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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같은 프로듀서는 없었다-90화 (90/273)

90화

“2차 경연 역시 1차 경연과 같은 방식으로 진행되며 3개 지역 중 한 지역만 본선 4라운드에 올라가게 될 겁니다. 그럼 지정 가수 먼저 발표하겠습니다.”

스탭의 말에 회의실에 있는 프로젝터에 각 지역의 지정 가수가 떠올랐다.

[ 홍대 측 가수 : J. KIM ]

[ 압구정 측 가수 : 존 킴 ]

[ 신촌 측 가수 : 허윤 ]

이미 너튜브 영상을 통해 서로 지역의 지정 가수는 알고 있었기에 각 지역 대표들은 크게 놀라지 않았다.

그들에게 중요한 건 경연 구도였고 이를 아는 스탭 또한 빠르게 진행을 이어갔다.

“이어서 최종 경연 상대 발표하겠습니다.”

[ 홍대 홈 공연장 경연 : 홍대 지역 vs 신촌 지역 ]

[ 압구정 홈 공연장 경연 : 압구정 지역 vs 홍대 지역 ]

[ 신촌 홈 공연장 경연 : 신촌 지역 vs 압구정 지역 ]

“그럼 1주일 뒤 2차 경연까지 최선의 무대 준비해주시길 바랍니다.”

스탭은 공지를 마치고 자리를 떴고 남은 대표들 모두 짐을 챙기며 일어났다.

성현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자신들의 대결 상대에 대해 생각에 잠겼다.

‘신촌이면 허윤이네. 아지트로 돌아가서 프로듀서 회의부터 진행해야겠다.’

남은 기간 동안 무대를 준비할 생각을 하며 일어나는데 갑자기 방을 나가던 스탭이 누군가를 향해 반갑게 인사하는 소리가 들렸다.

“마 피디님, 여기는 어쩐 일로 오셨어요?”

“어, 나도 여기서 회의 있어서.”

“책임자 바뀌었다더니 진짠가 보네요. 이제 현장은 안 돌아오신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어디 CP자리 가서 앉으실 줄 알았더니.”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어. 잘해보자.”

묵직한 목소리의 남자가 깜짝 놀란 스탭의 어깨를 두들기는데 지나가던 다른 스탭 하나도 그 남자 얼굴을 확인하더니 구십도로 인사했다.

“피디님 오셨습니까. 어제 휴가 내셨다면서요. 얼굴 좋아 보이십니다.”

“야 오랜만에 잠 좀 푹 잤더니 살 것 같다.”

현장에 있던 주최 측 스태프들이 모두 그 마PD라는 남성에게 인사를 하는데 말하는 모양새로 보아 꽤 높은 위치의 사람인 것 같았다.

성현은 대기실을 나서다가 아무 생각 없이 남성 쪽으로 시선을 돌리는데 그의 얼굴을 확인한 성현의 표정이 굳었다.

“어?”

불독 같은 인상과 얼굴에 꽉 끼는 사각 뿔테 안경의 사내, 게임을 통해 숱하게 봐온 인물이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인물을 전혀 예상치 못한 순간에 만난 성현은 순간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저 사람이 왜 이곳에 있는 거지…?’

갑자기 등장한 남자, 마PD의 얼굴을 확인한 성현은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하며 일단 건물을 나섰다.

설마, 내 기억이 맞다면 저 사람은….

***

아지트로 돌아가는 아늑한 차 안에서 성현의 굳은 표정은 풀릴 줄을 몰랐다.

성현의 머릿속엔 미팅 장소에서 만났던 남자의 얼굴이 떠나지 않았다.

‘그가 도대체 왜 본선 3라운드에 등장하는 걸까…? 원래대로라면 분명......’

이전에 릴리를 만날 때부터 느꼈지만 성현은 자신이 알고 있던 게임의 내용이 조금씩 달라진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물론 이러한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애초에 자신도 게임 속에 없던 변수 중 하나이니까.

이곳은 게임이 아닌 현실이었고 그런 사소한 변수 하나가 나비효과처럼 커져 게임의 원래 이야기와 달라질 가능성이 있단 걸 성현 또한 모르는 게 아니었다.

그래도 이 정도로 바뀔 거라는 건 예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마PD 등장은 찝찝해.’

아무리 성현의 등장으로 게임의 내용이 바뀌었다지만 마PD는 벌써 등장하면 안 되는 인물이었다.

그는 원래대로라면 지금보다 한참을 더 지나 후반부에서 등장할 예정이었다.

성현이 알기로 다른 PD들과는 다르게 마PD는 이런 지역 경연에 관여할 연차가 아니었다.

