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같은 프로듀서는 없었다-47화 (47/273)

47화

그날 저녁.

성현의 리드로 인해 일행들은 홍대 놀이터로 향했다.

그곳엔 아직 아무것도 없는 상태라 그런지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지는 않았다.

그러나 성현의 일행이 도착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들이 서서히 모이기 시작했다.

모여든 관객들 중에서는 오디션 뱃지를 단 참가자들도 적잖이 보였다.

“사람들이 계속 오네. 미리 앞에 가서 자리 잡고 있어야 되지 않을까요?”

점점 몰려드는 사람들에 의해 뒤로 밀려나자 무대는 점점 가려져만 갔다.

그렇게 어느새 인산인해가 된 공연장에 성현이 조급해져 물었다.

하지만 조은별을 비롯한 일행들은 사람들을 구경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어, 저기 빨간 뱃지 또 보인다.”

“저쪽에도 파란 뱃지 단 사람들도 있어요.”

이곳은 가수 참가자들을 위해 주최 측이 지정한 버스킹 장소 중 하나였다.

공연을 하기 위해 등록을 했거나, 혹은 등록을 고려 중인 참가자들이 이곳 버스킹 현장 분위기를 확인하기 위해 모인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그일 뿐만 아니라 모두 누군가를 보러온 듯 기다리는 모습도 보였다.

“근데 다들 말은 안 해도 궁금해서 온 것도 있을 거 같은데.”

조은별과 서지현이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임하나를 쳐다봤다.

그러자 임하나는 어깰 으쓱하며 말했다.

“강력한 우승 후보잖아요.”

임하나는 이곳에서 공연할 사람에 대해 알고 있다는 듯이 행동했다.

그녀의 반응에 처음엔 무슨 뜻으로 말을 한 건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이윽고 무대 위로 한 남성이 올라왔다.

조은별과 서지현은 이내 그녀가 지칭한 사람이 누군지에 대해 알았단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근데 성현 씨는 어딨어요? 아까까지 여기 있었는데.”

그녀들이 잠시 이야기에 빠진 틈에 성현이 사라진 것이다.

이를 가장 먼저 눈치챈 조은별이 그의 행방을 물어보자, 다른 멤버들도 황급히 그를 찾아봤다.

이런 수많은 사람들 사이로 성현은 어디로 홀연히 사라져버린 것일까.

그렇게 그녀들이 성현을 찾아다닐 때, 서지현이 먼저 성현을 발견하고는 피식 웃었다.

“저깄네요. 맨 앞줄에.”

그녀의 말을 따라 시선을 옮겨 보니, 성현은 정말 무대와 가장 가까운 맨 앞자리에 있었다.

도대체 언제 어떻게 저기까지 간 건지.

성현은 인파가 계속 몰려들어 점점 뒤로 밀리자 결국 혼자 인파를 헤집고 무대 바로 앞까지 간 것이다.

성현은 무대에 올라선 남자를 뚫어져라 바라봤다.

이곳에서 첫 버스킹 공연을 준비하는 한 참가자.

그는 악기 세팅을 끝내고 마지막으로 건반과 마이크 소리를 점검했다.

“아아.”

그저 마이크를 확인한 것뿐인데 그 간드러지는 목소리에 놀이터에 몰려있던 여자들이 소릴 질러댔다.

‘역시 천소울이네.’

이러한 반응을 예상했던 터라 성현은 괜히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게임 속 그의 주변 반응들을 모두 알았던 터라 현실에서도 그런 반응이 나올지 궁금했었다.

반응은 생각대로였다.

그의 입에서 나온 목소리는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들도 몰입하게 했다.

그와 함께 본선 2라운드를 준비 중인 김요하가 문자로 그의 공연 소식을 전해줘서 다행이었다.

안 그랬으면 이번 무대를 보지 못한 것을 두고 후회했을 것이 틀림없었다.

성현은 설레는 얼굴로 천소울을 지켜봤다.

순간 천소울과 성현의 눈이 마주쳤고, 천소울도 성현의 존재를 알게 됐다.

너무나도 똘망똘망한 눈빛 때문일까.

천소울이 순간적으로 살짝 당황한 표정을 지은 것 같다.

그러나 천소울이 누구인가.

이내 아무렇지도 않게 피아노 앞에 앉으며 감정을 잡았다.

천소울은 손가락을 건반 위로 올렸다.

이윽고 그의 손에서 감미로운 반주가 시작되었다.

천소울이 선택한 노래는 R&B 소울이 느껴지는 외국곡이었다.

피아노 반주만 사용한 무대에 천소울의 음색이 돋보였다.

