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같은 프로듀서는 없었다-67화 (67/273)

67화

천소울의 노래를 끊은 모건은 다시 또 독설을 시작할 모양인지 목을 가다듬었다.

이번에도 1절이 끝나기도 전에 노래가 중단된 천소울은 참담한 표정이었다.

천소울의 표정이 굳어지건 말건 로건은 자신이 하고픈 말을 쏟아냈다.

“팝적인 곡을 만들어 오랬더니 아예 팝송을 만들어 오면 어떡합니까. 이 정도 팝송 만들 수 있는 프로듀서는 미국에도 널리고 널렸어요. 당신이 가수면 지금 당신이 만든 곡 앨범에 올릴 거 같아요?”

“저 새끼 지금 말이야 방구야.”

녹화된 영상으로 모건의 심사평을 들은 김인호은 저도 모르게 열을 냈다.

천소울의 노래에 저런 심사평이라니. 김인호는 황당함에 AD인 신분을 잊고 모건의 다음 말에 집중했다.

“본인 정체성이 전혀 없는 음악을 하는군요.”

정체성이 없다.

모건의 마지막 말에 그동안 애써 표정 관리를 해오던 천소울은 결국 표정 관리에 실패하고 이내 도망치듯 무대를 떠났다.

이를 지켜보고 있던 성현은 일시정지 버튼을 눌렀다.

그와 동시에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방금 건 좀 셌는데.’

평소 자신의 음악성을 중요시하는 천소울에게 정체성 없단 말은 그 어떤 말보다 수치스러운 말일 터였다.

성현은 수차례 반복되는 게임 플레이를 통해 방금 그 말이 천소울에게 가했을 충격을 잘 알 수 있었다.

그건 주인공 천소울의 역린을 건드리는 발언이었다.

천소울이 받았을 상처를 짐작해본 성현은 더욱 무거운 마음으로 세 번째 사전 연습 녹화분을 틀었다.

“설마 이번에도 뭐라 하진 않겠죠?”

김인호는 이제 어느새 AD가 아니라 천소울을 응원하는 시청자가 되어 저도 모르게 성현에게 물었다. 둘은 숨을 죽이고 영상을 지켜봤다.

천소울이 등장하고 반주가 재생되며 노래가 시작되었다.

하지만 세 번째도 다르지 않았다.

“그만.”

모건이 다시 천소울의 노래를 중단시킨 것이다.

“그렇게 말을 했는데 팝 특유의 소울이 뭔지 모르겠어요?”

“......죄송합니다.”

“미국에서 활동 못 하겠다. 생각보다 너무 재능이 없는데….”

모건의 계속되는 독설에 성현은 결국 녹화분을 꺼버렸다.

끝도 없이 이어지는 모건의 독설에 잔뜩 인상을 쓰고 모니터를 보던 김인호는 성현을 이상하게 쳐다본다.

“갑자기 왜 꺼요?”

아무리 독설로 이루어진 심사평이라지만 이 뒤에 천소울이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했다.

두 번째 노래에서는 무대에서 내려갔는데 이번에는 어떻게 된 거지?

“됐습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될 것 같네요.”

김인호는 갑작스러운 성현의 태도가 이해되지 않았다.

성현은 옆에서 김인호가 무슨 생각을 하든지 신경 쓰지 않고 노트북을 덮으며 생각에 잠겼다.

‘개인적으론 첫 번째 편곡이 가장 좋았던 것 같은데. 모건이 생각하는 글로벌 음악 시장과 맞지 않았을 뿐이지.’

성현은 천소울이 준비한 첫 번째 곡이 가장 마음에 들었지만 모건의 심사기준은 항상 세계적인 음악에 부합하느냐 아니냐였다.

그에 맞춰 천소울 두 번째 곡은 처음 곡보다 팝적인 느낌을 강조하여 만들었다.

그 결과 천소울은 노래를 완창하지 못하고 저지당했다.

모건의 심사평은 가차 없었지만 어느 정도 타당하기도 했다.

모건의 말에 의식한 결과 천소울이 가지고 있는 음악성이 사라졌고 그저 그런 팝송이 되어 버렸다.

그러나 김인호의 감상평처럼 이 역시 훌륭한 곡과 노래였고 결코 지금처럼 비난받을 정도의 졸작은 아니었다.

‘세 번째 무대가 가장 타격이 컸겠지.’

마침내 세 번째 무대.

여기서부터 천소울이 본격적으로 무너져내린 듯 보였다.

정체성이 없는 음악이란 건 결국 자기 색이 없는 음악을 한다는 것.

자신만의 음악을 하겠다고 스폰서 조차 받지 않은 천소울의 성격상 그 말을 듣고 온전한 정신을 붙잡는 것은 불가능했을 터였다.

그 다음은 성현과 주선아가 본 그대로였다. 술 없이는 살 수 없을 정도로 망가진 천소울의 상태.

