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화
“홍대팀 승리 축하드립니다.”
“진짜 멋있었어요!”
백스테이지에서 진행요원들까지 홍대팀의 승리를 확인해주면서 경연은 끝이 났다.
오늘 무대에 오르지 않은 홍대팀 참가자들 모두 백스테이지에서 함께 결과를 지켜봤다.
결과는 깔끔하고 통쾌한 2연승.
짧은 준비 기간에 마음을 졸였던 홍대팀 참가자들은 축제 분위기였다.
“사실 준비 기간이 짧아서 압박감이 상당했을 텐데 실수 없이 잘 마무리 지어줘서 다들 고마워요.”
성현의 말에 이번 무대를 준비했던 참가자들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아직 경연이 많이 남았지만 큰 부담은 덜어낸 기분이었다.
“경연이란 생각 안 하고 하니까 진짜 재밌었어요. 저 다음번 무대도 락으로 할래요!”
요하는 더 비기너 맴버들에 이어 이번에도 밴드와 함께 합을 맞추며 공연을 한 것이 좋았는지 이젠 스스로가 락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성현은 적극적으로 자신이 하고 싶은 무대를 이야기하는 요하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물론 요하 너한테 락이 잘 어울리는 건 사실이지만 앞으로 무대는 많으니까 락 말고도 다양한 장르를 경험하는 것도 나쁘진 않아.”
성현은 요하에게 락이 가장 잘 어울릴지라도 아직 음악적 경험이 풍부하지 못한 요하가 지금보다 더 다양하고 폭넓은 음악을 접해보길 원했다.
락이라는 장르 하나에 갇히기에 요하의 성장 가능성이 아깝기도 했다.
요하는 성현의 말에 잠시 아쉬워하다가 처음 자신에게 락을 하라고 말해준 사람이 성현이라는 것을 깨닫고 고개를 끄덕였다.
성현의 말을 들어서 나쁠 건 하나도 없다는 굳은 믿음이 느껴지는 표정이었다.
성현과 동료들 앞으로 있을 무대에 대한 각자 생각에 잠기는데 성현의 커넥트 앱으로 알람이 울렸다.
“홍대측 대표 이성현 참가자에게 을지로 지역 참가자 명단이 도착했을 겁니다.”
진행요원의 말에 성현, 커넥트 앱을 켜보니 그곳엔 을지로 참가자 이름과 포지션이 적혀 있었다.
“승리한 팀에겐 3장의 구원권이 주어지며, 지금 보내준 을지로 참가자 명단에서 세 명을 살릴 수 있습니다. 구원권은 24시간 안에 사용하지 않으면 소멸되니 이점 유의하세요.”
진행요원의 말에 성현의 주위로 몰려든 일행들이 을지로 참가자들 명단을 확인했다.
“굳이 여기서 누굴 살릴 필요 있나.”
서자명은 저번 을지로팀 무대를 떠올리며 중얼거렸다.
요하와 주선아가 굉장한 실력자이기도 했지만 별로 인상에 남는 실력자가 없었다.
가차 없는 서자명의 말에 조은별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래도 괜찮은 참가자가 있으면 데려오는 게 좋지 않을까요? 2차 경연까지 치러야 하는 상황에서 사람이 많을수록 유리하긴 하잖아요.”
“음, 전 잘 모르겠어요. 일단은 반반. 뭐, 성현씨가 알아서 하겠죠.”
함께하는 참가자가 많아지면 그만큼 준비할 수 있는 무대의 폭도 넓어진다.
조은별은 이 점을 염두에 두고 말한 것이었다.
임하나는 나열된 참가자 이름을 훑어보다가 곧 머리 아프다는 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임하나의 마지막 말에 팀원들의 시선이 성현에게 향했다.
“24시간 안엔 사용을 해야 하니까 그전까지 고민을 해봐야겠네요.”
성현은 이 말 한마디로 팀원들의 고민을 일축해버렸다.
