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화
성현은 주선아와 함께 시크릿 스테이지 빈자리에 들어갈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동시에 주선아의 스폰서에서 그와 관련된 문구를 커넥트 앱을 통해 전해줬다.
그것을 통해 성현도 모르던 시크릿 스테이지에 관한 정보 몇 가지를 더 얻을 수 있었다.
시크릿 스테이지.
‘더 넥스트 슈퍼스타’ 오디션이 진행되고 있는 모든 나라에서 시행하는 말 그대로 비밀스러운 무대.
각 나라의 스폰서이자 유명 아티스트들을 다른 나라 참가자들과 만남을 갖게 하는 형식의 진행.
또한 주최 측에서 각 나라들 간 교류를 계획하기 위해 만든 스테이지였다.
전 세계적인 오디션인 만큼, 각기 다른 나라의 스폰서와 참가자가 엮이는 게 더 화제도 되고, 의미도 있었기에 이러한 이벤트를 종종 기획하곤 했다.
게임 속에선 천소울만 있는 한국을 보여줬기에 다른 나라의 상황은 알지 못했다.
성현은 알람 안에 내포되어 있던 하나의 서류를 발견했다.
한국에는 미국의 초 유명 프로듀서 모건, 일본 최고 대형 기획사의 프로듀서 야마시타 히로시 그리고 영국의 전설적인 락 밴드의 드러머였던 마이클 하넬이 방한한다는 내용이었다.
거기에 ‘더 넥스트 서바이벌’은 한국 측의 참가자들과 3주 동안 만남을 가지기로 예약되어 있었다.
물론 이들이 한국 측 모든 참가자들과 만나는 것이 아니었고, 주최 측으로부터 선택받은 최상위권 참가자만이 이들을 만날 수 있었다.
이러한 구체적인 정보를 알아냄과 동시에, 이성현은 천소울이 얼마나 큰일을 해냈는지 알 수 있었다.
시크릿 스테이지는 세계적인 프로듀서와 아티스트와 만남을 가질 수 있단 것만으로 영광스러운 자리였다. 그러니 실력이 좋다 해도 아무나 참가할 수 있는 스테이지가 아니었다.
그런 자리였으니 주최 측 조차도 참가자 스스로가 중도에 포기할 거라곤 예상하지 못했겠지. 그 엄청난 일을 천소울이 해낸 것이다.
‘이런 기회를 다 날려버릴 정도로 힘들었던 건가.’
내용을 보니 천소울은 시크릿 스테이지가 진행된 지 2주가 되기도 전에 자진 하차했었다.
이에 남게 된 공석 한 자리를 가지고 여러 힘 있는 스폰서들 간 경쟁을 벌이고 있던 것.
1등을 하지 못하더라도 글로벌 뮤지션들에게 얼굴을 알리는 것만으로 충분히 가치가 있었기 때문이다.
스폰서들은 이 귀중한 기회를 절대 놓칠 리 없었다.
다들 되든 안 되든 각자의 뛰어난 참가자들을 막대하게 찔러넣었을 거다.
예상대로 자리를 참가하려는 스폰서들로 순식간에 혼잡해졌다.
이에 주최 측은 그중 몇 팀을 선정하여 추가 참가자를 뽑기 위한 오디션 아닌 오디션을 진행하기로 했다.
그 몇 팀 중 한 자리에 주선아 스폰서의 추천으로 이성현과 주선아가 들어가게 된 거였다.
천소울의 결정 하나가 이렇게 거대한 변화를 가져왔다.
그렇게 해서 성현과 주선아는 급하게 시크릿 스테이지를 위한 오디션을 준비하게 됐다.
주어진 시간은 단 이틀뿐.
이틀 후면 모건과 주최 측 앞에서 무대를 선보여야 했다.
주제나 조건이 따로 정해진 것은 없었다.
참가자가 알아서 무대를 구성하고 실력을 보여줘 평가를 받아야 했다.
‘가장 자신 있는 걸 보여달란 거겠지.’
심사위원들의 의도는 확실해 보였다.
주제 때문에 핑계 대지 말고 가장 잘하는 걸 가장 잘 보여달라는 것.
또한, 자유로운 선택을 함으로써 결과를 온전히 받아들이라는 의미도 섞여 있었다.
이 때문에 성현은 오히려 본선 라운드보다 더 최선의 노래와 무대를 만드는 것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었다.
원래 매번 그 순간 최고의 무대를 만들었던 그였다.
그러니 그의 주된 능력을 뽐내면 무난히 통과될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런 성현에게 걸리는 게 하나 있었다.
