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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같은 프로듀서는 없었다-71화 (71/273)

71화

모건의 말을 통해 1등이 정해졌다.

진행요원들은 바쁘게 움직여 대기실에서 기다리고 있던 나머지 참가자들을 소집했다.

“보상으론 아티스트 피처링권 1장이 지급됩니다. 보상을 받을 참가자를 선택하여 주세요.”

진행요원 말에 주선아가 가장 먼저 나서서 답했다.

망설임이라곤 없는 행동이었다.

“이성현 참가자한테 보내주세요.”

주선아 말에 임하나도 옆에서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그 모습으로 볼 때, 두 사람은 상의까지 마친 듯해 보였다.

“정말 제가 가져도 되겠어요?”

둘의 행동에 성현이 오히려 당황했다.

프로듀서인 자신이 피쳐링권을 가져간다면 앞으로 무대를 꾸밀 때 상당히 도움이 될 게 분명했다.

반대로 가수들도 욕심이 있을 수 있었다.

꼭 어떤 가수와 함께 무대를 하고 싶다.

가수 지망생이라면 당연히 가지고 있을 꿈의 무대를 직접 꾸밀 기회일 수도 있었다.

그런 기회를 포기하고 성현에게 이 보상을 넘긴다니.

성현은 두 사람이 진심인지 확인하기 위해 주선아와 임하나를 차례로 둘러봤다.

“네. 이미 선아랑 얘기 다 끝냈어요. 성현씨 아니었으면 이번 무대 1등 못했으니까 드리는 게 맞아요.”

임하나와 주선아는 성현이 심사위원들에게 간 사이에 자신들끼리 이미 보상에 대한 얘기를 끝내놨다.

이번 무대에서 성현의 공헌도는 직접 무대에 선 두 사람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성현이 이야기를 나누러 대기실에서 나가자마자 임하나와 주선아는 아직 남아 있는 진한 여운에 성현에 대한 이야기를 꽃피웠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이번 보상은 성현에게 줘야 한다는 식으로 이야기가 흘렀다.

임하나는 주선아에게 이전 무대에서 성현이 어떤 식으로 동료들을 프로듀싱했는지 영웅담처럼 늘어놓았고 주선아는 흥미진진하게 그 이야기를 들었다.

주선아는 이번 일을 통해 성현을 다시 보게 됐다.

‘괜히 천소울 쌤이 이성현을 의식하고 있는 게 아니었어.’

성현도 두 사람의 담담한 표정을 보고 나서는 딱히 그것을 거절하진 않았다.

둘의 신뢰를 얻었다는 징표 같아서 마음이 더 든든해지기까지 했다.

‘이걸로 얼마나 더 좋은 무대를 만들 수 있을까.’

어떻게 보면 임하나와 주선아의 선택은 탁월했다.

성현은 자신이 동료로 데리고 가는 가수들을 먼저 생각하며 보상을 쓸 사람이었으니까.

“형, 1등 축하해요! 전 형이 1등 할 줄 알았어요. 천소울 형보다 더 잘하니까.”

의기양양해진 요하가 팔짝거리며 말했다.

요하는 저번부터 주선아와 천소울과 성현 둘 중 누가 더 잘났는지로 싸웠었다.

이번 무대를 통해서 주선아에게 누구 말이 맞았는지 증명된 것이다.

요하의 기분은 날아갈 것 같았다.

천소울이 버스킹 1등으로 본선 2라운드 조기합격을 했던 것 때문에 주선아에게 한 방 먹은 기분이었기에 속상했던 요하는 이번엔 성현이 1등을 한 것이 여간 통쾌한 것이 아니었다.

요하는 있는 대로 어깨가 치켜 올라가서 주선아 쪽을 바라보았다.

“봤지? 이게 바로 성현이 형 실력이라고!”

그런데 웬일인지 주선아 역시 반박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요하는 주선아가 예상과 다르게 반응이 없자 조금 불안한지 성현의 뒤로 살짝 숨었다.

