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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같은 프로듀서는 없었다-51화 (51/273)

51화

첫째 주 공연이 끝난 후, 토요일 오전.

첫 번째 주에서 살아남은 참가자들은 모두 아지트에 모였다.

성현의 일행 또한 다 같이 아지트에 모였다.

이들의 대화 내용은 단 하나.

모두 당장 어제 오아시스 바에서 있었던 일을 얘기하느라 바빴다.

“솔직히 어젠 지현 씨가 하드캐리했어요.”

“하드캐리라뇨. 저 혼자 한 것도 아니고 다 같이 준비한 무댄데.”

“하드캐리 인정. 진짜 저보다 동생인데 언니라고 부를 뻔했다니까요? 언니라 불러도 되죠?”

“네? 언니는 언니잖아요!”

지현보다 3살 많은 임하나는 익살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그녀에게 장난을 걸었다.

평소 사람들을 잘 따르는 순둥한 성격을 가진 서지현은 그녀의 놀림거리에 딱 좋은 상대였다.

역시나 서지현은 금방이라도 팔짝 뛰어오를 기세로 다급하게 말했다.

그 모습이 언니들인 임하나와 조은별에겐 그저 귀엽게만 보였다.

“이제야 언니라고 부르네? 언제까지 정 없게 하나 씨라고 부르나 했는데.”

항상 깍듯한 예의를 갖추던 그녀이기에 말을 함부로 두려고 하지 않다가 당황한 틈에 자신도 모르게 나와버렸다.

임하나는 여전히 장난기 넘치는 미소로 얼굴이 붉어진 서지현을 몰아갔다.

“그래요. 우리 이참에 말 좀 편하게 해요. 괜찮지 지현아?”

“네? 저, 전 좋아요.”

두 언니들의 공세에 서지현은 당황한 역력을 잔뜩 휘감고 말까지 더듬었다.

곁에서 보니 오아시스 바 이후로 실력과 무대 경험만 늘어난 것은 아닌 모양이다.

서지현의 허당미가 느껴지는 모습에 임하나와 조은별은 놀리는 것에 맛들려 연신 웃음을 터트렸다.

얼굴이 단풍처럼 새빨갛게 물든 서지현도 편하게 말을 놓은 것이 기쁜 듯 옅은 미소가 입가에 번졌다.

그때 서지현은 옆에 같이 있던 성현과 눈이 마주쳤다.

“그, 성현 오빠도 말 편하게 하셔도 돼요.”

“괜찮습니다. 이게 편해서.”

서지현이 어렵게 먼저 꺼낸 말인데 성현은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깔끔히 거절했다.

뻘쭘해져 어색한 웃음을 지은 서지현의 뒤로 조은별은 고개를 저었다.

성현의 고지식할 정도의 성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그럴 줄 알았다는 표현이었다.

“근데 우리 어제 몇 명 왔더라.”

오디션에서 정해준 무대에서 공연을 하긴 했지만 정해진 관객 수를 채워야 합격이 된다.

눈대중으로 봤을 때는 꽤나 많이 온 것 같긴 한데, 공연에 흠뻑 빠져 있어서 결과도 확인하지 않았었다.

미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조은별은 커넥트 앱을 켜봤다.

그때, 성현이 먼저 결과를 보고 이들에게 알려줬다.

“96명이요.”

“70명 목표니까 1차 공연은 가볍게 통과네요.”

“오아시스 라이브 바 특성상 월요일에도 사람이 많으니 공연장만 잡으면 관객 수 채우는 거야 어렵지 않죠.”

월요일에도 사람이 그렇게 많은데 공연날인 금요일이면 오죽할까.

그곳은 항상 술을 마시러 오는 사람들로 북적였기에 목표치를 달성할 인원수는 충분했다.

즉, 이번 미션은 성현이 처음 말한 대로 어떤 공연장을 잡는지부터가 경쟁의 시작이었던 것이다.

“계약 따내는 게 힘들긴 했지만 그래도 진짜 기억에 남을 거 같아요.”

서지현의 말에 다들 공감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준비 기간 동안 가장 많은 사고를 겪었던 무대였지만, 그만큼 얻은 것도 많은 무대였다.

그때, 이들이 있던 아지트에 익숙한 얼굴들이 비쳐들었다.

“형!”

“어? 요하다.”

공연을 마친 요하와 주선아 그리고 천소울도 아지트로 합류한 것이다.

이곳에 온 것을 보니 역시 당당히 합격을 받은 게 틀림없다.

요하는 아지트로 들어오자마자 성현과 일행들을 찾아볼 수 있었다.

