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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같은 프로듀서는 없었다-45화 (45/273)

45화

“김재범, 우리들.”

마이크를 잡은 최민식이란 남자는 긴말할 것 없이 곧장 선곡부터 했다.

성현은 곧장 반주를 연주하기 위해 자세를 취하려 했다.

최민식 역시 마이크를 잡아들고 몸속 깊은 감정에 취해 노래를 부르려 할 때였다.

그때, 기타 줄을 두세 번 튕기던 성현이 손을 멈춰 세웠다.

“뭐야 갑자기!”

최민식은 반주가 갑자기 멈추자 신경질적으로 성현을 노려봤다.

그의 눈에 비친 성현의 시선은 한 곳에 고정돼 있었다.

성현의 눈동자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을 본 듯 커져 있었다.

조은별이 보였다.

그녀는 무언가 각오를 다진 듯 다부진 얼굴로 무대 위로 걸어오고 있던 것이다.

은별의 돌발행동에 성현뿐만 아니라 일행들도 놀란 눈치였다.

허나 성현은 은별을 말리기는커녕, 무대 위로 올 때까지 기다려줬다.

곧이어 은별은 무대 위로 올라섰고, 성현을 보더니 고갤 살짝 끄덕였다.

그럼 그렇지, 못 말리는 여자였다.

성현도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쳤다.

그러자 그녀는 조금 전 성현이 연주했던 피아노 앞에 앉았다.

“이건 또 무슨 시추에이션이야.”

갑자기 무대로 난입한 조은별을 보며 최민식은 어리둥절한 눈빛을 띠었다.

이윽고 조은별은 자기소개를 했다.

“프로듀서 조은별입니다. 반주는 저한테 맡기시고 마음껏 질러보세요.”

성현은 무대로 올라오는 그녀와 눈이 마주칠 때부터 속셈을 깨달았었다.

‘이래서 조은별씨는 인정 안 할 수 없다니까.’

무대가 끝난 뒤, 이곳 오아시스 바 무대에 선 이유를 말해주려 했는데.

조은별에게 그런 설명이 필요 없던 모양이다.

그녀는 성현이 무대에 선 모습을 보며 무언가를 깨달은 듯 무대로 올라왔다.

결코 쉽지 않은 행동인데 그걸 실행한 것이다.

그렇기에 그녀의 마음가짐이 더욱 훌륭하게 느껴졌다.

조은별은 성현이 왜 이러는지를 이해했다는 듯 오히려 미소를 지었다.

그녀의 가느다란 손가락이 피아노의 위에 얹어졌다.

그렇게 최민식의 신청곡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반주가 시작되자 성현도 미소를 지으며 다시 기타를 연주했다.

그들의 반주가 만족스러운 듯 한껏 심취한 채 그의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

“잘 봤어요?”

오아시스 무대에 오르고 한 시간이 지난 후였다.

무대에서 내려온 성현이 테이블에 있는 일행들에게 물었다.

멤버들은 얼떨떨하게 라이브 바를 둘러봤다.

성현의 공연이 끝났지만, 여전히 라이브바는 시끌벅적했다.

하지만 그들은 처음 서로 욕하고 싸우던 모습이 아니라 자기들끼리 순서를 정해서 무대에 올라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그저 술집이 아닌 드디어 라이브 바의 모습이 형성된 것이다.

성현이 무대에 서기 전까지는 생각할 수조차 없었던 일이었다.

이보다 믿을 수 없는 일이 있을 수 있을까.

“성현 씨 대단하네요. 은별 씨도요.”

“저랑 은별 씨가 대단한 게 아니에요.”

서지현이 놀라워함에 내뱉은 칭찬이었지만 성현은 단호하게 말했다.

이에 서지현과 임하나는 서로 그가 뭘 말하고 싶은 건지 눈치를 보며 성현을 쳐다봤다.

이내 성현은 말을 이었다.

“음악이 대단한 거예요. 음악은 서로 다른 인생을 사는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힘이 있으니까요.”

성현의 말에 다들 유구무언이었다.

“제가 왜 무대 위에서 평소랑 다르게 행동했을까요?”

“제 생각에는.”

서지현과 임하나는 아직 눈치를 채지 못한 듯했다.

그러자 그의 생각을 먼저 읽고 행동에 나선 은별이 먼저 대답했다.

“관객들이 그런 모습을 원하니까요.”

그의 예상과 정확히 떨어진 말이었다.

‘역시 알고 무대에 올라온 거구나.’

같이 일할 때부터 느꼈던 것이지만, 호흡이 매우 잘 맞았다.

