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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같은 프로듀서는 없었다-66화 (66/273)

66화

다음 날 오전, 모자를 푹 눌러쓴 이성현이 카페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 뒤, 김인호 AD가 성현이 있는 카페에 들어서며 헛웃음을 지었다.

그는 이성현이 있는 자리 앞에 앉더니 곧바로 질문했다.

“어떻게 한 거예요?”

이성현과 주선아가 기어이 ‘시크릿 스테이지’에 추가 합격했다는 소식을 들은 것이다.

아무리 비밀리에 진행된다 해도 이성현 담당 AD라고도 할 수 있는 김인호이기에 그에게도 연락이 가는 건 당연했다.

김인호는 절대 들어갈 수 없다고 단언을 했었기에, 더욱 이 소식을 믿을 수 없었다.

이에 성현은 아무렇지 않게 대하듯 넌지시 말했다.

“주선아 씨 스폰서 덕 좀 봤어요.”

여태껏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지만, 이성현은 정말 말만 하면 뭐든 다 해내는 모습이 그저 경이로웠다.

자신이 픽한 참가자가 이 정도일 줄 몰랐기에 김인호는 고갤 젓기만 했다.

‘진짜 대단한 놈이네.’

단순히 스폰서 때문에 시크릿 스테이지에 참가하는 건 불가능했다.

남은 한 자리에 들어갈 수 있는 기회를 준 건 물론 주선아의 스폰서였다.

그럼에도 그 치열한 경쟁을 뚫고 남은 자리를 차지한 건 온전히 성현, 그리고 그와 함께한 가수 참가자들의 실력이었다.

온갖 실력자들만이 모여있는 자리일 텐데 거기서 티켓을 거머쥐다니.

김인호의 시야에서 성현은 이제 그저 단순한 참가자로 보이지 않았다.

‘실력이 좋은 건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이러다 진짜 우리 채널에서 우승자 나오는 거 아니야? 진짜 그렇게만 되면 초고속 승진에 지긋지긋한 따까리 인생도 끝나는 거고…….’

자신에게 있어 성현은 1등 당첨 확률이 부쩍 높아진 복권이나 다름없게 느껴졌다.

성현의 앞날이 번창할수록 자신도 같이 성장할 수 있단 생각에 혼자 히죽거리며 웃었다.

그런데 성현은 어째 뭔가 마음에 안 드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김인호 AD님?”

“예? 왜, 왜요?”

자신의 흑심이 걸린 건지 순간 당황한 김인호가 말을 더듬으며 되물었다.

성현은 여전히 무언가 바라는 듯 김인호를 재촉하며 물음을 보냈다.

“저번에 말했던 시크릿 스테이지 촬영본, 볼 수 있냐니까요?”

“아, 그거. 스폰서들 보여줄 편집본은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아요.”

말을 듣자마자 성현의 표정은 급격히 어두워졌다.

그는 천소울이 어떤 이유에서 무너지게 된 건지를 보기 위해 촬영본이 필요했었다.

그랬는데 편집본이라니, 그곳엔 천소울의 모든 상황을 담고 있을 리가 없었다.

“무편집본은 못 봐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성현은 재차 물었다.

그의 그늘진 표정이 금방이라도 편집실로 뛰어갈 것 같았다.

김인호 AD는 여전히 힘들다는 표정을 짓기를 잠시, 이내 더 이상은 못 참겠다는 듯 입가에 점점 미소를 짓더니 의기양양한 태도를 보였다.

“제가 누굽니까. 다 준비해왔죠.”

김인호는 자신의 주머니에서 보란 듯이 USB를 꺼내 들었다.

자신을 항상 놀라게 했던 성현에게 건넨 자그마한 복수였다.

“여기에 무편집본 시크릿 스테이지 영상이 담겨 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금세 환한 표정으로 바뀐 성현은 감사 인사를 보내고 USB를 받으려 했다.

그런데 김인호는 자신의 뒤로 USB를 숨기며 쉽사리 주지 않으려 했다.

갑작스러운 그의 반응에 성현은 당혹감이 들어 김인호를 쳐다봤다.

그는 뭔가 성현에게서 캐내려는 듯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김인호는 마지막으로 이성현의 진짜 목적을 확인하고 싶었다.

“이걸 노리는 이유. 시크릿 스테이지에서 좋은 성적 거두려는 목적 확실한 거죠?”

참가자에게 녹화본을 보여주는 것이 규칙에 어긋나는 건 아니었다.

