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같은 프로듀서는 없었다-53화 (53/273)

53화

시간은 빠르게 흘렀고, 또다시 찾아온 수요일.

둘째 주 공연이 있기 이틀 전이었다.

살아남은 참가자들이 저마다 아지트에는 연습장에서 마지막 박차를 가하며 연습에 매진했다. 그건 성현의 일행도 마찬가지.

지난 토요일 이후 오아시스 바에서 보여지는 두 번째 공연이었다.

그때보다 30명이 늘어난 100명의 관객 수를 채워야 하는 만큼 고정 관객을 늘리기 위함이었다.

“좀만 쉬었다 해요.”

연습에 심히 몰두해있는 사이 시간은 훌쩍 흘러가 있었다.

곡을 만들고 무대까지 신경 쓰느라 지칠 대로 지친 은별이 기지개를 피며 휴식을 권했다.

그녀의 말에 모두 찬성하듯 마이크를 내려놓았다.

서지현과 같이 연습을 했던 임하나는 갑자기 몰려온 피로감에 휩싸여 소파에 풀썩 누우려 했다.

그러나 서지현이 그녀를 강제로 잡아 일으켰다.

“언니. 아직 롱스케일 안 끝났잖아요.”

“아, 못해. 못해.”

“언니가 얼굴 근육을 너무 안 써서 소리가 제대로 안 나는 거예요. 춤출 땐 근육 잘만 쓰면서 왜 노래 부를 땐 근육을 안 쓰려 해요. 잘 봐요.”

“안 볼래. 그만할래. 나 좀 살려줘 누가.”

임하나의 절규에도 서지현은 모르는 체하며 일으켰다.

나이는 임하나가 더 많지만 체격은 서지현이 더 좋았기에 버티려 해도 소용없었다.

저번 날, 임하나가 서지현에게 춤 연습을 무리하게 시킨 것에 대한 복수를 하려는 것이 틀림없어 보였다.

결국, 임하나는 서지현의 복수의 힘에 이끌려 강제로 끌려 나갔다.

그 모습에 성현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이 모습을 같이 보고 있던 건 성현뿐만이 아니었다.

카메라로 연습장 안을 촬영하던 김인호 AD도 카메라를 잠시 내려놓으며 기지개를 폈다.

김인호 역시 이들의 생생한 팀워크를 보면서 입가에 미소를 번졌다.

“이 팀은 다들 사이가 좋네. 다른 팀은 카메라 앞에서만 친한 척 연기하는 사람들 수두룩한데.”

“참가자도 참가자지만 AD분들도 고생이 많네요.”

성현은 아지트 안에 있는 냉장고에서 음료수를 꺼내 김인호에게 건넸다.

촬영용 카메라를 계속 잡으며 아지트 안을 돌아다녔던 김인호는 목이 말랐는지 벌컥벌컥 마셨다.

“다른 건 다 괜찮은데 집에 못 가는 게 제일 힘들어요. 우리 소연이 아빠 기다리고 있을 텐데.”

“아, 결혼하셨나 봐요?”

“큰일 날 소릴 하시네. 저 아직 미혼입니다.”

미혼인데 아이가 있단 김인호의 말에 성현은 의아하게 생각했다.

‘미혼부인 건가?’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표정에 다 드러났다.

성현의 속을 알아챈 김인호는 피식 웃었다.

“우리 집 비숑 말하는 건데. 소연이.”

“아...... 강아지요?”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당연히 아기 이름인 줄 알겠다.

뭐, 애완동물도 한 가족이니 사람 이름처럼 짓는 주인들도 많으니까.

그제야 김인호의 말을 이해한 성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뒤이어 김인호는 핸드폰을 꺼내더니 소연이란 비숑의 사진을 잔뜩 보여줬다.

어찌나 사랑이 넘치는지 사진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예쁘죠? 예쁘죠?를 연신 물어댔다.

“빨리 집 가서 봐야 될 텐데. 촬영 끝나면 편집, 편집 끝나면 스폰서들 반응 봐야 되고 그거 끝나면 또 촬영이고. 아주 개미지옥이 따로 없어요.”

여기도 업무량에 치여 스트레스를 잔뜩 받겠다, 싶었다.

김인호는 여전히 휴대폰 속 사진을 보며 소연이가 보고 싶다며 한탄을 계속했다.

그때, 갑자기 휴대폰 배경이 바뀌며 전화가 울려댔다.

한동균 PD다.