은별은 성현이 원하는 것을 모두 눈치채며 행동을 했고, 이번에도 그랬다.

“맞아요. 여기 있는 관객들은 그런 걸 원하니까 그런 걸 보여드린 거예요.”

그제야 그의 속마음을 알아챈 서지현과 임하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작곡가는 왜 곡을 쓰고 가수는 왜 노래를 부르고 댄서는 왜 춤을 출까요? 사람들이 원해서? 관객들이 여러분들한테 좋은 음악 해달라고 돈이라도 줬어요? 여러분들 돈 받고 음악 해요?”

꽤나 가슴 아픈 말이 속을 꿰뚫으며 들어왔다.

여전히 서지현과 임하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고개를 저었다.

“아니잖아요. 다들 스스로 원해서, 음악 하고 싶어서 하는 거잖아요. 한 사람이라도 내가 하는 음악 들어줬으면 하는 절박한 마음으로 음악 시작했잖아요. 아니에요?”

“성현 씨 말이 맞아요. 한 사람이라도 내 음악으로 감동하면 좋겠어서 시작했으니까.”

“저두요......”

“근데 왜 관객을 가려 받아요? 두 분이 아까 그랬죠. 들을 준비가 안 돼 있는 것 같다고.”

서지현과 임하나가 무대에 서기 전에 했던 말을 기억하고 있었다.

이에 성현이 물음을 지은 것이다.

서지현과 임하나는 그저 조용히 고갤 끄덕였다.

“음악하는 사람은 음악만 들려주면 돼요. 관객이 들을 준비가 됐든 안 됐든 최선을 다해서 좋은 음악만 들려주면 되는 거라구요. 절박한 마음으로 하세요. 겸손한 마음으로 음악 하세요. 관객이 있다는 것에 감사하시고 한 명이라도 진심을 다해 대하세요. 저를 포함해서 여기 있는 여러분 모두가 항상 명심해야 해요. 아무도 듣지 않는 음악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아무도 듣지 않는 음악은 존재할 수 없다.

맞는 말이다.

모든 사람들에게 외면을 받는 음악은 없다.

누구에게나 취향은 있고 귀를 단번에 사로잡는 음악도 있다.

하지만 그런 음악을 만들기 위해선 가장 중요한 것이 있다.

바로 음악가의 마음가짐이다.

자신의 마음도 잡지 못하는 음악가가 무슨 수로 남의 마음을 흔들 노래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인가.

성현의 말이 모두 맞는 말이기에 서지현과 임하나는 모두 아무 말도 못 하고 분위기가 조금 가라앉았다.

그럼에도 성현은 분위기를 이어갔다.

“세 분 다 이 오디션 참가한 이유가 뭐예요? 돈 때문에?”

“절대 아닙니다.”

“그럼 왜요? 유명해지고 싶어서?”

성현의 말에 다들 또 눈치를 봤다.

사실 이곳에 참가한 모든 사람들의 최종 목적일 것이다.

성현은 그들이 보일 뻔한 반응을 알아도 일부러 물음을 던진 것이다.

“여러분들이 잘못했다는 거 아니에요. 나도 유명해지고 싶어서 오디션 참가한 거니까.”

그 역시 인정한다는 사실에 모두 그에게 집중했다.

“저는 고상하고 음악 들을 줄 아는 사람들 상대로만 음악하려고 유명해지고 싶은 거 아니에요. 우연히 라디오에서 우연히 길을 걷다 우연히 티비를 보다가 한 사람이라도 더 내 음악 들었으면 하는 마음에 유명해지고 싶은 거예요. 그래서 이 서바이벌에서도 위로 올라가고 싶은 거예요. 전 그 위에서 제가 원하는 가수와 함께 최고의 무대 만들고 싶어요.”

자신의 진심을 처음으로 일행들에게 전해줬다.

그는 이 마음가짐을 단 한 번도 잃은 적도, 흔들린 적도 없었다.

매 순간 그는 진심이었고, 음악을 하며 후회한 모습도 볼 수 없었다.

그것이 그가 이 오디션을 즐기며 할 수 있던 이유였다.

성현은 지현과 하나의 눈을 하나하나 마주치며 말했다.

그가 방금 언급한 원하는 가수가 마치 이들이 되었으면 바란다는 듯했다.

성현은 이 이야기를 꺼낸 진심을 말했다.

“여러분들이랑 함께 만들면 좋겠어요. 최고의 무대.”

마음속에서 쿵, 하며 무언가 강하게 내려친 느낌이었다.

그에 따라서 일행들은 모두 눈빛이 흔들렸다.

