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화
본격적으로 본선 3라운드 연습이 시작되고 팀원들이 모인 홍대 아지트는 소란스러웠다.
참가자들은 각자 연습실로 흩어져 J.KIM의 노래를 연습하는 중이었다.
최흥철 메인 PD와의 면담에서 확답을 받은 성현은 곧장 천소울의 연습실로 향했다.
천소울의 연습실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성현이 가장 선명하게 기억하는 목소리가 흘러나오는 곳으로 가기만 하면 됐으니까.
“멀어져가는 네 뒷모습은 내 눈물 속에서 점점 번져가.”
천소울, J.KIM의 곡 중 발라드를 골라 연습하고 있었다.
방해하지 않고 잠시 그의 노래를 들었다.
천소울이 무엇을 숨기고 있는지 파악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피치가 점점 높아질수록 성대를 긁는 듯한 소리가 미묘하게 들렸다.
‘목이 완전 맛이 갔잖아.’
성현은 아주 잠시 스쳐 지나간 미묘한 소리만으로도 천소울 목에 문제가 있단 걸 확신할 수 있었다.
예상대로 천소울의 상태가 정상적이지 않았다.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고 지금 천소울의 목소리를 들었다면 어땠을까.
성현은 잠시 아득해져 눈을 감았다.
연습실 안에서 애를 쓰며 긁힌 목소리가 몇 번 더 흘러나오자 성현은 참지 못하고 연습실 문을 열어젖혔다.
“천소울씨. 지금 뭐 하는 겁니까?”
연습실에 들이닥친 성현이 낮게 묻자 노래를 부르고 있던 천소울이 당황해서 성현을 돌아봤다.
갑자기 등장한 성현의 모습에 놀라기는 했지만 천소울은 곧 다짜고짜 쳐들어온 성현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인상을 쓰고 쏘아붙였다.
“보면 몰라요? 연습하고 있잖아요.”
“근데 소리가 왜 그래요?”
“......소리가 왜요? 뭐 문제 있나요?”
움찔.
소리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자 아주 잠깐이지만 천소울의 상체가 흔들렸다.
성현은 눈을 가늘게 뜨고 그 모습을 빠짐없이 지켜봤다.
당황한 천소울은 성현이 눈치챘나 싶으면서도 끝까지 발뺌을 했다.
성현은 그런 천소울의 모습에 기가 찼지만 다시 한번 물었다.
“진짜 문제없어요?”
성현은 지금이라도 천소울이 자신의 입으로 솔직하게 말해주길 바랐다.
프로듀서를 믿는다면 가수는 자신의 사소한 변경사항도 모두 말한다.
그리고 함께 고민하며 작업을 진행할 것이다.
성현은 시크릿 스테이지를 보러 와준 천소울을 기억했다.
술병에 둘러쌓여 지내던 천소울이 자신의 무대를 보고 이곳으로 돌아와 줬다.
단단한 유대관계까지는 아니더라고 자신을 조금이나마 믿고 있지는 않을까 하는 기대하면서 물은 것이다.
“문제없습니다.”
그 모든 기대는 돌아오는 천소울의 대답에 깨져버렸다.
성현은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자존심이 높고 자신의 노래에 대한 프라이드가 강한 성격인 줄은 알았지만 이런 고집은 프로답지 못했다.
“그래요? 그럼 방금 노래 내 앞에서 다시 불러봐요.”
이렇게까지 하고 싶진 않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본인이 자기를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고 숨기려 든다면 성현이라도 억지로 끌어내야 했다.
가수 관리는 프로듀서의 몫이니까.
성현의 갑작스러운 요구에 천소울은 잠시 침묵했다.
싫다는 의사표현을 암묵적으로 하고 있는 것이지만 그럴 입장이 못 되기도 하였다.
자신의 손으로 성현을 팀 대표로 뽑은 지 만 하루가 지나지 않았다.
팀 대표인 프로듀서의 말에 싫다고 노래를 안 부를 수는 없는 노릇.
