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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같은 프로듀서는 없었다-76화 (76/273)

76화

성현의 말에 조은별, 서자명, 그리고 나머지 한 명의 프로듀서인 황윤재까지 총 넷이 모였다.

그들 모두 이미 다른 지역 리빙 레전드를 다 전해 듣고 알고 있는 상황이었다.

가수들이 각각의 지역 리빙 레전드를 듣고 연습실에서 가볍게 노래하며 목을 풀었다면 프로듀서들은 리빙 레전드들의 곡을 모두 들어보고 회의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럼 각각 어떤 리빙 레전드를 맡아서 준비할지 먼저 정해볼까요.”

“어떤 프로듀서와 가수가 함께할지도 정해야 할 것 같아요.”

성현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조은별이 가장 먼저 의견을 피력했다.

은별의 발언에 다른 프로듀서들의 시선이 조은별에게 쏠렸다.

“서자명씨. 오디션 참가 전에 밴드랑 작업을 많이 했다고 들었는데 사실인가요?”

“네. 같이 음악하던 밴드가 있긴 했어요.”

서자명이 바로 대답했다.

서자명은 무대 연출이 특출나기도 했지만 여러 악기가 연주 합을 맞춰야 하는 밴드 공연에도 관심이 많아 그쪽 작업을 많이 한 편이었다.

“음, 그럼 서자명씨는 이번에 요하랑 합을 맞추는 게 어떨까요?”

“그 고등학생이요?”

바로 요하의 음색과 무대 스타일이 떠오르지 않는 탓에 서자명은 생각에 잠겼다.

서자명이 성현의 동료들과 무대를 준비한 경험이 전무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오아시스바에서 공연할 당시 요하가 없었기 때문에 요하에 대해서 아는 사실이 없었다. 그러던 중에 조은별은 서자명에서 요하를 추천한 것이다.

서자명은 의아해 물었다.

“네. 요하 노래 들어보면 알겠지만 락에 굉장히 잘 어울리는 보컬이거든요. 요즘 기타 실력도 많이 늘었고. 경험이 없어서 무대 매너가 서툰 건 있지만 그런 건 서자명씨가 잘하니까 별문제 없지 않을까요?”

조은별의 물음에 서자명이 고개를 끄덕인다.

일리 있었다.

서자명이 제일 잘하는 장기와 요하가 가지고 있는 장단점이 훌륭하게 맞아들었다.

물론 직접 부딪혀보고 디렉팅을 해봐야겠지만 서자명은 이리저리 생각을 굴리며 기대가 차올랐다.

안 그래도 요하가 재능이 있단 건 다른 참가자들을 통해 들었기 때문이다.

“재밌겠네요. 그럼 제가 요하랑 준비하는 걸로 하겠습니다.”

서자명이 흔쾌히 조은별의 의견을 받아들이자 은별이 뒤이어 성현에게 물었다.

“성현씨는요? 따로 생각해둔 가수가 있나요?”

“아니요. 은별씨 의견 먼저 들어볼게요.”

성현은 따로 생각해둔 구상이 있긴 했지만 조은별이 의견을 말하는 걸 굳이 멈추기 싫었다.

성현이 시크릿 스테이지를 준비하고 힘을 쏟는 동안 조은별은 딱히 활동하는 것이 없었다.

그 중간에 생긴 휴식 기간 동안 조은별 나름대로 여러가지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성현이 점찍어두고 홍대팀까지 함께 올라온 가수 참가자들과 올라온 사람이 조은별이었다.

누구보다 그들에 대해 많이 알고 있기에 어떤 의견을 내놓을지 궁금했다.

이번 기회로 조은별이 자신감을 가지고 프로듀서로서 성장하길 바라는 마음도 있었다.

본선 3라운드부터는 평가하는 사람들의 폭과 수가 확 늘어난다.

단순히 음악을 들을 줄 아는 심사위원들을 구워삶는 것과는 다른 전략이 필요했다.