그는 어딘가 들떠 보이는 표정으로 곧장 달려오더니 주절주절 얘기를 시작했다.

“누나들이 저 어제 공연한 거 봤어야 되는데. 진짜 막 다들 일어나서 휴대폰 플래시 흔들고 노래 따라부르고 완전 짱이었어요.”

“그거 너한테 흔든 거 아니거든? 소울 선생님 보고 흔든 거지?”

요하의 말에 반박이라도 하듯 주선아가 끼어들었다.

그녀가 끼어들든 말든, 요하는 멤버들에게 어제 있었던 이야기를 계속 들려줬다.

오랜만에 만나서 그런지 요하는 평소보다 더 밝은 아우라를 뽐내고 있었다.

“고마워요. 요하 잘 돌봐줘서.”

요하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성현은 천소울에게 감사인사를 표했다.

천소울은 아무 말도 없이 고개를 까딱이기만 했다.

정말이지, 재미없는 녀석 같으니라고.

소울이 성현 일행 옆에 있던 테이블로 자리를 옮기자 주선아도 그를 따라갔다.

“그나저나 많이 줄긴 줄었네요.”

아지트에 모인 남은 참가자들을 돌아보던 조은별이 말했다.

어느덧 공지되었던 시간도 다 되어 있었다.

확실히 이전 처음에 모였던 인원과 비교했을 때, 거의 반 이상 탈락한 것으로 보였다.

“서바이벌이니까요. 아마 다음 주엔 더 탈락할 거예요.”

성현의 말과 동시에 진행 요원이 아지트로 들어왔다.

진행요원은 아지트에 마련된 스크린 앞에 섰다.

그때까지 서로 수다를 떨던 참가자는 모두 조용히 입을 다물며 진행요원의 안내를 기다렸다.

“첫째 주 공연 결과 발표하겠습니다.”

스텝의 말과 동시에 그의 뒤로 보이는 스크린에 명단이 떴다.

[ 오아시스 라이브바 : 96/70 명 ]

[ 씽크홀 클럽 : 121/100 명 ]

[ MTT 클럽 : 475/400 명 ]

.

.

[ 루프션 세미 홀 : 21/150 명 ]

스크린엔 목표 관객수 달성률 순으로 공연장 이름이 나열됐다.

성현이 속한 오아시스 라이브바가 1등, 천소울과 요하, 주선아가 공연한 씽크홀 클럽이 2등.

서자명의 MTT는 400명이란 높은 목표 관객수임에도 초과 달성하며 3등을 차지했다.

공연장 크기와 설치된 장비들을 보면 사실 400이란 불가능하지만 않은 숫자였다.

애초에 사람들도 많이 오가는 장소였으니까.

허나 그래도 그 무대에 만족 못 하는 공연을 내세우면 사람들은 빠지기 마련.

서자명은 관객들의 마음을 휘어잡을 수 있는 무대를 만들어낸 것이다.

진행요원의 말을 들은 성현은 서자명을 바라봤다.

서자명은 자신이 이뤄낸 결과가 마음에 들었는지 팔짱을 낀 채 자신만만하게 웃고 있었다.

“공연권을 얹지 못한 참가자, 공연권을 얹었지만, 목표 관객 수를 채우지 못한 참가자 모두 이번 라운드에서 탈락했으며 목표 관객 수를 채우지 못한 5개의 공연장은 폐쇄될 예정입니다.”

탈락한 참가자는 이미 이 자리에 없었다는 건 진행요원이 말하지 않아도 모두가 알 수 있었다.

그 정도로 많은 자리가 비어있었기 때문이다.

이때, 스텝이 뒷말을 덧붙이며 말했다.

“2차 공연부터는 목표 관객 수가 상향될 것이니 이점 유의하여 주시길 바랍니다.”

성현의 일행을 비롯한 참가자들의 표정이 굳어져갔다.

1차 공연 관객수를 채운 것에 대한 기쁨이 채 가시기도 전에 2차 공연에 대한 걱정이 밀려들었기 때문이다.

허나 이것이 그들이 마주한 현실.

이곳에서 누군가 떨어져야 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갈수록 미션도 어려워진다는 건 다들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그럼 이어서 가수 참가자들의 보너스 미션 결과 발표하겠습니다.”

가수 참가자들의 보너스 미션인 버스킹 공연.

버스킹에 참가했던 가수 참가자 전원은 진행요원이 결과를 발표하기도 전에 1등이 누군지 짐작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다들 기대도 하지 않고 짐작 가는 인물을 빤히 쳐다봤다.

“축하합니다. 천소울 참가자.”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역시나 1등은 천소울.