거기에다 지금 노래를 부르지 않으면 더욱 의심을 살 것이 분명했다.
천소울은 고심하다가 무난한 파트로 짧게 노래를 불렀다.
감추려고 천소울 나름대로 노력한 것이었지만 역시나 성현의 예상대로였다.
천소울은 평소 두성을 사용하여 곧게 뻗어나가는 고음을 사용하던 것과 다르게 목에 힘을 잔뜩 주고 부르고 있었다.
이를 의식한 본인도 인상을 쓰더니 결국 음이탈까지 일어났다.
‘억지로 소리를 내려니 저렇게 힘이 들어가지.’
성현은 방금 노래로 바로 눈치챌 수 있었다.
천소울 자신도 목에 문제가 있단 걸 알고 있었다.
지금은 이를 숨기기 위해 억지로 목을 쓰는 중이었다.
확실해졌다. 천소울의 상태는 현재 정상이라 볼 수 없었다.
“이래도 문제없어요? 방금 음정 나갔잖아.”
“아직 목이 덜 풀려서 그런 거지 문제없습니다.”
“발뺌하지 마. 당신 목소리 누구보다 잘 아니까.”
“당사자가 괜찮다는데 당신이 뭔데-”
“저번에 말했지. 당신 노래 천 번은 더 들었다고. 내가 천소울씨 고음 칠 때 소리 어떻게 내는지 모르고 이러는 거 같아요?”
성현은 발끈해서 반박하려는 천소울의 말을 끊었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성현은 화를 내듯 천소울에게 따졌다.
항상 당당하던 천소울도 순간 그 기세에 눌려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성현은 화가 났다.
이전부터 천소울과 대화를 할 때 목 상태가 이상하단 걸 느끼긴 했지만 이 정도로 안 좋을 줄은 몰랐다.
무엇보다 가장 화가 나는 건 천소울이 자신에게 그 사실을 숨기고 있다는 거였다.
그 사실이 아직 천소울에게 믿음 한 조각 얻지 못했다는 방증 같아서 성현은 화를 주체 못 하고 순간적으로 큰 소리를 내고 말았다.
성현은 화를 누르며 긴 한숨을 쉬었고, 천소울도 말이 없었다.
“쉬다 와요. 시간 줄 테니까.”
긴 정적 끝에 꺼낸 성현의 말에 천소울의 표정이 구겨졌다.
자신을 무슨 환자 취급하는 성현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럴까 봐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다.
노래 한 자락으로 들통날 사실이었지만 천소울은 성현에게 이 사실을 숨기고 싶었다.
자신이 어떤 마음으로 이 무대에 돌아왔는데.
“근래 술을 많이 마셔서 그러는 거니까 며칠 쉬면 괜찮아질-!”
“고집부리지 말아요.”
성현은 계속되는 천소울의 핑계가 더는 듣기 싫었다.
왜 본인의 컨디션이 별론데도 노래를 계속하려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가수면서 자신의 목을 챙기지 않는 것도 화가 났다.
“가수한테 목소리가 얼마나 소중한데 왜 그 소중한 걸 막 다뤄요. 그렇게 목 막 굴리다가 평생 음악 못 하면 어쩌려고 이러냐고요!”
성현의 언성이 높아졌고 천소울의 표정 또한 점점 굳었다.
성현이 틀린 말을 하는 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천소울은 알고 있었다.
성현이 지금 내고 있는 화의 바탕에는 천소울에 대한 걱정이 담겨 있었기에 마주 화를 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난 내 가수 목 망가트리면서까지 이 오디션 우승할 마음 없어요. 그러니까 솔직하게 말해요. 아프면 아프다고. 괜찮으니까.”
성현의 진심 어린 말에 천소울은 한숨을 쉬며 자리에 앉는다.
성현은 이제 화를 내고 있지 않았다.
천소울을 향해 하소연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입을 꾹 다물고 성현을 보는 천소울의 눈빛이 조금 흔들렸다.
“…….”