“전 주선아씨랑 무대를 준비할까 싶어요. 회사에서도 아이돌 앨범을 준비했었고 주선아씨 보면 실력파 아이돌 같아서 제가 잘 메이킹할 수 있을 거 같아요.”

조은별은 기다렸다는 듯이 콕 집어서 주선아를 언급했다.

성현은 만족스럽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법이네. 역시 조은별씨야. 그동안 가수 파악을 전부 끝내놨구나.’

성현은 자신이 구상했던 것과 거의 비슷하게 조은별이 팀을 구성하는 것이 만족스러웠다.

조은별은 프로듀서로서 가수의 실력, 장점, 특성들을 자세하게 파악하고 있었고 거기에 맞는 프로듀서까지 매칭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조은별이 여기까지 생각해줬으니, 성현이 그 생각을 더 살려줄 차례였다.

“서자명씨는 요하랑 홍대 홈 공연에서 J.KIM 노래를 준비하세요. 서자명씨가 무대 구성에 강점이 있는 만큼 홈에서 본인의 강점을 가장 잘 살릴 수 있을 것 같으니까.”

성현의 말에 서자명이 고개를 끄덕인다.

안 그래도 서자명 자신도 홈 공연장에서 무대를 하고 싶다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말하지 않은 속마음까지 다 알아주는 성현이 못내 신기해서 서자명은 성현의 옆얼굴을 빤히 응시했다.

“조은별씨는 주선아씨랑 윤진서 곡을 하는 게 어때요? 보통 윤진서 곡은 잔잔한 분위기지만 조은별씨의 프로듀싱과 주선아씨의 에너지라면 윤진서 곡에 담긴 힐링 메시지가 기분 좋게 전달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좋은 것 같아요. 근데 성현씨는요?”

이 제안 역시 조은별이 생각해본 적이 있는지 선선히 그러겠다고 했다.

조은별은 자신들에게 모든 프로듀싱을 맡기는 성현을 보고 의아하다는 듯이 물었다.

“만에 하나 두 분이 질 경우 서지현씨와 마지막 무대를 준비할게요.”

성현은 은별의 물음에 대답하고, 지금까지 조용히 있던 프로듀서 참가자 황윤재를 봤다.

“황윤재씨는 저랑 같이 잠실 홈에서 할 공연을 준비하시면 될 것 같아요. 서지현 임하나씨와 함께 갈 거니까 서지현씨의 보컬과 임하나씨의 퍼포먼스를 살릴 무대를 구상해보죠.”

“천소울씨는요?”

황윤재는 놀라서 물었다.

지금까지 언급한 가수들은 모두 성현과 함께 전 라운드를 올라온 사람들이니까 그렇다고 쳐도, 천소울을 빼놓고 갈 줄은 예상치 못했다.

“천소울씨는 갑자기 왜요?”

성현은 그런 황윤재의 속마음을 짐작하면서도 짐짓 시치미를 떼며 말했다.

“아니, 제일 잘하는 참가자를 무대에 안 세우니까 이상해서요.”

황윤재 말에 성현의 동료들 또한 궁금하다는 듯 성현을 쳐다봤고 성현은 더는 숨길 수 없다고 판단했다.

안 그래도 이제 슬슬 팀원들에게 그의 상태를 말하고 양해를 구할 참이었다.

“천소울씨는 현재 목상태가 좋지 않아요. 이번 본선 3라운드는 총 2차에 걸쳐 진행되니 1차는 우리끼리 준비하는 방향으로 가야 할 것 같습니다.”

“많이 안 좋은 건가요?”

조은별이 걱정스러운 말투로 물었다.

성현은 자신의 말이 끝나자 급격하게 굳은 황윤재의 얼굴을 확인하며 바로 고개를 저었다.

“심각한 건 아니니 걱정 안 하셔도 돼요. 남은 1차는 지금 있는 팀원들로도 충분히 이길 수 있으니 기운 냅시다.”

“뭐, 천소울 없는 게 별 대수라고 전승으로 끝내 버리죠.”

