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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같은 프로듀서는 없었다-64화 (64/273)

64화

주선아의 특성 [칼군무]를 100% 활용하기 위해 임하나를 불렀다.

허나 그녀들의 시너지는 그곳에만 한정되어 돋보이는 것이 아니었다.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보컬 합이 괜찮네.’

임하나의 보컬이 늘었다는 건 성현도 알고 있던 사실.

서지현과의 합을 맞추며 보컬에 자신감을 얻기 시작한 임하나는 여실 없이 그 실력을 뽐냈다.

확실히 보컬 능력이 상당히 좋아졌다.

며칠 안 본 새 올라간 실력에 적응이 되지 않을 정도였다.

주선아의 깨끗한 보컬과 임하나의 특유한 살짝 끈적한 음색이 멋들어지게 어울렸다.

과장 조금 보태서, 눈을 감으면 그대로 최면이 걸릴 것처럼 두 사람의 하모니는 상당히 좋았다.

이렇게 하모니를 이룰 수 있는 이유에는 주선아의 역할이 컸다.

주선아의 보컬은 깨끗하고 맑게 고음역대까지 커버 가능했다.

누군가의 귀엔 특별하지 않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성현은 알고 있었다.

저렇게 고음역대까지 커버 가능하면서도 과하게 튀지 않는 목소리와 보컬은 생각보다 드물고 굉장히 귀하다는 것을.

그녀의 목소리는 새하얀 눈과 같았다.

튀지 않으면서도 맑은 목소리 때문에 어떤 목소리와도 잘 어울리며 항상 새로운 형태를 만들 수 있었다.

그러니 임하나의 살짝 튀는 개성있는 목소리와도 어울리며 하모니를 이룰 수 있었다.

‘이 정도면 충분하겠다.’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시너지 효과에, 모건의 마음을 잡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 점점 불어났다.

***

토요일 오전.

시크릿 스테이지를 위한 한 장의 티켓을 구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열렸다.

다음 주 해외 스폰서들 앞에서의 경연을 앞두고 비어있는 한 자리를 채우기 위한 오디션이 이곳에서 펼쳐진다.

성현과 임하나 그리고 주선아는 주최 측이 정해준 장소로 향했다.

“몸 좀 풀고 계세요. 저 잠깐 화장실 좀.”

복도에서 간단하게 몸을 풀고 있는 임하나와 주선아를 둔 채 성현은 화장실로 향했다.

이번 일로 천소울의 앞날이 결정될 수도 있다는 사실에 평소 갖지 않던 긴장이 든 모양이었다.

그때, 화장실 안에서 남자들끼리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은밀히 대화하는 걸 보니 뭔가 중요한 이야기 같았다.

성현은 발걸음을 멈추며 그들의 대화에 집중했다.

“김 기자님이 분명 모건을 공략하는 게 중요하다고 했어.”

“그 말은 시크릿 스테이지는 결국 모건의 마음에 들어야 하는 오디션이라는 거고.”

“그래. 그래서 우리 평소에 하던 음악 버리고 모건이 좋아하는 스타일로 준비한 거잖아.”

“아, 근데 나만 어색해? 갑자기 안 하던 스타일 하려니까 영 별론데.”

성현은 귀를 기울이고 그들의 얘길 마저 들었다.

그들은 모건과 시크릿 스테이지와 관련된 얘기를 계속 이어갔다.

그들이 하는 대화는 도통 들어보지 못한 말들이었다.

모건의 마음에 드는 스타일의 곡?

주제는 자유곡으로써 각자의 능력을 뽐내라는 의도를 가진 게 아니었나?

그러나 성현은 그 전에 다른 의아심을 떨칠 수 없었다.

‘김 기자? 분명 시크릿 스테이지는 언론에도 공개되지 않은 걸로 아는데….’

***

“참가자들, 스탠바이 하세요.”

참가자들은 모두 진행 요원의 안내를 받아 한곳의 연습실로 향했다.

얼마 후 모건을 비롯한 일본과 영국의 유명 아티스트, 그리고 주최 측 사람들이 연습실로 들어왔다.

태닝을 한 사람처럼 거무튀튀한 피부에 머리는 삭발을 한 듯 짤막한 헤어스타일을 가진 모건은 누가 봐도 외국 힙합을 하는 사람처럼 보였다.

연습실로 들어온 모건은 참가자들을 쭉 둘러봤다.

‘오늘은 날 놀라게 해줄 참가자가 있으려나.’

새로운 참가자들에게 흥미를 보이듯 그는 팔짱을 낀 채 기대감 서린 눈을 지었다.

