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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같은 프로듀서는 없었다-52화 (52/273)

52화

2주 차의 월요일.

아지트 내 연습실에 모인 성현과 일행들은 2주차 공연 준비에 박차를 가했다.

진행요원의 말처럼 2주차 목표 관객수는 70명에서 100명으로 상향 조정이 됐다.

저번 공연 결과로 총 96명을 모았던 터라 금방 성공할 수 있을 것처럼 느껴지지만, 방심은 금물이다.

결과물에 취해 저번보다 질이 조금이라도 떨어지는 무대를 선보이면 그 사람들은 절대 가만있지 않을 거다.

애시당초 이들은 결과를 우선으로 무대를 하는 팀이 아니기에 더욱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저번 공연보다 더욱 발전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퍼포먼스를 보완할 필요가 있었다.

이것은 모든 멤버들이 전적으로 동의한 사항이었다.

그렇기에 멤버들은 지난 토요일부터 쉴 틈 없이 곧장 연습에 매진했다.

“아니. 지현아 왑은 그렇게 매가리 없이 팔만 흔드는 게 아니라 포인트. 포인트를 잘 줘야 한다니까?”

“언니 이거 너무 어려워요. 우리 노래 연습은 안 해요?”

“이것만 하고. 잘 봐.”

지난번부터 임하나와 서지현은 서로에게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려 서로를 도와줬다.

그때 알게 된 서지현에게 춤을 알려주는 맛이 임하나에게 제대로 들렸다.

임하나는 열정적으로 서지현에게 틈틈이 춤을 알려줬다.

그녀가 알려준 춤은 대부분 어느 정도 춤을 연습한 사람만 출 수 있는 난이도였다.

평생 노래만 해온 서지현에게 과하단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더 좋은 무대를 보여주기 위해선 언젠가 해야 할 일이기도 했다.

그러니 서지현은 어려워서 곤욕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도 임하나의 열정에 싫단 말도 못 하고 춤을 배울 수밖에 없었다.

조은별은 임하나와 서지현을 위한 또 다른 곡을 준비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건 성현도 마찬가지.

그들은 각자의 태블릿 PC로 편곡작업을 하느라 마우스와 키보드만을 연신 눌러댔다.

각자의 분야에서 모두 노력을 하고 있을 때, 반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저 왔어요!”

김요하가 연습실로 놀러 온 것이다.

이에 성현을 비롯한 일행들은 모두 연습을 멈추고 김요하를 반겼다.

“요! 하이!”

서지현에게 춤을 열정적으로 가르치던 임하나가 기세 좋게 요하를 반겼다.

저런 작은 체구에서 활발한 에너지는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걸까.

요하와 하이를 합친 말로 놀리듯 인사를 하자 요하도 임하나 손에 하이파이브를 하며 받아줬다.

“오는데 추웠지.”

조은별이 요하의 빨개진 볼에 손난로를 대주며 물었다.

따뜻하고 포근한 기운이 쌀쌀맞게 구는 바람에 이리저리 치인 요하를 감싸들었다.

천소울과 주선아가 있는 10대 위주 공연장은 공연장 안에 따로 연습실이 마련돼 있을 정도로 아지트와 거리가 꽤 멀었다.

그러나 요하는 전혀 지친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요하 키 또 큰 거 같지 않아?”

“그런가? 조금 큰 것 같기도 하고.”

“요하 너 키 컸지?”

“아니요. 아, 소울이 형이랑 운동해서 몸이 좀 커져서 그런가.”

요하의 입에서 소울이 형이란 말이 나오자 연습실 안이 급격히 조용해졌다.

성현뿐만 아니라 멤버들 모두가 요하를 바라보며 모든 동작을 멈춘 것이다.

때문에 요하는 순간 자신이 뭘 잘못 말한 건가 싶어 분위기를 살폈다.

“대박. 그 잘생긴 사람이랑 운동도 같이 했어? 무슨 운동? 헬스? 아니, 그전에. 요하 너 운동을 같이할 정도로 그 남자랑 친해진 거야? 그 짧은 사이에? 누나들 버리고?”

“요하 그렇게 안 봤는데 실망.”

“예? 아니 그게 아니라......”

임하나가 크게 동요한 목소리로 요하에게 장난치듯 물었다.

뒤이어 서지현마저도 요하를 놀려대기 바빴다.

그녀들의 저돌적이고 익살스러운 모습에 요하는 손을 내밀면서 강하게 부정했다.

이것이 여자들의 무서움이란 건가.

