요.”

서자명이 굳은 의지를 표하며 말하자 성현은 그의 말에 이내 생각에 잠긴 듯 고백하듯 한마디를 던졌다.

“사실 이번 무대만큼은 즐기는 것도 좋지만 압도적인 퍼포먼스로 이기고 싶어요.”

성현의 말에 서자명은 이를 눈치채고 있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프로듀서 회의 때 자신에게 특정 무대 프로듀싱을 맡기지 않는 것을 보고 무언가 생각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던 차였다.

그러던 중 압구정 무대를 둘이서 살피러 가자고 성현이 먼저 연락한 것이다.

아무래도 성현은 이번 2차전에서 서자명에게 전체적인 무대 연출을 모두 맡길 생각인 모양이었다.

“이전 공연들에 비해 조금 중압감을 느끼는 것 같은데 이유가 있나요?”

서자명의 의아함이 담긴 물음에 성현은 긴말하지 않았다.

“그냥 앞으로 여러분들이랑 더 좋은 음악하고 대중들한테 더 좋은 음악 들려주고 싶으니까요.”

서자명은 성현의 표정을 보며 그게 다가 아닌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지만, 이 이상은 묻지 않기로 하고 대신 공연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다.

“천소울씨랑은 준비 잘하고 있어요?”

“네. 천소울씨잖아요. 보컬은 이미 완성형이고 무대 퍼포먼스만 마무리 지으면 될 것 같아요.”

천소울의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전과는 다르게 눈을 반짝이는 성현을 보고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왔다.

자신과 무대 연출에 관해서 이야기할 때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표정이었다.

서자명은 무대 퍼포먼스를 들먹이는 성현의 말에 약간의 오기가 생긴 듯 농담처럼 되물었다.

“부담 주시는 건가요?”

“네. 서자명씨 잘하잖아요.”

바로 이어지는 대답에 당황한 것은 서자명이었다.

이렇게 바로 수긍할 줄은 몰랐던 터라 서자명은 머쓱하게 대꾸했다.

“…뭐, 맞는 말이긴 하죠. 맡겨만 주세요. 멋있는 무대 만들어드릴 테니.”

빼는 법이 없는 서자명을 보고 성현은 마음이 든든했다.

저것도 다 그만큼 스스로 실력에 자부심이 상당하기에 나올 수 있는 반응이었다.

그렇게 두 사람은 앞으로의 일정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압구정 공연장에 도착했다.

***

“무대 구조가 특이하네요.”

서자명은 바로 압구정 무대 위로 뛰어오르며 말했다.

무대에서 바라보는 객석과 높이부터 체크하는 서자명을 보고 성현도 무대 아래서부터 무대를 둘러봤다.

압구정 공연장은 무대가 크기도 했지만, 특징이 있다면 양옆으로 무대가 길다는 거였다.

‘양옆 공간을 활용할 수도 있겠네.’

무대를 본 성현은 곧장 무대 연출부터 떠올렸다.

양옆 공간이 넓고 넓은 만큼 객석도 옆자리까지 빽빽이 들어차 있었다.

날개처럼 길게 펼쳐진 무대를 주의 깊게 살피며 두 사람은 각자 생각에 잠겼다.

성현이 이번 무대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곡의 후렴구 부분이었다.

그 지점에서 천소울의 보컬이 폭발하면서 임팩트 있는 장면을 연출해야 했다.

“화려한 무대로 만들고 싶다 했죠?”

무대를 둘러보던 서자명이 성현에게 물었다.

성현은 바로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말했다.

“네. 최대한 화려하게 가고 싶어요.”

“캐시 꽤 써야 할 거 같은데 괜찮아요?”

“얼마가 들든 상관없습니다.”

성현이 쿨하게 말하자 서자명은 기다렸다는 듯 자신의 아이디어를 말해줬다.

이어지는 서자명의 아이디어를 들은 성현의 표정이 놀라움으로 가득 찼다.

“방금 생각해낸 거예요?”

“네. 별로예요?”

말은 그렇게 하면서 꽤나 자신만만한지 별로일 리가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는 서자명을 보고 성현은 진심으로 감탄했다.

“알고는 있었지만 서자명씨는 항상 무대 연출에 있어선 진심인 것 같네요. 어떻게 이렇게 빨리 아이디어를 떠올릴 수 있어요?”

“각자 잘하는 게 있는 법이니까요.”

서자명은 대수롭지 않게 말하며 압구정 무대를 한번 쭉 훑어봤다.

성현은 방금 서자명에게서 들은 무대 구성을 짚어보며 그의 센스에 감탄했다.

이렇게 넓은 무대를 채우는 것이 아직 낯선 성현에게 많은 참고가 됐다.

“이성현씨는 무대가 뭐라고 생각해요?”

“관객과 음악을 이어주는 공간이요.”

망설임 없이 흘러나온 성현의 대답이 제법 마음에 들었는지 서자명은 입가에 미소를 걸친 채로 이어 말했다.

“맞아요. 그런 개념으로 보면 무대는 관객과 음악을 이어주는 동시에 음악의 일부가 될 수도 있는 거예요. 노래를 더 멋있게 만들어 주잖아요.”

진지하게 무대를 바라보며 하는 말에 성현은 가만히 서자명을 쳐다봤다.

그가 음악에 대한 진지한 태도를 가지고 있다는 건 알았지만 무대 위의 서자명은 평소 그가 풍기는 분위기와 180도 달랐다.

“노래를 더 멋있게 만드는 게 프로듀서가 해야 하는 일이잖아요. 전 그냥 제 할 일을 할 뿐입니다. 솔직히 제가 이성현씨처럼 작곡 능력에 있어서 천재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고 음악성에 있어서 천재성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거든요.”

“하지만 그 누구보다 멋진 무대를 만들어내잖아요. 가수가 가장 빛날 수 있는 무대요.”

성현은 자신을 낮추는 서자명의 말에 고개를 내저으며 말했다.

서자명은 자신의 진가를 알아봐주는 성현의 말에 그를 바라보며 차마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그의 진심을 털어놓았다.

“단순히 무대 위에서 멋있기를 바라는 게 아니에요. 내 노래에 사람들이 집중하게 만들다 보니 그렇게 된 거지. 멋있어야 사람들이 듣고 멋있어야 관심을 가지잖아요.”

“서자명씨에게 중요한 건 무대가 아니라 관객이었군요.”

성현의 말에 서자명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서자명이 음악과 무대에 임하는 태도를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역시 배울 게 많은 사람이구나.’

성현은 그렇게 생각하자마자 자신 역시 무대 위로 뛰어올랐다.

서자명과 같은 눈높이가 되자 성현은 웃으며 말했다.

“아까 무대 구성 다시 한번 설명해주세요.”

성현의 말에 서자명은 예리한 눈초리로 성현을 돌아봤다.

“지금 제 무대 구성 능력까지 갖추려는 거예요?”

역시 눈치 빠른 사람이다.

“각자 잘하는 게 있으니까요. 서로 배우면서 살면 좋잖아요. 언제든 저한테 작곡 배우러 오셔도 좋아요.”

“그 약속 지키세요.”

서자명은 작곡 배우러 오라는 성현의 말에 그제야 활짝 웃으며 성현에게 무대 구성을 한 번 더 자세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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