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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같은 프로듀서는 없었다-68화 (68/273)

68화

“프로듀서들 다 똑같아. 다 그랬으니까. 당신도 그럴 거고...... 아니다. 당연한 건가? 재능 없는 가수를 누가 원하겠어.”

천소울은 계속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스스로를 자학했다.

성현은 그런 천소울을 지켜봤다.

중얼거리는 천소울은 시크릿 스테이지가 시작하기 전의 모습과는 딴판이었다.

성현은 안타까웠다.

‘스스로에 대한 실망감이 가장 크겠지.’

천소울은 천재이며 동시에 자존심까지 강한 탓에 오히려 다른 사람들보다 더욱 멘탈이 약했다.

남들에겐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지점들도 천소울에겐 아니었다.

작은 지점들이 극대화되면서 스스로에 대한 실망감과 자괴감으로 이어졌으리라.

성현은 천소울이 겪었을 트라우마에 대해 더 알고 싶어졌다.

과거에 어떤 일이 있었기에 이렇게 작은 일로도 무너지는지 알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자세히 알 방법이 없었다. 지금 성현이 할 수 있는 것은 이 좌절을 극복하게 해주는 것이다.

‘내가 그 트라우마를 깨줄 순 없을까.’

성현이 보기에 천소울이 가지고 있는 트라우마는 앞으로도 두고두고 그가 음악을 하는 데 있어서 장애물이 될 것이 분명했다.

누가 뭐래도 천소울을 최고의 아티스트로 만들고 싶은 성현은 그가 가지고 있는 트라우마를 자신의 손으로 없앨 것이라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았다.

성현은 보고 싶었다.

‘천소울이 최고가 되는 모습을.’

그리고 그 천소울을 최고로 만들어내는 자신의 모습을.

여기까지 생각을 정리한 성현은 다시 술병에 입을 데려는 천소울을 향해 입을 열었다.

“천소울.”

평소 부드러웠던 성현의 목소리와 사뭇 다른 가라앉은 목소리.

천소울은 조금 당황해서 성현을 올려다봤다.

“당신이 지금까지 어떤 프로듀서를 만났는진 모르겠지만 난 내 안목을 믿어. 난 천소울씨 당신이 최고가 될 수 있다 믿는다고.”

“그딴 말도 지겨우니까 가. 가라고, 제발......”

성현의 말에 천소울은 괴롭다는 듯 머릴 감쌌다.

성현은 천소울 말에 천천히 짐을 챙겼다.

천소울은 무언가 대단한 말을 할 것 같던 성현이 순순히 가려는 낌새를 보이자 조금 당황해서 이쪽을 쳐다봤다.

“갈 거야. 백 마디 말보다 직접 보여주는 게 나을 것 같아서. 시크릿 스테이지 최종 라운드 언제 하는지 알죠? 그때 꼭 와요. 내가 증명할 테니까.”

“......뭘 증명하는데?”

“나 같은 프로듀서는 없을 거란 말.”

성현의 말에 천소울의 눈빛이 순간 흔들린다.

이걸 믿어야 하나.

흔들리고 있다.

성현은 그 표정을 놓치지 않았다.

아직 희망은 있었다.

“왜.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건데.”

천소울은 문득 성현이 자신의 작업실까지 찾아오고 시크릿 스테이지까지 참가하면서까지 자신한테 이러는 이유가 궁금해졌다.

막말로 둘 모두 오디션의 참가자일 뿐이었다.

성현은 순조롭게 문제없이 위로 올라가고 있는 중이었고 천소울 자신은 지금 미끄러진 상태였다.

이번 시크릿 스테이지 때 주최 측에게도 별로 좋지 않은 인상을 남겼을 것이 분명했다.

자신의 사고로는 전혀 이해가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천소울 당신이랑 최고의 무대, 꼭 만들고 싶으니까.”

성현은 그 말을 끝으로 천소울의 작업실을 나섰다.

천소울은 성현이 떠나고 닫힌 문을 한동안 물끄러미 바라봤다.

***

주선아, 임하나와 만나기로 한 연습장에 먼저 도착한 성현은 홀로 앉아 생각에 잠겨 있었다.

성현은 시크릿 스테이지 오디션 날 들었던 얘길 복기하는 중이었다.

시크릿 스테이지 마지막 무대는 다섯 참가자가 모두 같은 원곡을 받는다.

하나의 곡으로 꾸린 각기 다른 다섯 개의 무대를 보고 판단하겠다는 취지였다.

그들이 요구하는 단 하나의 심사조건은 간단했다.

‘세계 무대에서 통할 만한 음악이라.’

