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화
3일이란 준비 기간은 빠르게 흘렀고 드디어 홍대 공연장에서 홍대와 을지로 지역의 경연이 시작됐다.
을지로팀이 홍대팀에게 본선 3라운드가 시작된 첫날 경연 신청을 한 것은 주최 측에서도 당황했을 정도로 이례적인 일이었다.
시청자들 입장에서는 반가운 일이었다.
티저 영상 공개 후 얼마 되지 않아 바로 시작되는 홍대와 을지로 지역의 경연은 그들이 더 넥스트 서바이벌을 채 잊기도 전에 공개되었으니까.
방청객 신청은 순식간에 마무리됐고 여타 다른 오디션 프로그램보다 많은 사람들이 몰렸다.
“웰컴. 웰컴, 여러분 모두 웰컴!”
공연장 한가운데로 사회를 보는 엠씨가 등장하자 객석에 앉은 심사단이 환호성을 질렀다.
엠씨는 한때 방송국 아나운서였다가 프리 선언 이후 각종 예능에서 엠씨로 활약하는 네임벨류 있는 남자였다.
백스테이지에서 이를 지켜보던 성현과 일행은 정말로 라이브 방송이 시작되는 것 같은 실감에 결의를 다졌다.
“더 넥스트 슈퍼스타 서바이벌 시청자 여러분 반갑습니다. 진행을 맡게 된 엠씨 이성훈입니다.”
유명 엠씨의 등장과 함께 본격적으로 공연이 시작되자 너튜브 라이브 시청자 수가 폭발하더니 10만이 넘어갔다.
상금 200억이라는 숫자는 많은 이들의 관심을 불러 모으기 충분했고 너튜브 라이브는 시작도 하기 전에 대기자가 속출했었다.
기다렸던 더 넥스트 서바이벌 라이브 방송이 열리자 사람들은 호기심에라도 라이브에 들어오고 있었다.
-이성훈이 여기 엠씨를 본다고?
-방청객있음?
-ㅇㅇ나도 저기 방척객 신청했는데 떨어짐
-저기 불멸의 명곡 스튜디오 아님? 스케일 개쩌네
-글로벌 200억의 힘을 무시 마라 중국에선 배우 찌윈이 엠씨 봄.
많은 접속자 수를 증명하기라도 하는 듯이 댓글창은 제대로 읽을 수도 없을 정도로 빠르게 넘어가고 있었다.
“더 넥스트 서바이벌은 전 세계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는 서바이벌이며, 현재 서바이벌 본선 3라운드 진행 중에 있습니다. 3라운드 미션 룰은......”
이성훈 엠씨가 ‘더 넥스트 서바이벌’에 대해 간략한 설명을 이어가는 사이 무대를 준비하는 각 참가자들은 백스테이지에서 대기했다.
무대에 오르는 요하와 서자명 그리고 그와 작업했던 밴드 세션이 함께 있었다.
요하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몰려 긴장했는지 굳은 표정으로 가만히 서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백스테이지에서 서 있기만 했는데도 방청객들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심상치 않을 정도였다.
이렇게 많은 관중 앞에서 노래 한 경험이 없었던 터라 잔뜩 굳어 있었다.
지금까지 쟁쟁한 심사위원, 심지어 미국의 모건 앞에서도 노래를 부른 적이 있는 요하였지만 10대는 10대였다.
자신감 넘치던 서자명 또한 평소답지 않게 긴장된 상태로 호흡을 가다듬었다.
프로듀싱 기획회의를 할 때만 해도 설레는 마음이었는데 실제로 많은 사람 앞에 무대를 선보인다는 생각에 긴장이 엄습했다.
게다가 이번에는 너튜브 라이브로 자신들의 무대가 송출된다.
자신의 특기인 화려한 무대 연출이 라이브로 얼마만큼 담길지 예측이 되지 않아 더 불안한 마음이었다.
성현은 의외였다. 요하는 그렇다고 쳐도 서자명까지 굳어버릴 줄은 몰랐다.
“가서 은별씨가 긴장 좀 풀어주세요.”
성현은 은별을 부르며 요하를 가리켰다.