“친한 건 아니고 그냥 그 형이 가수한테 체력은 필수라고 가끔 헬스장 데려가 준 것 뿐인데......”

“애 좀 그만 놀려요.”

여자들 속에서 어찌할 방도를 몰라하던 요하를 조은별이 대신 구해줬다.

뒤이어 조은별은 성현이 있는 쪽으로 요하를 데려갔다.

“자, 물어봐요, 어서.”

“뭐를요?”

“천소울 참가자가 지금 어디서 뭐하고 있는지 궁금할 거 아니에요.”

그녀의 어딘가 토라진 듯이 말하는 모습에 성현은 피식 웃음이 새어나왔다.

아무래도 조은별은 자신이 천소울을 그 정도로 집착하는 거라고 생각하는 모양 같았다.

성현은 요하에게 시선을 맞추며 부드러운 말투로 물었다.

“공연은 어땠어?”

“좋았어요. 반응도 좋았고 정말 많이 배웠어요.”

“뭘 배웠는데?”

“음. 소리 내는 법이요. 소울이 형이 이것저것 좀 알려줬거든요.”

“그래?”

요하는 그것대로 재미가 있었는지 신나 하며 대답했다.

그 모습에 성현은 안도와 신뢰의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역시 천소울에게 맡기길 잘했던 것이다.

성현이 요하를 천소울에게 맡긴 건 요하를 청소년 우대 공연장에 세우려는 목적만이 아니었다.

그와 비슷한 음색을 지닌 요하가 그에게서 배울 것이 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천소울 씨는? 공연장에 있어?”

성현은 일부러 아니었던 척 가장 궁금했던 질문을 꺼내 들었다.

허나 그 꼼수는 조은별에게는 다 보였다.

그녀는 그럴 줄 알았단 듯이 어쩔 수 없단 미소를 지었다.

한편 요하는 성현의 질문에 순순히 답해줬다.

“공연장엔 없어요. 주선아 누나 말론 그날 아지트에서 나간 뒤로 어딜 간다고 했다던데.”

‘바로 가버렸구나.’

역시나 그는 라운드를 통과하고 바로 다음 작업으로 넘어간 듯 보였다.

대충 상황이 파악된 성현은 요하의 말을 듣고 무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어디선가 비명 소리가 고막을 찢듯이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보니 핸드폰을 보고 있던 임하나가 입을 가리며 무언가를 보고 있었다.

아무래도 무슨 사건이라도 터진 모양이었다.

“무슨 일 있어요?”

“대박. 모건 한국 왔어요!”

“설마 제가 아는 그 모건이 한국에 왔다구요?”

“그렇다니까! 진짜 대박. 나 모건이 만든 음악 엄청 좋아하는데.”

임하나는 어찌나 좋아하는지 얼굴까지 빨개졌다.

하지만 성현은 자못 심각한 표정으로 그녀들의 대화를 곱씹었다.

모건이라면, 성현 자신도 알고 있는 그 사람을 가리키는 건가?

임하나의 말을 들은 성현은 곧장 휴대폰을 확인했다.

‘정말이네.’

임하나 말대로였다.

포털 사이트에는 모건이 공항에 도착해 취재진들 앞에서 찍은 사진이 계속해서 올라오고 있었다.

얼마나 큰 이슈가 되었는지 실시간 검색어 순위 역시 모건이 1등이었다.

“진짜 왔구나......”

조은별도 그 유명한 모건이 한국에 왔단 소식에 멍하니 기사를 외울 정도로 바라봤다.

요하도 마찬가지로 모건의 소식에 눈을 떼지 못했다.

당연했다.

대한민국에서 가수를 준비하는 사람들 중에서 모건의 노래를 싫어하는 사람은 있어도 모건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으니까.

그는 현재 미국을 넘어 전세계에서 음원 시장을 뒤집고 있는 ‘음원 깡패’였다.

그가 만들어 낸 곡들은 모두 상위권을 차지하느라 바빴고, 그의 곡에 피처링만 맡아도 금세 뜰 수 있다는 소문이 돌 정도의 힘을 가진 프로듀서였다.

그러니 음악에 관심이 남다른 이들에게 모건의 갑작스러운 한국 방문은 그야말로 경이로운 소식이었다.

다만 성현을 제외하고.

이들 중 누구보다 음악을 사랑했지만, 기사에서부터 꺼림직한 기분을 느꼈기 때문이다.

‘제발 그 선택만 안 했으면 좋겠는데.’

성현의 마음은 순식간에 무거워졌다.

***

그날 저녁, 성현은 주선아가 있는 공연장으로 찾아갔다.