“개인적으로 천소울씨가 가진 가장 큰 장점은 음색이라 생각합니다. 만약 이번 오디션에서 괜히 무리하다 그 매력적인 목소리에 조금이라도 금이 간다면......그렇게 되면 프로듀서로서 제 스스로를 용서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부탁드립니다. 절 위해서라도 치료받고 쉬세요.”
천소울은 이어지는 성현의 말에 눈빛이 재차 흔들렸다.
지금까지 많은 프로듀서를 만나왔지만 그 누구도 본인을 위해 노래를 쉬어달라고 했던 사람은 없었다.
“…난 이 오디션을 통해 증명하고 싶은 게 있어서 이대론 못 떨어져. 떨어질 때 떨어지더라도 중간에 포기하는 건 상상하기도 싫다고.”
그제서야 솔직하게 아픈 걸 인정하며 자신의 이야길 꺼내는 천소울의 모습에 성현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
성현의 생각이 맞았다.
본인도 아픈 걸 알면서도 오디션에 계속 참가하고 있던 것이다.
“탈락이 걱정이라면 이미 PD님이랑 얘기 끝났어요. 3라운드 진행되는 동안 한 번이라도 무대에 서면 된다고 했습니다.”
성현의 말에 천소울은 놀랐다.
연습실에 들어오기 전까지 성현과 제대로 된 대화 한 번 하지 않았다.
그런데 성현은 이미 천소울의 상태쯤은 파악했다는 듯이 해결책을 마련해놨다고 말하고 있었다.
천소울은 성현의 빠른 대처에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아무래도 혼자 고민하면서 본선 3라운드에 대한 걱정을 하고 있었을 것이 분명했다.
그것도 잠시 천소울은 다시 고민하는 표정을 짓더니 이내 걱정스럽게 물었다.
“여기서 제가 빠지면 홍대 팀 전체가 위험한 거 아닌가요?”
어쨌든 천소울은 홍대팀에서 가장 실력 있는 참가자였다.
그가 빠지면 팀 전령에 구멍이 생기는 건 당연한 이치였다.
하지만 천소울이 모르고 있는 사실은 홍대에 실력자가 천소울만 있는 것도 아니라는 거였다.
“팀에 천소울씨 말고도 실력자는 많아요. 같이 다니는 주선아씨도 있고 서지현, 임하나, 요하, 모두 매 라운드를 통해 많이 성장했습니다.”
성현의 자신감 가득한 말에도 천소울은 쉽게 답을 내리지 못했다.
“정 못 믿겠으면 1주일. 1주일만 쉬다 오세요.”
일주일.
성현이 천소울의 성격까지 고려해서 주는 시간이었다.
이런 말까지 듣자 계속 고민이 되면서도 어쩐지 이번만큼은 성현의 말을 들어보는 것이 좋겠단 생각이 서서히 들었다.
“딱 1주일입니다. 그 사이에 문제가 생기면 바로 연락주세요.”
“여긴 제가 알아서 할 테니까 1주일 동안은 오디션 말고 회복하는 데만 집중하세요.”
천소울이 고집이 드디어 꺾였다.
성현 이제야 싱긋 웃으며 말하고 천소울은 바로 일어나 짐을 챙겼다.
남은 기간 동안 확실하게 컨디션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바로 가서 푹 쉬어야 했다.
“그럼 1주일 뒤에 건강한 모습으로 봐요, 우리.”
성현이 천소울에게 인사를 하고 나가려는데 천소울의 말이 성현을 붙잡았다.
“치료......잘 받을게요.”
잘 들리지도 않는 짧은 말이었지만 그 안에는 성현을 향한 고마움이 묻어나와 있었다.
성현은 거의 처음 들어보는 천소울의 호의적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연습실을 나갔다.
***
홍대 대표인 성현은 홍대 지역의 모든 참가자들을 홍대 홈 공연장으로 불렀다.
참가자들에게 자신들이 설 무대를 직접 보여주는 과정은 꼭 필요했다.
