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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같은 프로듀서는 없었다-57화 (57/273)

57화

본선 2라운드가 모두 종료된 토요일.

합격자들은 모두 1시까지 홍대 아지트로 모이라는 공지를 받았다.

“전원 합격!”

스크린에 뜬 결과를 확인하자 성현 일행의 이름들이 모두 적혀 있었다.

임하나는 팀원들 모두가 합격했단 사실에 상당히 들떠 있었다.

그건 서지현도 마찬가지.

둘은 서로를 부둥켜 안고 좋아서 방방 뛰었다.

허나 그 사이에서 조은별은 조금 복잡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후련한데 아쉽고 기쁜데 허무해요. 뭔가 더 잘할 수 있었을 것 같기도 하고.”

이번 라운드만큼은 그 누구보다 열심히 준비한 조은별이었다.

열심히 준비한 만큼 남는 아쉬움도 많이 남기 마련이다.

본선 2라운드가 끝나고 모두가 만족한 결과를 받아냈지만, 후련함과 동시에 아쉬움과 기쁨, 허무함이 동시에 밀려왔다.

“아쉬워할 거 없어요. 은별 씨 충분히 잘했고 무엇보다 재밌게 즐겼으면 되는 거예요.”

“그런가...... 아무튼 이번 라운드는 유독 기억에 남을 것 같네요.”

“아무래도 처음 관객들 상대로 무대를 준비한 거라 그런 거 같아요.”

“그것도 그렇고 그런 데서 공연할 거라곤 상상도 못 해봤으니까.”

“나중에 오디션 말고 정말 놀러 가보고 싶어요.”

처음에는 그렇게 걱정하고 겁먹었으면서 어느새 오아시스 바의 사람들과 정이 든 모양이다.

하긴, 입과 행동은 험하긴 했지만 그런 사람들의 입에서 나온 칭찬은 더없이 기억에 남는다.

이래서 사람들이 스릴 넘치는 일을 즐겨 하는 거였나, 싶었다.

그녀들은 어느새 오아시스 바에서 공연 중 있었던 얘기를 하며 벌써 추억에 잠겨 있었다.

‘힘들긴 했어도 다들 그만큼 성장했어.’

오아시스를 처음 갔을 때부터 지금까지를 생각해봤다.

그렇게 문전박대를 당하고 욕을 하던 사람들이 한순간에 열렬한 팬이 되었다.

단순히 운으로 이뤄진 일이 아니었다.

이들의 가지고 있는 실력과 더불어 하나 된 진심이 느껴졌기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리고 변화한 건 손님들만이 아니었다.

성현은 동료들이 이번 라운드를 통해 저마다도 성장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모두가 각자가 원하는 음악을 할 수 있게 된 것이 의미가 깊었지만, 그중 가장 성장을 한 것은 당연히 서지현이었다.

서지현은 이제껏 보여주지 않았던 리더로서의 조건을 완벽히 보여주며 이들의 새로운 버팀목이 되어줬다.

‘서자명과 함께하게 될 줄이야.’

이번 라운드를 통해 성장한 건 성현의 일행뿐만이 아니었다.

서자명.

그도 이번 라운드를 통해 성장하게 된 참가자 중 한 명이었다.

여태껏 서자명은 자기 자신만을 보며 음악에 몰두해있었다.

남에게 상처 주는 말을 스스럼없이 해왔고 자기의 의견대로 무대를 만들어갔다.

결국 그를 떠나간 모든 사람들에 의해 탈락 위기에 맞기도 하고, 음악으로써도 인정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허나 성현을 만난 뒤로 그는 다시 눈을 뜨게 되었다.

자기 자신만을 바라보는 시각을 남에게도 돌릴 수가 있었고, 다른 사람들의 마음도 볼 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의 성장은 성현에게도 나쁠 건 없었다.

그가 가지고 있는 무대에 대한 이해도와 퍼포먼스 실력은 성현이 성장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로하는 것들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서자명은 오아시스 사건 이후로 성현에게 감명을 받고 있었기에 부탁하는 건 어렵지 않아 보였다.

서자명을 통해 얻은 건 그뿐만이 아니었다.

성현의 휴대폰이 울려댔다.

알람이 뜬 커넥트 앱을 보니 문정석으로부터 메시지가 도착해 있었다.

그가 서자명을 도와준 대가로 1000캐시를 후원해줬다는 내용이었다.

‘역시 통 큰 스폰서답네.’

문정석은 2라운드가 끝나자마자 성현에게 1000캐시를 보내주겠다는 약속도 같이 했었다.

이를 통해 뱉은 말은 지키는 그의 성격을 엿볼 수 있었다.

