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화
서지현과 오로지 맹렬하게 연습만 한 지 어느덧 3일이 지났다.
성현과 서지현은 연습실에서 살다시피 하며 경연 준비에 매진했다.
하루에 세 끼를 먹는 것도 사치였다.
둘은 음악에 미친 사람들처럼 끝도 없이 녹음과 연습을 반복했다.
“이번 건 어땠어요?”
막 노래를 끝까지 마친 서지현이 성현에게 묻자 성현은 천천히 고개만 끄덕였다.
지난 며칠간 서지현은 성현의 작은 손짓, 표정 변화, 제스처만으로 그의 만족도를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저 반응은 결코 만족했다는 뜻이 아니었다.
서지현은 일단 쓰고 있던 헤드셋을 벗으며 성현에게 물었다.
무언가 방도가 나올 때까지는 연습을 이어나가봤자 제자리걸음일 것 같았다.
“이번에도 2프로 부족했어요?”
성현의 속내를 간파한 서지현이 이렇게 묻자 성현은 조금 미안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솔직하게 말했다.
“네. 미안해요.”
“성현씨가 미안할 게 뭐가 있어요. 제가 부족한 건데.”
성현의 말에 서지현은 물을 마시며 바닥에 풀썩 앉았다.
서지현의 노래는 객관적으로 봤을 때 이미 테크닉적으론 손볼 곳이 없을 정도로 완벽했지만, 성현은 오케이 싸인을 내리지 않고 있었다.
‘뭔가가 부족해.’
서지현도 오기가 생겨 더욱 열심히 했지만, 도무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벌써 몇 시간 째 어떤 진전도 없이 연습이 이어지고 있었다.
‘가수의 능력을 최대로 끌어올리는 게 프로듀서의 역할이니까.’
뭘까, 뭐가 부족할까.
끝도 없이 늘어나고 있는 레코딩 시간은 성현의 디렉팅이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녹음실 안에 앉아서 스트레칭을 하는 서지현을 보고 시간을 확인하는데 연습한 지도 벌써 2시간이 지났다.
서지현의 목도 쉬게 해줄 겸 잠깐 쉴 필요가 있었다.
“조금 쉬다 할까요?”
서지현은 반가운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일어났다.
“저 요 앞에 토스트집 좀 다녀올게요. 성현씨 것도 사 올까요?”
“전 괜찮습니다.”
연습실을 나가는 서지현을 뒤로 하고 성현은 다시 생각에 잠겼다.
편곡은 이미 끝난 지 오래였다.
서지현에게 맞춰 바꾼 노래도 많이 불러봤지만 완벽에 미치지 못했다.
이토록 연습에 진전이 없는 데는 분명 이유가 있는 게 분명했다.
‘뭔가 막혀있어. 그게 뭘까.’
조금 전까지 귀에 박히도록 들었던 여러 버전의 서지현의 노래를 다시 머릿속으로 복기했다.
그녀가 노래를 부를 때 제스처와 표정 그리고 목소리까지 전부 되풀이하고 또 되풀이했다.
‘노랜 객관적으로 좋아. 테크닉도 감정선도 부족할 게 없어. 문제는 딱 거기까지. 부족하지 않을 정도지 그 이상의 감동을 주지 못하고 있어.’
성현이 느끼기에 지금 노래에 표현되고 있는 서지현의 감정은 평소 서지현보다도 한계점이 분명한 것 같았다.
발랄하고 경쾌한 곡들과 리듬감이 우선시되는 곡에서 서지현의 감정이 충분히 폭발하는 것을 지켜봐왔던 성현이기에 지금 이 문제가 더욱 까다롭게 느껴졌다.
‘뭐가 문제지. 어떻게 하면 지금보다 더 풍부한 감정표출이 가능할까.’
더 이상 가만히 생각만 해서는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성현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연습실을 서성거렸다.
안달이 났다. 너무나 완벽한 노래였기에 더욱 그랬다.
그 2프로, 딱 2프로만 채우면 더 좋은 곡이 완성될 것만 같았다.
바로 목전에 그 완성이 있는데 닿을 듯 말 듯 닿을 수 없어서 더욱 조급한 마음이 드는 것도 있었다.
그때 연습실에 돌아온 서지현의 손엔 토스트 말고 키위주스가 들려 있었다.
그 모습을 보자 고민도 잠시 미뤄두고 의아함에 물었다.
“토스트 사러 갔던 거 아니에요?”
“아, 거긴 토스트보다 키위주스가 더 맛있어서 자주 사 먹거든요.”
애초에 자신의 목적은 이거였다는 듯이 키위주스 잔을 흔들며 말하는 서지현의 모습에 성현은 종종 그녀의 손에 주스가 들려 있던 것을 떠올렸다.
연습실을 서성이던 성현의 발걸음이 딱 멎었다.
“전 서지현씨에 대해 아는 게 생각보다 없었군요.”
“네?”
나지막하게 울리는 성현의 뜬금없는 말에 서지현은 잘못 들었나 싶어서 되물었다.
