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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같은 프로듀서는 없었다-89화 (89/273)

89화

홍대팀과 잠실팀의 최종 경연이 끝나고 라이브 방송 화면에 환호를 하는 관객들의 모습이 비쳤다.

무대 뒤 대형 스크린에는 오늘 경연의 결과가 크게 떠 있었다.

[ 승리 : 홍대 팀 ]

이번 경연의 결과가 나타난 라이브 방송 화면이 떠 있고 방 안에는 낮은 한숨이 흘러나왔다.

공연을 시작부터 끝까지 지켜보던 한 사람이 어두운 방에서 환한 화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원래 게임이랑 완전히 달라졌잖아. 특히 저 남자.’

그 사람은 화면 속 성현을 보며 흥미로운 듯 웃었다.

홍대 측 대표가 천소울이 아닌 것부터 이상했는데 그 대표로 나온 이성현이란 남자는 프로듀서로서 상당한 실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 덕에 시청자들로부터 많은 관심과 기대를 받고 있었다.

‘스폰서들 반응도 뜨거울 것 같은데.’

남자는 턱을 쓰다듬으며 생각에 빠졌다.

홍대팀은 무시무시한 기세로 치고 나가고 있었다.

최대 전력인 천소울이 아직 무대에 오르지 않은 상황인데도 말이다.

3라운드 2회차 경연들에서 천소울마저 등장한다면, 홍대팀에게 쏟아지는 기대와 관심은 더 커질 것이 분명했다.

그때 관객들의 환호가 계속되던 라이브 방송 화면이 꺼졌다.

[ 라이브 방송이 종료되었습니다. ]

남자는 들고 있던 휴대폰을 내려놓고 무언가 생각에 잠겼다.

‘이성현이라….’

남자는 다시 휴대폰을 집어 들고는 어딘가로 메시지를 보냈다.

- 만나봐야 할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연락주세요.

***

잠실과의 경연이 있은 지 이틀 후인 월요일.

본선 3라운드 ‘리빙 레전드-불후의 가수를 찾아서’ 3라운드 1차 경연에서 ‘을지로’와 ‘잠실’을 누르고 이긴 홍대팀은 3라운드 2차 경연을 앞두고 아지트에 전부 소집됐다.

이틀 동안 푹 쉬고 온 멤버들은 이 뒤에 벌어질 경연에 대한 긴장보다는 기대감에 가득 차서 조잘거리고 있었다.

이대로만 쭉쭉 치고 올라간다면 두려울 것이 없어 보였다.

“다음 라운드는 요하랑 선아랑 해보는 게 어때?”

“네? 김요하랑요? 완전 싫어요.”

“나도 싫거든요?”

조은별이 다음 3라운드 2차 경연 무대를 생각하며 요하와 주선아에게 말하자 둘은 서로 싫다며 단박에 거절했다.

조은별은 생각보다 격한 반응에 당황하는데 서자명과 임하나가 끼어들었다.

“왜? 둘이 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은데. 음색도 잘 어울리고. 비주얼은 말할 것도 없고.”

서자명은 벌써부터 둘이 서는 무대를 상상해봤는지 무대 연출을 어떻게 하면 둘의 비주얼이 더 살 수 있을지 궁리하는 눈치였다.

임하나는 다들 그렇게 모르냐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요하 괜히 부끄러워서 저러는 거예요. 속으론 좋으면서.”

임하나의 말에 요하는 발끈하며 바로 쏘아붙였다.

“누나 제가 누나 서자명 형 좋아한다 그러면 기분 어때요?”

“요하야, 다시 말해볼래?”

임하나가 그 말이 끝나자마자 요하에게 살벌하게 웃으며 묻자 요하는 얼른 성현의 뒤로 숨었다.

팀원들은 다음 경연 중임에도 여유를 가지며 서로 장난을 주고받고 있었다.