그렇다고 해서 참가자와 주최 측 AD간 이루어질 적절한 행동도 아니었다.

때문에, 김인호는 마지막까지 망설이고 있는 거였다.

허나 이미 그의 생각은 전부 간파한 성현이었다.

그러니 성현은 다소 뻔뻔스러울 정도로 주목적을 숨긴 채 대답했다.

“네. 다른 의도는 전혀 없습니다. 이것만 보면 모건을 비롯한 다른 나라 심사위원들이 뭘 원하는지 알 수 있고 그럼 어떤 걸 준비 해야 하는지 파악 가능하잖아요.”

“그럼 진짜 이것만 보여주면 시크릿 스테이지에서 좋은 성적 거둘 수 있는 거죠?”

“물론이죠 AD님. 제가 이 채널 제대로 키워드리겠습니다.”

성현은 김인호가 이것이 당장 부적절한 행동인 걸 알면서도 녹화본을 자신에게 넘기는 이유를 알았다.

이성현이 꼭 좋은 결과를 만들어냈으면 하니까.

이성현 본인을 위해서. 그리고 김인호 자신을 위해서.

물론 성현이 뱉은 대답에서도 거짓은 없었다.

이번 기회를 통해 주선아와 같이 무대에 설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니 이참에 그녀와 더 좋은 무대를 선사해 보이고 싶어졌다.

그녀와 함께 좋은 결과를 얻어, 천소울을 다시 일으켜 세울 만한 자극이 필요했다.

김인호는 잠시 동안 고민에 빠졌다.

이내, 그는 성현의 예상대로 USB를 넘겨줬다.

‘어차피 비공개로 진행되는 스테이지니까, 뭐.’

애초에 시크릿 스테이지는 선택된 소수들만 참가할 수 있었다.

거기에 그들은 든든한 스폰서들을 하나씩 가지고 있다.

이미 각 나라에서 온 아티스트들의 니즈 정도야 파악하는 건 그들로선 일도 아니었다.

그러니 성현에게 당장 USB를 넘긴다 해도 결과에 큰 지장을 줄 것처럼 보이진 않았다.

시크릿 스테이지가 불합리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어찌 보면 당연한 이치라고도 볼 수 있었다.

어차피 스타성 있는 최상위권 실력의 참가자만이 살아남게 되는 건 어느 곳이나 마찬가지다.

그 자리에 성현이 들어가는 건 김인호에게도 좋은 일이었다.

성현은 김인호 AD한테 USB를 받아 그 자리에서 노트북에 연결했다.

곧이어 노트북 화면엔 미편집본 녹화본이 재생되었다.

***

이성현은 재생되는 녹화본에 집중했다.

첫 장면에선 연습실 내부가 보였다.

이내 참가자들이 한, 두 명씩 연습실에 들어왔다.

성현은 자신이 찾는 얼굴이 보일 때까지 앞으로 가기를 눌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성현이 찾던 얼굴이 나타났다.

‘찾았다. 천소울.’

연습실에 천소울이 들어왔다.

성현은 그의 얼굴을 집중해서 살펴봤다.

분명, 이때까지는 별다른 특이사항은 보이지 않았다.

“이제 곧 들어오겠다.”

함께 영상을 보던 김인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연습실로 모건을 비롯한 해외 아티스트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웅성거리던 연습실은 단번에 조용해지며 그들을 맞이했다.

심사위원들까지 착석하자 진행요원은 오디션을 진행했다.

이로써 본격적으로 시크릿 스테이지가 시작됐다.

첫 번째 참가자가 무대에 섰지만, 성현은 천소울을 제외한 다른 참가자들의 무대엔 관심이 없어 모두 스킵했다.

그렇게 원하는 부분이 나올 때까지 스킵을 하던 중 드디어 천소울의 모습을 발견했다.

성현이 재생 버튼을 누르자 김인호가 다시 끼어들었다.

“이 참가자 잘하긴 하지.”

천소울 역시 이성현처럼 실력이 뛰어난 데다 결과까지 좋았으니 AD들 사이에서도 유명 인사였다.

김인호도 천소울에 대해 익히 알고 있었기에 그의 실력을 인정하는 말투로 고개를 끄덕였다.

천소울은 간략한 인사를 끝으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캬. 음색 죽이네.”

그의 음색은 이때까지 명불허전이었다.

전혀 실망스럽지 않은 무대 모습에 김인호는 천소울의 노래에 한껏 취해 있었다.