‘캐시 말고 다른 약속도 지켜주면 좋겠는데.’

우선 첫 번째 약속을 지켜준 것엔 감사했지만, 성현에겐 다음 약속이 더욱 중요했다.

부디 서자명이 엇나가지 않도록 문정석이 잘 잡아주길 바라는 약속이었다.

“2라운드에서 떨어지긴 아까운 참가자긴 하죠.”

때마침 합격자실에 들어오는 서자명을 보며 조은별이 말했다.

조은별도 같은 프로듀서 참가자로서 그의 재능을 알아봤기에 한 말이었다.

“네. 재능은 확실하니까요.”

성현도 그 말엔 동의했지만, 성현 일행 외의 사람들은 그를 어떻게 느낄지 짐작이 갔다.

그의 생각대로 참가자들은 모두 서자명을 흉보는 시선으로 흘겨보고 있었다.

그동안 서자명이 해왔던 일의 결과이니 어쩔 도리가 없었다.

순간 성현은 서자명과 눈이 마주쳤다.

그러지 서자명은 가볍게 목례만 하고 앞을 지나쳐갔다.

그 모습에 성현을 비롯한 일행의 시선이 서자명에게로 집중되었다.

“깽판 치려고 저러나? 설마? 자기 안 받아줬다고?”

임하나는 그의 모습에서 순간 불안감이 엄습해왔다.

서자명은 굳은 표정으로 다른 참가자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성큼성큼 걸어가고 있던 것이었다.

그를 팀에 합류시키지 않은 사람들에게 복수라도 하려나 싶은 생각이 든 것이다.

역시 생각대로 흘러가는지 서자명은 그들 앞에서 발을 멈추고 입을 열었다.

그러나 서자명이 하는 말에 모두의 입이 떡 벌어졌다.

“그동안 무례하게 굴어서 죄송합니다.”

서자명이 합격자 중 이전 자신이 독설과 함께 오디션에서 탈락시켰던 이들에게 허리 숙여 사과한 것이다.

참가자들은 그의 태도를 보고 믿지 못하겠다는 듯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사람이 갑자기 저렇게 바뀌어도 되는 건가.’

이를 본 성현 역시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가 달라질 거라고 기대하긴 했지만, 이 정도로 극적으로 바뀔 거라고 기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문정석 대표가 뭘 어떻게 했길래......’

확실한 건 스폰서가 그에게 어떤 조취를 취했다는 것이다.

물론 이것도 게임 속에선 나오지 않은 일이기에 알 방도는 없었다.

이유야 어찌됐든 서자명의 변화는 성현에겐 당연히 좋은 일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서자명이 참가자들에게 사과를 하고 있을 때 홍대 지역 메인PD가 들어왔다.

“본선 2라운드에 합격한 참가자 여러분 모두 축하드리며 참가자 전원에겐 300캐시의 보상이 지급될 것입니다.”

홍대 지역 메인PD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아지트 내에 있는 합격자들의 커넥트 알람이 울렸다.

커넥트 앱을 통해 공식적 합격 공지와 보상 들어온 것이다.

[본선 2라운드에 합격하셨습니다!]

[보상으로 300캐시가 지급됩니다.]

그렇게 공식적인 합격자 발표가 난 뒤 이곳에 없는 천소울을 포함 살아남은 참가자는 십여 명 정도.

1주차에 살아남았던 공연장 중, 미성년자 문제가 불거져 폐점된 MTT와, 상향된 관객 수를 채우지 못한 참가자들은 모두 오디션에서 사라졌다.

성현의 일행과 요하와 주선아의 공연장을 포함해 총 세 개의 공연장에서 공연한 참가자들만 합격한 것이다.

그러니 이번에도 역시 참가자 수가 확 줄어들었다.

“본선 3라운드에 대한 공지는 커넥트 앱을 통해 갈 것이며 그전까진 각자 자유시간을 가지며 다음 라운드 준비를 해주시면 됩니다. 모두 수고 많으셨습니다.”

남은 시간 동안은 휴식을 취하라는 듯 아량을 베푸는 말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어찌 보면, 앞으로는 더 힘들어질 것이니 지금 미리 푹 쉬라는 말처럼 들리기도 했다.

사람의 본심은 눈으로 볼 수 없기에 그가 무슨 뜻으로 말을 한 건지는 알 수 없지만.

메인PD는 마지막 인사를 끝으로 아지트를 나갔다.

그 뒤 참가자 또한 그제서야 긴장을 풀고 아지트를 빠져나갔다.

***

아지트를 나와 지하철 역으로 가는 성현의 동료들은 각자 남은 시간을 뭐하고 보낼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전 내일부터 다시 연습 들어가려구요. 흐름 깨지는 것도 싫고.”

