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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같은 프로듀서는 없었다-79화 (79/273)

79화

성현 일행이 잠실 측 홈 공연장 앞에 도착하니 외부인 통제를 위해 진행요원이 입구 앞을 지키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임하나, 주선아, 서자명은 움찔했지만 성현은 아무렇지 않게 그들에게 다가갔다.

“연락드렸던 홍대 대표 이성현입니다.”

서로의 공연장은 원래 미리 요청만 하면 볼 수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서로의 공연장에서 번갈아 가며 무대를 꾸며야 하는 특성상 홈이 아닌 팀도 공연 전에 무대를 확인할 수 있어야 했다.

진행요원은 성현 일행의 신분을 차례대로 확인한 후 곧장 공연장으로 들여 보내줬다.

“이쪽으로.”

안에서 대기하고 있던 진행요원은 성현과 일행을 공연장 내부로 안내했다.

그러자 마침 무대에서 연습 중인 잠실 측 가수 참가자들의 모습이 보였다.

공연장에 성현과 일행이 들어선 것을 알아차린 몇몇 참가자가 연습을 멈췄다.

이를 듣고 무대 밑 프로듀서 참가자로 보이는 사람이 잠시 모든 연습을 중단시켰다.

“점심 먹고 다시 진행할게요. 1시까지 모이세요.”

프로듀서의 말에 무대에 있던 가수 참가자들 모두 무대 밑으로 내려가 뿔뿔이 흩어졌다.

경쟁자에게 자신들의 카드를 내보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성현에게는 이미 익숙한 얼굴의 한 남자가 성현에게 다가왔다.

방금까지 연습을 총괄하던 사람은 지역 대표들끼리 만났을 때 잠시 마주쳤던 잠실 대표 김태구였다.

김태구는 성현에게 사람 좋게 웃어 보이며 인사를 했고 일행들과 일일이 악수까지 나누었다.

“을지로팀이랑 한 경연은 잘 봤습니다. 어린 친구들이 실력이 상당하던데요?”

그렇게 말하며 김태구의 시선의 성현의 뒤를 향했다.

이번 홍대 무대에서 모습을 드러낸 어린 친구들을 찾는 것 같았지만 오늘 요하와 주선아는 함께 오지 않았다.

아쉬워하는 듯한 김태구의 시선을 쫓으며 성현이 인사치레를 했다.

“잠실 팀에도 실력자가 많다고 들었어요. 버스킹 조회수 300만이 넘는 참가자도 있다던데.”

그러면서 성현은 콕 집어서 릴리를 염두에 두고 말했다.

릴리의 언급에 김태구가 멋쩍게 웃으며 화제를 돌렸다.

그러고 보니 아까 무대 위에서 릴리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이번 경연에는 참여시키지 않으려나?

지금 홍대팀은 을지로팀을 이기고 올라왔다.

잠실팀으로서는 히든 카드를 아낄 여유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닌가?

성현이 잠실팀의 전략을 분석해보려는 찰나 김태구가 말을 꺼냈다.

“아직 식사 전이면 점심같이 할까요?”

김태구가 붙임성 좋게 건네는 말에 성현은 고개를 저었다.

“괜찮습니다. 드시고 오세요. 저희끼리 구경해도 됩니다.”

“하긴 제가 없는 게 더 편하겠죠? 그럼 편하게 둘러보세요.”

김태구는 집주인 같은 대사를 끝으로 성현 일행들과 하나하나 눈을 맞추며 인사를 한 뒤 자리를 비켜줬다.

김태구가 사라지자 임하나가 신기하다는 듯이 김태구가 나간 문을 쳐다보며 말했다.

“사람 좋네요. 성격도 시원시원하고.”

“그런가요.”

“왜요? 성현씨 보기엔 별로예요?”

“전 잘 모르겠어서.”

성현은 김태구의 웃음이 어딘가 모르게 찝찝했다.

애초에 원래 게임 시나리오대로라면 릴리가 대표가 돼야 했는데 김태구가 된 것도 수상했고.

“무대가 홍대 홈 공연장보다 큰 거 같은데.”

셋이 김태구에 대해 뭐라고 말하든지 관심이 없는 서자명은 어느새 무대에 정신이 팔려 무대 위로 올라가 있었다.

서자명은 천천히 일정한 보폭으로 무대 위로 가로질러보며 천장에 달린 조명들을 살폈다.

“이거 자칫하면 무대 비어 보일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무대 구성에 더 신경을 써야겠어요.”

“무대 장치나 효과를 더 활용하면 괜찮을까요?”

성현은 필요하다면 커넥트 앱 상점에서 무대 장치를 구입할 생각에 물었다.

성현의 말에 조명들을 이리저리 체크하던 서자명이 고개를 저었다.

