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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같은 프로듀서는 없었다-46화 (46/273)

46화

본선 2라운드가 시작된 다음 날. 일요일 낮.

일행들은 어제 성현의 말이 자극이 됐는지 약속한 듯 아침 일찍부터 나와 수요일 계약을 위한 공연 연습에 매진했다.

“하나 씨, 두성은 성대의 진통패턴과도 관련이 있어요. 하나 씨 방금 그 소리는 고음에서 성대를 좀 두껍게 진동할 때 나는 소리 같거든요? 제가 하는 거 보시면......”

서지현은 임하나의 보컬까지 봐주면서 열정을 다했다.

반대로 임하나는 서지현에게 가벼운 춤동작을 알려주며 서로 도움을 주었다.

“지현 씨는 몸이 기본적으로 유연하네요. 그럼 이번에는 손을 이렇게 들고......”

평소 가만히 서서 노래만 부르던 서지현이 임하나의 코칭을 받으며 그루브를 탔다.

뻣뻣했던 몸이 조심스레 움직여졌다.

둘은 서로에게 없는 부분을 채워주며 좋은 시너지를 띠기 시작했다.

‘둘 다 제법이네.’

연습을 보던 성현은 시간을 확인하더니 연습실을 나섰다.

이윽고 그가 도착한 곳은 MTT 클럽 공연장 앞.

몸에 커다란 전율을 주는 음악과 눈이 시리도록 밝은 형형색색의 조명들이 내부를 가득 채웠다.

클럽 외부도 고급스러운 형태를 취하며 아름다움을 자아냈다.

성현은 그 화려한 외관을 올려다보며 생각에 잠겼다.

‘서자명이 이곳에 있단 말이지.’

MTT 클럽은 서자명 프로듀서가 계약한 공연장이자 홍대 지역 내 최고로 인기 있는 공연장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가수 참가자들이 이 공연장에서 무대 하기를 노렸다.

무대에 오르기만 하면, 관객 수는 자연스레 따라오는 공연장이니까.

이를 반증하듯 건물에는 파란색 뱃지를 단 사람들이 눈에 아른거렸다.

그러나 서자명 성격에 아무나 무대에 올리지는 않을 터였다.

애초에 대충 무대를 해서 이길 생각이었다면 오디션도 열지 않았을 거다.

허나 성현이 이곳을 찾은 이유는 오디션 때문이 아니었다.

성현은 게임 속 등장했던 서자명을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

서자명은 성현과 같은 프로듀서로서 게임 속에서 고평가되는 캐릭터였다.

그 사실을 알고 있던 성현이기에 서자명의 프로듀서적 감각을 실제로 보고싶은 것이다.

‘실제로 만나면 어떤 음악을 할까. 게임이랑 똑같으려나.’

게임 속 그는 다른 사람들이 생각해내지도 못할 음악을 보여줬다.

그가 만든 색다른 비트와 함께 전해지는 신선함은 성현을 매번 감탄하게 했다.

그때 느꼈던 감정을 현실로 마주하고 싶었다.

성현은 서바이벌을 떠나 순수한 음악적 호기심을 안고 공연장에 들어갔다.

그곳엔 파란색 뱃지를 단 가수 참가자들이 오디션을 기다리며 자리에 앉아있었다.

무대 위에선 이미 다른 참가자가 오디션 공연을 펼치고 있었다.

서자명은 무대 아래 의자 하나를 펴고 다리를 꼰 채 심사 중에 있었다.

건방져 보이는 자세와 표정은 게임 속과 무관했다.

주위 신경은 안 쓴다는 마인드까지 그대로 가져왔다.

성현을 포함한 몇몇 빨간 뱃지를 단 프로듀서 참가자들도 종종 섞여 있었다.

그들을 보아하니 오디션 참가 목적으로 온 게 아닌 듯했다.

모두의 시선은 성현처럼 구경하는 분위기였지만 서자명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이윽고 그의 입에서 말이 터졌다.

“스톱. 그만. 더 못 봐줄 거 같아요.”

오디션은 상당히 짧은 시간에 끝이 났다.

짧으면 10초 길어도 2분을 넘기지 않았다.

서자명은 딱 그 정도 무대만 보고 평가를 내렸다.

그 뒤로도 계속해서 가수 참가자가 무대를 하고 내려갔지만, 한 명도 합격하지 못하고 있었다.

“저기요. 1분도 안 들었으면서 뭘 평가했다고 이러는 거예요?”

“애초에 뽑을 생각 없었던 거 아니에요?”