성현은 대꾸도 없이 연습실 문 쪽을 향했다.
서지현은 자신이 키위주스를 사온 것이 뭐가 문제 있나 싶어서 성현을 붙잡으려 했다.
“어디 가세요?”
“네. 서지현씨도 저랑 같이 어디 좀 가요.”
성현은 싱긋 웃으며 서지현의 짐을 함께 챙겨 연습실을 나갔다.
***
성현이 서지현을 끌고 간 곳은 동네에 흔히 보이는 포장마차였다.
서지현은 연습실에 있다가 키위주스를 사고 왔더니 갑자기 포장마차로 오게 된 것이 아직도 어리둥절했다.
도대체 키위주스가 왜?
“갑자기 여긴 왜 온 거예요?”
“너무 연습만 했잖아요, 우리.”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고 앉은 성현은 서지현에게 고갯짓으로 앞자리를 가리켰다.
서지현은 일단 자리에 앉으면서도 이해가 가질 않는 마음에 툭 던지듯 대답했다.
“그야 공연이 코앞이니까 그렇죠.”
당연한 것 아니냐는 서지현 말에 성현이 고개를 저었다.
“비록 오디션에서 처음 만난 사이지만 우리 지금 같이 음악하고 있잖아요. 서로에 대해 제대로 잘 알지 못하면서 제대로 된 음악을 만들 수 있을까요?”
성현의 질문에 서지현, 이내 무슨 뜻인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아무래도 성현은 술 한잔하면서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눌 모양이었다.
그런 거면 진작 말을 해주지.
아무런 말도 없이 갑자기 사람을 이곳으로 끌고 온 성현의 행동력에 어이가 없었지만 일단 여기까지 왔으니 성현에게 물었다.
“그러니까 성현씨는 제가 궁금하단 거죠?”
“네. 지현씨가 키위주스 말고 뭘 좋아하고,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고, 어떤 음악을 하고 싶은지. 전부 궁금해요.”
하나하나 꼽아서 말하는 성현의 말에 서지현은 이 상황이 낯설어서 조금 부끄러워졌다.
아닌 걸 알지만 질문 모양새를 보면 처음 소개팅하는 사람들 같지 않은가.
서지현은 민망한 마음에 이미 바닥을 드러낸 키위주스를 쪽쪽 빨아 마셨다.
“은별 언니랑 하나 언니도 다 같이 오면 더 좋았을 텐데.”
“앞으로 기회는 많으니까요.”
성현의 말과 동시에 포장마차 이모가 우동 두 그릇과 소주 한 병을 가져왔다.
쌀쌀한 날씨에 국물이 있는 우동만 한 게 없었다.
서지현은 오랜만에 보는 포장마차 음식이 반가운지 갑작스러운 상황에도 마음 놓고 웃어 보였다.
“오늘은 딱 한 병으로 끝낼 거예요. 지현씨 목 관리도 해야 하니까.”
“에이, 소주 한 병 마신다고 목 안 상해요.”
성현의 노파심 가득한 말에 서지현은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이 웃었다.
서지현이 신나서 소주병 가져가려는데 그에 앞서 성현이 더 빨리 낚아챘다.
“어떤 웬수 같은 놈이 술 먹다 성대 나가서 걱정돼서 그래요. 약속해요. 딱 한 병만 마시기로.”
“알겠어요. 딱 한 병만 마실게요.”
성현이 말하는 웬수 같은 놈이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지간히 마음고생을 한 모양이었다.
서지현은 재차 당부하는 성현의 말에 안심하라는 듯이 웃으며 손가락 하나를 들고 알았다는 사인을 수차례 주고서야 성현에게서 술을 받을 수 있었다.
서지현이 소주잔을 내밀자 성현은 웃으며 잔을 채워줬다.
“짠!”
서지현과 성현은 잔을 부딪친 다음 소주를 털어 넣었다.
쓰디쓴 소주에 서지현은 인상을 쓰더니 우동 국물을 한 숟갈 떠먹었다.
그 모습이 놀랍도록 자연스러워서 성현은 살짝 놀랐다.
“포장마차 우동 진짜 오랜만이다. 옛날엔 자주 먹었는데.”
“포장마차 좋아해요?”
“아니요. 별로 안 좋아해요.”
바로 나오는 서지현의 단호한 대답에 성현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서지현은 소주병을 들더니 성현과 자신의 잔을 다시 채우며 말했다.
“원래 짜장면집 애들이 짜장면 싫어하잖아요.”
“아, 부모님이 포장마차 하셨나 봐요?”
그렇다면 이해가 됐다.
겉으로만 봐서는 서지현이 포장마차를 즐겨 다닐 것 같지는 않았는데 왜 이렇게 자연스러운가 했더니 이런 속사성이 있었다.
성현은 이렇게 나오길 잘했다는 생각을 하며 물었다.
서지현은 한 번 더 소주를 들이켜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엄마가 포장마차 하시면서 저희 키웠어요.”