“생각 좀 해보고요. 아예 무대를 비워서 가수 자체에 집중하게 하는 방법도 있으니까요.”

그 어느 때보다 신이 나서 말하는 서자명은 이리저리 무대를 누볐다.

무대를 한 번 쭉 훑어보며 조명 위치와 무대 장치들을 확인한 이후 무대 가운데 멀뚱히 서있는 서자명에게 성현이 외쳤다.

“뭐 사진이라도 찍어놔야 되는 거 아니에요?”

“이미 머릿속에 다 있어서 괜찮습니다.”

뭐 그런 걸 하냐는 듯이 서자명은 한 손을 휘휘 내저었다.

피식, 성현은 그런 서자명을 보고 그래 저런 놈이었지 하고 납득했다.

서자명은 한번 본 것만으로 이미 머릿속으로 몽땅 들어온 조명 위치와 무대 장치들을 떠올리며 빠르게 무대 연출 계획을 세웠다.

성현은 서자명과는 다르게 무대를 통째로 암기할 수 없을 자신과 황윤재 프로듀서를 위해 휴대폰을 꺼내 무대를 구석구석 찍었다.

마찬가지로 공연장을 둘러보는 서지현과 임하나는 무대에 올라가 객석을 바라봤다.

“지현아, 여기 사람 천 명은 들어가겠다.”

“진짜 좋은 무대 보여줘서 사람들 전부 감동 받고 돌아갔으면 좋겠어요.”

이전에 있었던 을지로 측과의 경연에서는 무대에 서지 못한 두 사람은 무대에 올라가 객석을 바라보니 새삼 가슴이 벅차올랐다.

자신들도 어서 방청객들이 가득 들어찬 무대 위에서 공연하고 싶었다.

공연장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직접 무대와 객석을 보고 있자니 지금까지 꾸몄던 무대보다 이번에 더 멋지고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는 기대감이 샘솟았다.

“다 봤으면 이만 갈까요.”

“네. 아, 가기 전에 대표한테 인사드리고 가야 하지 않을까요?”

임하나 말에 성현은 홍대로 돌아가기 전 김태구 대표에게 인사를 하기 위해 그를 찾았다.

그런데 공연장 여기저기 찾아봐도 그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시간을 확인해 보니 이미 1시간이 좀 지난 상태였다.

‘아직도 식사 중인가.’

의아한 성현은 객석에 앉아 있는 다른 남성 참가자 둘과 눈이 마주쳤다.

성현은 지체하지 않고 곧장 그들에게 다가갔다.

“김태구 대표님 어디 계시죠?”

갑작스러운 성현의 물음에 그들은 조금 경계심을 보이며 되물었다.

“대표님은 왜요?”

“돌아가기 전에 인사는 드려야 할 것 같아서요.”

“곧 오실 거 같으니까 기다리세요.”

남자의 말에 성현과 일행들은 객석에 앉으려는데 저쪽을 살피던 서지현이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어!”

“왜?”

“아까 영상에서 본 참가자예요.”

서지현의 말에 임하나의 눈이 커져서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그 사람을 찾았다.

서지현이 가리키는 곳을 보니 그곳엔 릴리가 있었다.

바로 못 찾을 만도 했다.

눈에 띄지 않게 공연장 입장 계단 한켠에 앉아 있으니 조명도 들어오지 않는 실내에서 찾기 어려웠다.

저 모습을 보고 한눈에 릴리인 것을 알아본 서지현이 신기할 정도였다.

서지현은 눈을 빛내며 릴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원래 아는 사이인가 했는데 가까이 가지는 못하고 지켜보는 것으로 보아 아마 팬이었던 모양이었다.

‘만나고 싶었다는 사람이 릴리였나?’

어찌됐든 성현은 잠실에 온 또 다른 목적을 달성했다.

잠실의 주요 전력인 릴리를 살피는데 무언가 이상했다.

릴리는 고개를 푹 숙이고 계단에 혼자 앉아 있었는데 표정이 꽤 어두워 보였다.

‘내가 아는 릴리가 맞나?’

현실에서 본 릴리는 성현이 생각했던 릴리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였다.

그 모습에 자연스럽게 게임 속 릴리의 모습이 떠올리며 비교할 정도로.

성현은 게임 속 천소울을 통해 릴리와 함께 무대를 준비한 적이 있었다.

그 경험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할 만큼 인상 깊었던 무대 중 하나였다.

‘분명 그 누구보다 음악을 즐기던 참가자였는데 어째서 지금은......’

비록 게임이었고 릴리가 게임 속 주인공도 아니었지만, 이성현에게는 그때 릴리의 모습이 강하게 뇌리에 박혀 있었다.

그만큼 릴리는 게임 내 등장할 때마다 특유의 밝고 긍정적인 모습을 보여줬고 진심으로 무대를 즐기는 참가자였다.