“빽 믿고 깝치는건데 누굴 평가할 실력은 되겠어.”

다리를 힘껏 꼬아대며 제대로 듣기나 하는 건지 의심스러웠다.

마침내 줄줄이 떨어지던 참가자 중 몇 명이 불만을 품어 서자명에게 따지듯 달려들었다.

‘슬슬 시작되는 건가.’

이를 본 성현은 게임에서 봤던 서자명의 특기가 떠올랐다.

아낌없는 독설.

“멋이 없으니까.”

서자명의 짧은 한마디에 다들 멍해졌다.

멋이 없다라.

성현만은 무던히 서자명 다운 평가라고 생각 중이었다.

참가자들의 무대를 계속 보던 다른 프로듀서 참가자들도 서자명의 생각을 알 수 없다는 듯 자기들끼리 소곤거렸다.

그중 성현만이 묵묵히 그의 대답을 기다렸다.

“당신들은 기본적으로 매력이 없어. 당신은 가만히 서서 계속 고음만 고래고래 싸지르고, 당신은 랩 한다면서 유일하게 들린 가사가 드랍더비트 하나일 정도로 딕션 개판에 댐핑 엉망에.

당신은...... 기억도 안 나네. 그 정도로 별로였어. 아니, 그리고 지금 내가 화를 내야 되는 거 아닌가? 유치원 재롱잔치는 귀엽기라도 하지. 다 큰 어른들이 무대에서 똥이나 싸지르고 말이야.”

서자명은 자신들에게 따지는 참가자들 한 명 한 명에게 독설을 퍼부었고 인신공격에 가까운 말도 서슴지 않았다.

그의 말이 이어질수록 참가자들의 얼굴은 한없이 창백해졌다.

서자명이 조금 과하게 비난을 한 건 사실이지만 그의 평가가 틀린 것도 아니었다.

성현이 보기에도 그들은 그들의 공연은 실력도 실력이지만 멋이 없었다.

“저 새끼가 진짜......!”

그때 흥분한 참가자 한 명이 서자명에게 달려들려고 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는 무대에서 내려와 서자명의 멱살을 잡아챘다.

그러자 카메라 한 대가 그들의 모습을 담아내기 위해 몸을 틀었다.

카메라에 안 좋은 모습이 담기게 되면 언젠가 그 모습이 영상으로 나올 터.

그러면 사람들에게 분명 낙인이 찍힐 것이 분명했다.

때문에, 참가자는 멱살을 잡은 손을 황급히 놓았다.

서자명은 여전히 굳은 모습으로 주름진 옷을 손으로 털었다.

그러는 와중에 참가자는 화를 억누르며 빠르게 공연장을 빠져나갔다.

‘진짜 그대로네.’

게임에서도 서자명은 필요 이상으로 솔직한 독설을 내뱉는 경우가 많았다.

게다가 그 독설을 뱉는 투마저 상당히 거칠었다.

그렇기에 게임 속 별명도 이와 언행일치였다.

만렙 싸가지

그런데 지금 장면에서 서자명의 성격이 그대로 드러났다.

현실 속 서자명도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제대로 그 싸가지를 보여줬다.

허나 그렇다고 서자명이 무분별하게 참가자들을 비난하는 건 아니었다.

그 뒤로도 오디션은 계속되었고, 비로소 서자명의 마음에 드는 참가자도 나왔다.

그때 서자명의 입에서 좀 전과 전혀 다른 말들이 내뱉어졌다.

“와우. 멋지다. 무대 구성 최고. 기본적으로 공간 활용을 할 줄 아시네.”

“마지막에 마이크 내려놓고 생목으로 노래하는 퍼포먼스 소름 돋았어요. 아직 부족한 게 많지만 발성도 상당하시고 끼도 많으시고.”

그가 전혀 다른 모습의 반응을 보이자 오디션 참가자들은 물론 관람하던 프로듀서 참가자들의 표정도 어안이 벙벙했다.

‘취향 하난 소나무네.’

서자명의 심사평을 지켜보며 그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바로 알 수 있었다.

그가 이렇게 정반대로 무대를 평가한 이유에 대해 생각했다.

그 결과 그들이 보여준 무대 모습은 전혀 다르단 것을 성현은 곧장 깨달을 수 있었다.

게임에서나 현실에서나 서자명이 추구하는 음악성과 프로듀서로서 그가 가지고 있는 장점을 확실히 알았다.

멋.

프로듀서인 서자명이 무대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노래 실력도 실력이지만 무대 퍼포먼스를 비롯한 멋이었다.