릴리 같은 경우는 게임과는 다르게 상황이 조금씩 변해 있었던 거라면 마PD 같은 경우는 등장 자체가 예상보다 훨씬 앞당겨진 경우에 속했다.

이는 단순히 성현의 등장으로 인해 게임 내용이 바뀐 걸로 보기엔 리스크가 상당히 큰 변화였다.

성현은 앞으로의 진행이 자신과 알고 있는 것과 많이 달라지게 된다면 어떻게 될지 걱정하다가 당장 닥친 일 먼저 생각하기로 했다.

‘마영진 PD. 이거 골치 아프게 됐는데.’

마영진 PD, 스탭들 사이에서 마PD로 불렸던 그는, 게임에서 가장 더러운 방법을 사용하여 천소울을 오디션에서 떨어뜨리는 캐릭터로 성현은 그를 ‘조작 PD’라고 불렀다.

그는 게임 내에서 매번 오디션 결과를 조작했고 그가 조작을 했단 사실을 밝혀내지 못하면 천소울은 제대로 실력 발휘도 못 하고 허무하게 오디션에서 떨어져야만 했다.

좋은 엔딩을 보기 위해서 필수적으로 넘어야 하는 역경 중의 하나였다.

그런데 그 마PD마저 실제 현실에 등장하다니, 게다가 이렇게 일찍.

‘타이밍이 좋지 않아.’

마PD의 등장은 이제까지 성현이 겪었던 다른 장애물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게임 속에선 그가 늘 게임 후반부에 등장했기 때문에 성현 또한 천소울의 세력을 키워둔 상태라 그가 결과를 조작했단 사실을 밝혀낼 수 있었다.

하지만 게임과는 다르게 지금은 오디션 초반부였고 이는 마PD를 상대할 성현이 가지고 있는 인맥이나 세력이 부족하단 걸 의미했다.

‘이대로 가만있을 수는 없어.’

그렇다고 마PD의 등장을 확인한 이상 가만히 있을 순 없었다.

성현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곧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김인호 AD님. 잘 지내셨어요?”

문제가 생기면 언제든 연락을 달라 했던 김인호AD다.

김인호는 성현의 전화를 반갑게 받으며 이번 라이브도 잘 봤다고 인사를 건넸다.

김인호의 말이 길어지려 하자 성현은 재빠르게 그의 말을 끊고 본론을 말했다.

“AD님 혹시 마영진PD님에 대해 아는 게 있나요?”

“예? 마영진?! 마PD님은 갑자기 왜요?”

김인호는 갑작스러운 성현의 말에 마시고 있던 음료수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성현은 항상 자신이 생각지도 못한 말을 꺼내긴 했지만 이번 일 역시 예상치 못했던 일이었다.

김인호는 점점 성현의 전화가 두려워지려고 하고 있었다.

“아까 지역 대표 모임에서 뵙는데 스탭 말론 책임자가 바뀌었다 그래서요.”

성현은 굳이 김인호에게 마영진PD가 조작 PD라는 의혹을 꺼내지 않으면서 자연스럽게 돌려서 물어보려 했다.

성현의 말에 김인호는 이내 기억났다는 듯 아는 척을 해 보였다.

“아아. 그분이 원래 현장에서 이러고 계실 분이 아닌데, 신촌 메인 PD가 사정상 못 나오게 돼서 이번 3라운드 2차 경연 총괄 PD 자리까지 맡게 됐어요. 지역 담당하실 짬이 아니시거든요. 본선 3라운드 시작되고 갑자기 교체된 거라 나도 깜빡하고 있었네. 미팅 장소에서 만났구나.”

‘총괄PD가 갑자기 교체됐다고?’

김인호 말을 들은 성현은 알 수 없는 꺼림칙한 기분을 느꼈다.

“왜 그런지는 모르시고요?”

“그것까지는 모르죠. 우리야 윗선에서 내려오면 그냥 따라가니까. 그런데 마PD님은 왜요?”

“아뇨. 이런 일이 흔한가 그냥 궁금해서요.”

김인호의 의문에 성현은 적당히 받아넘겼다.

곧 마PD에 대한 관심은 떨어졌는지 김인호는 이번에 신촌과 압구정하고 벌이게 될 경연에 대해 또 한참을 떠들었다.

성현은 아직 세세한 계획이 나오지 않았다고 하면서 김인호의 응원을 듣고 전화를 끊었다.

‘더 넥스트 슈퍼스타’는 분명히 음악이 가장 주가 되는 오디션이다.

물론, 특이한 형식과 형태로 다른 음악 오디션과는 차별점을 가진 것은 맞았지만 참가자들이 음악이라는 공통된 목적을 가지고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그 어떤 오디션과도 같았다.