모건을 비롯한 해외 아티스트들은 단순히 한국이란 좁은 무대가 아니라 세계에서 통할 만한 음악을 찾고 있었다. 시크릿 스테이지는 한국 오디션 참가자들의 역량을 보여줘야 하는 무대였다.

‘그 음악이 어떤 음악일까.’

성현은 그들이 원하는 세계 무대에서 통할 수 있는 음악이 무엇일까 생각에 잠겼다.

천소울의 모습을 확인하기 위해 확인한 녹화분을 보고서 확실한 건 모건은 그 답을 팝적인 소울이 담긴 음악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팝적인 소울, 현재 모건이 하고 있는 음악.

그는 그것으로 큰 성공을 거두고 있었으니까.

그러나 성현은 순순히 그의 음악관에 맞춰 줄 생각은 없었다.

성현은 모건의 편견과 통념을 깨부수고 싶었다.

그와 동시에 천소울의 멘탈을 다시 잡아놓고 싶었다.

천소울이 틀리지 않았단 걸 자신이 대신 증명하고 싶었다.

천소울이 가지고 있던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한 가장 빠른 길이기도 했다.

모건과는 다른 메시지를 천소울에게 전해주고 싶었다.

천소울이 하고 있는 음악이 오답인 것이 아니라고.

‘댄스곡을 만드는 건 결정을 했는데......’

임하나와 주선아의 무기가 댄스인만큼 장르를 정하는 것까진 어렵지 않았다.

문제는 어떻게 그 장르를 가지고 얼마나 세계 무대에 통할 음악을 만드느냐였다.

성현이 한참 고민에 빠졌을 때 연습실 문이 열리더니 주선아와 임하나가 들어 왔다.

“대박. 진짜 춤 잘 춘다. 아이돌 중엔 탑이야 확실히. 이 뮤비는 볼 때마다 감탄한다니까.”

“그렇죠. 작사 작곡도 자기들이 한다고 들었는데 진짜 대단한 거 같아요.”

임하나와 주선아는 같은 휴대폰 속 영상을 보며 연신 감탄을 외치고 있었다.

성현은 심상치 않은 둘의 반응을 보고 일어나서 둘 곁으로 다가갔다.

“뭔데 그래요?”

생각에 잠겨 있었음에도 두 사람이 연신 감탄사를 내뱉자 궁금해졌다. 댄스 무대를 어떻게 꾸밀지 해답을 찾지 못했는데 저 영상이 무언가 힌트가 되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김성민 대표님이 뮤직비디오 링크를 보내주셨어요.”

‘스폰서에서 갑자기 뮤직비디오를?’

성현은 의아해서 주선아의 휴대폰 속 영상을 보니 뮤직비디오는 조회수가 무려 5억 6천 뷰를 넘어가는 유명한 뮤직비디오였다. 그런데 이 영상을 왜...?

“메가히트엔터 소속 보이그룹 아닌가요?”

“네. 맞아요. 김성민 대표님이 직접 픽해서 키웠다는데 갑자기 이걸 저한테 왜 보내줬는지 모르겠어요.”

주선아가 보여준 보이그룹은 한국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모르는 사람이 없는 KPOP 보이그룹이었다.

그들은 KPOP의 글로벌화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그룹이면서 미국 시장에서도 영어가 아닌 한국어로 노래를 불렀다.

주선아 역시 갑자기 김성민 대표가 이걸 보내줬는지 따로 듣지 못했는지 감탄을 하면서도 선뜻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그러게. 이 노래 모르는 사람은 없을 거고 가수 지망생이라면 뮤비도 다 봤을 텐데.”

임하나 또한 조금 의아해서 고개를 갸웃거리며 뮤비를 감상했다.

그때 성현이 무언가가 떠오른 듯, 갑자기 자신의 짐을 챙겼다.

놀란 둘이 성현을 쳐다봤다.

성현은 놀란 두 사람에게 설명할 시간도 없는지 다급하게 말을 뱉고 연습실을 나섰다.

“미안한데 저 급하게 작업실 좀 가봐야 할 거 같아요. 오늘은 두 분 다 개인 연습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네? 갑자기요? 성현씨!”

임하나는 당황해서 성현을 불렀다.

그러나 성현은 제대로 뒤돌아보지도 않으며, 미안하단 말과 함께 다급하게 연습실을 나가버렸다.

두 사람은 바람처럼 사라진 성현의 자취에 영문을 몰라 했다.

주선아는 성현과 함께 작업을 해본 경험이 없기에 더욱 황당했다.

주선아는 임하나를 돌아보며 날카롭게 물었다.

“원래 이렇게 무책임해요?”

주선아는 연습 도중 사라진 성현에게 대놓고 불쾌감을 표했다.