경쟁자로 릴리를 만났을 때도 그녀의 밝은 분위기에 절로 미소가 지어질 정도였으니까.

릴리의 긍정성과 밝은 에너지는 천소울의 컨디션까지 절로 올릴 정도였는데 지금 릴리의 모습은 본인 스스로조차 즐기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생각해보니 버스킹 공연 때도 컨디션이 좋아 보이진 않았는데.’

성현은 아까 전 서지현이 휴대폰으로 보여줬던 릴리의 버스킹 공연을 떠올렸다.

일반인들이 찍어서 올린 영상인 만큼 심하게 흔들리고 화질도 좋지 않았다.

릴리의 얼굴이 제대로 잡힌 장면이 없었음에도 흐릿한 화질 사이로 릴리의 얼굴 표정은 좋지 않았다.

당장에 들리는 릴리의 음색에 심취해 심각하게 생각하진 않았지만 분명 영상 속 릴리는 노래를 완벽하게 부르긴 했어도 게임 속에서처럼 무대 자체를 즐기진 못하고 있었다.

‘스스로 원해서가 아니라 이기기 위한 무대를 한 것 같았어.’

물론 확실한 건 아니었다.

성현 혼자만의 착각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성현의 직감은 릴리가 자신의 음악을 즐기지 못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었다.

‘대화를 나눠보고 싶지만 당장은 불가능하겠지.’

이럴 때면 게임 속이 아니라는 것이 답답했다.

현실에서는 성현에게 제약이 너무 많았다.

성현은 당장에라도 혼자 있는 릴리에게 말을 걸어보고 싶었지만 성현의 일행 사이에서 나온 릴리라는 단어를 들은 잠실 측 남성 참가자들이 성현의 일행을 대놓고 감시하는 바람에 불가능했다.

“혹시 릴리한테 무슨 문제라도 있는 건가요?”

성현은 직접적으로 릴리에게 말을 걸 수 없어지자 차선책으로 객석에 앉아 있는 두 남성에게 물었다.

성현의 질문에 이쪽을 유심히 살피고 있던 두 남성은 움찔 몸을 굳혔다.

“갑자기 그건 왜 묻는 건데요?”

남자의 말에 성현은 당연한 거 아니냐는 듯 대답했다.

“행복해 보이지 않아서요.”

“행복?”

행복이란 말에 남성 참가자 하나가 기가 차다는 듯 되물었다.

그러고 비아냥거리며 성현에게 말했다.

“우리 홍대팀 대표님께서 감성파이시구나. 아니, 서바이벌 오디션 중에 행복은 갑자기 왜 찾습니까?”

“오디션이라도 음악하고 있는 거잖아요. 그럼 행복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시키는 대로만 하면 되지 무슨 거창하게 행복 타령인지.”

성현의 말에 남자가 혼잣말 비슷하게 중얼거리자 성현은 자신도 모르게 인상을 썼다.

‘시키는 대로?’

성현은 방금 남자가 했던 말이 거슬려 한마디 하려는 순간, 그때까지 조용히 있던 다른 남자 참가자가 성현을 향해 물었다.

“왜요? 왜 음악 할 땐 행복해야 하는 건데요?”

남자의 물음에 성현은 그게 무슨 질문이냐는 듯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반박했다.

“그게 질문이 되나? 안 행복하면 음악을 왜 하지? 다들 좋아서 음악 하는 거 아니에요?”

성현의 당연한 대꾸에 남자의 말이 없어졌다.

성현은 마치 숨을 왜 쉬냐는 질문에 대답하듯 너무나 당연하게 말했기 때문에.

그때 공연장에 김태구가 들어왔다.

김태구는 공연장에 들어서다 성현의 일행을 발견하고 곧바로 이쪽으로 왔다.

“아직 계셨네요. 구경은 잘하셨고?”

“네. 이제 가보려구요.”

성현은 김태구의 얼굴을 보자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서지현은 릴리를 힐끔거리며 마지못해 자리에서 일어섰다. 임하나와 서자명은 얼른 돌아가서 구상할 생각에 재빠르게 입구로 향했다.

“그래요. 그럼 파이팅하시고 경연 날 봅시다.”

김태구는 끝까지 호의적인 태도를 잃지 않았지만 가면을 쓴 사람처럼 연극적인 그의 어조가 성현의 심기를 건드렸다.

성현 일행은 김태구와 인사를 나누고 공연장을 빠져나가는데, 성현은 뭔가 모를 찝찝함에 뒤를 돌아봤다.

그러자 보이는 건 김태구가 릴리에게 다가가는 장면이었다.

릴리의 표정은 저러다 어두운 계단참에 녹아들 것 마냥 더욱 어두워져 있었다.

‘분명 뭔가 있는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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