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같은 프로듀서는 없었다-69화 (69/273)

69화

주선아와 임하나는 새롭게 만든 곡으로 마지막 연습을 끝냈다.

댄스 자체가 고난이도였기 때문에 호흡 컨트롤을 하는 것이 어렵긴 했지만 둘 다 원체 실력이 뛰어났기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

연습을 통해 둘의 호흡이 맞자 금방 극복할 수 있었고, 연습이 계속될수록 흠잡을 것 없는 무대가 완성돼 갔다.

두 사람도 그걸 느꼈는지 연습을 하면 할수록 무대에 대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모건 그 사람도 이번 무대 보면 한국인의 매운맛을 제대로 느끼게 될걸?”

“언니. 우리 같이 그 기고만장한 자존심을 확 꺾어버려요.”

주선아와 임하나는 어느덧 완벽한 팀을 이루고 있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격한 연습을 통해 둘은 본 지 며칠 된 사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가까워져 있었다.

연습 내내 가볍게 주거니 받거니 하는 둘은 이미 한 팀이었다.

뭔가가 아쉬웠다.

프로듀서의 관점으로 봤을 때 둘의 퍼포먼스는 훌륭하긴 했지만 2프로 부족한 느낌이 들었다.

마치 추가 오디션에서 주선아를 무대에 세우려고 했을 때 받았던 느낌과 비슷했다.

분명 무대가 가득 채워진 느낌이고 듣기에도 나쁘지 않았지만 인상적이지 못했다.

‘뭐가 부족한 걸까.’

두 사람이 다시 한번 무대를 맞춰보고 쉬는 동안 성현은 생각에 잠겼다.

곡과 안무, 무대 구성까지 잘 완성됐다.

그럼에도 2프로의 임팩트가 부족하다는 감상은 지워지지 않았다.

고심에 고심을 거듭하던 성현은 이내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었다.

바로 주선아와 임하나의 보컬이었다.

둘 다 보컬 실력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니었다.

다만 좀 더 곡 스타일에 맞는 목소리가 부족한 느낌이었다.

즉, 남자 보컬이 필요했다.

보컬을 추가하는 건 생각보다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이미 둘의 무대 구성은 완성 단계에 다다라 있었다.

보컬이 추가된다면 그에 따라서 편곡도 새롭게 하고 가사를 쓰는 건 물론이고 이미 합을 완벽하게 맞춘 임하나와 주선아가 또다시 새롭게 합을 맞춰야 했다.

성현은 생각에 잠겼다.

2프로.

보는 이에 따라선 부족해 보일 수도 있고 티가 안 날 수도 있는 적은 수치였다.

오디션 날이 얼마 안 남은 기간이었기에 성현은 더욱 고민이 됐다.

이때 섣부르게 곡은 건드리거나 무대 구성을 바꾸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알 수 없었다.

거기에다가 바뀐 곡 구성에 맞게 다시 연습을 시작해야 했기 때문에 리스크가 더 컸다.

평소 성현이었다면 상황에 맞게 다른 것을 강조하여 부족한 지점을 숨겼겠지만 이번엔 달랐다.

성현에게 이번 무대는 천소울을 위한 무대였다.

성현은 모건이 아니라 천소울을 위해서 완벽한 무대를 꾸미고 싶었다.

그가 보고 감동할 수 있는 최고의 무대.

단순히 모건의 코를 납작하게 해주는 정도가 아니라 천소울이 이 무대를 보고 돌아오고 싶게끔 만들어야 했다.

천소울을 위한 무대라는 걸 상기하자 성현에게 있어 2프로는 200프로 부족함으로 느껴졌다. 성현은 고민을 끝냈다.

‘이번만큼은 완벽한 무대를 꾸미고 싶어.’

본선 2라운드의 버스킹 공연이 성현이 천소울의 라이브를 처음으로 감상한 거라면 이번 무대는 천소울이 성현의 무대를 처음으로 라이브로 지켜보는 쇼케이스 같은 무대였다.

이 기회에 천소울에게 자신의 이름을 확실하게 각인시켜야만 했다.

성현은 위험을 감수하고도 도박을 걸기로 했다.

얼마 안 남은 시간이라도 최선이 아니라 최상의 선택을 하기로 마음 먹었다.

‘누가 있으려나.’

곡과 어울리는 음색을 가진 보컬리스트를 떠올리는데 이내 누군가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렇다. 성현한텐 확실한 무기가 있었다.

성현은 저도 모르게 웃음을 지으며 한창 연습 중인 둘에게 말했다.

“보컬 하나를 더 추가하죠.”

싱긋 웃으며 말하는 성현의 모습에 연습 중이던 임하나와 주선아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는다.

