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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같은 프로듀서는 없었다-60화 (60/273)

60화

작업실로 들어가니 천소울은 역시나 성현의 예상대로 폐인처럼 지내고 있었다.

개인 작업실엔 술병이 굴러다녔고 천소울 몸에서 술에 쩌든 알코올 냄새가 진동을 했다.

거기에 며칠째 면도를 안 했는지 얼굴에도 거뭇거뭇하게 수염이 자라 있었다.

생각보다 심각한 모습으로 그들이 알고 있던 천소울과 다른 사람 같았다.

“무슨 일 있었어요?”

천소울은 성현의 물음에도 일절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술이 덜 깬 상태로 몸을 휘청거리며 걸어갔다.

이후 작업실 구석에 마련된 소파에 철퍼덕 주저앉았다.

작업실에 놓인 장비들은 모두 제각각 흐트러져 있었고, 컴퓨터 책상과 의자에는 옷가지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성현은 그저 아무 말 없이 소파에 누워있는 천소울을 바라봤다.

잔뜩 어질러진 방 안 때문인지 그는 더욱 초췌해 보였다.

이곳에 있는 것만으로도 모든 의욕이 전부 사라질 것처럼 느껴졌다.

“어휴… 정말…….”

결국, 주선아는 재빠르게 천소울의 작업실에 굴러다니는 술병들을 치우기 시작했다.

“됐으니까 가.”

“목소리 상태 안 좋아요. 생강차라도 끓여드릴까요? 아, 식사는 하셨어요? 밥부터 먹을까요?”

주선아는 천소울의 상태부터 챙기기 시작했다.

그의 목소리는 완전히 힘이 풀린 듯 예전의 감미로운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가수에게 있어 목소리는 그 자체로 재산이다.

지금의 천소울은 그 재산을 모두 탕진해 모든 것을 잃은 사람처럼 보였다.

한편, 자신을 챙겨주려는 주선아를 본 천소울은 자조적인 미소를 지었다.

“나 음악 관뒀으니까 신경 끄고 가라고.”

일순간 시간이 멈춘 듯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의 말은 너무나 충격적이라 주선아의 몸이 그대로 굳어져 버렸고, 성현의 표정 또한 싸늘하게 굳어졌다.

“아무리 술에 취했어도 할 말이 있고 못 할 말이 있지.”

“왜? 재능 없어서 관두겠다는데 그게 왜 못 할 말이지?”

바닥에 놓여진 술병을 집어 든 천소울은 벌컥 들이켰다.

그는 온갖 고뇌에 휩싸인 듯한 표정을 지었다.

모건과 천소울의 사이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훤히 다 알고 있는 성현은 그의 고통을 충분히 이해했음에도 여전히 싸늘한 표정으로 가만히 내려다봤다.

주선아는 천소울의 처음 보는 망가진 모습에 거의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또 인정 못 받았어. 난 결국에 실패한 가수야. 아무도 날 원하지 않을 거야.”

천소울은 혼잣말에 가까운 술주정을 계속했다.

성현은 그의 말에서 ‘또’라는 단어가 신경 쓰였다.

‘대체 무슨 일을 겪었던 걸까.’

어쩌면 이번 시크릿 스테이지 말고 그 전에 성현이 모르는 숨겨진 일이라도 있던 모양이었다.

서바이벌이 시작되기 전.

싸클에 노래를 올린 후 2년간, 게임에서도 묘사되지 않았던 그 시간 동안 천소울은 대체 무슨 일을 겪었던 걸까.

“나 같은 건… 자격이 없어……. 난 평생 인정받지 못할 거야.”

천소울의 멘탈은 성현의 예상보다 좋지 않았다.

당장 술 취한 그와 더 이상의 대화는 불가능해 보였다.

그는 이미 술에 취해 정신이 없었고 술병을 손에 쥔 채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주선아 씨, 거기 담요 좀 가져다줘요. 일단 좀 재웁시다.”

주선아는 곧장 작업실 한 곳에 뒹굴고 다니는 담요를 집어 들었다.

이윽고 성현은 그에게서 술병을 뺏어 소파에 눕혔다.

“야. 가라고.”

“천소울. 술 깨면 두고 보자.”

성현은 눕지 않겠다고 끝까지 저항하는 천소울을 강제로 눕혔다.

그는 이내 혼잣말을 멈추고는 잠에 빠져들었다.

성현은 실제로 술에 취한 그를 보자 게임에서 그가 알코올 중독자가 된 걸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이래서 이렇게 빨리 입에 술을 댔구나.’