이미 여러 번 경연에 오르고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자신감이 생겼는지 긴장감 없는 모습을 성현이 재밌게 지켜보는데 릴리와 주영준만 일행들 사이에 끼지 못하고 멀찍이 떨어져 있었다.

두 사람 다 잘 섞이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어찌 됐든 두 사람이 참가자로 있었던 잠실 측이 탈락했고, 두 사람만이 구제된 상황에 어쩔 수 없는 듯했다.

‘당분간은 내가 따로 챙겨줘야지.’

성현은 두 사람 사이에도 별다른 대화 없이 서먹하게 있는 것을 보고 생각했다.

두 사람은 성현을 제외하곤 홍대 측 참가자들과 친분이 없었다.

결국 성현 자신이 먼저 나서려는데 그때 서지현이 두 사람에게 다가갔다.

“정신없죠? 지내다 보면 익숙해져요.”

“여긴 팀 분위기가 상당히 좋네요. 다들 원래 알던 사인가 봐요?”

서지현이 붙임성 있게 먼저 말을 건네자 주영준이 옅게 웃음을 지은 채로 동료들을 바라보며 물었다.

잠실팀에서는 상상도 못했을 분위기였다.

김태구가 독재자처럼 모든 참가자들을 관리하려 들었고 그 체제 아래에서 성적이 나쁘지 않았기 때문에 누구하나 나서서 반기를 들 생각도 없었다.

서바이벌 오디션에서 그 정도의 압박감과 간섭은 필요하다고 여기는 사람들마저 있을 정도였다.

그런데 홍대팀을 보자면 그런 건 없어 보였다.

결국 모두가 경쟁자임에도 서로서로 정말 동료처럼 여기며 지내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그러다 보니 주영준처럼 처음부터 알던 사이가 아니었냐는 의문이 생기게 된 것이었다.

“그건 아니고 다들 예선 때부터 같이 음악 하다 보니까 친해졌어요. 보기엔 장난만 치는 것 같아도 다들 배울 점도 많고 실력 있는 분들이에요.”

서지현은 주영준의 말에 동료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릴리와 주영준 또한 저번 무대를 통해 그들의 실력을 봤었기 때문에 고개를 끄덕이며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서지현씨가 배울 점이 있다는 거면 정말 잘하시는 분들인가 봐요.”

릴리는 저번 서지현의 무대를 통해 받았던 감동이 있기에 그녀를 높이 평가하며 말했다.

그 말에 서지현은 대번에 고개를 저었다.

“각자 잘하는 게 다르니까요. 서로 배워가는 거죠. 제가 릴리씨한테 배울 게 많듯이 릴리씨도 저한테 배울 게 있겠죠?”

위아래를 만들기보다는 서로 상호작용을 해서 더 나은 무대를 만들자는 서지현의 말에 릴리는 생각이 많아졌는지 대답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서지현씨답네.’

성현은 그런 서지현을 보며 역시 그녀가 기본적으로 사람을 대할 때 상냥하고 친절하지만 마냥 겸손한 자세를 보이는 건 아니란 걸 다시 한번 알 수 있었다.

그녀의 겸손함 속엔 단단함과 자신감이 자리하고 있었는데 이를 통해 상대방이 묘한 든든함을 느끼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서지현과 릴리, 주영준이 대화하는 걸 본 요하도 그들에게 먼저 다가갔다.

“형. 인디팝 프로듀싱한 거 엄청 좋았어요. 저도 그런 장르 해보고 싶은데 나중에 같이 작업해도 돼요?”

“나야 좋지. 언제든 환영.”

주영준의 말에 요하는 뛸 듯이 기뻐하며 성현을 한번 쳐다봤다.

성현 역시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주자 환하게 웃으며 주영준에게 이것저것 물어보기 시작했다.

김요하는 오디션 내 어린 축에 속하는 참가자였고 나이가 더 많은 형, 누나들이 불편하고 어색할 수 있지만, 친근하게 먼저 잘 다가갔다.