서자명은 천소울이 있건 없건 상관없다는 듯이 성현의 옆에서 큰소리로 의욕을 보이며 말했다.

성현은 그렇게 말해주는 서자명을 향해 만족스럽게 웃어줬다.

그러자 서자명은 이내 부끄러운 듯 고개를 훽 돌려 버렸다.

“그럼 회의 마저 할까요.”

성현은 저번부터 서자명의 태도가 이상했다는 것을 기억해내고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아직까지 딱히 뭔가 사고를 친 것 같지는 않았으니까.

***

프로듀서 회의가 끝나고 흩어져 있던 가수 참가자들을 불러 모았다.

무대 관련 공지를 하기 위해 앞에 모인 가수들의 얼굴을 확인하고 입을 열려던 순간.

띠링-

모두의 커넥트 앱이 울렸다.

다들 재빠르게 휴대폰을 꺼내들고 확인했다.

성현도 마찬가지로 알림을 확인했다.

[ 을지로 측에서 경연을 신청했습니다. ]

[ 경연은 3일 후에 홍대 측 공연장에서 진행됩니다. ]

[ 공연자 명단은 하루 전날까지 제출해야 합니다. ]

‘경연 신청?’

알람을 확인한 성현의 눈이 커졌다.

을지로 측에서 경연 신청 들어온 것이다.

본선 3라운드가 시작된 것은 오늘이었다.

아직 2주라는 여유 기간이 있다는 걸 감안하면 엄청 빠르게 경연 신청이 들어온 것이다.

다들 같은 알림을 확인한 팀원 사이에서 웅성거림이 터져 나왔다.

“설마 3일 후에 경연을 해야 한단 거예요?”

조은별이 말도 안 된다는 듯이 알림을 확인하며 물었다.

“......그렇게 된 것 같네요.”

성현은 거하게 뒤통수를 맞은 것 같았다.

박성훈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던 을지로 대표의 얼굴을 떠올렸다.

꿍꿍이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설마 이런 식으로 나올 줄이야.

“아니 이 사람들은 무슨 생각으로 경연 신청을 벌써 했데요?”

“그러게요. 미리 준비한 게 아닌 이상 이렇게 빨리 무대 준비를 하기도 힘들 텐데......”

임하나는 분통이 터지는지 씩씩거리며 을지로의 경연 신청을 몇 번이나 다시 읽었다.

서지현 역시 황당하기만 한지 3일이라는 날짜를 곱씹었다.

팀원들도 모두 당황했다.

아직 준비 제대로 시작도 안 했는데 3일 후 탈락이 걸린 경연을 하게 됐다.

“성현씨, 이제 어쩌죠?”

조은별 물음에 성현도 딱히 이렇다 할 답을 내놓진 못했다.

성현 또한 예상치 못한 상황에 당황했기 때문이다.

물론 3일이라는 준비 기간이 있지만, 이렇게 바로 경연을 신청하는 경우는 게임에서도 단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다.

‘을지로에서 왜 이렇게 빨리 경연 신청을 했을까. 분명 이유가 있을 텐데.’

분명 이건 일반적인 상황은 아니었다.

그 이유에 대해 생각하는데 순간 아까 대표가 모인 자리에서 을지록 측 대표 박성훈이 천소울에 대해 뭔가 알고 있다는 듯한 태도를 보인 것이 떠올랐다.

‘혹시 천소울 목상태를 알고 이러는 건가?’

그럴 가능성도 있었다.

천소울이 없는 틈을 타서 상대적으로 약해진 지역을 노리는 건 가능한 시나리오였다.

서울 전 지역에서 천소울은 이미 유명세를 떨치고 있었으니까.

서울 타 지역에서 참가자 천소울의 명성을 이미 알고, 준비한 것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너무 일렀다.

불과 방금 전 리빙 레전드 가수를 배정받았는데, 마치 기다렸다는 듯 바로 경연 신청해 온 것이 찝찝했다.