허나 성현은 무언의 무언가를 느낄 수 있었다.

모두 각자의 생각에 잊고 있었던 진심이 다시 떠올랐다는 걸 알아챈 것이다.

마지막 질문을 날릴 차례였다.

“그때 가서도 관객이 음악 들을 준비가 안 됐다고 공연 안 할래요?”

성현의 말에 다들 빠르게 고갤 저었다.

“아니요. 듣게 할 거예요. 최선을 다해서 좋은 음악 들려줄 거예요.”

임하나는 강한 의지를 보이며 의욕에 가든 찬 눈빛을 지었다.

서지현 역시 깊은 생각에 잠긴 모습으로 그의 말을 곱씹었다.

“이곳에 있는 분들이 들을 준비가 안 된 게 아니라, 제가 들려줄 준비가 안 됐던 거네요.”

“지현 씨뿐만 아니라 저희 다 그랬던 거예요. 저렇게 흥 많은 아저씨들한테도 인정 못 받으면 그건 내 실력이 부족한 거고.”

처음과 확실히 달라진 눈빛을 가진 둘이 앞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성현의 진심이 이들에게도 통한 것이다.

그들은 모두 각자의 꿈을 가지고 이곳에 들어왔다.

하지만 그 꿈은 모두가 쉽게 잃어버리기 마련이었다.

그들의 꿈을 쉽게 짓밟아버리는 현실이 그렇게 만든 것이다.

힘들고 괴로워서 포기하려 했던 나날들이 그들을 수없이 괴롭혔다.

허나 그런 비가 오는 날을 이 악물고 버티며 보면, 빛을 알아봐 주는 일이 생길 거다.

먼지로 뒤덮인 구두는 비가 내리는 길을 걸으면 깨끗해지는 법이기 때문이다.

오직 오디션이라는 틀에 갇혀, 자신의 꿈도 좁히지 말았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그의 바람은 무사히 전달이 잘 된 모양이었다.

‘이 정도 열정이면 충분해.’

성현은 이들 역시 그와 똑같이 음악을 하고 싶어 하는 이들이라 생각했다.

그 생각은 틀리지 않았다.

만약 이곳에서 돈과 명예만을 쫓는 이들의 반응을 보였다면, 더 이상 이들과 함께하지 않았을 것이다.

사실 성현은 그들의 마음가짐을 확인하기 위해 일부러 이 공연장을 찾은 것도 있었다.

물론, 처음부터 이들이 이런 반응을 보일 거라 예상했지만.

“이곳에서 무대를 할지 말지 결정은 여러분들 몫이에요. 아직 1차 공연까진 시간이 많이 남았으니 다른 공연장을 알아볼 여유는 있을 겁니다.”

색달라진 기운을 품고 있던 일행들을 바라보며 마지막으로 물었다.

허나 이미 대답은 모두 정한 상태였던 듯 곧장 대답을 내뱉었다.

“할래요. 여기서 하고 싶어요.”

“저도요. 가수가 관객 가려 받는다는 오점 남기고 싶지 않아요.”

성현과 조은별은 두 사람을 흐뭇하게 바라봤다.

그때 사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공연 잘 봤어요.”

심훈영의 말에 서지현과 임하나는 그가 이번 무대의 주인이란 걸 바로 알고는 곧장 허릴 숙여 인사했다.

“이곳에서 공연을 하고 싶어요.”

“부탁드립니다.”

“저 친구야 그렇다 쳐도 두 사람은 무대도 안 섰잖아. 그럼 계약을 해줄 수가 없는데.”

“무대에 설 거예요.”

성현이 그들을 대변해주며 대신 전해줬다.

이들의 진심은 이미 파악한 후였으니 따질 건 없었다.

“수요일. 그날 제대로 준비해서 무대에 설 테니 계약할지 말지는 그때 가서 결정해주세요.”

“그러지 뭐. 학생은?”

“제 계약도 수요일까지 재고해주세요. 여기 이분들과 함께가 아니라면 무대에 설 생각 없습니다.”

성현의 말에 다들 깜짝 놀라 성현을 쳐다봤다.

성현이 자신들을 믿지 못하면 할 수 없는 선택이었기 때문이었다.

심훈영은 상관없겠다는 표정으로 심드렁히 말을 전했다.

“그래요, 그럼. 수요일 날 봅시다.”

성현은 일행들을 데리고 라이브 바를 나섰다.

일행들은 모두 그에게 인사를 보이며 밖으로 나섰다.

‘아직 풋내기지만, 제법 프로듀서의 향기를 풍기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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