‘당장은 주선아가 가장 잘하는 게 뭔지 파악하는 게 먼저야.’
여기는 게임이 아니라 현실이라는 점이었다.
그러니 주선아와 단둘이 무대에 서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녀의 실력과 재능이 무엇인지 성현은 빨리 알아내야 했다.
“주선아 씨, 그동안 했던 무대 중에 가장 잘했다고 생각하는 무대를 먼저 보여줄 수 있을까요?”
갑작스레 가장 잘했다고 생각한 노래를 하라니 잠시 고민에 빠졌다.
이윽고 주선아는 자신의 끼를 전부 보여줄 수 있는 다양한 무대를 직접 선보였다.
천소울에 대한 일이 걸린 만큼 그녀는 온 힘을 다해 노래 불렀다.
성현은 귀를 기울이며 그녀의 재능을 파악했다.
장르도 다양했고 스타일도 제각각이라 다방면에서 뛰어났다.
‘확실히 일반 참가자들이랑 레벨이 다르긴 하구나.’
주선아의 무대를 라이브로 본 성현은 왜 천소울이 그녀를 데리고 다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녀의 재능은 당장 아이돌로 데뷔할 수 있을 정도로 특출났던 것이다.
날 때부터 타고난 끼가 있는 사람이었다.
그러한 천부적인 음악적 재능뿐만 아니라, 천소울 못지않은 노력파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게임 속에서 매번 실력을 갈고닦는 모습을 본 것만으로 전해졌다.
게다가 아직 나이도 어리기에 그 성장 가능성은 무궁무진했다.
‘모든 옷이 다 잘 어울리지만 가장 베스트가 뭘까.’
어찌 보면 프로듀서로서 가장 어려운 건 지금 이런 순간들이었다.
단점이 뚜렷한 가수라면 그 단점을 커버할 수 있게끔 하면 된다.
허나 주선아 같은 경우는 천소울처럼 모든 장르를 완벽하게 소화해낼 수 있는 가수였다.
때문에, 그중에서 가장 훌륭한 모습 하나만 콕 집어 선보이기엔 다른 부분이 너무 아까웠다.
그 때문에 주선아를 어떻게 메이킹해야 더욱 빛이 날지 고민이 필요했다.
성현이 이런저런 고민하는 사이, 주선아는 자신이 마지막으로 준비한 곡을 끝마쳤다.
성현은 여전히 그녀의 재능을 더욱 빛나게 하기 위해 머리를 쥐어짜고 있었다.
그 모습이 주선아에겐 만족스럽지 못하단 뜻으로 받아들여졌다.
“마음에 드는 게 없어요? 그럼 이런 건 어때요?”
그래서 주선아는 자신이 직접 짠 안무를 사용한 프리스타일 춤까지 보여줬다.
‘얘도 괴물이구나.’
정말이지, 버릴 구석이 하나 없는 재능이었다.
그녀는 마치 각자의 매력을 뽐내는 장신구들이 한데 모여진 보석함 같았다.
그 모습에 성현은 이내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주선아가 실력이 출중하단 건 이미 알 수 있었다.
실제로 그녀의 프리스타일 춤까지 보니 왜 김성민 대표가 직접 컨텍을 한 참가자인지 단번에 이해가 갔다.
비록 임하나에 비해선 춤의 디테일은 아직 부족했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경험에 미숙함에서 오는 거였지 재능이 뒤떨어지는 건 결코 아니었다.
오히려 표현력만 놓고 보자면 이미 임하나를 뛰어넘었다.
특히 당장 배우를 해도 되겠다는 표정 연기가 압권이었다.
“별로예요?”
자신의 춤마저 보여준 주선아는 숨을 헐떡이며 질문했다.
여전히 풀리지 않는 성현의 표정에, 주선아가 자신의 입으로 먼저 물은 것이다.
성현은 한 손으로 주먹을 감싸던 손을 풀며 말했다.
“고민이에요.”
“어디가 별론데요?”
“아니요. 그 뜻이 아니라 보여준 무대가 전부 다 좋아서 주선아 씨를 어떻게 메이킹하는 게 가장 빛날지 고민이라구요.”
상대의 입에서 나온 솔직한 칭찬에 싫어할 사람이 어딨으랴.
주선아 역시 얼굴을 붉히며 쑥스러워했다.
그녀는 성현의 솔직한 말을 듣고서야 목이 타다며 물을 가지러 갔다.
‘일단 댄스는 반드시 가져가면 좋겠어.’
모든 게 완벽했지만, 댄스는 무조건 넣기로 했다.