‘재능이 없어서가 아니라 재능이 넘쳐서 무너진 거야, 결국.’

차라리 모건의 말처럼 천소울이 재능이 없었다면 이처럼 무너지지도 않았을 것이다.

천소울은 재능을 타고난 천재였다.

천소울은 천재라는 수식을 빼고 설명 불가능할 정도로 곡에 대한 이해력, 분석력, 노래 실력, 춤, 뭐 하나 빠지는 것이 없이 탁월했다.

본인 또한 이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결국 주변과 스스로에 대한 기대치가 컸던 만큼 천소울은 모건의 독설에 더욱 무너져내릴 수밖에 없었다.

‘생각보다 빨리 무너진 감이 없지는 않지만.’

성현은 아무래도 이상했다.

천소울이 무너진 계기가 단순히 모건의 독설만은 아니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렇지 않고서는 지금 자신이 느끼는 기시감을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고민할 시간은 많지 않았다.

지금은 천소울이 왜 무너졌는지 원인을 파헤치는 것보다 당장 그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것이 우선이었다.

‘확신과 자신감. 그 두 가지면 돌려주면 될 것 같은데.’

천소울은 지금까지 스스로를 믿고 잘 해왔다.

수도 없이 게임을 진행해본 성현은 알 수 있었다.

지금까지의 천소울은 순탄하게 주위의 시선을 사로잡으면서 자신의 입지를 다지는 중이었다. 하지만 이번에 모건에게 무너지면서 천소울에겐 이전에 없던 결핍이 생겼다.

바로 자신의 노래에 대한 확신과 자신감이었다.

이는 결코 혼자서 이겨낼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역시 천소울한테 가봐야겠어.’

성현이 보기에 지금 상태의 천소울에겐 음악에 대해 정확한 지적과 보완을 해줄 프로듀서가 필요했다.

“천소울 참가자한테 유독 관심이 많은 것 같던데.”

성현이 생각에 잠긴 사이 USB와 노트북을 정리하던 김인호가 성현에게 물었다.

아까처럼 또 무시당하지 않을까 걱정했던 것도 잠시, 성현은 태연하게 대답했다.

“모건의 반응이 조금 예민한 것 같길래 주의 깊게 살펴봤을 뿐이에요. 천소울 참가자와 같은 실수는 반복하면 안 되잖아요.”

성현의 말에 김인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도 그랬다.

“천소울 참가자도 없겠다. 시크릿 스테이지에서 1등 노릴 생각인 거죠?”

지금까지 성현의 행보를 지켜봐 왔던 김인호는 반쯤 확신하며 성현에게 물었다.

“당연하죠.”

왜 그런 걸 묻느냐는 듯한 자신감 넘치는 성현의 확답.

김인호는 자신이 예상한 대답에 기분이 좋아져 웃었다.

“우리가 같은 생각이라니 다행이네요. 이성현 참가자 같은 참가자만 있으면 참 좋겠는데 말입니다.”

“그러게 말이에요.”

성현은 성의 없이 김인호 말에 동조했다.

성현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김인호가 말하는 것처럼 단순히 시크릿 라운드에서 1등을 하는 것은 성현의 목표가 아니었다.

‘내 손으로 증명해 보이고 싶어.’

성현은 이번에 한국을 방문한 해외 아티스트들, 특히 모건에게 증명하고 싶었다.

자신들이 정답이자 진리라고 생각하는 음악이 무조건 정답은 아니라는 것을.

천소울의 음악이 그들의 생각과는 다르게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시크릿 라운드 1등은 부수적인 결과물에 불과했다.

그 무대에서 다른 것을 보여줌으로써 스스로 증명할 생각에 성현은 각오를 다졌다.

이런 성현의 속내를 모르는 김인호 AD는 다른 의미로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내 손으로 우승 후보를 만들다니.’

자신의 채널에 속한 참가자.

이성현이 시크릿 스테이지의 참여자가 된 것도 모자라 1등을 해보겠다고 전의를 불태우고 있었다.

담당 AD로써 이보다 흥분되는 상황은 없었다.

‘잘만하면 해외 스폰서들까지 끌어올 수도 있겠지?’

김인호는 벌써부터 자신에게 떨어질 콩고물을 생각하며 입맛을 다셨다.

그는 성현이 이번 시크릿 스테이지에서 우승을 하여 화제성을 얻을 자신의 채널만 생각하고 있었다.

자신의 채널을 번영시키 위해선 성현이 시크릿 스테이지에서 반드시 좋은 활약을 펼쳐야만 했다.

지금까지 성현을 지켜본 김인호는 이게 영 뜬구름 잡는 소리로 끝나지 않을 거라 확신했다. 여기까지 계산한 김인호는 성현에게 손을 내밀었다.

“1등까지 하길 응원하겠습니다.”