그러자 다들 대표인 성현이 무언가 생각이 있겠거니 하면서 다음 무대로 화제를 옮겼다.
“근데 저랑 하나 언니는 언제 무대 설 수 있는 거예요? 저도 빨리 무대 서고싶은데......”
서지현은 요하와 주선아가 성공적으로 무대를 마치고 내려온 걸 보고 몸이 근질거리는지 상기된 표정으로 물었다.
아직도 인터넷 인기검색어에는 요하와 주선아 관련 검색어가 남아 있었고, 커뮤니티에는 두 사람의 향후 활동에 대해 말이 많았다.
더 넥스트 서바이벌이 처음으로 대중들에게 공개된 무대였기에 여기저기서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었다.
요하와 주선아의 화제성을 증명하는 것처럼 포털 사이트에는 벌써 두 사람의 프로필이 화제인물로 등록되어 있기도 했다.
기사 역시 홍대와 을지로의 대결보다는 요하와 주선아의 무대 위주로 쏟아졌다.
이런 상황이니 다른 참가자들이 몸이 달만 했다.
“그렇게 서두를 필요 없을 거 같아요. 을지로 팀이 떨어졌으니 다음 경연은 자연스럽게 잠실과 하게 될 텐데, 홈 공연장이 홍대가 아니라 잠실인 만큼 우리는 지금보다 더 무대를 신경 써서 준비하면 됩니다.”
잠실 팀은 아직까지 한 번도 경연을 치르지 않았다.
거기다가 이번에 성현의 팀이 잠실 홈팀에서 경연을 하는 대진표가 되었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잠실팀이 더 유리하다고 할 수 있었다.
성현이 을지로팀과의 경연을 준비하는 사이 잠실 팀은 그 시간 동안 홈공연에만 신경을 쓸 수 있었으니까.
다행인 건 을지로 팀이 생각보다 공연을 빨리 걸어온 탓에 경연을 끝내고도 시간적인 여유가 있다는 점이었다.
‘일단 잠실 공연장을 한 번 둘러보고 와야겠다.’
무대를 직접 봐야지만 무대를 구성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기에 당장 공연장을 확인하러 가기로 했다.
잠실에 가야 할 이유는 하나 더 있었다.
잠실이라면 그녀가 있는 곳이기도 했다.
‘이번엔 만날 수 있으려나.’
***
을지로 지역과의 경연이 끝나고 참가자들 모두가 돌아갔다.
회식을 하자는 임하나와 서자명의 요청은 아직 남은 무대가 많다는 이유로 기각됐다.
성현은 회식이 언급되자 은근히 동조하는 눈치인 참가자들에게 잠실 지역의 리빙 레전드 곡을 100번은 듣고 오라는 과제를 내주고 쫓아냈다.
아지트 홀에 혼자 남아 장비를 정리하던 성현은 천소울에게 문자를 보냈다.
너튜브 라이브로 화제가 되고 인기 검색어 순위에도 오르내렸지만 천소울이 아무런 반응이 없었기에 혹시나 싶었다.
-성현: 경연 봤어요?
문자를 보 낸지 얼마 되지 않아 성현의 휴대폰이 짧게 울렸다.
-천소울: 네.
성현은 천소울의 짧은 답장이 너무나 그와 잘 어울려 피식 웃었다.
그보다는 당연히 무시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답이 일찍 왔다.
성현은 예상치 못한 천소울의 반응에 혼자 피식피식 웃고 있는데 갑자기 프로듀서 참가자 황윤재가 다가왔다.
“제가 좀 도와드릴게요.”
“아직 안 돌아가셨어요?”
황윤재는 성현이 들고 있는 장비를 자기가 뺏어 들며 친근하게 웃어 보였다.
성현과 둘이서 말없이 장비 정리를 하는데 황윤재가 성현의 눈치를 보다 슬쩍 운을 띄웠다.
“구원권, 쓰실 건가요?”
“고민 중이에요. 아마 안 쓸 것 같긴 하지만.”
성현의 말에 황윤재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뭔가 아쉽다는 듯 묻는다.