당황스러움의 연속이었다.

임하나는 성현이 아무 생각 없이 저런 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지만서도 다시 한번 확실히 하기 위해 물었다.

“보컬 하나 추가라는 게 제가 아는 그 의미가 맞을까요?”

“네.”

성현의 단호한 말에 임하나는 당황했다.

“보컬 추가요? 어떤 식으로요?”

이미 편곡된 곡으로 성현의 실력은 확인할 수 있었다.

성현이 저렇게 말하는 거라면 믿어볼 가치가 있다는 판단이 섰다.

성현은 주선아의 물음에 자신이 지금 느낀 아쉬움에 대해 설명했다.

“이대로는 1등 못할 수도 있다는 거죠?”

“그렇죠.”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이유.

“좋아요. 1등만 할 수 있다면.”

이미 성현에 대한 믿음이 굳혀졌다.

성현의 선택이라면 일단 따르자고 보는 것 같았다.

이 무대를 준비하는 마음가짐은 자신과 성현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 이유까지는 알 수 없었지만 성현 역시 천소울이 이대로 망가지길 원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주선아로서는 성현의 말을 따르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성현이라면 항상 천소울을 위한 최상의 선택만 할 사람이란 걸 이제 알았기 때문이다.

“저도 성현씨니까 믿고 따를게요. 그래서 새 보컬이 누군데요? ”

주선아까지 괜찮다고 말하자 임하나는 고집부릴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임하나는 성현의 지금까지 프로듀싱 능력을 떠올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임하나의 말에 성현, 씨익 웃을 뿐이었다.

무언가 재미난 장난을 준비한다는 듯이.

***

최종 오디션 당일이 되었다.

모건과 심사위원들이 심사석에 앉자 마지막 시크릿 스테이지가 시작됐다.

‘한국에서의 마지막 일정이군.’

본격적인 공연에 앞서 무대에 자리한 참가자들을 보던 모건은 지금까지 한국에 와서 봤던 무대들을 하나 하나 떠올려봤다.

딱히 기억에 남는 무대도 없었고 자신이 기대하는 세계적으로 성공할 재목을 가진 아티스트도 찾지 못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그는 이미 수많은 히트 앨범과 노래를 만든 프로듀서였고 웬만한 실력으로 그를 완벽하게 만족시키는 건 불가능했으니까.

‘한국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어. KPOP 열풍 때문에 기대를 많이 하고 왔는데.’

모건은 한국 참가자들이 수준 미달이라고 평가를 마치고 생각에 잠겼다.

이 뒤에 벌어질 미국 오디션 진행 상황을 떠올렸다.

‘지금쯤 본선 3라운드 진행되고 있으려나. 제임스가 이번에 준비한 곡이 죽이던데. 이번 일정 끝나면 그것 먼저 확인해봐야겠어.’

모건의 마음은 이미 한국을 떠나 미국에 가 있었다.

미국 상황을 떠올리자 당장 일정을 마무리 짓고 미국으로 넘어가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때마침 진행요원이 본격적으로 오디션을 진행했다.

모건은 지루한 표정으로 무대로 시선을 옮겼다.

“첫 번째 팀 무대 시작하겠습니다.”

진행요원 말에 무대로 첫 번째 팀이 올라왔다.

모건은 언제나처럼 턱을 괴며 무대를 지켜봤다.

참가자들이 곡을 어떻게 편곡하여 어떤 무대를 꾸밀까 궁금하긴 했지만 기대가 되진 않았다.

어차피 이곳에서 자신을 만족시킬 수 있는 참가자는 없어 보였으니까.

그렇게 첫 번째 팀의 무대가 끝이 나고,

“괜찮은 무대였습니다.”

딱 그 정도의 칭찬.

모건은 저번처럼 비난을 하지도 칭찬을 하지도 않고 그저 그런 반응을 보였다.

무난한 반응에 오히려 참가자들과 방송국 사람들이 당황했을 정도였다.

독설을 하지 않는 모건이라니?

방금 전의 무대를 떠올렸지만 트집 잡을 곳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었다.

모건의 심사평이 줄어든 것은 그만큼 기대치가 많이 낮아진 탓도 있었고 참가자들의 실력이 좋은 탓도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모건을 만족시킬 정도의 실력은 아니었지만.

몇 차례 참가자들의 무대가 흘러갔고 모건은 그때마다 괜찮은 무대라는 단순한 심사평만 내놓았다.

이쯤 되자 모두가 눈치챘다.

모건의 마음은 이미 심사장을 떴구나.

곁에 앉은 다른 심사위원들은 물론이고 카메라를 돌리고 있는 방송국 직원들까지 덩달아 덤덤한 심정으로 무대를 보게 됐다.