앞 참가자들은 모두 경직된 듯이 송장처럼 우두커니 서서 무대를 이뤘다.

하지만 뒤 참가자들은 무대 활용을 굉장히 멋들어지게 사용하며 시선을 압도했다.

그리고 이 멋이란 건 서자명의 장기이기도 했다.

서자명은 기본적으로 무대를 멋있게 만들 수 있는 사람이었다.

각자가 가진 실력을 무대 위에서 더 멋있게 폭발시킬 수 있는 가수를 원하는 프로듀서였다.

무대장치, 퍼포먼스, 편곡 등 라이브 무대에서 그의 장기가 항상 최대로 드러났었다.

서자명의 스폰서를 아는 참가자들은 서자명이 단순히 빽으로 본선까지 왔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심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그 사람들의 생각이었다.

같은 참가자 신분인 서자명이 소속사의 힘 덕에 얻은 공연장에서 뻔뻔스럽게 자신들의 실력을 무시했으니까.

그러나 직접 그와 겨룬 사람이라면 서자명이 가진 상당한 내공과 실력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게임 속에서든 현실에서든 그는 자신만의 재능을 완벽히 뽐냈다.

서자명의 화려하면서 고급스러운 무대에서의 모습에 사람들은 모두 마이크를 내려놓았다.

그만큼 그는 스폰서의 힘을 빼더라도 상당히 강한 경쟁자였다.

그 말은 즉, 스폰서의 힘까지 얻은 서자명이 이번 라운드에서 탈락할 일은 없다는 것이다.

‘예상치 못한 변수만 일어나지 않는다면.’

앞이 환하게 펴진 아우토반을 거침없이 내달리는 그를 막을 만한 경쟁자는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이 세상에서 제일 모르는 것이 사람 일.

하룻밤 만에 인기가 올라서 그대로 승승장구하는 사람도 있는 반면, 이전과 다른 분위기에 휩싸여 그대로 추락하고야 마는 사람도 있기 마련이다.

그런 인생사에 성현은 궁금해졌다.

과연 그 사건마저도 실제로 일어나는 걸까?

게임 속 서자명의 상황은, 마지막까지 뻔하게 진행되지는 않았다.

***

본선 라운드 세 번째 날, 월요일 오후.

성현은 아지트 내 스튜디오에서 첫 주차 공연에 쓸 곡을 작업했고 이는 조은별도 마찬가지였다.

조은별은 서지현과 임하나의 무대에 사용될 곡을 준비하고 있었다.

서지현과 임하나는 서로 곡 스타일이 전혀 달라 무대에 사용될 곡에 대해 짜는 것이 어려웠다.

허나 그녀들은 한 무대에 설 수 있도록 서로의 부족한 점들을 보충해줬다.

그러다 보니 그들의 각자 달랐던 스타일에 교차점이 점차 생기게 됐다.

조은별은 그 부분을 파악해 곡을 만들어냈다.

“아저씨들 마음을 녹일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조금 피곤했는지 조은별이 눈을 감으며 혼잣말에 가까운 말을 내뱉었다.

조은별은 돌발 라운드에서 저조한 성적을 받은 이후 더욱 프로듀싱 자체에 매진한 모습이었다.

근래에 들어선 밤을 새워가며 곡 작업에만 매달렸다.

그 모습에 성현은 은별에게 다가가 잠시 쉬라고 했지만, 그녀는 거절을 보였다.

“이번엔 성현 씨한테 폐 끼치고 싶지 않아요.”

조은별이 이렇게 책임감을 가지는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성현이 자신들 때문에 무대 계약을 미뤘기 때문이다.

어차피 그곳은 사람들이 절대 고르지 않는 난장판에 불과한 공연장이다.

그렇기에 성현은 그저 미뤄도 별반 차이 없다는 걸 알았기에 미룬 것뿐이었다.

“부담 갖지 말고 은별 씨 하던 대로만 하면 돼요.”

은별의 거절에 성현도 살며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성현과 은별은 그렇게 다시 곡 작업에 매진했다.

작업이 한창일 그때, 이성현의 휴대폰 알림이 울렸다.

-형! 곧 시작해요!

요하의 문자를 본 성현의 표정엔 기대와 설렘이 동시에 드러났다.

성현은 곧장 곡 작업을 멈추더니, 조은별과 연습실에 있는 멤버들을 불렀다.

“버스킹 공연 하나 보러 갈래요?”

“누구 공연인데요? 표정 보니까 보통 공연이 아닌데?”

서지현의 물음에 성현은 여전히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있어요. 재수 없는 놈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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