게임 초반, 천소울은 그렇게 멘탈이 강한 캐릭터가 아니었다.

타고난 천재성을 지닌 그였지만 오히려 그 천재성에 잡아먹혀 강박과 함께 멘탈이 깨지는 경우가 많았다.

게임이 현실이 된 지금은 그런 일이 벌어나지 않길 바랐지만, 예상보다도 빨리 겪은 거다.

‘천소울. 이대로 널 잃을 순 없어.’

그런 천소울을 지켜보던 성현은 복잡한 심정이 들었다.

이대로 두면 천소울은 서바이벌에서 탈락하게 되는 건 당연한 일.

그뿐만 아니었다.

음악을 아예 그만둘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겁이 나. 너와 함께 최고의 무대를 만들고 싶은데 그곳에 네가 없을까 봐.’

성현은 언제나 최고의 무대를 만드는 걸 목표로 했다.

그리고 그곳에는 천소울도 반드시 포함되어야 했다.

최고의 무대에서 천소울이 자신이 만든 곡을 부른다.

생각만 해도 성현의 마음은 벅차오르고 당장이라도 그렇게 하고 싶었다.

그런 절대적인 꿈을 이렇게 이른 시기에, 너무 허무하게 잃을 수는 없었다.

그렇기에 성현은 더욱 그를 놓고 싶지 않았다.

때문에 후회와 좌절로 완전히 뒤덮인 천소울을 위해, 그를 해방시킬 방법을 성현이 직접 찾아 나서기로 마음먹었다.

‘당장 모건과 있었던 일을 정확히 파악할 필요가 있어.’

천소울의 멘탈을 다시 부여잡기 위해선 무엇이 그의 멘탈을 흔들었는지 찾는 게 먼저였다.

답은 금세 나왔다.

모건.

천소울의 이번 사건 중심에 모건이 있다는 건 확실한 만큼 모건과의 일을 먼저 알아내는 것이 우선이었다.

게임에서도 모건에게 인정받지 못하고 무너지는 모습은 숱하게 봤다.

허나 그 속에선 자세한 내막을 다루지는 않았었기에 성현도 이에 대한 자세한 걸 알진 못했다.

아무래도 게임이기에 모든 에피를 자세히 다루지는 못했을 것이겠지.

성현도 당시엔 딱히 그 에피소드의 내막을 궁금해하지는 않았지만, 이제는 달랐다.

‘천소울을 지켜야 하니까.’

성현은 천소울에게 무슨 일이 있었을 건지 생각해봤다.

그때, 그 무엇보다 내막을 쉽게 알아낼 방법이 하나 떠올랐다.

이윽고 그는 집을 마저 청소 중인 주선아에게 부탁을 건넸다.

“천소울 좀 봐주세요. 저 급하게 가볼 곳이 있어서.”

“갑자기 어딜 가는데요!”

“제가 다시 연락 줄게요.”

성현은 그렇게 급하게 천소울의 작업실을 나갔다.

그와 동시에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김인호 씨. 접니다, 이성현.”

김인호 AD다.

***

“이성현 씨, 여기요!”

카페에 도착해있던 김인호가 성현에게 손을 흔들었다.

연락을 받고 온 그는 이미 커피 두 잔을 시켜 성현을 기다리고 있었다.

“커피 마시죠? 못 마시면 다른 거 시키고.”

평소 연락이 올 리 없던 성현에게서 갑자기 자신을 찾는 연락이 오자 기분이 좋은 거였다.

그는 반가움을 드러내면서 성현을 맞이했다.

성현은 괜찮다며 자리에 착석했다.

이후 김인호는 차가운 커피를 시원스레 들이켰다.

“이제야 목 좀 축이네.”

“많이 바쁘신가 봐요.”

“촬영 때보다 더 바빠요. 편집할 게 산더미라. 참, 그거 알아요?”

몸은 바쁜 모양이지만 표정은 어째 어둡지만은 않았다.

김인호는 상기된 알굴로 성현에게 물었고, 성현은 무슨 뜻인지 모르겠단 표정을 지었다.

뒤이어 김인호는 밝은 표정을 여실하게 드러내며 답했다.

“본선 2라운드 앞부분 얼마 전에 스폰서들한테 공개됐는데 우리 채널 참가자들 반응이 꽤 좋아요. 특히 우리 이성현 참가자.”

우리라는 단어에 강세를 주며 김인호는 친근하게 말을 꺼냈다.