“포장마차가 여자 혼자 하기에 쉽지 않았을 텐데.”
전혀 예상치 못한 서지현의 속사정에 성현은 놀라서 말했다.
서지현은 구김 없이 밝은 성격에다 남들도 잘 챙겨주는 리더십도 갖추고 있었다.
평범한 가정에서 무난하게 자랐을 거라는 성현의 예상을 완전히 뒤엎어 버린 서지현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성현은 겉으로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라는 생각을 하며 자신의 가수에게 조금 더 관심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했다.
“3000원짜리 우동 판다고 사람이 3000원짜리로 보였는지 술 먹고 사람 무시하는 건 기본에 괴롭히는 남자들도 많았어요. 제일 끔찍한 건 사채업자들이었지만.”
서지현은 씁쓸하게 뒷말을 마치며 다시 술병을 들었다.
처음 우동을 볼 때와는 다르게 가라앉은 표정에 술이 생각나는 모양이었다.
성현은 급하게 그녀의 손을 막았다.
“천천히 마셔요.”
성현은 자신이 술병을 들고 서지현 술잔에 잔을 채워주고는 아예 술병을 자신 쪽으로 가져다 뒀다.
“어머닌 그럼 지금은 포장마차 안 하시는 거예요?”
성현의 질문에 서지현 잠시 대답이 없다가 억지로 살짝 웃었다.
“저 고등학생 때 돌아가셨어요.”
“아......”
성현은 괜한 말을 꺼냈다는 미안함에 어떤 말도 못 하는데 서지현은 괜찮다는 듯 웃어 보였다.
이런 이야기를 꺼내면서도 서지현은 웃음을 잃지 않았다.
보는 사람의 입장으로는 차라리 서지현이 울었으면 싶었다.
지금 그녀의 웃음은 너무나도 아파 보였으니까.
“괜찮아요. 저한텐 언니 있으니까.”
“언니랑 친한가 봐요?”
“네. 다섯 살 차이 나는데 저한텐 엄마 같은 사람이에요. 사실 지금 음악할 수 있는 것도 다 언니 덕분이에요. 언니가 지현이 넌 하고 싶은 거 하고 살라고 대학도 안 가고 제 뒷바라지했거든요. 그래서 전 이번 오디션 절박해요. 정말 가수로 성공해서 우리 언니 사고 싶은 거 다 사주고 싶거든요.”
몰랐던 서지현의 사정에 성현은 갑자기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동안 막연히 서지현이 오디션에 대해 절박함을 가지고 있단 건 알고 있었지만 이런 사정까지 듣고 나니 그 절박함이 더 무겁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난 정말 음악밖엔 몰랐구나. 프로듀서면서 내 가수가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고 있었고.’
전혀 알지 못했던 새로운 이야기였다. 어느새 서지현의 눈가도 촉촉해져 있었다.
게임 속 캐릭터로 대할 때는 알지 못했던 이야기였다.
직접 사람 대 사람으로 만나서 이렇게 속 깊은 이야기까지 들어보니 성현이 지금까지 미처 깨닫지 못했던 것이 있었다.
성현에게 서지현은 더 이상 게임 속 캐릭터가 아니었다.
그저 한 명의 가수, 한 명의 사람으로 느껴졌다.
‘어쩌면 내가 게임 캐릭터란 사실에 갇혀 너무 정보로만 사람을 판단하려 했던 건 아닐까. 결국 음악도 사람에 관한 건데 내 가수의 감정선은 전혀 고려하지 못하고 있었어.’
성현은 자신이 서지현을 프로듀싱하면서 가수에게 꼭 필요한 감정선의 서사를 조금 간과한 게 아닌가 생각했다.
동료라고 말하며 이들을 여기까지 끌고 왔지만 바쁜 일정을 소화하면서 이들 한 사람 한 사람과 진정한 동료가 된 것이 맞는지까지 생각이 미쳤다.
여러 가지 생각들이 교차되는 성현이 말이 없어지자 서지현이 어색한 듯 말을 꺼냈다.
“성현씨랑 이런 대화하게 될 줄은 몰랐네요.”
“그러게요. 진작할 걸. 그랬으면 지현씨랑 더 좋은 음악을 했을 거란 생각에 후회가 좀 되네요.”
성현의 간결하지만 진지한 말에 서지현은 가볍게 웃으며 우동을 먹었다.
다행이었다. 자신의 프로듀서가 이성현이란 사람이어서.
성현에게 자신의 과거 이야기를 한 것을 후회할 일은 없을 거 같았다.
“불었는데도 맛있다. 성현씨도 먹어봐요.”
서지현은 과거 기억을 끄집어냈음에도 애써 밝은척하는 것을 그만두지 않았다.
성현은 그런 서지현을 한참 바라보며 생각하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지현 씨 언니는 어떤 분이에요?”
그 말에 서지현은 젓가락을 든 채로 생각에 잠겼고 이내 우동을 먹던 그녀의 눈에서 참았던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