또한, 오디션이 진행될수록 음악을 배움에 있어 흥미가 점차 늘어나고 있어서 이젠 성현이 말하지 않아도 먼저 여러 장르들을 배워 나가려 했다.

그렇기에 형, 누나들에게 먼저 친근하게 다가가 음악적으로 알려달라고 하는 것이 많았다.

요하의 모습은 홍대팀에 합류한 사람들이 경계심을 푸는 데 상당히 도움이 되었다.

지금 요하가 자신감을 가지고 낯선 이들에게 다가가는 것은 예선전 때 경쟁자임에도 먼저 도움을 내밀었던 성현의 모습에 영향을 받은 것이기도 했다.

“누나는 주로 어떤 음악 하세요?”

“나? 나는 주로 커버곡 위주로......”

한참을 주영준과 떠들던 요하는 이번엔 릴리한테 질문을 하고 그렇게 대화가 몇 번 오가다 보니 어느새 어색함은 사라지고 있었다.

주영준과 릴리까지 어색함 없이 대화를 주고 받고 있는데 곧 아지트로 스탭이 들어왔다.

주최 측 등장에 대화를 나누던 성현 일행은 삽시간에 조용해지고 모두 그들의 말을 기다렸다.

“승리 축하드립니다. 바로 본선 3라운드 1차 그룹 경연 스폰서 반응 공개하겠습니다.”

스탭의 말과 동시에 커넥트 알람이 울렸고 스폰서들 알람이 하나둘 팝업됐다.

역시나 성현에게 많은 관심이 쏟아졌다.

성현은 쉴새없이 울리는 알림에 커넥트 앱을 확인했다.

[FTT 엔터테인먼트 – 이일호 실장: 서지현 참가자의 감정선이 이전보다 세밀해졌던데 이성현 프로듀서의 작품인 건가요?]

[드로잉 사운드 – 김원 프로듀서: 역시 믿고 보는 이성현 프로듀서. 서지현씨 무대는 저 또한 감정이 복받쳐 올라 울었습니다. ]

[SH 레코딩 - 최성림 대표: 이성현 프로듀서 덕분에 릴리가 큰 결심을 한 것 같군요. 같은 프로듀서로서 박수 보냅니다.]

[U&I 엔터테이먼트 – 전주민 실장: 이번 무대는 프로듀서로서 이성현 참가자의 가능성을 가장 잘 보여준 무대가 아닌가 싶습니다.]

[탑 엔터테이먼트 – 조성현 실장: 이성현 참가자의 편곡 능력은 매 라운드가 진행될수록 느는 것 같습니다. 무섭도록 빠른 성장세입니다.]

역시나 서지현과 함께 한 무대와 릴리에 대한 이야기가 많았고 눈치를 보아하니 서지현 또한 꽤나 많은 스폰서 반응을 받은 것 같았다.

성현의 계획대로 서지현의 성장과 릴리의 구제 두 마리의 토끼 잡기는 성공한 듯했다.

“은별씨 입이 귀에 걸리겠어요.”

조은별의 곁에서 지켜보던 임하나 말에 조은별은 조금 쑥스럽게 웃었다.

“생각보다 반응이 괜찮네요.”

“봐봐요. 헐, TM에서도 연락 왔네.”

서지현뿐만 아니라 이번엔 조은별도 프로듀서로서 능력을 인정받았다.

성현 일행은 이번 경연으로 대체적으로 모두 다 스폰서로부터 흡족할 만한 칭찬과 후원을 받았는지 아지트는 한동안 팀원들의 기쁜 비명으로 가득 찼다.

‘다들 기분 좋아 보이네.’

2차 경연을 할 수 있단 사실에 더해 스폰서 반응까지 확인한 성현의 일행은 더욱 기분이 좋아졌다.

당연했다. 프로라고 할 수 있는 엔터테이먼트로부터 인정받은 거였으니까.