모건이 가지고 있는 심사기준은 언제나 같았다.

세계 시장에서 먹힐 만한 음악을 하거나, 혹은 그런 음악을 할 수 있는 재능을 가진 인물.

그리고 예상치 못한 음악적 색다름을 줄 수 있는 인물.

‘그런 재능을 가진 인물은 찾기가 쉽지 않지.’

세 가지를 모두 갖춘 뮤지션은 정말 보기 드문 존재였다.

좋지 않는 결말이 보이는 아티스트들이 더러 있다.

열심히 노력은 하였으나 그만한 재능은 보이지 않는 사람.

자신의 재능에만 빠져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사람.

그저 어쩌다 떠버린 탓에 자신을 주체하지 못하는 사람.

모건이 그동안 만나온 사람들도 거의 그러했다.

그 중 그의 선택을 받은 뮤지션은 없다.

모건은 이번 기회로 새로운 기대감에 눈을 뜨며 참가자들을 둘러봤다.

그가 다양한 생각에 잠긴 사이, 진행요원이 빠르게 오디션을 진행했다.

“첫 번째 팀 무대 준비하세요.”

별다른 말 없이 곧장 무대가 준비되었다.

모건과 같은 사람을 오래 기다리게 할 수는 없나 보다.

이윽고 안내에 따라 네 명의 참가자가 중앙에 올랐다.

참가자들에게 주어진 환경은 더욱 잔혹했다.

무대는 별도의 공연장에서 하는 게 아니라 연습실에서 진행됐다.

즉, 그들의 모습을 북돋아 줄 조명이나 특수장치들은 있을 리 없었다.

단지 준비해온 실력만 보겠다는 딱딱한 심사였다.

“안녕하십니까! B.M 보이즈비엠비셔스입니다!”

긴장감 속 네 명의 남자들은 미리 준비한 인사를 보였다.

남다른 인사는 기억되기 쉽기에 좋은 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

역시나 모건을 비롯한 심사위원들이 재밌다는 듯 웃었다.

시작은 나쁘지 않다.

남자 4명은 댄스곡을 준비한 듯 대형을 맞추었고 곧 오디션장에 댄스곡이 흘러나왔다.

예상대로 남자 넷은 파워풀한 춤을 선보이며 무대를 시작했다.

‘안무를 잘 짰네. 너무 과하지도 않고.’

남자 넷은 칼군무를 선보이며 휑한 무대를 춤으로 가득 채웠다.

임하나와 주선아 또한 그들의 춤을 인정하는 듯 고갤 끄덕였다.

“디테일한 표현력이 좋은 것 같아요.”

“이런 파워풀한 곡에 디테일까지 표현하는 게 쉬운 게 아닌데.”

남자 넷은 격한 춤을 추면서도 얼굴 표정과, 손끝, 발끝 모두 흐트러지지 않았다.

또한 몸 전체를 사용해가면서 디테일도 놓치지 않았다.

이에 모건도 만족스러웠는지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모건의 미소는 오래가지 않았다.

“널 사랑하느-흐은-!”

‘음이탈?’

춤을 추면서 노래를 부른 탓인지 한 멤버의 음 이탈이 몇 번 일어났다.

그것을 시작으로 나머지 팀원들까지 보컬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 때문에 화려한 춤 실력은 어느덧 그늘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무대가 진행될수록 모건의 표정은 점점 굳어져 갔다.

이후, 남자 넷의 공연이 끝을 알렸다.

그 직후, 모건은 턱을 괸 채 평가를 시작했다.

“무대 잘 봤어요. 댄스가 무척 인상 깊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케이팝 특유의 군무를 좋아하거든요. 그런데-”

춤을 춘 뒤 숨을 고르며 모건의 평가를 듣고 있던 남자들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뒤에 나올 말이 결코 긍정적인 평가가 아니란 걸 알았기 때문이다.

“노래 실력이 춤을 다 깎아 먹었어요. 당신들은 라이브를 하면 안 되는 보컬 실력을 가지고 있어요.”

모건의 말이 계속될수록 남자들의 표정은 더욱 사색이 됐다.

말이 하나하나 가슴과 뼈를 찌르면서 고통을 전하게 했다.

“무대 구성도 뻔했고 매력도 없는 와중에 노래까지 못하니 보기 힘들었습니다.”

모건의 독설에 이를 지켜보던 임하나와 주선아의 표정도 함께 얼었다.

‘너무 박한 평가 아닌가.’

그의 심사기준은 실제로 보니 더욱 높았다.