시간이 흘러 대다수의 참가자들의 순서가 끝났을 때 심사위원 하나가 모건을 부른다.

“모건. 당신이 좋아하는 참가자 차례네요.”

심사위원 말에 모건이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 무대를 보자, 마침 무대에 임하나, 주선아가 올라오는 것이 보였다.

그 모습을 보고 무대 밑을 확인하자 성현의 모습도 보였다.

‘이름이 뭐였더라.’

모건은 성현의 얼굴을 보고는 참가자들 정보가 적힌 종이를 확인해 성현의 이름을 다시 확인했다.

추가 오디션의 강렬했던 인상이 잠시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모건은 다시 심드렁하게 서류를 내려놓았다.

“원곡보다 좋았다면서요.”

다른 심사위원 말에 모건은 피식 웃으며 성현을 쳐다봤다.

가볍게 고개를 젓는 모건의 모습에 오히려 말을 꺼낸 심사위원은 머쓱하게 입을 닫았다.

‘재능이 있긴 하지만 세계 무대를 노릴 정도는 아니야.’

모건은 냉정하게 판단했다.

물론 추가 오디션의 성현의 무대가 흥미롭기도 했으며 음악성도 괜찮았다.

하지만 거기까지.

그것이 세계 무대를 노릴 수 있느냐를 봤을 땐 아니었다.

모건은 이전 참가자들을 볼 때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턱을 괴고 있었다.

하지만 눈빛만은 달랐다.

저번 추가 오디션에서 다른 참가자들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던 성현이었다.

‘어디 이번에도 날 한 번 놀라게 해보라고.’

드디어 주선아와 임하나 무대가 시작됐다.

도입부 8마디가 지나가는 동안 모건의 표정은 어떤 변화도 없었다.

‘저번 무대보다 더 별론데.’

모건은 어떤 특색도 없는 노래에 별다른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오히려 저번 무대보다 퇴보했단 생각에 인상을 썼다.

결국 이렇게 되었다는 생각에 시선을 테이블로 내렸다.

‘정말, 한국 측 참가자들은 개성이라곤 찾아볼 수 없군….’

그나마 기대했었던 성현의 무대였기에 모건의 실망감은 더욱 컸다.

모건은 펜을 손으로 돌리며 성현의 이름이 적힌 종이에 엑스자를 치려는 순간, 펜을 쥔 그의 손이 삐끗했다.

귀에 꽂히는 멜로디가 변했다.

모건은 팔을 괴고 있던 손을 풀었다.

평범한 도입부 8마디가 지나가더니 갑자기 노래에 국악이 더해지더니 그루비한 댄스곡과 조화를 이루기 시작했다.

트렌디한 비트에 한국 전통 악기인 북과 거문고 소리가 멜로디에 얹어졌고 오디션장에 있던 한국인들 모두 놀랄 수밖에 없었다.

팝송에 한국 정통 음악을 더할 줄이라곤 상상도 못 했기 때문이다.

무대를 지켜보던 스탭들이 순간 웅성거릴 정도였다.

놀라기는 해외 아티스트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생전 처음 들어보는 특색 있는 음악이었다.

모건 역시 생소한 소리가 귀에 꽂히자 급하게 옆을 돌아보며 물었다.

“방금 나온 악기 뭡니까?”

“한국 전통 악기 중 하나인 거문고입니다.”

한국인 심사위원 말에 모건은 허탈한 웃음을 보였다.

전통 악기.

팝적인 소울을 강조하는 모건에게 도전장을 내민 한국의 전통 음악이었다.

모건은 무대를 보다가 살짝 시선을 돌려 무대에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는 성현을 한번 쳐다보았다.

‘재밌네. 이건 전혀 예상치 못한 전갠데.’

성현의 예상치 못한 한 방에 재밌어하는데 성현의 한 방은 이에 그치지 않았다.

주선아와 임하나가 가득 채우고 있는 무대 뒷면이 반으로 가르며 열리고 한 실루엣이 서서히 모습을 보였다.

“얼씨구나 좋다. 네가 아무리 날 욕해도 난 전혀 신경 안 써.”

갑자기 맑은 미성이 스튜디오를 가득 채웠다.

맑은 미성 사이사이 걸죽한 꺾기 부분에는 묘한 탁성이 묻어나고 있었다.

특색있는 목소리의 주인공은 고등학생 정도로 앳되어 보이는 소년, 요하가 무대에 오른 것이다.

성현의 히든 카드, 요하의 등장이었다.

요하는 트렌디하게 개량된 두루마기를 루즈하게 걸친 채였다.

모건은 예상치 못한 3번째 보컬의 등장에 저도 모르게 무대 쪽으로 상체를 기울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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