자신보다 한참 위인 PD의 전화에 좀 전까지 보여준 행복한 미소는 어디 가고, 당혹감에 사로잡혀 급히 자리를 이동했다.

의자에 몸을 젖혀 음료수를 한 모금 들이키려고 했다.

그 순간, 멀리서 들려온 김인호의 깜짝 놀란 목소리가 들려와 그가 나갔던 방향을 응시했다.

“네? 정말요? 예, 일단 알겠습니다.”

‘역시 그 일이 생긴 건가......’

김인호의 반응을 보니 우려했던 일이 점차 현실로 다가오고 있음이 공기를 통해 전파됐다.

“이건 또 뭔 일이야. 아씨, 진짜 미치겠네.”

전화를 끊고 걸어오는 김인호는 머리를 쥐어짜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전과 확실히 다른 모습에 확실히 무슨 사건이 터진 건 분명했다.

“이것 봐. 아무튼 사람 쉬는 꼴을 못 본다니까.”

김인호는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으며 다급하게 외투를 챙겼다.

“무슨 일이길래요?”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확실히 알고 싶은 성현이 물음을 제기했다.

오디션 내 스텝들에게서 전해들은 내용을 참가자에게 말해도 되나 싶던 그는 잠시 망설였다. 하지만 언젠간 알게 될 일.

김인호는 입을 떼며 말했다.

“뭐 어차피 내일 알게 될 텐데. MTT 클럽 알죠?”

“네. 지정공연장이잖아요.”

“신고가 들어갔데요. 미성년자 출입시켰다고.”

“그럼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건가요?”

“자세한 건 긴급회의 거쳐야 나올 것 같긴 한데 아마 공연장 폐쇄되지 않을까요?”

MTT는 청소년은 입장 불가한 클럽 공연장이기에 무슨 이유로든 들여보내면 안 되었다.

그런데 그곳에 청소년이 들어갔다 했으니, 당장 조사할 필요는 충분히 있었다.

그 내용이 사실이고, 절차에 의해 폐쇄된다면 당장 내일 MTT 클럽에서 공연은 불가능하단 소리였다.

“아무튼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수고.”

결코 자그마한 사고가 아닌 탓에 김인호는 급하게 짐을 챙겨 연습실을 빠져나갔다.

자칫 방송에서 클럽 안에 청소년이 들어와 공연하는 모습을 보였다가는 어떤 후폭풍이 몰아칠지 모르는 일이었다.

서서히 멀어져가는 김인호의 모습을 보던 성현은 무언가 생각하고 있었다.

‘게임 속 일이 이번에도 정말 일어났구나.’

이번 사건 역시 게임 ‘메이크 유어 스타’ 속에서 벌어졌던 일.

허나 현실에서도 정말 똑같은 사건이 일어나다니.

단순 미션 내용뿐 아니라 이런 디테일한 사건까지 재현되다니.

문득 찾아온 기시감에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대체 누가 왜, 어떻게 만든 게임일까?’

***

그날 저녁 늦은 시간.

긴급 공지가 커넥트 앱 메시지로 전달됐다.

[긴급 공지 : MTT 클럽 공연 금지 처분. MTT 클럽에서 공연을 준비한 프로듀서 및 가수 참가자들을 위해 하루의 시간과 공연장의 추가 TO를 받기로 결정.]

연습 도중 공지를 확인한 성현 일행들은 모두 입을 다물지 못했다.

“갑자기 미성년자 출입이라니...... 문 닫을만한 일인 건 맞는데 참가자들은 무슨 죄예요.”

“그러게요. 참가자가 손님 관리를 한 것도 아닌데......”

아무리 하루의 시간과 공연장의 추가 TO를 준다 해도 완벽한 무대를 보이기란 쉽지 않다.

그동안 합을 맞추었던 일행들이 뿔뿔이 흩어져 새롭게 공연을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무대 크기나 공연장 분위기도 많이 다를 터.

그때 알람이 또 한 번 울렸다.

[ ‘오아시스 라이브바’의 프로듀서/가수 참가자 계약 가능 인원이 ‘1’ 증가합니다.]

“어, 우리 공연장도 TO 하나 늘었어요.”

“지금 MTT 빼면 공연장 몇 개 남았죠?”

“4개요. MTT 클럽에 프로듀서 한 명이랑 가수 세 명이 있었으니까 티오를 하나씩만 늘려도 충분히 공연이 가능하단 말이네요.”