“도와주셔서 감사드려요.”

성현은 내밀어진 손을 힘주어 잡았다.

동상이몽의 두 사람은 각자 다른 목적을 가지고 나란히 카페를 나섰다.

***

김인호와 헤어진 성현은 곧장 택시를 잡아 어디론가 향했다.

천소울의 녹화본을 확인한 이상 꾸물거릴 이유는 없었다.

‘이제는 좀 정신을 차렸어야 할 텐데….’

성현이 택시를 타고 찾아간 곳은 천소울의 작업실이었다.

작업실엔 여전히 불이 꺼져 있었고 문은 열린 상태였다.

“천소울씨?”

성현이 천소울을 부르며 천천히 문을 열고 들어가자 어두운 작업실에서 술냄새가 강하게 풍겨왔다.

이렇게 단시간에 망가질 줄이야.

성현은 고개를 저으며 휴대폰을 꺼냈다.

휴대폰 후레쉬 불빛으로 스위치를 찾아 작업실 불을 켜자 고개를 떨군 채로 의자에 앉아 있는 천소울이 보였다.

그 주변에는 빈 술병이 몇 개 굴러다니고 있었다.

아직 한 병은 천소울이 의자 밑으로 늘어뜨린 손에 들려 있기까지 했다.

저 길죽한 피지컬과 화려한 비주얼만 아니면 어디 노숙자라고 해도 믿을 모양새였다.

“아직도 정신 못 차렸어요?”

성현의 물음에 천소울은 훽 고개를 들더니 성현을 봤다.

폐인처럼 모든 것을 체념한 듯이 비어있던 얼굴이 성현을 발견하자마자 사납게 일그러졌다. 천소울은 으르렁거리듯이 성현에게 외쳤다.

“왜 왔어요? 나 음악 관뒀다니까?”

천소울의 상태는 그대로였다.

저번에 만났을 때와 마찬가지로 천소울은 이전처럼 음악을 관두겠단 소리만 해댔다.

성현은 그 모습에 잘 달래보려던 마음을 버렸다. 성현은 세게 나가기로 했다.

“고작 모건 PD한테 독설 좀 들었다고 음악 포기하는, 그것밖에 안 되는 사람이에요? 그것밖에 안 되는 마음으로 음악 시작했어요?”

“그래. 나 그것밖에 안 돼. 그러니까 꺼지시라고.”

목도 상당히 상한 듯 보였다.

쇳소리가 나는 목소리로 아까와의 기세와는 다르게 중얼거리듯이 내뱉는 천소울.

그 모습을 보자니 성현은 저걸 어떻게 다시 원래 컨디션으로 돌려놓나 잠시 아득해졌다.

천소울은 자조적인 미소를 지으며 술을 들이켜는데 성현은 그에게서 술병을 빼앗았다.

“내놔.”

술을 뺏기자 천소울은 다시 사나워졌다.

천소울이 낮게 경고하는 것을 내려다보던 성현은 보란 듯이 그걸 화장실에 들고 들어갔다.

경쾌한 소리와 함께 술이 모두 변기에 버려지고, 성현은 빈 술병을 들고 나와 천소울을 향해 말했다.

“천소울씨 당신 그것밖에 안 되는 사람 아닙니다. 내가 도와줄게요. 모건이 인정할 수밖에 없는 아티스트로 만들어줄 테니까-”

“당신이 날 과대평가 하네. 내 능력은 딱 우물 안 개구리라 못해, 그런 거.”

성현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천소울은 고개를 저었다.

스스로 자조섞인 말을 하는 것도 서슴지 않았다.

성현의 생각보다도 천소울의 상태가 더 안 좋은 듯했다.

“그때도 똑같았어. 2년 전에도 그때도 다 잘 풀릴 것 같았는데...... 결국 난 그때도 인정 못 받았다고. 이래서 날 배신한 거겠지. 난 재능이 없는 놈이니까.”

그때? 천소울의 말을 듣고 성현이 생각에 잠겼다.

2년... 2년이라...... 머릿속을 뒤지던 성현이 뭔가를 알아채고 고개를 들었다.

2년 전이면 천소울이 싸클에서 음악을 지웠던 시기와 맞물렸다.

‘그냥 음악을 내린 게 아니었어. 그때 확실히 무슨 일이 있긴 있었던 모양이네.’

배신이란 단어까지 사용하는 걸 보면 프로듀서한테서 상처를 받았다는 건 확실해졌다.

그 일로 트라우마가 생겨서 프로듀서 없이 혼자 음악을 해왔을 것이 분명했다.

아마 이번에도 세계적인 프로듀서인 모건에게서 인정받지 못하면서 그때의 트라우마가 발목을 잡은 듯 보였다.

성현은 천소울의 상태를 다시 한번 체크하면서 이 난관을 어떻게 헤쳐나갈까,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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