은별이 큰 소속사에서 아이돌 연습생들 그리고 유명 프로듀서들 사이에서 일했던 경험이 있기에 그녀의 장점이 규모가 큰 라이브 공연에서 발휘될 거라 생각하여 제안한 것이었다.
조은별은 성현의 말을 듣자마자 무슨 뜻인지 알았다는 듯 곧장 요하와 서자명의 긴장을 풀어주러 다가갔다.
“다들 준비한 대로만 하면 무조건 이겨요. 그냥 하는 말 아니고 저 진짜 유명한 가수들이나 프로듀서들 작업하는 거 옆에서 많이 봐왔는데 더 잘하면 잘했지 우리 팀이 부족한 거 하나도 못 느꼈어요. 그러니까 본인들 믿고 연습한 대로만. 알겠죠?”
은별에 말에 요하는 열심히 고개를 주억거리더니 팍하고 고개를 들며 외쳤다.
“파이팅! 무조건 이기고 올게요.”
서자명 역시 은별의 말을 듣고 자신이 긴장했었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심호흡을 했다.
“고마워요, 조은별씨. 본인 무대 준비하는 것도 바쁠 텐데 매번 와서 도와주시고.”
서자명은 진심으로 감사 인사를 건넸다.
조은별은 을지로 지역과 경연을 준비하면서도 서자명의 홍대 홈 경연에도 많은 공을 들였다.
서자명과 요하가 합을 맞춘 적이 없었기 때문에 조은별은 둘 사이에서 조율을 많이 해주고 서로의 장점을 알려주면서 케미가 살아날 수 있게 도왔다.
성현을 대표로 추천하며 성현만을 생각했던 서자명은 뜻하지 않게 조은별의 능력을 실감했는지 약간 감동한 눈치였다.
‘역시 경험은 무시 못 한다니까.’
성현은 조은별이 큰 무대를 앞두고도 긴장하지 않고 침착하게 무대를 준비하면서 다른 팀원들까지 챙기는 모습을 보니 역시 그녀와 함께하길 잘했단 생각이 들었다.
“저번에 말했다시피 이런 무대에서 공연하는 거 흔치 않은 기회예요. 경연이라 생각 말고 즐긴단 생각으로 마음껏 놀다 오세요.”
마지막으로 성현이 한 말에 맴버들 모두 파이팅을 외치는데 때맞춰 진행요원이 참가자들을 불렀다.
“을지로팀 무대 끝나고 바로 올라갈 거니까 화장실 가실 거면 지금 다녀오세요.”
스탭들이 분주하게 백스테이지를 오갔고 이내 을지로 팀이 먼저 무대에 올라갔다.
“그럼 을지로 팀의 무대 먼저 시작하겠습니다!”
엠씨의 말과 동시에 무대에 조명이 켜졌고 을지로팀 참가자들을 비췄다.
홈팀에서 하는 경연인 만큼 첫 번째 곡은 홈팀이 배정받은 가수 J.KIM의 노래였다.
남자와 여자로 이루어진 을지로팀은 J.KIM의 R&B 댄스곡 ‘그저 바라봐.’를 편곡한 무대를 선보였는데 여자의 그루브한 음색이 리듬앤블루스와 어울리며 훌륭한 무대를 선보였다.
“역시 3라운드부터는 참가자들 수준이 상향 평준화된 기분이네요.”
“남자 참가자가 경험이 상당한 거 같아요. 보통 경연이라면 자기 노래 실력을 뽐내려 들 텐데 이 노래의 주인공이 자신이 아니란 걸 정확히 파악하고 뒤에서 받쳐주고 있잖아요.”
경쟁자의 무대였지만 조은별과 성현은 성의있게 을지로 팀의 무대를 지켜봤다.
날카로운 두 사람의 눈은 좋은 점이 있다면 모두 가져오겠다는 듯이 이글거리고 있었다.
성현의 말처럼 남자 참가자는 최대한 기교와 감정을 억누르며 여자 참가자를 돋보이게 노래를 불렀고 자칫 과하게 느껴질 수 있는 보컬에 밸런스를 맞춰줬다.
-여자 음색 좋다. 노래랑 찰떡이네.