공연장도 4개면 딱 맞았고 하루라는 시간적 여유도 있었다.

“단순하게만 놓고 보면 4곳 중 어딜 가느냐의 문제지 계약을 하는 것 자체는 큰 무리가 없어 보이네요.”

“복잡하게 보면요?”

“다른 참가자들이 계약을 거절할 수도 있을 겁니다.”

“왜요? MTT 클럽에 있는 가수랑 프로듀서 전부 실력자라고 하던데 받아주면 관객을 끌기엔 더 유리한 거 아닌가요?”

임하나의 말이 맞았다.

MTT 클럽에서 공연 준비를 하던 자들은 프로듀서인 서자명이 오디션까지 봐가면서 뽑은 가수들이다.

그러니 그곳에서 공연한 참가자들 모두 수준급의 실력을 가지고 있는 건 분명했다.

또한 지난 주 공연보다 더 많은 관객을 가져와야 하는 참가자들 입장에서 그들의 합류는 도움이 됐지 해가 되진 않았다.

그러나 항상 모든 것이 이성적으로만 돌아가는 건 아니다.

“인간은 감정의 동물이니까요.”

성현의 아리송한 말에 멤버들 모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들의 모습에 성현은 한 사람을 언급하며 그 사람의 입지를 알려줬다.

“서자명 씨를 받아주는 곳은 아마 없을 겁니다.”

서자명이란 이름을 들은 멤버들은 그제서야 성현의 말뜻을 이해하고 고갤 흔들었다.

서자명은 워낙 안하무인에 싸가지 없는 성격 탓에 그를 싫어하는 참가자들이 많았다.

거기다 애초에 MTT는 프로듀서 2명, 가수 네 명이 계약할 수 있는 공연장.

그런데 현재 프로듀서는 서자명 1명, 가수는 그가 허락한 세 명만 계약되어 있었다.

공석이 있더라도 그의 마음에 들지 않은 자들은 계약을 하지 못한 것이다.

때문에, 자신들의 탈락을 서자명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은 적지 않았다.

더욱이 오디션을 봤다가 서자명에게 대차게 까여 앙심을 품은 참가자들도 많았다.

더 넓게 보자면 남은 참가자 중 그렇게 욕을 먹거나, 탈락한 자들의 지인도 있을 것이고.

즉, 그에게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고 있는 참가자가 다수 존재한다는 뜻이었다.

물론 서자명은 자신의 실력과 좋은 퍼포먼스를 높이기 위해 참가자들을 거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방식이 너무 과했던 것이다.

툭하면 음악을 끊으며 독설을 날려대고,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참가자들은 매정하게 내동댕이쳤으니까.

그렇게 사람들을 함부로 대했으니 아무도 안 받아주는 게 어쩌면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실제로 게임 속에서도 서자명을 받아주는 곳은 어느 곳도 없었다.

성현은 게임 속 천소울의 캐릭터로 플레이 당시 서자명을 받아주느냐 안 받아주느냐로 자주 선택의 기로에 놓였었다.

‘공연장을 구하지 못하면 결국 이대로 탈락이겠지.’

허나 지금은 천소울도 어디론가 가고 없다.

그러니 그가 향할 곳은 더욱 없을 것으로 생각 들었다.

현실 속 서자명의 운명이 궁금해진 성현은 그에 대해서 생각 해봤다.

그는 절대로 이렇게 탈락할 마음을 가지고 있지 않을 것으로 판단했다.

그럴게, 그는 매우 뛰어난 스폰서를 가진 데다, 재능마저 출중했다.

그런 사람이 이런 위기에 쉽게 굴복할 것처럼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무슨 선택을 내릴지 고민하던 때, 그 결말은 금방 알 수 있었다.

MTT 공지가 온 다음 날 저녁, 오아시스 주인 심훈영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빨간 배지를 단 녀석이 찾아왔는데 어떡하면 좋을까 해서.”

“빨간 배지라면….”

“아는 사람이야?”

“네.”

심훈영의 말을 들은 성현은 곧 그 빨간 배지를 단 사람이 누군지 알 수 있었다.

지금 이 상황에서 찾아올 사람은 단 한 명밖에 없으니까.

‘결국, 아무도 안 받아줘서 오아시스까지 찾아갔구나.’

성현도 외투를 챙기며 아지트를 나섰다.

“제가 금방 갈 테니까 그때까지만 기다려주세요.”

전화를 끊은 성현은 곧장 오아시스로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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