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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같은 프로듀서는 없었다-80화 (80/273)

80화

잠실 측 공연장 답사를 마치고 성현은 곧바로 아지트 내 연습실로 향했다.

저녁 시간이 지났지만 오늘 다녀온 답사 내용을 정리할 생각이었다.

내일 아침에 바로 팀원들에게 무대 구상을 알리고 회의에 들어가야 내일 오후부터 본격적인 연습이 가능했다.

잠실팀과의 경연을 어떻게 풀어나갈지 고민하는데 황윤재 참가자가 성현의 연습실을 찾았다.

“잠실 공연장 답사 다녀오셨다면서요?”

“네. 무대 아직 못 보셨죠? 잠시만요. 사진 보여드릴게요.”

지난 을지로 지역과의 경연은 조은별, 서자명 둘을 중심으로 기획했다면, 이번 잠실 공연을 담당하는 건 성현과 황윤재 프로듀서였다.

성현은 함께 경연을 진행할 황윤재에게 답사 내용을 설명하기 위해 무대를 찍은 사진을 보여주려 휴대폰을 꺼냈다.

사진을 찾아 무대에 대한 설명을 시작하려는데 황윤재가 갑자기 성현의 말을 끊었다.

“누가 대표님 만나보고 싶다는데 잠깐만 시간 내주면 안 될까요?”

“안될 건 없죠. 그분 지금 어디 계시는데요?”

요 며칠 뭐 마려운 개처럼 성현의 곁을 맴돌던 황윤재였다.

성현은 드디어 황윤재가 왜 저러는지 알 수 있겠다고 생각하며 휴대폰을 내려뒀다.

아마 이 일이 마무리되지 않은 지금 상태에서 황윤재를 붙들고 무대 연출이 어떻고 회의를 해봤자 제대로 된 회의가 될 것 같지도 않았다.

황윤재는 성현의 허락에 곧장 앞장서 걷고 성현이 그의 뒤를 따랐다.

황윤재가 말한 사람은 홍대 아지트 바로 앞에서 성현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성현도 이미 낯이 익은 남자였다.

어느 정도 예상했었다.

성현을 기다리고 있는 건 을지로 대표, 박성훈이었다.

그의 얼굴을 확인한 성현은 그가 왜 이곳까지 온 건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미안하지만 구원권 쓸 생각 없습니다.”

무슨 말도 꺼내기 전에 거절당한 박성훈은 순간 당황해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여기까지 찾아왔기에 그냥 돌아갈 수는 없는지 이내 성현을 붙잡고 애걸복걸하기 시작했다.

“제발 이번만 도와주시면 다음 라운드에서 은혜 꼭 갚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성현의 거절은 단호했다.

어차피 서바이벌 오디션이었다.

저들은 결국 경쟁자였고 음악적으로 함께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면 모를까, 성현으로서는 살릴 이유가 없었다.

괜히 지금 좋은 팀 분위기를 망치기도 싫었고.

“팀원으로 받아만 주시면 정말 뭐든 열심히 하겠습니다. 저딴 자식도 아직 안 떨어지고 있는데 저 이대로 떨어지면 진짜 억울합니다.”

성현은 어서 빨리 연습실로 돌아갈 궁리를 하는데 박성훈의 말에 거슬리는 지점이 있었다.

박성훈은 과연 이 말은 먹힐 거라고 확신했는지 환한 얼굴로 황윤재 프로듀서 참가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황윤재는 박성훈이 저런 말을 할 줄은 몰랐는지 당황한 얼굴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있었다.

‘저딴 자식? 원래 친분이 있는 사인가.’

성현이 생각에 잠기는데 박성훈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충격적인 말을 꺼냈다.

“진짜 떨어질 사람이 누군데. 팀 정보 유출한 배신자는 안 떨어지고 왜 내가 떨어지는 건데!”

억울한 듯 터져 나온 소리와 함께 박성훈의 손가락은 여전히 황윤재를 가리켰다.

이를 들은 성현의 표정이 싸늘하게 굳었다.

배신자라니, 그냥 듣고 넘어갈 수 있는 말은 아니었다.

“그게 무슨 말이죠?”

“저 자식이 천소울 공연 못 올라오는 거 우리한테 알려줬습니다. 그래서 빨리 경연 신청을 했던 거라구요.”

박성훈은 황윤재가 입을 채 떼기도 전에 재빠르게 말했다.

새로운 작전인 듯했다.

성현에게 사실대로 말해서 구원권이라도 얻어볼 심산으로 박성훈은 모든 걸 술술 털어놓았고 그의 말이 길어질수록 황윤재의 얼굴을 빨개졌다.

“황윤재씨. 이게 다 무슨 소립니까?”

“무슨 소리긴! 저 자식이 배신자란 소리지!”

성현은 황윤재에게 확인하고 싶어 물었다.

박성훈은 답답하다는 듯이 입 한번 벙긋하지 못하는 황윤재에게 삿대질을 하며 연신 배신자라는 말을 퍼부어댔다.

성현은 박성훈을 무시하고 황윤재 쪽을 응시했다.