당연할 수밖에.

주선아에게는 천소울을 구하기 위해 시작한 무대였기에 더욱 소중한 무대였다.

그런 중요한 일정을 앞두고 성현이 어떤 설명도 없이 연습실을 나가버린 것이다.

임하나는 씩씩거리는 주선아를 달래며 말했다.

자신도 성현과 그렇게 오래 일해본 것은 아니지만 성현이 아무 생각 없이 저렇게 나가버릴 사람은 아니라는 것은 확실했다.

“나도 오래 봐온 건 아니지만 절대 무책임한 사람은 아니야. 무슨 생각이 있는 것 같으니까 기다려 보자.”

***

그렇게 다음 날 연습실에 다시 모인 셋.

먼저 연습실에 도착해 성현을 기다리는 주선아의 표정은 여전히 밝지 못했다.

뒤늦게 연습실에 도착한 임하나는 주선아의 눈치를 살폈다.

“좀 늦네.”

임하나는 평소라면 정각도 전에 미리 와서 연습 준비를 하던 성현이 지각까지 하자 조금 초조해져서 연습실 문을 힐끔거렸다.

주선아는 결국 참지 못하고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 가게?”

“이대로 시간 버릴 바엔 뭐라도 해야죠.”

주선아는 조급해진 마음을 갈무리하며 몸을 풀기 시작했다.

임하나는 주선아가 뛰쳐나가지는 않을까 했던 걱정이 무색하게 스트레칭을 시작한 주선아 곁으로 가서 섰다.

얼마나 둘이 몸을 풀고 있었을까.

문이 벌컥 열리면서 성현이 들어왔다.

성현은 급하게 왔는지 숨을 조금 헐떡거렸고 평소 깔끔하던 모습과 달리 얼굴엔 피로함이 가득해 보였다.

“성현씨, 컨디션 괜찮아요?”

“네. 어제 갑자기 가서 미안해요.”

“어젠 갑자기 왜 가신 거예요?”

주선아는 성현을 보곤 조금 까칠하게 물었다.

성현은 싱긋 웃으며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냈다.

“이것 좀 준비하느라.”

성현이 자신 있게 꺼내든 건 USB 하나.

곧바로 미디에 꽂고 곡을 틀자 밤새 작업한 곡이 연습실을 가득 메운다.

시작은 모건이 처음 준 음악과 별만 다를 바 없었기에 주선아의 까칠한 표정은 풀릴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러다 8마디가 좀 지나갔을까 주선아의 눈이 조금씩 커졌고 자신도 모르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와.”

“설마 이 악기......?”

임하나는 생각지도 못한 악기가 멜로디 중간 튀어나오자 깜짝 놀라 성현을 봤다.

성현은 임하나와 눈을 마주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진짜 천재예요?”

주선아는 이제 완전히 짐을 내려놓고 성현 쪽을 향해 몸을 돌리기까지 했다.

넋이 나가 묻는 표정에 성현은 씨익 웃었다.

“마음에 들어요?”

“너무 마음에 들어요. 어제 이거 작업한다고 가신 거였어요?”

주선아는 방금 전까지 성현에게 세웠던 가시를 모두 내리고 연신 감탄하고 있었다.

임하나는 이럴 거라는 것을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이 흘러나오는 음악에 살짝살짝 리듬을 타는 여유를 보여줬다.

“네. 어젠 갑자기 가버려서 미안해요.”

“감사합니다.”

성현은 어제 경황 없이 나가버린 자신의 행동을 사과했다.

그런데 오히려 주선아가 꾸벅 허리를 숙이는 것이 아닌가.

당황한 성현이 주선아를 일으키려고 했다.

“네?”

“천소울 쌤 위해서 이렇게 좋은 노래 만들어줘서 고맙다구요.”

주선아가 계속 허릴 숙여 인사하자 성현은 조금 쑥스러워져 머리를 긁적였다.

가수가 이런 반응을 보여준 것은 또 처음이었다.

나쁘지 않았다.

성현은 직접 무대를 꾸밀 가수를 놀라게 했으니 1차 관문은 통과했다고 여겼다.

이제 모건과 해외 아티스트들을 놀라게 할 차례였다.

“그럼 이걸로 준비해볼까요? 모건 코를 눌러줄 무대를.”

“네!”

“네!!”

주선아는 성현에게 간략하게 모건과 천소울 사이의 일을 들었기 때문에 더욱 의욕을 보이며 외쳤다.

거기에 평소 승부욕이 강한 임하나 또한 열정을 불태웠다.

둘은 바로 연습실 거울 앞에 서서 성현이 편곡한 노래를 처음부터 다시 재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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