“왜요? 거기도 쓸만한 참가자 많았던 거 같은데.”
“쓸만한 참가자는 많겠지만 탐나는 참가자는 없고, 이미 다음 공연 구상까지 끝낸 상태에서 굳이 인원을 더 늘릴 필요가 있을까 싶어서요.”
단호한 말에 황윤재는 다시 묵묵히 장비를 옮기다가 다시 입을 뗀다.
성현은 계속 가만히 있던 황윤재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인지 알고 싶어 황윤재의 다음 말에 집중했다.
“을지로 대표는 어떨까요? 그 사람 실력도 괜찮고 사람들이 잘 따르던데.”
그 말에 성현은 그를 잠시 빤히 보다가 이내 다시 장비를 옮겼다.
황윤재는 성현의 반응에 글렀다고 생각하며 등을 돌리는데 뒤에서 성현의 말이 떨어졌다.
“생각해볼게요.”
***
다음 날, 성현은 아침 일찍부터 잠실 공연장을 확인하러 잠실로 향하는 길이었다.
그의 옆엔 서지현과 임하나 그리고 서자명까지 함께였다.
성현은 생각지도 않게 멤버를 주렁주렁 달고 가고 있었다.
“저 혼자 가도 된다니까.”
“귀찮게 안 할게요. 진짜 만나보고 싶은 사람이 있어서 그래요.”
서지현은 방금 성현을 마주쳤을 때부터 미리 말도 없이 잠실 공연장에 따라가는 것 같아서 말을 보탰다.
“저도 연습실에만 있는 거 지겨워서 지현이 따라 바람 쐬러 가는 거니까 신경 안 쓰셔도 돼요.”
“저도 무대 연출 전에 공연장 확인하러 가는 거니까 신경 안 쓰셔도 됩니다. …뭐, 신경도 안 썼겠지만.”
임하나와 서자명까지 나서서 신경 쓰지 말라고 입을 모았다.
서자명이 뒤에 작게 덧붙이는 말을 무시하더라도 신경이 쓰였지만, 상관없었다.
어차피 이들 모두 잠실 공연장에 설 참가자들이니까.
잠실로 가는 지하철에서 성현은 내내 생각에 잠겼다.
‘을지로에서 경연을 빨리 걸었던 건 단순히 우연이었을까.’
이겨서 다행이긴 했지만 3일이란 시간 동안 을지로 측의 준비도 만만치 않았다.
우리처럼 그쪽도 정말 3일만 준비한 걸까?
만일, 이미 우리와 경연할 걸 예상하고 그 전부터 준비해왔던 거라면?
성현은 이런저런 가설을 세워봤지만 딱 정답이라고 여겨지는 것이 없었기에 여전히 찝찝함이 남았다.
“어, 3라운드 경연 영상 전부 업로드됐어요!”
휴대폰으로 너튜브를 확인하던 서지현이 팀원들에게 말했다.
너튜브 라이브 시스템으로 진행되는 ‘더 넥스트 슈퍼스타’의 본선 3라운드 미션.
주최 측은 라이브로 대결 공연 영상을 보지 못했더라도 다시 볼 수 있도록 영상을 지우지 않고 남겨놓았다.
“여기 우리 것도 있어. 대박 조회수 70만 넘었어.”
임하나는 서지현의 말에 재빠르게 너튜브를 검색해봤고 바로 홍대팀 무대를 찾아냈다.
일주일 전, 홍대와 을지로 측과의 대결 영상 역시 다시 볼 수 있게 남아 있었고, 생각보다 높은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었다.
“우리는 다들 데뷔도 안 한 무명인데, 70만이면 엄청나네요. 그렇죠?”
“실력도 실력인데 우리 팀은 다들 비주얼이 좋았잖아요. 주선아랑 요하.”
서자명 말처럼 성현의 팀엔 주선아, 요하 같이 얼굴이 괜찮은 가수들이 올라왔기 때문에 더 주목을 받은 걸 수도 있었다.