천소울의 미성이면서도 묵직한 고음에 사람들 모두 빠져들었고 어느새 홍대 놀이터는 사람들로 가득 찼다.

오디션 참가자들로 채웠던 놀이터는 어느덧 일반 사람들의 비중이 더 커지게 되었다.

천소울은 그에 개의치 않게 공연을 했고, 이성현 또한 공연에 집중했다.

‘실력이 더 늘었어.’

가장 먼저 성현에게 든 생각은 그의 더 성숙해진 실력이었다.

성현은 여태껏 무대에서 그의 공연을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기에 어디에서 실력이 늘어난 건지는 모른다.

다만 천소울의 노래 실력은 처음 싸클에서 들었을 때보다 훨씬 늘어있었다.

‘멋지다. 뭐라고 다른 말을 할 필요 없이 그냥 멋진 무대야.’

천소울의 제대로 된 라이브를 처음으로 듣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또한 그의 음악 스타일은 성현의 마음을 크게 휘감아 들었다.

천소울의 노래가 끝나지 않길 바랄 정도로 그의 노래는 완벽했다.

완벽한 박자감에 뛰어난 고음처리, 게다가 사람을 밀고 당기듯 자유자재로 힘 조절을 했다.

그러나 단순히 고음을 잘 내고 테크닉을 잘 쓰는 것만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 이상이었다.

천소울은 건반 하나 가지고 노래를 불러도 멋이 묻어나오는 남자였다.

그의 외모, 음색, 노래 실력, 그가 풍기는 아우라. 이 모든 것들은 그가 스타가 돼야 한다고 각자 또렷하게 주장을 내비치고 있었다.

이것은 게임 속에서 서자명이 천소울을 원했던 이유기도 하다.

천소울은 멋있는 남자였다.

‘이대로 안 끝나면 좋겠어.’

행복한 꿈을 꾸듯 이대로 영원히 있고 싶었다.

그러나 성현의 바람이 무색하게 천소울의 4분 정도의 노래는 빠르게 끝이 났다.

노래에 빠져들어 조용했던 관객들은 그저 박수를 보내기 시작했다.

천소울은 그 짧은 시간 동안 완벽하게 관객들을 몰입하게 만들었다.

이것은 보컬리스트인 그가 가진 가장 큰 장점이라 할 수 있었다.

첫 곡은 전혀 어렵지 않았다는 듯이 천소울은 여유롭게 손을 풀었다.

그 순간 맨 앞에서 눈을 빛내며 자신을 보고 있는 성현을 한 번 힐끗 바라봤다.

그의 노래 실력에 완전히 흠뻑 빠진 모습이었다.

천소울은 그를 무시라도 하듯이 다시 다음 노래를 이어갔다.

홍대놀이터에는 한참 전에 사람들로 꽉 차 있었다.

그러더니 지금은 계단과 도로까지 사람들이 서서 천소울의 노래를 들으려고 했다.

“음색 미쳤다.”

“꿀 보이스네. 음원 냈으려나? 자장가로 듣고 싶다.”

“야, 야. 방금 보고 왔는데 얼굴도 미쳤어.”

관객들의 반응도 엄청났다.

관객들은 그의 노래만 듣고도 인디 가수나 무명 가수로 착각할 정도였다.

천소울은 공연 내내 딱히 많은 말을 하지 않았다.

불필요한 말은 일절 하지 않았고 오직 짧은 인사만 건네줄 뿐이었다.

그러나 그런 모습이 오히려 음악에 더욱 매료시키게 만들었다.

그는 오직 음악만으로 관객들과 소통했다.

때문에, 관객들은 천소울의 노래에 빠져들면서 신나는 곡엔 웃었고 슬픈 곡에선 눈물을 보였다.

단지 완벽하게 준비를 갖춘 정식 공연이 아닌 버스킹 무대일 뿐인데 호응은 절대 밀리지 않았다.

솔직히 말해 그 어떤 값비싼 공연보다도 훨씬 가치 있는 공연이었다.

그렇게 주어진 시간 30분이 지났다.

천소울은 마무리까지 흐트러지지 않은 모습으로 피아노의 마지막 건반을 눌렀다.

버스킹 공연이 끝났을 땐 관객들은 모두 너무나 짧은 무대에 아쉬워했다.

일반 다른 버스킹 공연과는 전혀 다른 열기가 홍대 놀이터를 채웠다.

누가 보면 유명 가수가 길거리로 나와 콘서트를 개최한 듯한 느낌이었다.

사람들은 저마다 앵콜을 외쳤다.

그럼에도 룰은 룰이었다.

“죄송합니다. 본 공연에 오면 더 좋은 무대 보여드리겠습니다.”