또렷한 무대화장을 하고 무표정하게 자신을 바라보는 주선아의 결점 없는 얼굴은 조금 무서웠다. 이제와서 너무 까불거렸나 싶기도 했다.

주선아는 요하의 걱정이 무색하게 쿨하게 인정했다.

“이번엔 프로듀서로서 그쪽이 더 잘한 거 인정해. 다음번엔 쌤이 더 잘하겠지만.”

“아니거든요? 다음번에도 성현이 형이 이기거든요?”

주선아와 요하가 다시 붙을 거 같자 임하나는 자연스럽게 그 틈을 파고들면서 둘을 중재했다.

“아가들아. 쓸데없이 이런 걸로 기운 빼지 마. 둘이 같이 작업하면 깔끔하게 해결되는 문제잖아. 안 그래?”

임하나 말에 주선아와 요하는 서로 노려보다 팩 고개를 돌렸다.

성현은 아웅다웅하는 가수들의 모습을 흐뭇하게 보다가 커넥트 앱 알람이 울리는 걸 느끼고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보상 지급해드렸습니다. 이로써 시크릿 스테이지 라운드 최종 종료됩니다.”

진행요원 말에 동료들은 모두 안도하며 오디션장 떠났다.

성현 역시 그 뒤를 따라 공연장을 나섰다.

저 멀리 오디션장을 나서는 심사위원단들이 보였다.

그 사이에서 모건이 갑자기 뒤돌더니 성현을 불렀다.

“이성현씨.”

성현은 이번엔 무슨 일인가 싶어 조금 긴장해서 모건을 돌아봤다.

모건은 예상과 다르게 살짝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언젠가 다시 볼 수 있는 날이 오면 좋겠군요.”

이 말을 끝으로 자리를 뜨는 모건을 지켜보는 성현은 살짝 놀라웠다.

천소울을 상대로 독설을 날리던 사람과 동일인물이라고 믿기 힘들 정도였다.

모건과의 대화를 마치고 나간 성현은 오디션장 밖에서 익숙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쌤!!”

주선아의 우렁찬 소리가 들려 성현은 자연스레 그쪽을 쳐다보았다.

주선아와 함께 모자를 푹 눌러쓴 꾀죄죄한 몰골의 남자가 서 있었다.

이성현은 한눈에 그가 누군지 알아봤다.

행인들 틈에 섞여도 티 나지 않는 추레한 옷차림에 모자를 깊게 눌러써서 얼굴을 가렸음에도 그 외모를 감출 수는 없었다.

‘와서 봤구나.’

천소울, 그땐 대답도 안 하더니 역시 보러오긴 왔나 보다.

지금까지의 노력이 영 헛된 것은 아니었다.

성현은 말없이 천소울을 가만히 쳐다봤다.

천소울은 그런 성현을 가만히 노려보다가 그대로 뒤돌아서 오디션장을 나갔다.

결과를 봤을 텐데도 저 건방진 태도는 어쩔 수가 없나 보다.

주선아는 그 뒤를 급히 따르다가 뒤를 돌아 성현의 일행에게 인사를 건넸다.

“저 이만 가볼게요.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연락해요, 언니.”

“응. 본선 라운드 때 보자. 조심히 가.”

주선아는 성현과, 부쩍 친해진 임하나에게 인사를 하고 벌써 저만치 멀어진 천소울을 쫓아갔다.

뒤에서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는 성현의 입에 미소가 걸렸다.

‘빨리 정신 차리고 돌아와라, 쿠크다스.’

저 호승심 가득한 눈빛을 보니 걱정할 필요는 없어 보였다.

***

시크릿 스테이지가 끝이 나고 주최 측은 본선 2라운드 합격자들을 홍대 아지트로 소집했다.

숨겨진 라운드의 존재를 몰랐던 이들은 기나긴 휴가를 마치고 드디어 경연 시작이라는 생각에 들뜬 발걸음을 옮겼다.

오랜만에 아지트에 모인 참가자들은 웅성거리며 반가움을 표하고 있었다.

