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같은 프로듀서는 없었다-70화 (70/273)

70화

2프로 부족한 곡을 채우기 위해 성현이 선택한 남자 보컬은 바로 김요하였다.

이는 요하와 성현에게도 새로운 시도였다.

그동안 성현은 김요하를 거의 락 보컬로서만 무대에 올려왔다.

김요하의 진짜 무서운 점은 목소리, 그리고 그 안에 담긴 감정이었다.

요하가 가지고 있는 강점은 락이라는 장르에 한정할 수 없는 매력을 지니고 있었다.

세상의 잣대로 재단되지 않은 날것 그대로의 신선한 음색.

아직 어린아이다운 순수하고 때 묻지 않은 창법까지 겸비한 요하는 그 진가를 아는 사람들에게 제대로 먹힐 보컬리스트가 될 것이 분명했다.

이 곡 역시 마찬가지였다.

곡 자체가 춤은 엄청난 기교를 필요로 했지만 멜로디 라인은 단순한 코드로 진행하여 트렌디한 기교가 아니라 오로지 음색과 호소력으로만 승부를 봐야만 했다.

즉 사람의 마음을 울리는 진심이 담겨 있어야만 했고 성현이 알고 있는 목소리 중에 이 곡에 가장 어울리는 보컬은 요하뿐이었다.

요하의 목소리를 통해 알려주고 싶었다.

당신네들만 가지고 있는 줄 아는 소울을, 한국인 역시 다른 방식으로 가지고 있다고.

한국인들의 소울, 한.

성현이 이번 무대에서 모건과 천소울에게 중점으로 보여주고 싶었던 건 다른 것도 아니고 한국인의 소울, 한이었다.

팝의 소울을 운운하는 모건에게 날리는 통쾌한 한 방이었다.

‘그래서 요하가 필요한 거지.’

그냥 들으면 미성인 요하의 목소리에는 미세하게 거친 탁성이 실릴 때가 있었다.

거기에 요하 특유의 감정이 담길 때, 한국의 한이라는 정서를 담을 수 있다는 것이 성현의 계산이었다.

‘요하의 목소리엔 한이 담겨 있으니까.’

성현은 그 점을 제대로 이용하기로 했다.

‘김성민 대표가 준 힌트가 결정적이었어.’

팝적인 노래에 국악을 더하면서 한국인 만의 쏘울인 한을 보여주자는 이번 아이디어에는 김성민 대표가 주선아에게 보내준 영상의 힘이 컸다.

며칠 전 함께 확인한 주선아의 스폰서가 보내준 보이그룹의 뮤비는 바로 이런 멋을 제대로 살려 세계를 강타했던 곡과 퍼포먼스가 담긴 뮤비였다.

그것을 본 성현은 단숨에 김성민 대표가 말하려는 바를 캐치할 수 있었다.

- 가장 민족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다.

무조건적으로 팝적인 소울을 따라 해야만 소울을 보여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전통의 색이 강한 곡과 노래일지라도 노래와 무대가 좋으면 어디에서든 누구에게든 통할 수 있었다.

이런 성현의 예상은 적중했다.

지금까지 무미건조한 표정으로 있던 모건의 입가에 미소가 걸린 것이다.

성현은 무대에 푹 빠져서 주선아와 임하나의 몸짓에, 김요하의 목소리에 푹 빠진 모건을 확인했다.

모건은 솔직히 흥미로웠다.

한국에 와서 처음으로 순수하게 음악에 흥미를 느꼈다.

어느새 그의 발은 테이블 밑으로 까닥거리며 리듬을 타고 있었다.

생소한 가락임에도 듣는 이로 하여금 몸을 절로 움직이게 만드는 마력이 있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음악의 본질이기도 했다.

“덩기덕. 쿵더러쿵. 얼쑤 좋다.”

김요하는 성현이 요청한 바람대로, 아니 그 이상으로 무대를 제대로 휘저어주고 있었다.

가사 자체도 판소리에서 사용할 법한 음절을 따와 여러 번 반복했는데 이것이 촌스럽게 느껴지지 않았고 키치하게 느껴졌다.

‘흥미롭네. 곡 구성 자체도 재밌지만 춤도 그에 뒤지지 않아.’

김요하의 한이 섞인 목소리 말고 춤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미 익숙한 멜로디가 지나가고 한국의 전통 악기 소리가 더해지고 나서, 댄스도 주선아, 임하나 둘의 포텐셜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전통 놀이에서 나올 법한 춤.

임하나와 주선아가 머리를 맞대고 연구한 안무였다.

둘의 환상적인 호흡으로 전혀 촌스럽지 않고 세련된 안무가 이어졌다.