“천소울 씨 없다면서요. 공연 준비는 잘 돼가요?”

“네.”

성현의 갑작스러운 방문에 주선아는 여전히 까칠하게 대하며 거리를 두듯 대답했다.

하지만 성현은 전혀 개의치 않고 질문을 계속했다.

“그래요. 주선아 씨 정도 되는 실력자면 충분히 목표 관객수 채울 수 있을 거예요.”

“제 걱정돼서 오신 거 아닌 것 같은데.”

주선아는 성현이 왜 찾아온 건지 대충 눈치를 챈 모양이었다.

그녀는 여전히 까칠한 태도로 성현이 다가오지 못하게 했지만, 성현은 그녀의 그런 성격을 알기에 당황하지 않고 싱긋 웃었다.

“눈치도 빠르네.”

“선생님 어디 갔는지 저도 몰라요.”

“뭐 한다는 말도 없었어요?”

“네. 그런 거 일일이 말하는 분도 아니고.”

하기야, 그의 성격상 주변 아무에게 소식을 전하고 다닐 성격이 아니긴 하지.

성현은 곧바로 이해를 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과연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걸까.

성현이 생각에 잠겨 말을 잃었을 때였다.

이번엔 무슨 일로 주선아가 궁금증을 가지고 물었다.

“선생님은 왜 찾는 건데요?”

“혹시 천소울 씨한테 무슨 일 생기면 나한테 연락 좀 줄래요?”

성현은 주선아에게 휴대폰을 건네며 하고 싶은 말을 전했다.

“왜 그러는데요? 선생님한테 무슨 일 생겼어요, 혹시?”

“그런 건 아니고 그냥 꿈자리가 뒤숭숭해서요.”

아까부터 천소울을 다급히 찾는데 신경이 쏠린 성현의 모습에 되려 주선아까지 불안해졌다.

어디 가는 건지 말도 안 하고 갔으니 더욱 초조한 마음이 들겠지.

주선아에게 있어 천소울은 자신을 도와주는 샛별과도 같았기에 잃어선 안 될 존재였다.

그렇기에 성현의 대답에 더욱 걱정이 되어 물었던 것이다.

허나 성현은 자신의 생각을 말하지 않고 대충 둘러댈 뿐이었다.

생각이 맞아 떨어지는 것도 싫었고, 말해봤자 주선아를 더 불안하게 만들게 뻔했기 때문이다.

“혹시 이거 작업 거는 건 아니죠?”

둘러대며 말한 게 괜한 오해를 사게 생겼다.

꿈자리가 뒤숭숭해서 찾아왔다는 게 이상하게 들리긴 할 테다.

“작업은 옛날부터 걸고 있었는데.”

주선아가 성현을 조금이라도 알았다면 이런 오해를 하지 않았을 테지만.

“뭐라구요?”

“왜요? 누구나 탐낼만한 사람이잖아요.”

“미쳤어요? 저 아직 미성년자거든요?”

주선아는 자신의 몸을 감싸며 기겁에 질린 표정을 지었다.

왜 저런 모습을 취하는 건지 성현은 이해할 수 없어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러더니 이내 무언가 알아채고 어이가 없다는 듯 너털웃음을 지었다.

“설마 내가 주선아 씨한테 작업 건다 생각한 거예요?”

“......그럼 뭔데요? 아까 탐낼만한 사람이라 그랬잖아요.”

“천소울 씨 말한 겁니다. 그쪽이 아니라.”

서로의 말이 다른 방향으로 엇갈린 탓에 오해가 생겨버린 거다.

그제야 성현이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깨달은 주선아는 오히려 무안해져서 얼굴이 빨개졌다.

이윽고 그녀는 성현의 휴대폰을 거칠게 가져갔다.

주선아는 여전히 자신을 어이없게 바라보는 성현을 흘끗 쳐다보고는 자신의 번호를 찍었다.

주선아로서는 성현의 부탁을 거절할 권리는 충분히 있었다.

그러나 지난번에 보니 확실히 천소울과는 아는 사이 같았기에 번호를 줘도 괜찮을 것 같았다.

게다가 그도 천소울을 걱정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니까.

“그럼 갈게요. 학생.”

성현은 굳이 뒤에 학생이란 말을 강조하며 클럽을 나섰다.

그 대답을 듣자마자 주선아는 아까 전 상황이 떠올라 신경질적으로 머릴 넘기며 다시 연습실로 돌아갔다.

한편, 공연장을 나간 성현의 얼굴은 방금 주선아와 인사할 때와는 달리 굳어있었다.

‘내가 생각하는 일은 없어야 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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