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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같은 프로듀서는 없었다-55화 (55/273)

55화

이야기를 마친 성현과 서자명은 함께 심훈영의 사무실을 나갔다.

그런 이들에게 들려온 건 오직 술병 깨지는 소리와 욕설뿐.

오늘 역시 거르지 않고 거친 지하 술집 세계가 시작된 것이다.

“야 이 잡것아! 오늘 너 죽고 나 사는 거다!”

“드루와. 드루오라고!”

남자 둘은 서로 몸을 뒤엉키면서 바닥에 굴러 넘어졌다.

이곳 풍경은 정말 볼 때마다 적응이 되지 않는다.

이미 이 상황을 여러 번 봤던 성현도 이런데 처음 겪어본 서자명은 어떠할까.

역시나, 그는 표정에 온갖 사색을 띠고 있었다.

들어올 때 입구에서 봤을 때도 일반적이지는 않을 거라 생각했지만, 막상 정말 몸싸움까지 일어나자 당황한 모습 같았다.

“정말 괜찮겠어요?”

“......괜찮습니다.”

얼핏 봐도 전혀 괜찮지 않은 표정을 짓고 있으나 어떻게든 버티려는 모습이었다.

주변은 엉망진창인 데다가 도저히 공연을 할 수 없는 분위기였다.

이런 광경은 처음일 텐데도 그의 간절한 마음은 꺾이지 않은 듯했다.

“그래요, 그럼. 이 무대에 설 자격이 있단 거 증명해 보세요.”

절대 쉽지 않았을 결정을 내린 서자명에게 힘을 줬다.

서자명은 입을 다물고 조용히 고개만을 끄덕였다.

곧이어 그는 오아시스 바에 있는 무대 위를 쭉 훑어봤다.

확실히 이곳의 분위기는 일반적인 클럽과는 전혀 달랐고 항상 최신식 기계와 작업을 해오던 것에 비해 무대 또한 너무나 조촐했다.

나무로 만들어진 비좁은 무대와 악기는 피아노와 기타, 드럼이 전부였다.

미디와 런치패드로 작업을 해왔던 서자명이기에 더욱 머리가 안 돌아갔다.

그의 주된 능력은 강렬한 사운드와 빵빵한 스키퍼와 조명을 사용한 프로듀싱이었다.

무대를 은하수 마냥 환하게 가로지르던 조명은 바에 있는 조촐한 등에 기댈 수밖에 없었고, 귀와 심장을 건드리는 웅장한 전자 기기음은 기대할 수도 없었다.

그야말로 전쟁터에 무기 하나 없이 들어선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런 탓인지 서자명은 무대 위로 쉽사리 발을 옮기지 못했다.

“왜요? 못하겠어요?”

바닥에 단단히 발이 붙어버린 서자명을 보고 성현이 재차 물었다.

생각대로 몸이 움직여준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기에 생각이 바뀌었을까 물어본 것이다.

질문을 받아들인 서자명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단지 그는 심호흡을 크게 쉬고 마음을 재정비했다.

마침내 그의 발은 움직이며 무대를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무대 위로 향하는 그의 발걸음은 하나하나 의지가 실려있었다.

이윽고 무대에 올라선 서자명은 관객들에게 허릴 숙여 인사를 보냈다.

그러나 여전히 관객석은 아수라장이었다.

싸움은 그새 옆 테이블까지 번져가 규모가 커져 있었다.

하필 모두 술에 잔뜩 취해 주변에는 신경도 쓰지 않고 있었다.

그러니 자연스레 서자명에게는 관심이 가지 않았다.

이런 모습에 서자명은 잠시 어쩔 줄 몰라 하다가 일단 손에 잡히는 대로 기타를 집어 들었다.

그는 잠시 숨을 고르며 안정을 회복시킨 후 연주를 시작했다.

띠링-

기타 줄 튕기는 소리가 대기를 타고 흘러나갔다.

서자명의 연주가 시작되자 가장 긴장한 건 성현이었다.

자신이 첫날 이곳에서 공연했던 기억과 비슷한 패턴대로 흘러갈 것처럼 느껴진 것이다.

‘괜찮으려나. 이것만큼은 게임이랑 달랐으면 좋겠는데.’

게임 속 정보에 의하면 서자명은 프로듀서로서 무대를 멋있게 꾸밀 줄 안다는 분명한 강점이 있었다.

그만큼 단점도 뚜렷한 프로듀서였다.

그리고 그 단점은 지금 혼자 무대를 채워야 하는 서자명에게 있어서 치명적이었다.

다행히 기타 실력만큼은 수준급이라 술집에 있던 사람들 한두 명이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며칠 전 성현의 일행이 무대에 서서 그런지 그들 또한 어느 정도 인내심을 가지고 무대 매너를 지키려나 보다.