스타가 되기 위해서는 비주얼도 실력이었다.
만약 요하와 주선아가 다른 팀이었다면 배가 아팠을 수도 있지만, 지금은 든든한 전력이었다.
“아, 근데 잠실 지역 영상은 없네. 하긴 거긴 아직 공연을 한 번도 안 했으니까.”
다음 경연 상대가 잠실인 만큼 미리 상대측 전력을 보고 싶었던 임하나가 아쉬워한다.
“잠실 팀에 되게 유명한 너튜버 스타 있다는데 보실래요?”
“그래? 봐봐.”
서지현은 바로 임하나에게 말을 흘렸다.
잠실의 최고 전력은 이미 너튜버 스타였다.
아직 무대를 하지 않았더라도 얼마든지 실력을 엿볼 수 있었다.
임하나가 관심을 보이자 서지현, 기다렸다는 듯이 한 동영상을 재생했다.
한 여성 참가자의 본선 2라운드 버스킹 미션 영상인데 조회수가 어마무시했다.
“300만?! 천소울씨가 200만 아니야?”
조회수를 확인한 임하나는 깜짝 놀랐다.
그렇게 인기 많은 천소울이 200만인데 그것보다 100만이나 더 높은 조회수를 달성한 스타가 있었다니.
둘은 심각한 표정이 되어서 얼굴을 맞대고 영상을 감상했다.
“뭐야. 심지어 얼굴도 예쁜데 노래도 잘해.”
“그러게요. 노래 잘하는 건 알았는데 라이브를 이렇게 잘할 줄은 몰랐어요.”
“처음에 수줍어하더니 노래 시작하니까 눈빛부터 바뀌는 것 봐. 기본적으로 끼가 있네.”
“얼굴이 넘사라 노래는 못할 줄 알 알았는데. 세상은 참 불공평해.”
둘이서 열심히 영상을 분석하는 걸 듣고 있는데, 마지막 임하나의 말이 걸렸다.
“예쁘면 왜 노래를 못할 거라 생각해요?”
성현은 진심으로 궁금해 물었다.
저렇게까지 단언하는 이유가 따로 있나 싶었다.
그러자 그 질문에는 서지현이 대신 대답해 줬다.
“예쁜데 노래까지 잘하는 경우는 별로 없으니까요.”
진지한 서지현의 말에 이성현은 영혼 없이 하하하, 하고 웃음을 흘렸다.
‘서지현씨가 할 말은 아닌 거 같은데.’
서지현도 비주얼에선 밀리지 않는 참가자였는데 그런 말이 나오니 황당했다.
자기 자신을 모르고 하는 소리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서지현의 표정을 보니 정말 그렇다고 믿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인기 많은 거 아닐까요? 예쁜데 노래도 잘해서.”
“그런 것 같아요. 구독자도 100만이 넘어요.”
서지현은 어느새 구독자까지 확인했는지 정확히 몇 명인지도 일행들에게 일러줬다.
“100만? 아니, 이 참가자 대체 누군데? 이름이 뭐야?”
100만 구독자라는 서지현의 말에 임하나와 서자명이 그녀에게 관심을 보였다.
하지만 이성현은 아까 영상 속 목소리가 들린 순간, 아니, 그 전부터 서지현과 임하나가 말하는 ‘그녀’가 누군지 이미 알고 있었다.
릴리.
원래라면 잠실 쪽 대표를 항상 맡았던 참가자였다.
이 오디션에 참가하기 전부터 높은 인지도를 가지고 있던 유명 SNS 스타이기도 했다.
주로 다른 가수들의 노래를 자신만의 스타일로 해석하고 편곡해 부르는 영상 컨텐츠를 올리는 릴리는 100만이 넘는 너튜브 구독자를 보유하고 있었다.
잠실, 하면 떠올리던 인물을 드디어 만날 수 있다.
성현은 보고 싶었던 인물의 영상까지 확인하자 기대감으로 가득 차서 잠실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