시크릿 스테이지에 참가한 참가자들답게 그들이 아무리 음 이탈을 몇 번 하고 보컬이 무너졌다 해도 모건이 말한 정도로 혹평을 받을 실력은 아니었다.

아마 일반인이 들었다면 음 이탈이 일어났을지도 모를 정도였다.

그만큼 미세하게만 음정이 엇나갔다.

솔직히 저 정도로 파워풀한 춤을 추면서 이 정도 라이브를 할 수 있는 것 자체도 대단한 거였다.

허나 모건은 그런 점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단점만을 끄집어냈다.

“다음 참가자 준비하세요.”

모건의 말에 남자들은 울상이 된 표정을 지으며 무대를 내려갔다.

열심히 무대를 준비한 것처럼 보였으나 아쉬운 결과였다.

이내 다음 참가자들이 올라왔다.

이번엔 세 명으로 이루어진 팀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카펠라로 화음을 쌓으며 노래를 시작하는 것으로 보아 보컬로 승부를 보려는 듯싶었다.

“확실히 실력자들만 모였단 말이 맞네요.”

임하나의 말에 성현도 고갤 끄덕였다.

그 전 팀도 그랬지만 확실히 이곳 시크릿 스테이지에 불려온 만큼 평균 실력이 높은 자들로 모여있었다.

그들의 보컬에 참가자들 모두 인정을 하는 눈치였다.

음 이탈도 없는 데다, 강약조절도 훌륭했다.

하지만 모건의 눈에는 이 역시 안 좋게 보일 뿐이었다.

“음악이 지루해요. 재미가 없습니다. 가창력 좋고 기교만 잘 부린다 해서 사람들이 좋아할 거 같아요? 이번 참가자들은 노래 공부가 아니라 음악 시장의 트랜드부터 공부할 필요가 있어 보이네요.”

이번에도 만족스럽지 못하단 심사평을 내놓았다.

애초에 일반 참가자들과 심사위원과는 전혀 다른 시선으로 평가를 하고 있었다.

그의 심사가 진행될수록 대기하고 있는 참가자들은 더욱 얼어붙었다.

자신들이 준비한 무대들도 이들과 별 차이 없었기 때문이다.

‘뻔한 무대, 뻔한 편곡, 뻔한 군무.’

그렇게 몇 차례 무대가 진행됐다.

모건은 더 이상 남은 참가자들의 무대가 궁금하지 않았다.

자신이 기대하고 있던 모습의 참가자는 이곳엔 없다고 판단됐기 때문이다.

‘차라리 그 녀석 무대가 더 나았었군.’

이전 오디션을 심사했었던 날들을 떠올린 그는 한 참가자를 떠올렸다.

지금의 참가자들보다 몇 배는 나은 모습이었다.

어쩌면 그 참가자를 본 탓에 기대감이 더 커진 듯했다.

허나 현실은 달랐다.

기대를 가졌던 만큼 실망도 커졌다.

모건은 시크릿 스테이지의 이번 무대가 그저 지루하게만 느껴졌다.

눈꺼풀이 중력으로 인해 자꾸만 밑으로 내려왔다.

“마지막 팀 준비해주세요.”

그렇게 지루한 시간이 흐르고 드디어 마지막 참가자 순서가 다가왔다.

드디어 마지막 차례다.

이번만 끝나면 이 지루한 공간을 탈출할 수 있단 생각에 모건은 그저 기쁘기만 했다.

그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면서 마지막 참가자의 무대가 끝나기를 바랐다.

무대에는 어느새 여성 참가자 둘이 서 있었다.

임하나와 주선아다.

둘은 꼭 1등을 해서 오디션에 붙겠다고 의욕을 보이던 연습 때와는 다르게 조금 긴장된 표정이었다.

긴장된 떨림에 몸도 살짝 얼어있었으나, 그들의 반응은 당연했다.

모건을 비롯한 해외 유명 음악인들이 바로 앞에 있다.

게다가 모건의 혹평이 계속 이어진 상태.

그런 상황에서 긴장을 안 하는 것이 더욱 이상했다.

‘주선아 씨가 잘해줘야 할 텐데.’

주선아는 천소울과 관련된 일이라 의욕이 앞섰지만 그래서 그런지 부담감도 커졌다.

그녀는 평소보다 더욱 표정이 얼어있었다.

더욱이 무대에 올라가다 살짝 발을 삐끗하여 넘어질 뻔한 걸 임하나가 잡아 주는 모습도 보였다.

성현이 그녀를 걱정스레 바라볼 때, 주선아는 긴장이 역력한 표정으로 마이크를 잡았다.

“안녕하세요. 가수 참가자 주선아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주선아의 목소리 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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