-이미 가수 데뷔한 사람들 아님? 뭔 노래를 다 저렇게 잘하냐;; -왜 다들 여자 얘기만 하지. 노래 해본 사람들은 알 걸, 원래 뒤에서 저렇게 받쳐주는 게 더 힘듦.
-홍대팀 지겠다. 을지로 잘하네.
댓글창 반응 또한 뜨거웠고 4분 남짓한 무대가 끝났을 때 객석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네, 을지로팀 무대 잘 들었습니다. 그럼 이제 홍대 지역의 홈팀이죠? 홍대팀의 무대 감상하시겠습니다!”
열렬한 반응 뒤에는 곧장 요하의 무대가 이어졌다.
요하는 자신이 매고 있던 기타의 튜닝을 마지막으로 확인하며 마이크 앞에 섰다.
하나, 둘, 셋.
요하는 뒤에 앉아 있는 세션들을 살짝 돌아봐 호흡을 맞추며 곡이 시작됐다.
시작은 강렬한 요하의 기타 소리.
요하는 J.KIM의 곡 ‘네가 있잖아.’를 락 버전으로 편곡한 무대를 선보였다.
‘많이 해봐서 그런가 락에 대한 이해도가 상당하네.’
서자명은 김요하의 특기인 락 보컬을 유감없이 발휘할 수 있도록 파워풀한 댄스곡을 강한 사운드의 락 버전으로 편곡했다.
서자명 역시 이미 프로듀서로서 밴드와의 많은 경험이 쌓여있기에 락 음악에 대한 높은 이해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아낌없이 보여주었다.
밴드 모두가 무대의 주인공이면서도 결국 요하가 가장 돋보이도록 연출을 했다.
“네가 있잖아. 세상에 혼자 남겨진 내게도 네가 있잖아.”
노래는 어느새 클라이막스로 치달았고 무대에 설치된 대형 스피커를 통해 사운드가 터져 나왔다.
요하의 보컬을 살리기 위해 클라이막스는 담백하고 단순한 선율로만 무대를 채웠다.
맑고 곧게 뻗는 미성이 크게 터져 나오고 애절한 탁성으로 마무리되는 요하의 노래에 객석에 앉은 방청객들은 환호하는 것도 잊고 곡에 빠져들었다.
곡이 고조될수록 객석에 있던 사람들 모두 놀라 눈이 휘둥그레졌고 입이 떡 벌어졌다.
그와 함께 너튜브 라이브 시청자 반응도 폭발했다.
-방금 고음 지렸음
-몇 살임? 딱 봐도 고딩 같은데 형이라 불러야 할 거 같다.
-아니 고음이고 나발이고 음색이 미쳤는데? 아까 여자도 좋았는데 갠적으론 지금 얘가 더 좋음.
-ㅇㅇ 아까 여자 음색은 한국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음색인데 저 남자앤 찾기 힘든 음색임.
-홍대가 이기겠네.
거의 모든 댓글이 요하에 대한 칭찬으로 도배되었다.
댓글의 개수도 을지로 팀과 비교했을 때 압도적으로 그 수가 많았다.
폭발적인 반응은 곧 투표 결과로도 나타났다.
< 첫 번째 무대 결과 >
홍대 팀 : 9294표
을지로 팀 : 2021표
요하의 무대가 인터넷상에 알려졌는지 라이브 시청자 수도 빠르게 18만 명을 돌파했다.
투표 결과가 발표되고 나서 객석들은 흥분한 관객들로 인해 환호가 가시질 않았다.
벌써부터 인터넷 검색 순위는 [홍대팀] [더 넥스트 슈퍼스타 홍대] [홍대팀 가수] 등으로 도배되고 있었다.
엠씨는 열기가 가시지 않는 관객석 때문에 한참이나 기다렸다가 겨우 멘트를 칠 수 있었다.
“첫 번째 무대는 홍대팀의 승리로 끝이 났습니다. 축하드립니다, 홍대팀!”
엠씨의 말에 요하는 곧장 서자명을 향해 달려갔다.
요하는 만족스러운 무대를 끝냈다는 것과 동시에 큰 격차로 상대팀을 이긴 것에 격양되었다.
“형! 우리 이겼어요!”
“수고했다. 이길 수밖에 없던 무대였어.”
서자명은 조명 밑에서 무대를 마무리하느라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힌 요하를 얼싸 안아주며 말했다.