황윤재는 식은땀을 흘리며 쉽사리 어떤 말도 꺼내지 못하고 있었다.

“황윤재씨? 뭐라 설명을 해보세요.”

성현이 재차 차분하게 채근하자 황윤재는 결심했다는 듯이 역으로 박성훈을 가리키며 말했다.

“다, 당신이 먼저 협박했잖아! 우리팀 지정 가수도 다 알고 있고 주최 측이랑 짜고 우리 팀 떨어뜨릴 거라고!”

새로운 사실이었다.

황윤재의 외침에 이건 또 무슨 소리냐는 듯 박성훈을 돌아봤다.

“우리 팀 지정 가수를 알고 있었어요?”

지정 가수를 알고 있었다.

어떻게?

황윤재의 말대로라면 천소울이 이번 경연에 등장하지 않는다는 소식을 전해듣기 전에 먼저 홍대팀의 지정 가수를 알고 있었다는 게 된다.

“그, 그게......”

이번에 당황한 것은 박성훈 쪽이었다.

성현은 가늘 게 눈을 뜨며 박성훈을 살폈다.

이거였나. 대표들끼리 모인 자리에서부터 박성훈이 거슬렸던 이유가.

하지만 어떻게 그 정보를 얻은 것인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이걸 어떤 식으로 끌어내야 하나 고민하는데 황윤재가 호소했다.

“믿어주세요. 저 자식이 우리 팀 지정 가수 말하면서 먼저 나 협박했어요. 천소울 관련된 정보만 넘기면 구원권으로 살려줄 테니까 정보만 넘기라고.”

황윤재는 정말로 억울하다는 듯 성현에게 애원하며 변명했다.

두 사람 사이에 끼게 된 성현은 황당함에 아무 말도 못 했다.

‘이 정도 규모의 오디션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게 말이 되나......’

아무리 생각해도 200억 규모의 글로벌한 오디션에서 박성훈이 주최 측과 관련되어 있다는 건 말이 안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현이 당황스러운 건 박성훈이 말한 정보가 들어맞았다는 거다.

‘지정 가수를 어떻게 안 거지? 설마...’

성현은 서로 자기를 믿어달라며 악을 쓰고 있는 두 사람 가운데서 일단 생각 정리가 필요했다.

여기서는 이 상황의 최대 의문점인 박성훈에게서 최대한 많은 정보를 얻어내는 수밖에 없었다.

“지정 가수에 대한 정보는 어디서 구했어요?”

성현의 질문에 한창 황윤재와 말다툼 중이던 박성훈이 합, 입을 다물었다.

“그게, 저도 아는 사람 통해서 건너 건너 전해 들은 거라......”

우물거리며 말을 삼키는 꼴을 보아하니 지금 박성훈은 성현에게 사실대로 말할 생각이 없는 게 확실했다.

이 이상의 정보도 얻기 요원해 보였다.

성현은 가차 없이 두 사람 모두를 버리기로 했다.

음악적으로 쓸모없는 것도 모자라서 음악 외적으로도 성현을 귀찮게 만들고 있었다.

“어찌 됐든 구원권을 쓸 생각 없습니다. 그리고 황윤재씨도 따라 들어 올 필요 없구요.”

박성훈에게 한 번 더 목을 박듯이 말한 성현은 뒤이어 황윤재를 지목하며 잘라 말했다.

성현은 그 말을 끝으로 다시 아지트로 들어갔다.

잠시 멍하게 있던 황윤재는 뒤늦게 상황 파악이 됐는지 박성훈에게 달려들었다.

아지트 앞 거리는 둘이 싸우는 소리로 시끄러워졌다.

***

한바탕 소동이 있고 난 다음 날.

홍대 아지트에 성현이 임하나와 서지현을 불렀다.

연습실 대여를 하기 전에 이번 무대에 대한 브리핑을 하려는데 다들 빈자리에 대해 궁금해했다.

조금 늦나 싶어서 문 쪽을 돌아보지만 황윤재가 들어올 기미는 없었다.

결국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임하나가 먼저 물었다.

“황윤재씨는요?”

“잠실 공연 프로듀싱은 부득이하게 저 혼자 맡게 됐습니다.”

“네? 왜요?”

분명 어제저녁까지만 해도 성현은 황윤재 참가자한테 답사 설명을 하고 가겠다고 늦게까지 아지트에 남아 있었다.

그랬던 성현이 하루아침에 황윤재가 빠졌다고 하니 팀원들 모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불미스러운 일이 좀 있었어요.”

황윤재와 그 외 가수 둘은 한 패거리로 밝혀졌다.

성현은 이들 모두를 팀에서 추방시키기 위해 본선 3라운드에 한 번도 올리지 않을 생각이었다.

성현은 짧게 설명한 다음에 그 일에 대한 자세한 얘기를 하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본 임하나와 서지현은 성현이 딱히 말하고 싶어 하지 않는 것이 느껴져 더는 자세히 묻지 않기로 하는데 연습실 문이 열리고 조은별과 서자명이 들어왔다.

“저 말고도 두 분이 도움을 줄 거니까 걱정 말고 믿고 따라오세요.”