이 역시 임하나가 없었다면 눈에 보이지 않았을 장기였다.
귀를 즐겁게 하는 노래도 중요하지만, 그만큼 눈도 즐겁게 해야 한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우선 첫 단추는 꿰매졌다.
이제 그 다음으로 무엇을 중점으로 할지 고민에 빠졌다.
그러자 그의 입꼬리가 서서히 올라갔다.
‘잠깐, 뭘 보여줄지 모르겠으면 그냥 다 보여주면 되는 거 아닌가?’
빙산의 일각을 보는 것보다 넓은 바다를 보는 것이 더 아름다운 법.
그러니 뭘 원하는지 모르는 심사위원에게 그냥 다 보여주고 싶었다.
주선아는 그 정도 실력이 뒷받침되는 참가자였다.
‘댄스뿐만 아니라 파워풀한 가창력까지 뽐낼 수 있는 곡을 준비해야겠다.’
비록 천소울을 살리기 위해 참가한 스테이지였다.
그렇다고 다른 욕심까지 손을 대지 말란 법은 없었다.
이번 기회로 주선아라는 새로운 아티스트를 만나서 작업한 건 또 다른 기쁨이었다.
그녀의 재능을 확인하자 같이 작업을 할 생각에 손끝이 짜릿해졌다.
다양한 경우의 수들이 성현의 머릿속에 빠르게 그려졌다.
어느새 그의 근심은 촛불 끄듯 사라져버렸다.
마침 주선아가 자리로 돌아왔다.
성현은 머릿속에 그려졌던 무대 중에 가장 인상 깊은 그림을 주선아에게 설명했다.
한번 움직인 손은 쉴 틈 없이 움직여 예술을 만들어냈다.
확고한 모습으로 곡까지 정하며 말해주자 주선아는 믿고 따라갈 수 있었다.
주선아의 의욕도 성현을 따라 타올랐다.
주선아는 오직 천소울만 생각하며 무대에 선다고 했다.
자신이 큰 어려움 없이 수월하게 여기까지 온 이유도 천소울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번엔 자신이 천소울을 도와줘야 할 때다.
동시에 그에 대한 은혜도 갚아야 했다.
허나 그녀 역시 단순히 그 생각만 든 건 아니었다.
‘뭐 나쁘지 않은 사람 같기도 하고.’
어찌 됐든 그 천소울이 유일하게 관심을 가진 사람이 바로 이성현이었다.
주선아는 그 광경을 바로 옆에서 봤기에 바로 알 수 있었다.
‘선생님이 관심을 가질 정도면 재능은 있는 사람 같은데……. 뭐, 이번에 작업하면 알게 되겠지. 얼마나 대단한 프로듀서인지.’
이참에 이성현의 진짜 실력을 보고 싶어졌다.
이성현에게 큰 포텐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생각에 잠긴 건 주선아뿐만 아니었다.
성현 또한 주선아를 보며 생각에 잠겼다.
‘확실히 칼군무 특성을 활용하면 더 좋을 것 같은데.’
주선아의 특성 중, [ 칼군무 ] 특성이 있었다.
이번 시크릿 스테이지에 참여하는 참가자들은 분명 상당한 실력을 가진 참가자들로 구성될 터.
그들보다 단 1퍼센트라도 높은 더 좋은 무대를 보여줘야 올라설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최대한 주선아의 특성 전부를 사용할 필요가 있었다.
성현은 그중 [ 칼군무 ]라는 특성을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싶었다.
게다가 이성현은 알고 있었다.
‘게임 속 주선아는 확실히 혼자가 아닌 팀으로 무대를 할 때 더 큰 시너지를 불러일으키는 가수야.’
게임을 통해서 주선아가 가장 화려하게 빛났을 때가 언제인지 알고 있었다.
그녀는 분명 아름다운 꽃이었다.
허나 그녀는 주변의 빛을 받고 그 빛을 다른 곳으로 퍼트려주는 정원 속 꽃이었다.
그럴게, 솔로 여가수의 길을 갈 때도 큰 빛을 봤던 주선아였다.
그래도 비슷한 또래의 멤버들과 팀을 이뤄 아이돌로 데뷔했을 때 가장 큰 성공을 이룰 수 있었다.
“주선아 씨.”
성현이 갑자기 주선아를 불렀다.
아직도 성현에 대해 생각하고 있던 주선아는 깜짝 놀라 생각을 멈추고 성현을 바라봤다.
거기에 이윽고 들린 그의 예상치 못한 말에 주선아는 더욱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번 무대, 솔로 말고 팀으로 준비하는 건 어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