처음엔 굉장히 이질적이었지만 노래와 무대가 좋았다.

이질성은 곧 매력으로 바뀌었다.

무대가 끝나가는 것이 아쉬울 만큼.

무대를 지켜보던 모건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간 것을 본 한국인 심사위원들을 자신들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와. 진짜 이건 생각지도 못했는데. 역시 한 방이 있어. 저 친구는.”

“사실 말은 안 해도 지금까지 외국 프로듀서들 반응이 영 별로라 민망했었거든요. 그래도 마지막 자존심은 지킨 것 같아 다행입니다.”

한국인 심사위원들, 그동안 모건과 다른 프로듀서 반응이 영 별로라 자존심이 상해 있었는데 성현의 팀이 마침내 그들의 몸을 들썩이게 한 것이다.

그것도 한국 고유의 것을 사용한 무대였다.

심사위원들은 안도도 잠시 넘쳐흐르는 뿌듯함에 어깨가 절로 올라가고 있었다.

‘무대 구성을 영리하게 잘했어. 여자 보컬로만 채웠으면 자칫 밋밋했을 수도 있었을 텐데.’

모건의 시선은 이제 무대를 떠나 무대 밑 성현을 향해 있었다.

이 모든 걸 짧은 시간 안에 구성한 건 분명 저 프로듀서일 테다.

모건은 처음엔 이질적으로 느껴졌지만 곧 자연스럽게 그 이질적인 노래와 무대를 받아들이게 한 성현이 놀라웠다.

거기에 이 곡에 딱 어울리는 김요하의 보컬을 넣은 성현의 선택이 마음에 들었다.

김요하 역시 이 오디션 참가자라는 것을 모르는 모건은 적재적소에 맞는 인재를 영입한 성현의 능력 역시 높게 쳐주고 있었다.

“손가락질 할 시간에 네 밥그릇이나 챙겨. 넌 곧 내 엉덩이 밑에 깔릴 거니까.”

그때 주선아, 묘하게 모건 쪽을 가리키며 노랠 불렀다.

모건 역시 그 퍼포먼스를 캐치해냈다.

“방금 가사 뭐라고 한 겁니까?”

모건은 묘하게 주선아가 자신을 가리키며 말한 것 같자 바로 통역사에게 물었다.

통역사는 모건의 질문에 난처한 기색을 내비쳤다.

“그게......”

“괜찮아요. 말씀하세요.”

“밥그릇 챙기시라고......곧 자기 엉덩이 밑에 깔릴 거라고......”

통역사는 민망함에 목소리 끝을 흐렸다.

모건은 재밌다는 듯 웃는다.

기분이 상하지는 않았다.

정말이다. 일이 재밌어졌다.

***

무대가 끝나고, 성현네 팀이 모건을 비롯한 심사위원들 앞에 섰다.

“편곡 의도가 궁금하군요.”

모건의 질문은 곧장 성현을 향했고 성현도 막힘 없이 입을 열었다.

이 앞의 무대에서 궁금한 것 없이 무난하게 심사 시간을 넘기던 모습과는 딴판이었다.

“피디님께선 세계적인 음악이 무엇이라 생각하세요?”

성현은 대답을 주는 대신 역으로 질문했다.

성현의 태도에 모건은 흥미를 보이며 고개를 기울였다.

그 모습을 확인한 성현은 말을 이어갔다.

“가장 민족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 전 가장 한국적인 음악을 잘만 보여줄 수 있다면 그것이 세계적인 음악이 될 것이라 믿어 이러한 편곡을 했습니다.”

“그것이 비주류임에도 불구하고? 한국 음악 시장이 거대해졌다곤 하지만 한국은 작은 나라예요. 한국인의 존재감은 이곳 음악 시장에서 미미하단 소립니다.”

모건은 단칼에 한국이 직면하고 있는 현실을 지적했다.

성현은 이 정도 지적은 예상했다는 듯이 당황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그래서요? 이미 잘 나가는 외국 음악을 무조건적으로 따라 하면 세계적인 음악이 탄생할 거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제 생각은 다릅니다. 전 오히려 무조건 외국 음악을 따라가는 것이 더 편협하고 갇혀있는 사고 같아서 싫습니다. 문화엔 옳고 그름이 없고 다름만 있으니까요. 달라서 낯설지라도 그것이 좋은 음악, 진심을 담은 음악이라면 반드시 세계에서도 통할 거라 믿습니다.”

성현의 말은 살짝 돌렸지만 모건이 천소울에게 했던 악평을 돌려 까는 발언이었다.

모건은 통역사에게 성현의 말을 전해 듣고 표정이 굳어졌다.