성현 역시 늦지 않게 홍대 아지트에 도착하니 먼저 도착해 있던 동료들이 성현을 반겼다.

“성현씨, 하나씨랑 요하랑 무대 했다면서요?”

“네. 어쩌다 보니.”

조은별은 그간 요하에게서 소식을 전해 들었는지 그것부터 물어왔다.

성현은 자세한 사정을 궁금해할 조은별의 마음은 알지만, 천소울의 개인적인 일도 엮여있다 보니 말끝을 흐리며 고개를 돌렸다.

모여있는 홍대 지역 합격자들을 둘러보는데 주선아와 눈이 마주쳤다.

주선아는 다른 참가자들과 대화 중에 성현을 보자 살짝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성현도 마찬가지로 인사를 해주는데 누군가 자신을 빤히 쳐다보는 시선에 돌아봤다.

그쪽엔 서자명이 있었다.

서자명은 성현이 막상 자신을 쳐다보자 당황했는지 황급히 다시 고개를 돌렸다.

‘왜 저러지?’

성현은 서자명의 태도에 고개를 갸우뚱하고 동료들이 있는 테이블을 찾아 앉았다.

“지현씨 춤 실력이 상당히 늘었던데요?”

성현은 서지현이 쉬는 기간 동안 대화방에 올렸던 춤 동영상을 봤던 걸 언급했다.

서지현은 부끄럽다는 듯 볼을 긁었다.

“하나 언니 덕분이죠.”

“알면 잘해라.”

“하나씨도 저번에 보니 보컬이 상당히 늘었던데요?”

“들었죠? 언니도 저한테 잘해요.”

임하나와 서지현은 서로 춤과 보컬을 알려주는 사이가 되면서 서로가 더 편해진 듯 보였다.

성현은 휴식 기간 동안 미처 챙기지 못한 동료들의 안부를 챙겼다.

자신이 없어도 단단한 동료가 되어가는 모습을 흐뭇하게 보다가 아지트 안을 둘러봤다.

‘아직 안 왔나.’

성현이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계속 아지트 안을 기웃거리자 조은별은 성현이 누굴 찾는지 알겠다는 듯 함께 아지트를 둘러봤다.

“아까 보니까 주선아씨 혼자 왔던데. 아마 곧 오지 않을까요?”

조은별이 시간을 확인하며 성현에게 말하는 순간, 요하가 문 쪽을 보더니 소리쳤다.

“어! 천소울 형이다.”

요하의 외침에 성현은 마침내 자신이 찾던 사람을 발견했다.

성현은 자신도 모르게 벌떡 일어났다.

천소울의 등장에 아지트에 있던 참가자들 모두 순간 조용해지더니 천소울을 힐끗 쳐다봤다.

참가자들의 사이에서 천소울은 이미 스타였다.

본선 2라운드까지 거침없는 행보를 보였기에 모두의 시선이 쏠리는 것은 당연했다.

“저 사람이지? 버스킹 1등한 사람?”

“가수 포지션인데 프로듀싱도 꽤 하나 봐. 혼자 다니는 것 보면.”

여기저기서 천소울에 대해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의 실력이야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었지만 홍대에서 압도적인 버스킹 공연을 선보인 이후에 더욱 유명세를 타고 있었다.

그 인지도가 어느 정도냐면, 서울 지역 참가자들 중에선 천소울이란 이름을 모르는 참가자가 없을 정도였다.

‘정신은 차렸으려나.’

성현이 천소울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다행히 폐인 생활을 했던 흔적이 보이진 않았다.

몇 주 전까지만 해도 주선아와 자신 앞에서 속절없이 무너진 모습을 보였었다는 것은 모두 거짓말이라는 듯이 부활한 모습이었다.

어쩐지 얄밉기까지 했다.

천소울은 성현이 보는 걸 못 느꼈는지 곧장 주선아가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오셨어요? 몸은 좀 괜찮아졌어요?”