이곳에서 이번 라운드를 위한 회의를 진행할 생각이었다.
공연장은 일반 공연장이 아닌 스튜디오 느낌이 났고 규모도 꽤 있었다.
무대 경험이 적은 가수들은 여기저기를 둘러보며 감탄하느라 바빴고, 기기들을 만져본 경험이 있는 프로듀서들은 짱짱한 무대 설비에 연신 감탄사를 내뱉었다.
“완전 제대로다.”
조은별의 말에 관객석에 내려가 본 임하나가 큰소리로 외쳤다.
“900명까진 수용 가능하대요.”
“저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공연하는 거 처음이라 너무 떨려요.”
서지현은 저 멀리 작게 보이는 임하나를 보며 그제야 실감이 나는지 잘게 떨리는 손을 부여잡으며 말했다.
조은별과 성현의 일행들은 평가단이 앉을 객석에 모여 앉았다. 무대가 정면으로 바로 보이는 자리였다.
“와아- 너무 넓은 거 아니야?”
“왜요. 언니 긴장돼요?”
“긴장은 무슨. 내가 저 끝에서부터 저 끝까지 춤추면서 라이브 한다. 두고 봐.”
임하나와 서지현은 정면으로 보게 된 무대의 압박감을 잊으려 서로 농담을 주고받았다.
서자명은 다른 참가자들과는 다르게 곧장 무대에 올라가 고개를 꺾고 위를 살피며 조명부터 확인했다.
‘어디… 조명 위치부터 확인해 볼까.’
무대 곳곳 조명과 무대 장치들을 확인하며 어떻게 무대를 꾸밀지를 상상하는 서자명은 조명 한 번 성현 한 번 쳐다보고 있었다.
다른 참가자들은 눈치채지 못했지만 시선을 정면으로 받고 있는 성현은 바로 눈치챘다.
팀 대표가 되면서 메인 프로듀서가 될 성현에게 제안하고 싶은 아이디어가 번뜩이는 모양이었다.
서자명의 입이 근질거리는 것을 보며 성현이 흐뭇하게 미소를 지었다.
바로 이런 점 때문이었다.
성현이 민심을 잃을 대로 잃은 서자명을 다음 라운드로 데리고 올라온 이유.
‘무대 퍼포먼스는 서자명씨한테 믿고 맡길 수 있겠다.’
“잠시만 집중해주세요.”
성현은 마음껏 무대를 둘러보며 확인 중인 팀원들을 모두 한데 불러 모았다.
“데뷔도 못 한 아티스트가 이런 곳에서 공연하는 건 쉽지 않은 기회예요. 그러니까 다들 잘해봅시다. 앞으로 계속 이런 곳에서 공연할 수 있을 때까지.”
“파이팅!”
성현의 말에 임하나는 제일 먼저 의욕을 보이며 파이팅을 외쳤다.
다른 팀원들도 모두 파이팅을 외치는데 팀원 중 한 명이 주위를 둘러보며 이야기를 꺼냈다.
“그런데 천소울씨는 어딨어요?”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참가자들은 가장 눈에 띄는 천소울이 보이지 않자 궁금해진 모양이었다.
이번 홍대 팀의 최대 전력인 가수이기에 빈자리도 눈에 띈 것이다.
“개인 사정이 있어서 오늘 연습엔 참가 못 할 것 같아요.”
성현은 최대한 무덤덤하게 말을 전했다. 혹시라도 지금 다른 팀원들이 천소울의 상태가 안 좋다는 것을 눈치채게 둘 수는 없었다.
가장 실력 있는 팀원이라는 말은 팀의 사기를 올려주는 존재이자 동시에 팀의 사기를 제일 떨어뜨릴 수 있는 존재이기도 했다.
성현의 말에 팀원은 별 의심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성현은 박수를 치며 팀원들의 관심을 주목시켰다.
“자자, 그럼 가수 참가자들은 쉬면서 컨디션 관리해주시고 프로듀서 회의 먼저 진행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