천소울은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곧장 악기들을 정리했다.

그의 모습을 끝까지 공연장을 지키며 바라본 참가자들은 그의 실력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더 볼 것도 없이 일 등은 천소울 씨네요.”

“예상은 했는데 정말 엄청나구나. 지금도 이미 완성된 가수 같아요.”

분위기만으로 알 수 있었다.

특별 보너스 미션의 우승자는 이미 천소울로 정해진 것 같았다.

그건 조은별과 서지현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별다른 퍼포먼스 없이 진짜 노래로만 인정을 받았다.

그러니 자신들도 모르게 순순히 인정해버렸다.

직후, 그녀들의 모습에 의지를 태우는 말소리가 들렸다.

“왜 더 볼 게 없어요. 아직 우리 남았는데.”

임하나였다.

그녀는 천소울의 공연을 보기 전보다는 덜했지만 여전히 특유의 승부욕을 풀어내고 있었다.

그녀의 말과 함께, 맨 앞에서 그의 공연을 보고 온 성현도 모습을 드러냈다.

“다들 왜 이렇게 힘이 없어요?”

꿈만 같던 상황을 이루기라도 한 건지, 성현의 얼굴은 싱글벙글했다.

그의 모습에 은별이 잔소리하듯 핀잔을 줬다.

“그렇게 좋아요? 천소울 씨 공연 봐서?”

“네. 별로였어요? 멋진 무대였잖아요.”

“너무 멋져서 탈이죠.”

서지현은 여전히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이에 성현은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그녀를 쳐다보자 서지현이 걱정을 표했다.

“뭔가 비교될 거 같아서요. 하필 내일 저희가 버스킹하는 날이잖아요.”

분명 1등을 하지 않더라도 멋진 무대를 만들자고 했는데 막상 천소울의 무대를 보니 기가 죽은 듯 보였다.

이해 못 하는 건 아니었다.

놀이터에 모였던 대부분 참가자들의 표정에선 모두 어떤 낭패감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아무리 열심히 하더라도 넘을 수 없는 어떤 벽 같은 걸 천소울의 공연을 보고 느낀 것이다.

너무 막강한 경쟁자를 본 탓에 자신의 실력이 형편없게 느껴진 것이다.

하지만 성현은 오히려 당당하게 말했다.

“그날 오아시스 바에서 제가 했던 말 잊었어요? 가수는 음악만 하면 된다는 말이요. 우린 음악만 하면 돼요. 최선을 다하되 즐기면서. 절박하되 자부심을 가지고. 알았죠?”

“네! 일 등하면 더 좋고!”

임하나가 가장 뛰어난 의욕을 내보이며 외쳤다.

조은별과 서지현도 이내 의욕을 내비쳤다.

“그래요. 최선을 다하되 즐기면서!”

“절박하되 자부심을 가지고!”

이를 본 성현은 일행들의 모습에서 이번 버스킹이 수요일 오아시스 무대 전 그들에게 좋은 경험이 될 수 있을 거라 확신할 수 있었다.

***

본선 2라운드 넷째 날, 화요일.

오아시스 라이브바의 계약을 위한 공연을 하루 앞둔 날이었다.

성현과 일행은 지정된 버스킹 장소인 ‘윗잔다리 공원’에 도착했다.

어제 본 천소울이 공연했던 홍대 놀이터보다는 더 아담한 장소로 아무래도 관객들이 많이 들어차기에는 힘든 곳이었다.

때문에 버스킹 미션에서 1등을 노리는 참가자들은 별로 선호하는 장소는 아니었다.

그래도 성현 일행에겐 1등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기에 그 누구도 장소에 대해서 불평하지 않았다.

또한, 성현이 이곳을 택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관객들과 더 가까이서 호흡하고 무대를 같이 만들어가는 상황을 만들어주고 싶어서였다.

그간, 이들은 관객들과 호흡하는 무대보단 서바이벌 형식에 묶여 대결에 초점이 맞춰진 무대만을 해왔다.

그렇기에 관객들과 호흡하는 것도 무대에 서는 공연자라면 연습과 경험이 필요했다.

한편, 멤버들은 버스킹을 앞두고 모두 몸을 풀었다.

그 순간 성현은 이들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무언가를 꾸며낸 눈빛을 보였다.

‘이렇게 가까이서 호흡할 때 위기가 더 크게 느껴지는 법이니까.’

성현은 일행들을 향해 웃어 보이며 마이크와 앰프를 설치하기 시작했다.

이윽고 그의 마음속을 눈치채지 못한, 앞으로 닥칠 위기를 전혀 모르는 멤버들은 함께 웃으며 성현을 거들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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