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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같은 프로듀서는 없었다-50화 (50/273)

50화

“지현 씨!”

임하나의 외침에 소란스럽던 바는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모든 일이 한순간에 일어났다.

쓰레기에 맞은 서지현뿐만 아니라 임하나도 놀라 노래를 멈췄다.

다행히 날아온 쓰레기는 술병과 같은 위험한 물건이 아니라서 다치지는 않았다.

하지만 다치지 않았다고 해서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쓰레기에 맞은 탓에 서지현의 얼굴엔 놀람, 공포, 당황 등의 복잡한 심경이 담겼다.

“이봐요!”

가장 먼저 고함을 내지른 건 다름 아닌 성현이었다.

“지금 뭐 하자는 겁니까?”

그는 자신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관객들에게 소릴 질렀다.

내면에서부터 화가 치밀어 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버스킹을 통해 실전 감각을 키워 관객과 소통하는 음악을 하기 위해 이곳에 왔다.

그 점은 성현뿐만 아니라 여기 있는 모든 멤버들도 같았다.

이런 취급을 받으러 온 게 아니란 말이다.

성현이 관객 쪽을 무섭게 노려봤다.

자신의 가수가 노래로 이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을 보고 싶었던 거지, 누군가에게 폭력을 당하는 건 참을 수 없었다.

“뭐, 뭐가!”

순간, 성현의 기에 눌린 탓인지 서지현에게 쓰레기를 던진 손님이 제 발 저리듯 얼굴이 파랗게 질려 말을 더듬거렸다.

눈을 부릅뜬 성현의 얼굴에 어둠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당장 손님에게 달려가려는데, 의외의 것이 성현의 행동을 막았다.

“던질 거 더 남았어요? 욕할 거 있으면 지금 하시고 던질 거 있으면 지금 다 던져요. 다 맞아줄 테니까.”

서지현의 목소리였다.

성현의 행동보다 한발 빨리 튀어나온 그녀의 목소리.

서지현은 자신의 발밑에 떨어진 쓰레기를 줍고는 무대 앞으로 걸어가 물었다.

지현의 강하고 단단한 목소리 때문인지 오아시스바에 있던 사람들 모두가 어떤 말도 하지 못했다.

성현 역시 마찬가지.

이번에도 자신이 알고 있던 지현의 또 다른 모습을 보고 그녀에게 눈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딸꾹.”

심지어 그녀에게 쓰레기를 던졌던 남자는 당황해서 딸꾹질까지 시작했다.

“술 마시는데 시끄럽게 해서 죄송하고 뽕짝만도 못한 노래 틀어서 죄송한데요. 이 무대, 저한테 당장 죽어도 올라가야 하는 소중한 무대예요.”

감정 하나하나가 잔뜩 억눌러진 말이 서지현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그녀의 진심이 통한 덕분인지 사람들은 어떤 말도 꺼내지 못했다.

그 순간 성현의 눈앞에 서지현의 이름이 홀로그램으로 반짝이며 뜨더니 이내 사라졌다.

‘뭐지?’

갑자기 번쩍 떴다 사라진 홀로그램이기에 성현은 제대로 보지 못했다.

아리송한 기분이 들긴 했지만 당장은 서지현에게 집중했다.

“아무리 쓰레길 던지고 욕을 해도 전 절대 포기 못 해요. 여기서 공연 못 하고 탈락하면 오디션도 제 꿈도 전부 다 끝나버릴 거 같아서 이대론 그냥 못 간다구요. 그러니까 제발 한 곡만 들어보고 평가해주세요. 그때 가서도 별로면 쓰레기든 욕이든 다 받아 줄 테니까.”

서지현은 아플 정도로 그녀의 의지가 가득 담긴 말을 돌처럼 굳어버린 손님들을 향해 쓰레기 대신 던졌다.

손님들은 더욱 얼어붙을 수밖에 없었다.

성현 또한 그녀의 말이 나온 뒤로 어떠한 행동도 하지 않았다.

서지현의 모든 면에서 비장함이 묻어나왔기에 성현이 끼어들 자리도 허락하지 않은 것이다.

한편 손님들은 진심이 담긴 말을 듣고 침묵에 잠겼다.

그들 중에서도 소란을 피운 사람들이 대다수였기에 쓰레기를 던진 사람과 피차일반이었다.

오아시스 바에는 서지현에게 쓰레기를 던진 남자의 딸꾹질 소리만 들렸다.

“크흠. 일단 한 곡만 들어볼까?”

무대 직전 일어났던 싸움에서 먼저 시비를 걸었던 남자가 눈치를 살피더니 먼저 운을 띄웠다.

“그려. 저렇게 절박한데 들어나 보자고.”