살갑게 건네는 안부인사에 천소울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주저하던 천소울은 주선아에게 작게 인사를 건넸다.

“너한테 못 볼 꼴 보였다. 미안해.”

천소울의 사과에 주선아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웃어 보였다.

“다음 라운드도 잘 부탁드려요, 쌤.”

“근데 내가 왜 네 선생님이냐?”

“저보다 잘하면 다 선생님이죠. 천소울 쌤.”

사과를 해올 때는 언제고 다시 까칠해진 천소울을 보고 주선아는 이제야 천소울이 돌아왔다는 생각에 웃었다.

이렇게 되기까지 얼마나 힘든 시간을 보냈던가.

주선아는 저도 모르게 성현이 있는 쪽으로 시선을 보냈다가 다시 천소울을 응시했다.

주선아는 다른 참가자들을 대할 때와 달리 천소울에겐 능청스럽게 말을 걸고 장난을 쳤다.

평소 그녀의 새침한 모습을 보던 다른 참가자들이 그 모습을 넋을 놓고 쳐다봤다.

“저 둘도 참 끼리끼리 놀지 않아요? 선남선녀에 노래도 잘하고.”

임하나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서지현이 그 모습을 보고 요하를 힐끔 보며 은근하게 물었다.

“요하 긴장 해야 되는 거 아니야?”

“제가 왜요? 저 진짜 주선아 누나 관심 없다니깐요.”

“에이, 요하 얼굴 빨개졌네? 부끄러워?”

요하가 억울하다는 듯 말하자 임하나와 서지현은 더 신나서 요하를 놀렸다.

그런 요하를 구해준 것은 조은별이었다.

“쉿. 다들 조용. 천소울 참가자는 성현씨 거예요. 그쵸, 성현씨?”

“천소울씨 탐나긴 하죠. 제 취향이기도 하고.”

조은별의 장난스러운 농담에 성현이 진지하게 대꾸하자 일행은 순간적으로 할말을 잃었다.

너무 진심인 사람은 놀리기 힘든 법이다.

사람 놀리는 데 도가 튼 임하나도 여기서 취향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냐고, 딴지를 걸 타이밍을 놓칠 정도였다.

성현이 프로듀서로서 천소울이 가지고 있는 능력에 대해 인정한다는 것을 아는 조은별 졌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한창 일행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홍대측 담당 PD가 들어왔다.

담당PD의 등장과 동시에 시끄러웠던 아지트가 일순 조용해졌다.

홍대측 담당 PD 최흥철.

저번과 마찬가지로 무미건조한 표정으로 가타부타 말도 없이 커넥트앱에 등록된 합격자 명단부터 호명했다.

“가수 포지션부터 부르겠습니다. 김요하.”

“네!”

“서지현.”

“네!”

최흥철은 합격자 명단에 있는 이름을 일일이 불러가며 합격자들을 확인했다.

“천소울.”

“네.”

지금까지 무미건조한 표정으로 명단을 부르던 최흥철이 조금은 흥미로운 표정으로 액정에서 고개를 들고 천소울을 바라봤다.

최흥철 역시 시크릿 스테이지 라운드에서 천소울이 어떤 돌발 행동을 했는지 전해 들어 알고 있었다.

솔직히 천소울이 오늘 아지트 소집에 응할지도 미지수였는데 천소울은 멀쩡한 얼굴로 자리하고 있었다.

최흥철 홍대 담당PD가 합격자 명단을 불렀을 때 성현의 일행과 천소울 주선아, 서자명을 포함해 11명이 살아남았다.

살아남은 참가자들을 바라본 최흥철 PD가 말했다.

“이제부터 여러분들은 서로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팀으로 무대를 준비하게 될 겁니다.”

지난 본선 2라운드에서 살아남은 총 열한 명의 생존자가, 이제는 하나의 팀이 된다.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본선 3라운드에 대한 설명을 들으며 성현은 천소울을 바라보며 남몰래 웃었다.

‘드디어 천소울이랑 음악을 할 수 있게 되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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