“그럼 이어서 본선 3라운드 2차 그룹 지역 공지를 하겠습니다.”

스탭은 팀원들이 알람을 모두 확인한 것 같자 공지를 계속했다.

스탭의 말과 동시에 다시 커넥트 알람 울리고 홍대팀 옆에 비어있던 두 칸에 이름이 채워졌다.

[압구정] [신촌]

“본선 3라운드 2차 경연은 다음 주 토요일에 시작되며 오늘부터 1주일간은 경연 신청을 할 수 없습니다. 지난 2주간 바쁜 일정을 보내셨으니 남은 한 주 동안은 컨디션 관리를 하면서 2차 경연을 준비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스탭의 말에도 성현의 일행은 그 누구도 아지트를 떠나지 않았다.

1주일간의 쉬는 시간.

성현의 일행은 아무도 쉴 생각이 없는지 서로를 웃으며 바라만 보고 있었다.

“연습하고 갈 사람.”

가장 먼저 조은별이 말을 꺼내자 폭발적인 반응이 뒤이었다.

모두가 당연하다는 듯이 연습을 하고 가겠다는 반응이었다.

이런 홍대팀의 반응에 놀란 것은 릴리와 주영준이었다.

잠실팀에서는 볼 수 없었던 단합력이었다.

그 뒤에서 성현은 조용히 팀원들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저요!”

“저도 껴주세요.”

“저도 낄 수 있을까요......?”

서지현과 임하나가 손을 들며 조은별 옆으로 몰려가는데, 릴리가 먼저 성현의 일행들에게 다가가 물었다.

그 말에 일행들은 모두 서로의 얼굴을 보더니 싱긋 웃었다.

“당연하죠.”

서지현은 어서 오라는 듯이 릴리에게 손을 내밀었고 릴리는 웃으며 그 손을 잡았다.

성현은 각자 모여 무슨 연습을 할지 상의하고 있는 일행들을 흐뭇하게 보는데 스탭이 성현을 불렀다.

“이성현 대표는 지금 바로 지역 대표님들을 만나러 이동하셔야 합니다.”

그 말에 성현은 연습 중인 팀원들을 두고 스탭을 따라 나갔다.

이제는 자신이 먼저 무슨 연습을 하라고 말하지 않아도 자신들의 기량을 알고 연습 메뉴를 척척 짜는 팀원들을 알고 있었다.

***

아지트를 나가자 언제나처럼 고급 세단이 대기 중이었다.

차는 성현을 태우고 빠르게 미팅 장소로 이동했다.

성현이 도착했을 땐 이미 각 압구정과 신촌, 각 지역의 대표들이 도착해 있었다.

“압구정 대표 이효선입니다. 반가워요.”

“신촌 대표 정주리예요. 잠실이랑 붙는 경연 잘 봤어요.”

“홍대 대표 이성현입니다. 잘 부탁드려요.”

압구정과 신촌 대표는 성현이 이끌고 있는 홍대팀의 경연을 보고 성현을 경계하는 눈치였다.

그도 그럴 것이 큰 화제가 됐던 홍대와 잠실과의 경연에서 홍대팀 참가자들 모두가, 거기에 상대 팀인 릴리까지 성현에게 감사 인사를 건넸다.

그 방송을 모두 본 대표들은 성현을 직접 보고서 긴장이 되는지 성현의 손을 일부러 꽉 쥐면서 성현을 관찰하기까지 했다.

각 대표들이 서로 악수를 주고 받으며 짧게 통성명을 나누는 사이 회의실로 진행요원이 들어왔다.

“그럼 각 지역 대표님들 모두 모이셨으니 최종 경연 공지 시작하겠습니다.”

성현은 다른 두 대표들과는 다르게 여유롭게 웃으며 진행요원을 쳐다봤다.

이번 2차 경연 무대가 그 어느 때보다 이기기 힘든 무대가 될 거란 사실도 모른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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