모건은 더 이상 말을 하는 것 없이 심사평을 마무리지었다.

“알겠습니다. 아무래도 회의가 필요할 것 같군요.”

모건이 당장 선택을 내리긴 어렵다며 진행요원을 불러 오디션을 잠시 중단시켰다.

이에 모든 참가자들은 대기실로 향했다.

“그래도 실수 없이 백프로 다 보여줘서 다행이다. 요하 너도 갑자기 하게 돼서 당황했을 텐데 기특해 아주.”

“영광이죠. 모건 앞에서 노래도 해보고.”

“그렇지? 이건 진짜 길이길이 남을 가문의 영광이긴 해.”

임하나와 김요하는 모건 앞에서 완벽한 무대를 했다는 것에 만족한 상태였다.

아직 무대가 다 끝난 여운에서 벗어나지 않았는지 둘은 연신 무대에 대한 감상을 주고받으며 서로 추켜세워주고 있었다.

둘 모두 방금 무대에 만족한다는 방증이었다.

성현이 가수들의 반응을 체크하는데 주선아는 조용히 안도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걸로 선생님이 다시 일어나면 좋을 텐데.’

무대를 무사히 마쳤다.

주선아가 할 수 있는 것은 모두 끝났다.

지금부터는 천소울에게 희망을 걸어볼 차례였다.

천소울에게, 그리고 그가 가지고 있었던 음악적 열망에.

***

성현과 팀원들이 대기실에서 기다리는데 진행요원이 들어왔다.

“세 명의 심사위원께서 이성현 참가자와 따로 만나길 원하세요.”

진행요원의 말에 임하나와 요하, 서로 눈을 마주치더니 얼싸안았다.

심사위원들이 우리를 부르다니!

이보다 좋은 징조는 없었다.

“꺄아! 우리가 일등인가 봐!”

성현은 잔뜩 신이 난 임하나와 요하를 두고 진행요원의 안내를 받아 대기실을 나섰다.

진행요원은 성현을 심사위원의 있는 방으로 안내했고 그 자리엔 세 명의 해외 아티스트들이 아까 미처 하지 못한 평가를 시작했다.

먼저 입을 연 것은 마이클 하넬이었다.

“다른 참가자들과 전혀 다른 컨셉을 잡아 무대를 준비한 것에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국악이란 한국 정통 음악을 택하기란 쉽지 않았을 텐데 말이죠.”

“같은 동양인으로서 본받을 점이 많았던 무대였고 음악성 또한 뛰어났습니다.”

히로시 역시 감명받았다는 듯이 성현에게 작게 묵례를 하며 말했다.

둘의 심사평이 끝나고 마지막 순서는 모건이었다.

모건은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으며 성현을 보다 입을 뗐다.

“솔직히 처음에 당신 말을 들었을 땐 불쾌했습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음악에 대한 철학에 도전하는 것 같이 느껴졌거든요.”

모건은 자신의 솔직한 심정을 밝혔다.

방금 무대에서 들은 성현의 도전적인 발언이 그에게 확실한 영향을 미친 듯했다.

성현은 잠자코 모건의 다음 말에 집중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모건이 말하는 지점은 성현이 정확하게 의도한 그대로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인정하게 됐습니다. 이성현 참가자, 당신의 말은 틀리지 않았어요. 한국인이 아닌 내가 오디션이란 걸 잊을 정도로 무대를 즐겼으니까.”

“감사합니다.”

성현은 이어지는 모건의 말에 드디어 긴장을 풀고 미소 지었다.

모건은 그런 성현에게 마주 웃어주며 말을 마쳤다.

“영감을 주는 노래 준비해줘서 고맙고 전 이성현 참가자 팀의 무대가 가장 좋았습니다.”

모건의 말에 나머지 심사위원들도 저도요, 라며 거들었다.

심사 결과는 만장일치였다.

추가로 들어온 성현의 팀이 결국 일을 냈다.

성현은 이 무대로 주선아의 잠재성과 임하나와의 케미도 확인할 수 있었다.

거기다가 기어이 모건의 콧대를 누르고 시크릿 스테이지에서 1등을 해냈다.

초대받지도 못했던 시크릿 스테이지에서마저도 좋은 성적을 거둔 것이다.

“1등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주최 측과 약속했던 대로 커넥트 앱을 통해 보상을 지급하도록 하겠습니다.”

성현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흘러가는 상황에 조용히 기뻐하며 동시에 안도했다.

이로써 천소울에게 보여줄 무대를 완성했다.

오늘 이 무대로 자신은 할 수 있는 모든 걸 했다.

이제 남은 것은 천소울의 선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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