하지만 영상 속에서 웃지 못하고 있는 단 한 사람이 성현의 시선을 끌었다.

그는 바로 모건이었다.

그동안 성현이 짐작했던 대로 모건은 천소울의 음악을 전혀 듣고 있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모건은 1절이 끝나갈 무렵에 갑자기 노래를 중단시켰다.

“그만 들어도 될 것 같습니다.”

갑자기 무대를 중단한 모건의 돌발 행동에 김인호가 예상하지 못했다는 듯 놀란 표정을 지었다.

언제나 무덤덤한 표정을 짓던 천소울도 이번만큼은 표정을 일그러트렸다.

지금까지 자신의 노래를 듣다가 중간에 끈 사람은 모건이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어머어머.”

영상을 함께보던 김인호가 자기도 모르게 탄식을 보낼 정도의 차가움.

“다들 천소울 참가자 보고 한국 우승 후보라길래 기대를 많이 했는데 겨우 이 정도예요?”

모건의 청천벽력 같은 말에 화면 속 심사위원들뿐만 아니라 기다리고 있던 참가자들의 눈이 모두 휘둥그레졌다.

그들은 모두 천소울의 노래를 즐겁게 듣고 있었는데, 생각지도 못한 평가가 들려왔으니 당황할 수밖에.

“내가 기대했던 음악은 이런 뻔한 음악이 아닌데.”

한편 모건은 그들이 어떤 반응을 보이든지 자신의 생각을 계속 밀어붙였다.

그들 중 가장 당황한 건 천소울이기에 그의 말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는 이내 억울하다는 듯 모건에게 되물었다.

“뭐가 부족한지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팝인데 팝 같지 않아. 소울이 전혀 안 느껴진단 소립니다. 팝을 부르는 가수가 팝을 못 하면 미국 활동하겠어요?”

“와. 세다.”

모건의 독설에 김인호도 혀를 내두르며 덜덜 떨었다.

성현은 이미 모건이 한 독설을 한다는 사실을 직접 눈으로 봤었다.

허나 지금 이 상황은 절대 받아들일 수 없었다.

천소울의 노래는 성현이 언제나 보았듯 훌륭했다.

모건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 반응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그런 상황 속 모건에게 깨지는 천소울의 모습을 지켜보며 성현은 어떤 말조차 꺼낼 수가 없었다.

자신이 아끼는 가수가 밖에서 저런 취급을 당하고 있는 걸 눈앞에서 보자니 분노가 치밀어 오른 것이다.

그러나 이는 이미 지나가 버린 일.

성현으로썬 그저 녹화된 상황을 그저 지켜보기만 해야 했다.

“아무리 한국에서 날고 기어도 우물 안 개구리였단 게 증명됐군요.”

“다음번엔 지적하신 점 더욱 보완해서 오겠습니다.”

모건의 계속된 독설에 처음엔 당황했던 천소울이지만 어느새 표정 관리를 하며 다음번 무대를 더 잘하겠노라 의지를 불태웠다.

그럼에도 모건은 그러든 말든 관심이 없단 제스쳐를 취했다.

천소울을 완전히 무시하는 태도를 보인 것이다.

“저기, 지금 컨디션 별로예요? 두 번째 무대는 다음에 봐도 되는데.”

성현의 표정이 좋지 않음을 눈치챈 김인호가 걱정이 되어 물었다.

하지만 성현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곧바로 두 번째 무대 녹화본을 틀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다른 참가자의 무대는 스킵하고 천소울의 무대에서 멈췄다.

“천소울 참가자한테 관심이 많나 보네.”

성현이 의도적으로 천소울의 무대만 보는 걸 눈치 챈 김인호가 혼잣말을 흘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성현은 대답 없이 천소울의 표정만 살피며 화면을 뚫어져라 봤다.

비록 첫 번째 무대에선 깨졌지만, 이번엔 자신있단 표정을 지으며 무대에 오르는 모습이 보였다.

곧이어 천소울은 노래를 시작했다.

“세상에. 곡을 바꿨네. 편곡도 다시 하고.”

김인호 말처럼 천소울은 얼마 없는 시간 사이 곡을 바꾼 것도 모자라 편곡 역시 새롭게 해서 가지고 왔다.

수준급 프로듀서들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이번 것도 좋네.”

김인호는 이번 역시 천소울의 노래에 리듬을 타며 말했다.

하지만,

“그만.”

이번에도 아까와 같이 1절이 채 끝나기 전, 모건이 천소울의 노래를 중단시켜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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