둘이 그렇게 승리를 자축하는 사이 엠씨는 곧장 다음 무대를 진행했다.
“첫 번째 무대는 홍대팀의 승리로 끝이 났습니다. 하지만 승부는 여기서 끝난 것이 아니죠? 총 세 번의 경연 중 두 번을 이기면 되기 때문에 을지로팀한텐 다음 무대가 아직 남아 있습니다.”
엠씨는 두 번째 대결에 대해 다시 언급하며 출연자들을 소개했다.
두 번째 대결은 을지로 측의 가수인 윤진서가 리빙 레전드인 무대였다.
시간이 지나 홍대팀 차례가 되었다.
“주선아 참가자 올라가세요!”
스텝 말에 백스테이지에 있던 조은별은 마지막으로 주선아의 손을 잡고 말했다.
“긴장하지 말고. 연습한 대로만. 알았지?”
“네. 이기고 올게요, 언니.”
주선아는 요하의 무대를 보고 긴장을 떨친 지 오래였다.
무사히 첫 무대를 마친 요하는 을지로팀을 이기고 신이 나서 백스테이지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자신도 질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선아는 을지로 팀보다 요하에게 더 경쟁심을 불태우고 있었다.
이걸 해소하기 위해 긴장하기보다 어서 빨리 무대에 서고 싶었다.
주선아가 무대에 등장하고 곧 무대에 조은별이 편곡한 곡이 울려 퍼졌다.
조은별은 을지로 측 지정 가수인 윤진서의 전형적인 발라드곡을 리드미컬하게 편곡해서 주선아가 가지고 있는 댄스 실력과 발랄함을 모두 보여주는 전략을 세웠다.
‘단순히 발랄한 곡이 아니라 중간중간 들어가는 안무 포인트를 잘 잡았네. 주선아 아니면 못할 안무야.’
조은별과 주선아가 이번 무대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는 걸 옆에서 보고 알고 있었지만 현장에서 보니 그 임팩트가 남달랐다.
둘이 고민한 흔적들과 노력이 무대 곳곳에 묻어나왔다.
가장 많이 드러나는 것은 무엇보다 주선아의 표정이었다.
3일이라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누구보다 최선을 다해서 준비한 사람만이 지을 수 있는 자신감 넘치는 표정.
발랄한 무대에 맞춰 밝은 미소를 짓고 무대를 휘젓고 다니는 주선아는 눈부셨다.
발랄함이 컨셉이다 보니 춤은 단순했다.
이런 안무는 강약 포인트를 주지 않으면 지루해 보일 수 있을 정도로 단순했기에 주선아처럼 춤에 대한 표현력이 좋지 못한 사람이 추면 자칫 아마추어처럼 보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주선아에게는 문제없었다.
주선아는 힘들이지 않고 강약조절을 하며 안무를 소화해냈다.
그 자연스러운 모습은 관객들의 환호를 이끌어내기에 충분했다.
‘라이브도 탄탄하고.’
주선아의 예쁜 외모, 발랄한 춤, 거기다 맑은 고음까지.
시청자들이 넘어갈 요소는 모두 갖춘 무대였다.
주선아의 무대는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시청자들을 사로잡기에 충분했고 투표 역시 3,200표 이상의 압도적인 차이로 승리했다.
“아쉽지만 총 두 번의 대결에서 홍대팀이 승리하였으므로 을지로팀은 탈락하게 됐습니다. 홍대 공연장의 최종 승자는 홍대팀이 되었습니다! 축하합니다.”
엠씨의 말을 마지막으로 경연이 마무리되었다.
두 번의 무대 모두 홍대 측의 압도적인 승리였다.
연달아 두 번 승리했으므로 자동적으로 3번째 무대는 없었다.
라이브 방송이 끝난 후에도 인터넷은 홍대 경연 무대로 떠들썩해졌다.
각종 커뮤니티에는 홍대팀 가수인 요하와 주선아에 대한 추측글로 가득했고 이들이 편곡해서 부른 원곡들은 각종 음원 사이트 상위권에 올랐다.
본선 3라운드에서 매회 모두를 놀라게 할 홍대팀의 모습이 드디어 드러난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