“저 자식은 왜 남의 집 귀한 딸한테 쓰레기를 던져서는.”

분위기는 어느새 성현 일행을 감싸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그것도 모자라 몇몇 사람들은 쓰레기를 던진 남자에게 핀잔을 주며 역으로 몰아갔다.

“하나 씨, 괜찮아요? 많이 놀랐죠?”

“네? 네, 네.”

분위기가 차츰 풀어지자 서지현은 가장 먼저 자신의 옆에 있는 임하나를 걱정해줬다.

쓰레기에 맞고 가장 큰 충격을 받은 건 본인일 텐데.

하지만 서지현은 평소에 봐왔던 일관적인 자세로 임하나를 걱정해줬다.

그렇기에 임하나는 되려 당황스러워했다.

“은별 씨, 두 번째 곡 바로 갈까요?”

“네? 아, 네.”

서지현은 어느새 은별까지 챙기며 무대를 이끌어갔다.

은별도 임하나처럼 벙찐 표정을 짓더니 이내 그녀의 리드에 이끌려 곡을 서둘러 준비했다.

“하나 씨, 연습 때처럼 브릿지 부분 화음만 신경 써서 하면 되니까 긴장할 거 없어요. 저 믿죠?”

“네? 네, 네. 그럼요.”

그들의 무대를 보고 있자니 서지현을 중심으로 모든 게 돌아갔다.

성현은 그저 묵묵히 그들만의 무대를 만들 수 있도록 보고만 있었는데, 설마 서지현이 리드를 이끌 줄이야.

서지현의 색다른 매력이 신기하면서도 흥미로웠다.

어느덧 무대 위는 흐트러진 기류를 정리하고 원래의 공연장 모습을 만들었다.

정신을 차린 임하나는 서지현에게 준비됐단 신호를 보냈고, 서지현은 은별에게 고갤 끄덕였다.

분위기는 한 층 더 고조된 상태로 조은별은 앞에 놓인 태블릿 PC에서 플레이 버튼을 눌렀다.

잔잔하면서 밝은 피아노 인트로를 거치며 MR이 재생되었다.

흐름에 따라 서지현과 임하나도 다시 자세를 잡고 스텐딩 마이크를 잡았다.

노래는, 다시 시작됐다.

“오늘 하루 어땠나요. 오늘도 힘들었나요. 바쁜 삶에 치여 자신을 탓하고 있나요.”

“가끔 넘어져도 괜찮아요. 남과 비교하지 말아요. 우린 지금 이대로도 완벽해요.”

그녀들은 완벽한 호흡을 보여주며 듀엣 무대를 펼쳤다.

치열한 서바이벌 오디션에 참여한 자신들과 비슷한 상황에 놓인 관객들에게 보내는 선물과 같이 더욱 진심을 담아 메시지를 전달했다.

가사는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법한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멜로디는 은은한 행복을 품을 수 있게 했다.

이들의 메시지는 손님들에게도 진심이 닿았는지 상체가 앞으로 쏠린 상태로 무대에 집중했다.

시비를 걸거나 딴짓하는 사람 없이 모두 귀 기울이고 있었다.

박수를 치거나 호응하지도 않았다.

그저 음악 자체를 온몸으로 받아들이며 감상했다.

그렇게 노래가 끝날 때까지 누구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내 노래가 끝났을 때,

짝.

어디선가 박수가 나왔다.

성현도 지난 무대에서 받지 못했던 박수였다.

그리고 그 박수를 시작으로 여기저기서 짝짝짝 박수가 터져 나왔다.

술 취한 아저씨들은 그동안 어떻게 참은 건지 자리에서 일어나 서지현과 임하나를 향해 환호했다.

“잘 부른다!”

“한 곡 더 뽑아봐!”

“아까 쟤한테 쓰레기 던진 새끼 누구야! 확 씨, 손모가지를 부러트릴라.”

서지현과 임하나, 조은별은 자신들에게 박수를 보내는 사람들을 바라봤다.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지만, 지금은 모두 한마음으로 그녀들에게 응원을 보내고 있었다.

지금까지 노력했던 결과에 대해 증명을 받기라도 한 듯 어느 때보다 가슴이 벅차올랐다.

앞에 앉은 손님들은 장식품에 달린 꽃이라도 있으면 무대 위로 뿌려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어쩌면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더 대단한 가수일 수도 있겠다.’

성현은 무대 위에서 환한 미소를 짓고 있는 서지현을 바라보며 감탄했다.

그때, 아까 눈앞에서 반짝였던 홀로그램이 성현의 앞에 다시 나타났다.

이번에는 또렷이 남아있었다.

이에 성현은 곧장 정보창을 확인했다.

[서지현]

나이 : 21살

키/몸무게 : 168.5cm/ 52kg.