이로써 보너스 미션에서 1등을 차지한 천소울은 더 이상 본선 2라운드를 치르지 않아도 됐다.

그가 1등을 한 것에 아무도 뭐라 할 사람은 없었다.

그럴 것이, 그의 공연은 너무나 완벽했었다.

혼자서 그런 역량을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은 그밖에 없다.

혼자 북치고 장구치고 하여도, 그마저 하나의 예술로 만들어버린 사람을 어찌 비판할 것이냐.

스텝의 결과를 발표함과 동시에 주선아는 박수를 치며 축하해줬다.

천소울은 당연한 결과인 듯 무심한 표정을 일관하며 결과를 받아들였다.

자만심에 취하지도, 자신의 결과에도 놀라지 않는 그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는 모습이었다.

“성현 씨, 좋겠네요?”

보너스 미션에 대한 결과에 반응을 보인 건 조은별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천소울을 가만히 바라보던 성현에게 대뜸 물었다.

“제가 왜요?”

“성현 씨, 천소울 참가자 무지 좋아하니까요.”

“좋아하죠. 프로듀서로서.”

“근데 표정이 왜 그래요?”

보통 같으면 그 대신에 오히려 기쁨에 들떠 미소를 감추지 못할 그였는데.

성현의 표정이 평소보다 가라앉아 있어 은별은 의문을 문 것이다.

이에 성현은 자그마한 숨을 내뱉더니 그 답을 알려줬다.

“1등 한 건 축하할 일이지만 마냥 기쁘지 않아서요.”

“왜요?”

“모르겠어요. 너무 멀리 가버릴까 봐 조금 조급해지네요.”

포지션이 다르긴 하나 성현이 생각하기에 천소울은 항상 자신보다 앞에 있었다.

오히려 성현은 자신이 프로듀서이기에 천소울보다 더 높은 위치에 있고 싶었다.

그렇게 된다면 천소울도 성현에게 신뢰감이 더 들 테고, 더 나아가 성현의 꿈인 소울을 스타로 만들어 주고 싶은 욕심을 이룰 수 있을 거였다.

허나 그 욕심이 워낙 앞서는 상황인지라 성현은 가끔 그런 점에서 안달이 나기도 했다.

‘나도 빨리 더 높은 곳에 올라가고 싶어.’

성현은 공지가 끝나고 누구보다 먼저 아지트를 빠져나가는 천소울을 지켜보며 다짐했다.

자신을 돌아보려 하지도 않는 그의 모습만을 보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현은 그와 마주 보며 이야기하고 싶어 곧장 천소울의 뒤를 쫓아갔다.

“천소울 씨!”

아지트 밖으로 나간 천소울을 따라 다급하게 부르며 그를 따라나섰다.

천소울은 성현의 부름에 발걸음을 멈추고 그를 마주 봤다.

“3라운드까지 시간 많을 텐데 계획 있어요?”

“계획?”

“아니, 뭐, 거창한 건 아니더라도 뭐 하고 지낼 건지 궁금해서요.”

무슨 일인가 했더니, 천소울에 대한 사적인 이야기를 물어봤다.

표정을 보니 뭔가 중요한 이야기라도 할 줄 알았는데 말이지.

한편 그의 순박한 질문을 받은 이유에서인지 천소울은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었다.

“글쎄. 작업실에 박혀서 음악 작업이나 하지 않을까 싶은데.”

천소울은 여유가 느껴질 만큼 차분한 말투로 말했다.

그러나 성현은 그의 알 수 없는 미소에서 느낄 수 있었다.

그가 그저 음악 작업을 할 생각이 아니라는 것을.

게임 ‘메이크 유어 스타’ 내에서도 2라운드를 조기 합격하고 난 뒤엔 여러 선택지가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허나 성현은 이에 대해 더는 묻지 않았다.

‘천소울의 음악이고 삶이니까.’

게임에서 천소울이 늘 성현의 선택에 의해서만 움직였다면 지금 이곳은 엄연한 현실이었다. 즉 천소울은 천소울만의 삶이 있고 이에 대해 성현이 관여할 수도, 관여해서도 안 됐다.

그것이 자신이 관심을 가진 상대를 존중해주는 일이니까.

‘언젠가 최고에 무대에서 함께 할 수 있다면 그거면 충분해.’

이들에게 운명이 있다면 부디 언젠가 이루어질 일이고, 성현은 그것을 이루기 위해선 자신의 손으로 직접 길을 만드는 것도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운명이란 건 항상 인간의 손에 닿는 곳에 있는 법이니까.

“그럼 다음 라운드에서 봐요.”

성현은 그렇게 천소울에게 인사를 한 뒤 다시 아지트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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