그런데 갑자기 조작PD의 등장이라니.

‘누군가 오디션에 개입하고 있는 걸까.’

총괄PD가 교체됐단 말을 들은 성현은 절박하게 오디션에 임하는 참가자들의 노력을 방해하고 짓밟기 위해 오디션에 개입하는 존재가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성현은 찝찝한 마음을 안고서 방심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며 각오를 다졌다.

***

홍대 측 아지트로 돌아온 성현을 반기는 건 조은별 혼자였다.

텅 빈 아지트의 모습에 성현은 주변을 둘러보다가 은별에게 물었다.

“다들 어디 갔어요?”

혼자 곡 작업 중이던 조은별은 쓰고 있던 헤드셋을 벗으며 성현 쪽으로 뒤돌며 대답했다.

“다 같이 바람 쐬러 나갔어요.”

개인 연습을 하다가 아직 구체적인 곡명이 나오지 않아서 그런지 팀원들은 새로 들어온 릴리와 주영준을 데리고 가까운 곳으로 놀러 나간 모양이었다.

지금 릴리한테는 무작정 연습하기보다는 한숨 돌릴 시간이 필요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까지 열심히 달려온 멤버들을 질책할 마음도 없었다.

팀원들을 잘 챙기는 서지현이 함께 나간 것을 확인한 성현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며 조은별 옆에 앉았다.

조은별은 성현의 표정에서 뭔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는지 헤드셋을 곧장 쓰지 않고 성현의 표정을 살피며 물었다.

“무슨 일 있었어요? 표정이 안 좋아 보여요.”

“아무 일도 없어요. 다음 무대 때문에 생각할 게 좀 많아서 그런가 봐요.”

성현은 조은별에게 사실대로 털어놓을 수 없기에 안심하라는 듯이 말했다.

조작PD에 대한 말을 털어놔봤자 조은별은 믿지도 못할 뿐더러 성현보다 더 걱정할 수도 있었다.

아직 벌어지지도 않은 일로 다른 팀원들까지 걱정하게끔 할 수는 없었다.

그런 성현의 말에도 조은별이 계속 걱정스럽게 성현을 쳐다보자 성현은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저 진짜 괜찮으니까 은별씨 작업마저 하세요.”

말로는 되지 않을 것 같자 성현은 조은별에게 직접 헤드셋 씌워주며 말했다.

얼른 조은별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려는 성현의 작전이었다.

조은별은 당장은 무슨 일이 생기는 건 아니라고 판단했는지 딱히 성현을 막지 않았다.

성현이 무슨 고민이 있는 건 확실해 보였지만 그가 말하지 않는 이유가 분명 있을 거라 생각하면서.

다시 곡 작업에 열중하는 조은별을 지켜보던 성현이 굳은 표정으로 생각에 잠기는데, 누군가 연습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성현과 조은별은 팀원들이 돌아왔나 싶어서 동시에 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거기에는 한 남성의 모습이 보였다.

“헐.”

가장 먼저 반응을 보인 건 조은별이었다.

조은별이 깜짝 놀라 성현을 보는데 성현 또한 적지 않게 놀랐는지 눈이 커다래져 있었다.

“오랜만입니다.”

듣기 좋은 미성의 바리톤이 아지트를 울렸다.

안정적인 울림이 그가 목이 다 나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천소울.”

성현은 아지트를 성큼성큼 들어오는 천소울을 보며 그의 이름을 나지막이 읊조렸다.

천소울. 그가 돌아온 것이다.

성현은 지금쯤 그의 목이 다 나았을 거란 건 예상했지만 막상 그를 아지트에서 다시 보니 놀라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천소울은 그런 성현을 보며 자신만만하게 웃어 보인다.

일부러 아무런 연락을 하지 않고 아지트로 온 보람이 있었다.

성현은 그 자신만만한 미소를 본 순간 마PD의 등장으로 복잡했던 성현의 머릿속이 순식간에 가벼워졌다.

“빨리도 왔네요.”

넋이 나가 있던 성현은 정신을 차리고선 천소울에게 다가갔다.

천소울은 성현의 말에 어깨를 한번 으쓱이며 대답했다.

“나 없으면 떨어질 거 같아서.”

언제나처럼 자신만만한 말에 성현은 그제서야 굳은 표정을 풀며 천소울 향해 웃어 보였다.

전보다 더 뻔뻔스러워진 천소울이 돌아오자 막연한 자신감이 들었다.

마PD의 등장으로 한 고민이 무색하게 모든 게 다 잘 될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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