한편 성현은 서자명의 기타 반주를 들을수록 걱정은 더 커져갔다.

제발 그의 약점이 달라져 있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그렇게 아직까지 괜찮은 무대를 이끌어가던 서자명은 첫 소절을 사뭇 진지한 어조로 불렀다.

“오늘도 눈이 내렸어- 너는 알고 있을까-”

서자명이 노래를 부르는 순간 술집에 있던 사람들 모두 순식간에 관심을 가지며 무대를 바라봤다.

이에 성현도 고개를 절로 끄덕이며 반응했다.

역시나,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성현의 생각대로였다.

“아이고 세상에 음치도 저런 음치가 없네.”

“저딴 걸 노래라고 하는 거여? 야 인마! 너 소음공해 고만하고 내려와!”

그렇다. 서자명은 노래를 엄청나게, 그것도 심하게 못 했다.

성현도 이들 앞에서 노래할 때 훌륭한 연주와는 정반대되는 노래 실력을 뽐냈었다.

허나 아무리 그래도 이 정도까지 부르지는 않았다.

‘막상 귀로 들으니까 더 심각하구나.’

서자명이 음치라는 건 게임을 통해 알고 있었다.

서자명을 설명하는 대사에서 노래만은 기피하라는 말을 자주 들었으니까.

따라서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막상 그의 라이브를 들으니 생각했던 것 이상이었다.

자신의 실력은 자신이 가장 잘 알기에 서자명도 이를 모를 리는 없었다.

그러니 노래가 들어가는 부분은 모두 빠지며 다른 사람들로 채웠겠지.

허나 그는 이번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노래를 계속해서 이어갔다.

“저걸 들을 바엔 마누라 잔소리 듣는 게 낫지. 심사장, 저런 자식은 무대에 왜 세운 거야.”

“누가 쟤 좀 끌어 내려봐!”

이만한 반응을 보인 것을 보면 그의 노래 실력은 구태여 설명하지 않아도 되겠다.

다만 술 깨는데 있어 효과는 이루 말할 것 없을 정도로 확실했다.

이들은 모두 마시던 술을 테이블에 올려두고 진심으로 성을 내기 시작했다.

손님들이 이렇게 맨정신으로 화를 내는 건 처음이었다.

손님들은 모두 서자명에게 노래를 멈추라며 욕을 날렸다.

뒤이어 이 술집의 사장인 심훈영에게도 항의를 보냈으나 어깨만 으쓱거리며 성현을 바라봤다.

성현이 기회를 준 거면 그만한 이유가 있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도 서자명은 손님들의 반응에 더욱 자존심이 긁히고 간절해져서 노래를 멈출 수 없었다.

그때, 문이 열리며 종소리가 울렸다.

오아시스에 새로운 손님인 성현의 일행들이 들어온 것이다.

무대 위에는 성현 혼자 올라가는 것이 아니다.

이곳 무대를 위해 멤버들 역시 같이 연습하고 구상했기에, 서자명을 받아주는 것을 혼자 결정할 수는 없어서 부른 것이다.

“최대한 빨리 온 건데 늦은 거 아니죠?”

늦었다기보다는 오히려 완벽한 타이밍에 들어왔다.

그녀들은 성현의 불음에 곧장 이곳으로 모여들었다.

조은별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묻던 때에 임하나가 무대 위에 있는 서자명을 발견했다.

“전부 까였다더니 진짜구나.”

그녀는 서자명이 이곳까지 흘러온 이유를 짐작하듯 말했다.

서자명에 대한 평은 어딜 가든 들을 수 있어서 소식을 접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뒤이어 같이 들어온 서지현은 서자명의 노랠 들으며 감탄을 지었다.

“와...... 노래 진짜 못 한다......”

“긴장해서 그런 걸 수도 있으니까 조금만 더 지켜보죠.”

남에게 험담을 잘못하던 서지현마저 혀를 내둘렀다.

이대로면 서자명은 평생 그녀들에게 안 좋은 인상으로 남게 될 것 같았다.

그렇게 되면 성현이 승낙해도 받아들이려 하지 않겠지.

성현은 애써 긍정적으로 둘러대며 다시 무대로 시선을 돌렸다.

서자명은 이제 아예 눈을 질끈 감고 노래하고 있었다.

“야 인마! 고만하라고!”

“에이 씨, 술맛 다 떨어졌네.”

서자명은 손님들의 비난에도 한 곡, 두 곡 계속 노래를 이어갔다.