허나 성현은 별 감흥 없단 듯이 대답했다.

“제 음악을 좋아해 주는 분들이 있단 건 감사한 일이죠.”

스폰서들에게 인기가 많은 건 굉장한 일인데도 성현은 멀뚱한 반응을 보였다.

표정도 칭찬받는 사람의 표정이 아닌 어딘가 심각한 표정도 지었다.

그의 어둡고 차분한 모습에 김인호는 그제서야 뭔가 성현이 평소와 다르단 걸 감지했다.

“무슨 일 있어요?”

“저번에 무슨 일 생기면 연락 달라고 하셨죠.”

성현은 김인호가 자신에게 번호를 주면서 했던 말을 떠올리며 물었다.

역시나 그에게서 아무런 일도 없이 전화를 줄 리는 없었다.

김인호는 그제서야 진지한 표정을 지으면서 자세를 고쳐 앉았다.

“한국에 모건이 왔단 기사를 봤습니다.”

“갑자기 그건 왜요?”

“모건과 관련된 일이 진행되고 있다고 들어서요.”

모건이란 말에 김인호는 무척이나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현재 모건은 시크릿 스테이지로 인해 오디션을 진행 중이었다.

그렇기에 성현이 눈치를 챈 것에 어떻게 안 건가 싶어 표정을 관리하지 못했다.

그의 태도를 본 성현은 의심을 받기 전에 사실대로 말했다.

“다른 참가자를 통해 들었습니다. 일부 참가자들을 위한 시크릿 스테이지가 진행 중이라고요?”

“…네. 맞아요. 시크릿 스테이지 진행 중입니다. 그래서요?”

이미 모건에 대해 확실히 무언가 알고 있는 듯한 성현을 보고 김인호는 커피를 들이켰다.

비밀리에 진행되는 일이었지만 이미 알아차렸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가 알아차렸다고 해서 변하는 건 없었다.

그러니 김인호는 이내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을 지으며 자연스레 행동했다.

“저도 거기에 참가하고 싶습니다.”

“아까 본인 입으로 말하지 않았나. 일부 참가자들을 위한 스테이지라고. 이성현 참가자 실력 있는 거 인정하는데 거긴 실력만 있다고 아무나 낄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시크릿 스테이지는 확실히 실력만 좋다고 갈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그랬다면 이성현도 그곳에 불려갔겠지.

그곳은 천소울처럼 실력이 압도적으로 강하거나 스폰서의 힘이 있어야 참가가 가능한 곳이었다.

그리고 성현에게는 스폰서가 없었다.

일반 참가자들한테는 불리한 조건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곳도 일반 스테이지처럼 촬영을 해 외부로 송출되는 무대였다.

더욱이 모건이라는 거물도 와있는 상태.

그들 앞에서 다소 부족한 사람들을 세워 실수라도 하면 망신을 당하게 될 게 뻔했다.

그러니 주최 측은 실력도 있고, 한국측의 명예도 살려줄 참가자들을 엄선해서 고른 것이었다.

그 사실을 아는 김인호는 성현을 아쉽다는 표정으로 바라봤다.

“아니 물론 이성현 참가자가 거기 참가하면 나도 좋지. 우리 채널 홍보도 하고. 그런데 그건 내 권한 밖의 일이에요.”

“혹시 그동안 진행된 시크릿 스테이지 녹화본을 구해줄 수 있을까요?”

안된다는 말에 성현은 또다시 엉뚱한 부탁을 요구했다.

그가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 전혀 알 수 없었다.

성현의 성격으로 봤을 때 나쁜 일을 저지르지 않을 것 같고…….

김인호는 황당한 표정만 지으며 성현을 쳐다봤다.

“그건 또 왜요?”

“거기 참가하려면 미리 정보를 알고 있으면 좋을 것 같아서요.”

좀 전까지 참가 못 한다는 김인호의 말을 들었는데도 성현은 똑같은 말을 반복했다.

실은 천소울과 모건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내기 위해선 시크릿 스테이지를 찍은 녹화본이 필요한 거였다.

그는 이것을 위해 일부러 시치미를 떼며 요구를 했던 것.

단지 지금 김인호에게 천소울에 관한 이야기를 할 수 없어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던 것이었다.

그런 마음도 모른 채 성현의 말에 김인호는 답답하듯 말한다.

“참가 못 한다니까?”

“구해만 주세요. 되게 만들 테니까.”

성현의 자신만만한 말에 김인호는 황당해 웃음만 나올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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