포지션 : 가수

특성 : [심금을 울리는 가성]. [탄탄한 기본기], [화성학의 이해], [리더의 자질]

‘리더의 자질……?’

그녀의 정보창을 보니 이전엔 없었던 ‘리더의 자질’이 생겨있었다.

그 사실에 성현은 놀라워하면서도 뿌듯했다.

‘서지현 씨 다운 특성이네.’

세 번째 곡을 시작하려는 서지현을 바라봤다.

이번엔 성현이 편곡한 노래였다.

서지현을 보는 성현의 눈빛이 빛났다.

떨렸다.

자신과 함께하는 가수가 자신과 함께 성장하고 새로운 특성을 발현시키는 것이.

‘프로듀서가 되길 정말 잘한 거 같아.’

성현은 온몸에 전율이 돋았다.

앞으로 서지현이 얼마나 성장할 수 있을지 그리고 그 옆에 있는 임하나는 또 어디까지 성장할지.

자신의 손으로 이 둘 각자의 한계를 뛰어넘는 가수를 만들 수 있을지 미지수였다.

그녀들은 어느 때보다 이 어두침침한 가게 안을 찬란하게 밝혀주고 있었다.

“그 프로듀서에 그 가수네.”

공연을 한참 바라보고 있을 때, 누군가가 성현에게 말을 걸었다.

곧장 돌아보니 근처 테이블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공연을 구경하던 심훈영이 성현 옆에 앉아 있었다.

“무슨 말씀이세요?”

“진짜 뮤지션이라고. 학생이랑 학생 친구들.”

심훈영은 성현과 일행을 인정하는 눈빛을 성현에게 전해주고 있었다.

그 말에 성현은 싱긋 웃으며 답변했다.

“그럼요. 누가 반한 가수들인데.”

성현의 반농담에 심훈영은 허허거리며 웃었다.

“계약하실 거죠?”

성현은 어차피 대답이 정해진 거 아니냐는 듯한 물음을 제기했다.

질문을 받은 그는 대답 대신 바에 있는 사람들을 둘러봤다.

어느 틈에 바에 앉아 있던 사람들은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치며 노래를 따라부르고 있었다.

게다가 취기가 오른 손님 몇 명은 자기들끼리 막춤을 추기도 했다.

“안 하면 폭동 일어날 거 같은데 별수 있나.”

이번엔 심훈영이 농담을 던졌다.

확실히 그의 말처럼 객석에 있던 손님들은 당장에라도 계약을 안 받는다 하면 별일을 다 벌이며 막아설 것처럼 느껴졌다.

그의 농담을 이해한 성현은 그저 말없이 웃었다.

“아티스트에 비해 무대가 많이 초라하지만 그래도 괜찮으면 무대 끝나고 바로 계약합시다.”

“감사합니다.”

“감사하긴. 내가 더 감사하지. 이런 좋은 무대 보여주고.”

“그럼 저 부탁 하나만 들어주실 수 있을까요?”

“부탁?”

뜬금없이 부탁을 들어달란 성현의 말에 두 눈을 껌뻑이기만 한 그였다.

성현의 표정을 보니 그의 시선은 한 손님한테 향하고 있었다.

“저기 저 사람 앞으로 출입 못 하게 블랙 리스트에 넣어주세요.”

심훈영은 성현이 말한 손님을 바라봤다.

그는 다름 아닌 서지현에게 쓰레기를 던졌던 사람이었다.

서지현의 기지로 넘어가긴 했지만, 저 사람을 향한 성현의 화가 풀린 건 아닌 모양이다.

성현은 자신에게 욕하고 해를 가하는 건 참을 수 있었다.

그거야 자신 스스로가 버텨내면 됐으니까.

허나 자신의 가수에게 선 넘는 행위를 하는 건 도저히 봐줄 수가 없었다.

괴로운 일은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언제까지 마음에 남기 마련이다.

그런 힘든 일을 자신의 소중한 사람에게 겪고 싶게 하지 않았다.

내포돼 있던 성현의 마음을 깨달았는지 심훈영은 가만히 고갤 끄덕였다.

“그 정도야 일도 아니지.”

성현은 심훈영에게 고맙단 말을 하며 마저 무대에 집중했다.

그 모습을 보는 심훈영은 생각에 잠겼다.

‘제법 프로듀서로서의 향기가 나네.’

프로듀서란, 자고로 자신의 가수를 소중히 생각할 줄 알아야 했다.

그러나 그 마음을 지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심훈영은 잘 알고 있었다.

‘나도 저랬어야 하는데 말이지…….’

심훈영은 기억하기 싫은 과거를 회상하며 수많은 감정이 밀려드는 걸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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