하지만 성현의 바람대로 노래 실력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결국, 욕을 하던 손님들 중 몇 명은 포기하고 귀에 휴지를 꽂고 등을 돌려 술을 마셔댔다.

역시 그의 특기를 발휘할 수 없는 이곳에서는 인정받는 건 무리였을까.

서자명은 결국 기타 연주를 그만뒀다.

이대로 공연을 포기하나 싶었는데, 그는 피아노로 자리를 옮겨갔다.

“이번 곡은 정말 잘 부를 자신 있습니다. 믿고 한 번만 들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번엔 꼭 보여주겠다는 확신에 찬 표정으로 피아노 연주를 선보였다.

그러나 노래는 여전히 최악이었다.

피아노 실력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그의 음색은 갈리다 만 커피 가루처럼 거칠고 본연의 향도 느끼지 못하게 했다.

엉망진창으로 분위기를 흐트려 놓은 탓인지, 참다못한 손님 몇 명이 무대로 쓰레기를 던졌다.

이런 상황에 서자명의 멘탈은 완전히 너덜너덜해져 피아노 연주까지 틀리기 시작했다.

“좀 딱하긴 하네요.”

무대에서 혼자 고군분투하는 서자명이 안타까운지 조은별이 안색을 표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곳 오아시스 라이브바는, 오로지 패기와 간절함만으로 손님들의 마음을 살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이성현이, 그리고 멤버들이 그랬던 것처럼 절박함은 기본이고 특별함과 실력이 받쳐주어야 했다.

그러나 이 무대에서만큼은 서자명은 간절함 외에 특별함을 보여주지 못하고, 또 노래 실력은 최악이었다.

‘예상했던 대로네.’

허나 성현은 그런 서자명을 전혀 패배자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성현이 서자명의 능력과 재능은 이런 무대에서는 빛을 발하기 힘들다는 건 이미 예상한 결과. 애초에 서자명에게 지금 이 자리에서 증명해달라 했던 것도 그런 특별함이나 실력이 아니었었다.

서자명은 아무도 듣지 않는 무대에서 네 번째 곡을 꿋꿋이 이어갔다.

그럼에도 끝까지 손님들의 마음을 얻지는 못했다.

대신 그는 다른 걸 얻는 것에 성공했다.

‘간절하단 말이 거짓말은 아니었구나.’

성현이 그에게서 보고 싶었던 건 진실된 간절함이었다.

서자명은 무대에서 그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무대로 쓰레기가 날아들고 욕을 먹는 건 그 자존심 강한 서자명에게는 씻을 수 없는 치욕일 텐데 그는 그 모든 걸 참고 견디고 있었다.

띠링-

그 순간 성현의 커넥트 앱으로 메시지가 하나 도착했다.

메시지는 어느 스폰서로부터 온 거였는데 성현은 그가 누군지 알고 있었다.

‘문정석.’

문정석, 그는 스탠다드 엔터테인먼트의 대표이자 서자명의 스폰서였다.

메시지를 확인한 성현은 고갤 들어 라이브바를 둘러봤다.

분명 이 상황을 어디선가 지켜보고 있을 게 틀림없었다.

생각대로 주변을 보니 서자명을 담당하는 AD가 무대 구석에서 성현을 지켜보고 있었다.

아마 AD가 문정석 측에 연락을 했을 가능성이 컸다.

김인호AD가 성현이 떨어지는 것을 우려하듯 그 AD 역시 서자명이 떨어지는 걸 원치 않을 테니.

상황을 확인한 성현은 바로 자신에게 온 메시지를 확인했다.

-서자명 참가자를 도와준다면 그에 대한 대가로 캐시 지급과 함께 어떤 부탁이든 들어드리겠습니다.

‘많이 급한가 보네.’

문정석 정도 되는 스폰서가 연락을 온 것을 보니 그가 얼마나 서자명을 아끼는지 알 수 있었다.

메시지를 확인하고 서자명을 지켜보는데 그는 어떻게든 연주를 이어가려 하고 있었다.

‘이걸 어쩐다.’

안 그래도 그가 보여준 절박함 때문에 마음이 동한 상태였다.

비록 지금 무대는 최악이지만 그가 프로듀서로서 재능을 가지고 있단 건 의심할 수 없었다.

게다가 그와 함께하면 자신의 무대에 서자명의 재능을 얹어 대단한 음악적, 무대적 시너지를 낼 수 있다.

이것만으로도 도와줄 이유는 충분했다.

그랬는데 거기에 서자명의 스폰서가 직접 연락을 해서 부탁을 해온 것이다.

더는 고민할 가치도 없다.

성현은 곧장 휴대폰을 끄고 서자명의 담당 AD한테 걸어갔다.

“문정석 대표한테 말씀 좀 전해줄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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