성현은 어제저녁 서자명과 조은별에게 대략적인 이야기를 해주었다.

끝까지 이야기를 들은 둘은 흔쾌히 연습을 도와주겠다고 나섰다.

을지로팀과의 경연에서 남은 피로감은 이미 없었다.

오히려 기분 좋게 대승을 거뒀기 때문에 빨리 다음 무대를 꾸미고 싶어서 근질거리던 차였다.

“무대 컨셉이랑 편곡 방향성은 이미 다 잡아놓은 상태니까 크게 손 볼 부분은 없을 거예요.”

서자명과 조은별 모두 을지로 지역과의 경연을 준비하느라 이쪽 상황을 모르고 있었다.

성현은 짧게 곡 정보와 무대에 오를 가수에 대한 브리핑을 시작했다.

임하나와 서지현은 자신들의 무대이기 때문에 진지하게 귀를 기울였다.

“첫 번째 공연은 하나씨가 올라갈 거예요. 라라스윗의 업템포 장르의 강렬한 댄스곡을 트로피컬 하우스 리듬의 댄스곡으로 편곡할 계획이에요.”

“퍼포먼스가 상당히 중요하겠네요.”

성현의 설명에 서자명이 바로 퍼포먼스의 중요성을 짚어냈다.

트로피컬 하우스 리듬의 댄스곡이라….

서자명은 벌써부터 머릿속으로 어떤 다채로운 조명을 쓸지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네. 안무는 임하나씨가 준비하기로 했고 주선아씨 무대처럼 포인트를 어떻게 주느냐가 관건일 것 같아요.”

서자명은 성현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였다.

저번에 잠실 무대에 올라갔었던 때처럼 무대 연출 구상을 하느라 푹 빠진 표정이었다.

“그럼 지현이가 J.KIM 노래를 맡는 건가요?”

조은별은 자연히 남게 된 리빙 레전드를 언급하며 물었다.

“네. 두 번째 공연에선 J.KIM의 몽환적인 분위기의 어반 팝 곡을 피아노와 기타 사운드를 이용해 서지현씨 특유의 맑은 분위기로 편곡할 생각이에요.”

맑은 분위기의 편곡.

거기까지 들은 조은별 역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조은별은 성현이 패자부활전과 시크릿 스테이지를 거칠 동안 서지현 곁에 내내 붙어서 그녀의 성장을 지켜본 사람이었다.

서지현의 장기가 무엇인지, 지금 서지현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게 어떤 게 있는지 성현보다도 잘 알고 있을 사람이었다.

성현 역시 이걸 알기에 이번에 조은별에 서지현에게 어떤 디렉팅을 요구하는지 눈여겨볼 생각이었다.

“원곡이 워낙 가사가 직설적이라 맑은 분위기로 편곡하면 지현이 비주얼도 있겠다 역으로 더 사람들의 감정을 건들 수 있을 것 같아요.”

조은별은 성현의 편곡 방향에 대해 동의하며 말했다.

그러면서 서지현이 무대에 올라 어떤 식으로 관객의 심금을 울리게 할지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하나씨 아까도 말했지만 안무 포인트도 중요하지만 보컬로 트로피컬한 통통 튀는 곡의 맛을 잘 살리는 것도 중요해요.”

“네! 지현아 언니 도와줄 거지?”

임하나는 성현의 말을 듣고 서지현에게 거의 매달리다시피 말했다.

서지현은 알겠다며 임하나를 진정시키는데, 그 모습을 지켜보던 성현은 반대로 서지현에게 말했다.

“지현씨도 평소처럼 가만히 서서 노래하는 게 아니라 살짝씩 동작을 넣어주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답사갔을 때 봤다시피 무대 굉장히 넓어요. 혼자서 무대 꽉 채우려면 지금보다 더 역동적인 모습 보여줘야 해요.”

“네! 하나 언니 저 도와줄 거죠?”

“오케이. 따라와.”

서지현은 이번에 임하나에게 물었다.

임하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서지현을 데리고 곧장 안무 연습에 돌입했다.

그렇게 이성현의 주도로 편곡 및 무대 구성의 밑그림이 그려졌다.

성현은 어제 여기저기 연락하고 계획을 짜느라 마무리하지 못한 곡 작업을 위해 스튜디오로 갈 준비를 했다.

그런데 그때 리빙 레전드 곡 100번 듣기 과제를 위해 연습실을 어슬렁거리다가 편의점에 다녀온 요하가 성현을 붙잡고 말했다.

“형! 밖에 누가 찾아왔어요.”

‘또 찾아온 건가.’

성현은 어젯밤 기억을 떠올리며 요하에게 물었다.

이제야 좀 정리하고 스튜디오로 갈 수 있나 싶었는데 아직 시달릴 일이 더 남은 모양이었다.

“누구라고 말 안 해?”

“그냥 잠실측 참가자라고만 했어요. 릴리에 대한 얘길 나눴던 사람이라고 하면 알 거라고 하던데요?”

‘잠실, 거기다 릴리?’

성현은 예상 밖의 인물의 호출에 다급하게 아지트 밖으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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