아무리 선제공격처럼 경연을 신청하더라도 무대를 준비하는데 을지로 지역 역시 촉박할 것이 분명했다.

머리가 복잡한 가운데 팀원들 생각이 난 성현은 당황한 팀원들을 둘러봤다.

팀원들 모두 당황해서 우왕좌왕하고 있었고 다들 삼 일 안에 무대 준비를 어떻게 하냐고 우는 소릴 냈다.

‘여기서 나까지 흔들리면 안 돼.’

팀 대표인 자신까지 흔들릴 수는 없었다.

어쩌면 을지로에서 이걸 노리고 기습적으로 경연 신청을 한 것일 수도 있으니까.

어차피 경연은 들어왔고, 언젠가는 했어야 할 경연이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결국 음악으로 보여주면 됐다.

“당황스러울 수 있겠지만 아직 삼 일이란 시간이 남았어요. 이미 무대 구성은 다 짰으니 남은 시간 동안 서로 최대한 도우며 무대 준비만 하세요. 시간 때문에 스트레스받을 것 없이 우린 우리 음악을 하면 됩니다.”

“그래요. 걱정한다고 준비 기간이 늘어나는 것도 아니고. 그냥 평소대로 즐기면서 준비해요, 우리.”

성현의 말에 흔들리던 팀원들이 조용해졌다.

그 가운데 가장 먼저 씩씩하게 본래대로 돌아온 임하나까지 사기를 북돋아지자 점점 마음을 추스르는 팀원들은 어떻게 무대를 짤지 저들끼리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성현은 그런 팀원들에게 을지로와의 공연에 어떤 프로듀서와 어떤 가수가 공연할지 발표했다.

“그럼 저 이번 무대 밴드랑 준비하는 거예요? 완전 좋아요. 더 비기너 형들 생각도 나고.”

요하는 첫 무대를 자신이 꾸미게 된다는 말에 부담도 없는지 이번에도 락을 한다는 사실에 기뻐했다.

주선아 또한 조은별과의 작업을 흥미로워했다.

조은별이 아이돌 프로듀싱을 하다가 이 오디션에 참가했다는 소문은 주선아도 들어서 알고 있었다.

“잘 부탁한다.”

“저 전에 미션에서 형이 프로듀싱한 무대 본 적 있는데 완전 멋지던데요? 저도 그렇게 멋지게 만들어줄 수 있어요?”

요하는 어린 나이 탓인지 다른 참가자들보다 서자명에 대한 거부감이 적었다.

자신을 똘망똘망 쳐다보며 묻는 요하의 말에 서자명은 순간 당황하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지. 가수는 멋에 죽고 멋에 사니까.”

그 말에 요하의 눈이 더 반짝거리자 기가 산 서자명은 오랜만에 굴러온 기회에 신이 나서 이것저것 요하와 떠들기 시작했다.

신난 건 주선아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럼 언니가 이번에 데뷔한 니키걸즈 앨범 프로듀싱했던 거예요?”

“다는 아니고 몇 곡만. 그것도 여기 투입되느라 중간에 빠졌고.”

주선아는 말은 안 했지만 조은별에 대한 소문을 듣고 궁금한 게 많았는지 발표가 끝나자마자 조은별 옆에 붙어서서 이것저것 물어왔다.

조은별은 그런 주선아가 귀여웠던지 간단하게 대답을 해주고 있었다.

“저 이번에 평소랑 다르게 완전 새로운 무대 해보고 싶은데 언니라면 가능할 거 같아요.”

“그래. 우리 진짜 사람들 깜짝 놀래켜 보자.”

예상보다 빠르게 공연이 잡혔지만 걱정도 잠시였다.

다들 새로운 멤버로 앞으로 있을 무대를 준비하는 것에 대한 기대감이 걱정보다 더욱 높아진 것처럼 보였다.

성현은 경연 신청을 받기 전에 짠 팀들이 생각보다도 더 잘 어울리는 모습에 안심할 수 있었다.

공연장은 곧 기대와 설렘으로 가득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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