“역시 맏언니답네요. 언니 멋있어요.”

“언니라고 하지 말라니까요!”

“언니를 언니라고 부르지 못하면 무어라 불러야 합니까?”

자신보다 세 살이나 어린 서지현에게 임하나는 잔망스럽게 달라붙었다.

임하나와 서지현은 서로 계속 투닥거리더니 성현이 지하철역으로 가는 길 도중 일행들과 헤어졌다.

“다들 조심히 들어가세요.”

“성현 씨, 집에 가는 거 아니에요?”

조은별은 성현이 집에 가는 방향과 정반대 방향으로 향하자 의아해 물었다.

“잠시 들릴 곳이 있어서요. 다들 고생 많으셨어요.”

성현은 인사를 서둘리 마치고 발걸음을 옮겼다.

마치 무언가를 몰래 계획하고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다.

허나 조은별도 그의 행동에 더는 묻지 않고 헤어졌다.

일행과 헤어진 성현이 도착한 곳은 한 건물 앞.

<오아시스 라이브 바>

라운드가 끝났음에도 성현이 이곳에 온 이유는 따로 있었다.

바로 오아시스 사장과 했던 약속.

미션이 끝나고도 꼭 인사를 하러 오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다소 사소한 약속일지라도 성현은 그것마저 지키러 온 것이다.

성현이 문을 열고 들어가자 아직 오픈 준비 중인지 의자가 전부 테이블 위에 올라가 있었다. 그 안에서 사장 심훈영은 청소기를 돌리고 있었다.

“아직 문…….”

지금은 장사를 하지 않는다는 귀찮은 표정을 지으며 말하려다가 성현임을 깨닫고 급히 표정을 바꿨다.

“합격했다면서. 축하해요.”

이제는 성현의 방문이 오히려 반가워서 심훈영의 입가에는 미소가 번졌다.

게다가 어느새 한참 어린 성현에게 존댓말을 표했다.

그때 성현을 끝까지 거절했으면 어쨌으려나 싶었다.

성현도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한쪽으로 기울였다.

“사장님 덕분이죠.”

“그게 왜 내 덕분이에요. 다 학생이랑 학생 친구들이 잘해서 그런 거지. 여기서 잠시만 기다려요.”

심훈영은 성현을 기특해하며 말했다.

그러더니 청소기를 바닥에 두고는 잠시 어디론가 사라지더니 이내 양주 한 명을 가지고 돌아왔다.

“낮술 좋아해요?”

“없어서 못 먹죠.”

평소 술을 즐겨하지 않는 성현이지만, 이렇게 찾아온 심훈영과의 술자리를 놓치긴 아쉬웠다.

대답을 들은 심훈영은 싱긋 웃으며 잔 두 개를 가지고 왔다.

그렇게 두 사람은 아무도 없는 조용한 라이브 바에서 술잔을 기울였다.

기분 좋은 사소한 대화를 이어나갔고 심훈영은 어느새 성현에게 편하게 말을 놓았다.

“라이브 바 운영하는 거 힘들지 않아요?”

“손님 상대하는 게 힘들지. 여기 오는 사람들 학생도 봤겠지만 호락호락한 사람들 아니잖아.”

이미 충분히 겪었기에 말 한마디로 모든 게 이해됐다.

그 사람들이 성현 일행들에게 그런 반응을 보여주다니, 다시금 생생한 기억이 든 덕에 성현은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처음엔 그 징글맞은 인간들 보기 싫어서 그만둘까 했는데 그 사람들한텐 여기가 쉼터고 보금자리더라고. 그래서 여즉 하고 있는 거야.”

“보금자리라...... 저한테 음악 같은 거네요.”

성현의 진심 어린 말에 심훈영은 술잔을 비우고 다시 잔을 채우며 물었다.

“음악이 왜 즐거워?”

“심장이 뛰어서요. 전 가슴 뛰는 일을 하면서 살고 싶어요. 음악은 저한테 살아있단 기분을 들게 해요. 어떻게 무대를 꾸미고 어떻게 곡을 구성할지 고민하는 것만큼 저한테 즐거운 일은 없어요.”

성현의 말에 뭐 잘못된 거라도 있는지 그를 향한 눈동자를 거두지 않는 심훈영.

그러기를 잠시, 심훈영은 눈은 닫고 옅게 웃으며 생각에 잠겼다.

‘옛날의 날 보는 줄 알았더니 그 아일 닮았던 거구나.’

기억 저편 묻어두었던 그리운 이름 하나가 심훈영의 머리에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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