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화
재력이나 주어진 환경도 이 오디션에서는 중요한 요소이다.
물론 그렇다고 그것만 믿고 노력을 안 하면 안 되겠지만, 보일 듯 말듯 힘이 작용하는 건 어쩔 수 없다.
그중 한 사람이 바로 서자명이었다.
서자명의 스폰서는 홍대 작은 클럽에서 시작한 소규모 집단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들은 점점 세력을 넓히더니 어느새 홍대에 있는 클럽과 공연장을 장악했다.
그 이후, 막강한 자본력과 영향력을 가지고 엔터테인먼트 사업이 되었고, 그곳에 서자명이 들어간 것이다.
물론 현재는 직접적으로 홍대 지역 공연장에 관여하고 있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홍대 공연장 지역 전역엔 그의 영향력이 남아있는 것으로 보였다.
“이런 거 보면 스폰서가 좋긴 좋네요.”
부정하고 싶어도 어쩔 수 없는 현실에 조은별은 씁쓸하게 말했다.
그들이 이뤄낸 노력의 쾌거는 뭐라 할 수 없지만, 소속 참가자에게도 이어진 특권에 불합리를 느낀 것이다.
확실히 서자명이 이렇게나 빨리 홍대 내 가장 좋은 공연장을 계약할 수 있는 건 말이 안 된다.
직접 가수를 뽑을 수 있는 권한을 갖게 된 것도 모두 스폰서의 힘 덕분이었으리라.
이에 임하나도 본인의 성격을 참지 못한 듯했다.
귀여운 외모에 대비되는 날카로운 눈매를 가진 채 크게 분노했다.
“오디션이 이렇게 불공평해도 돼요? 가끔 이번 오디션은 너무 비현실적이란 생각이 들어요.
돌발 미션이 주어지지 않나.”
“비현실적인 게 아니라 현실적인 게 아닐까요.”
조금은 성을 내며 말하는 임하나의 말을 성현이 정정했다.
임하나는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 이해가 되지 않은 채 성현을 쳐다봤다.
“오디션 밖이라고 다를 바 없잖아요. 심하면 더 심했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아도 일행들은 모두 침묵했다.
성현의 말은 모두 사실이었으니까.
서바이벌 밖의 진짜 세상은 오히려 더 불공평한 사회였다.
애초에 이 오디션이 아니었으면 대형 소속사들에게 음악을 들려줄 수 있는 기회조차 없을 게 분명했다.
실제 자신의 꿈을 이루는 사람들은 단 일부에 불과할 뿐이다.
물론 그렇다고 서자명이 스폰서만 빵빵해 잘나가는 참가자냐 하면, 그건 아니었다.
성현이 알기로 서자명 역시 아직 어린 나이인데도 프로듀서로서 상당한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게임 내에서도 그는 캐릭터들에게 종종 천재 프로듀서로 불렸다.
그는 성현의 판단에 따라 천소울의 파트너가 되기도 한편, 또 때론 걸림돌이 되기도 했던 캐릭터였다.
따라서 성현은 모든 경우의 수를 겪을 수 있었다.
그 경험을 통해 성현은 깨달은 것이 있다.
서자명을 파트너로 삼으면 확실히 어느 정도 라운드까지 큰 도움을 받을 수 있단 사실이었다.
그러나 성현은 주먹을 입에 가져다 대며 고민에 빠졌다.
‘그럼에도 서자명을 파트너로 택하지 않은 이유가 있긴 하지만.’
서자명에 대한 생각은 여기까지만 하고 마무리를 지었다.
성현은 곧바로 서지현에게 물음을 던졌다.
“그래서 오디션은 언제 오래요?”
“내일 오후요.”
“그럼 그전에 다 같이 어디 좀 들릴까요?”
갑작스러운 성현의 제안에 일행들은 모두 성현을 바라봤다.
혹시나 따로 손을 봐둔 일이 있는지 이제 자동으로 호감이 생겼다.
모두가 동그란 눈을 뜨며 자신을 쳐다보자 성현은 바로 커넥트 앱을 켜고 있었다.
이윽고 그가 보여준 화면에는 ‘오아시스 바’에 대한 정보가 적혀있었다.
“오아시스라는 라이브 바예요.”
일행들은 모두 화면에 적힌 오아시스 바의 정보를 읽어봤다.
간단하고 쉬워 보이는 미션 조건에 눈길이 갔다.
“현재로선 우리 전부를 수용할 수 있는 몇 없는 공연장이기도 해요.”
“조건이 상당이 좋네요? 관객 수도 걱정 없을 거 같고.”
프로듀서 조건도 두 명이기에 은별에게도 걱정거리는 없었다.
성현과 떨어져 무대를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서지현도 막상 좋아 보이는 조건에 표정이 밝아지는 한편, 걱정도 들었다.
“경쟁이 치열할 거 같은데 될까요?”
“그렇진 않을 거예요.”
성현은 지현의 걱정이 헛된 것이라는 듯 여유롭게 웃어 보이며 말했다.
“여긴 평범한 라이브 바가 아니거든요. 아마 대부분 사람들을 포기하고 돌아갈걸요?”
“대체 어떤 곳이길래 그러지.”
어떤 곳이든 공연만 설 수 있다면 상관없다는 듯한 태도의 임하나가 후한 조건의 오아시스 바에 큰 관심을 보였다.
다른 멤버들 역시 궁금해하는 눈빛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성현은 여기서 더 자세한 설명을 해주지 않았다.
“오늘 저녁에 가보면 왜 그런지 알 거예요.”
말로 설명하는 것보다 직접 보는 게 나을 것이다.
성현은 너무 큰 걱정은 하지 말란 듯이 싱긋 웃으며 말했다.
***
그날 저녁.
성현은 심훈영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시간에 맞춰 도착했다.
일행과 함께 도착한 오아시스 바는 낮에 왔을 때보다도 더 난장판인 모습이었다.
온갖 진상들이 가득 차 있다는 게 밖에서도 느껴졌다.
주변 여기저기서 깽판 치는 소리와 함께 싸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심지어 계단 입구에는 쓰러져 자는 취객도 있었다.
“왜 돌아갔는지 알 것 같네요.”
일행들은 난장판인 라이브 바를 보고 모두 기겁할 수밖에 없었다.
성현도 낮에 왔을 때보다 심한 광경에 약간 흠칫한 모습이었다.
“일단 들어가 보죠.”
이에 먼저 발을 움직인 건 의외로 서지현이었다.
그녀를 따라 성현을 비롯한 나머지 일행들도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나 으스스한 분위기에 조은별과 임하나는 살짝 겁을 먹은 모습이었다.
성현도 임하나가 아닌 서지현이 앞장서는 모습에 살짝 당황한 듯 보였다.
‘서지현에게 이런 배짱이 있었던가? 무대 위에서는 보이긴 했지만.’
성현은 속으로 생각하며 그녀의 뒤를 따르며 남은 일행들을 이끌었다.
문을 열자, 성현의 일행을 확인한 주인장인 심훈영이 부엌에서 나왔다.
“진짜 왔네.”
심훈영은 성현이 정말 다시 돌아올 줄 몰랐다는 듯 신기하게 그를 쳐다봤다.
이윽고 성현 옆에 있는 일행들의 얼굴도 천천히 살폈다.
“줄줄이 식구들도 달고 오시고.”
이곳에 함부로 발을 디디러 온 성현과 일행들을 흥미롭게 생각한 듯 심훈영은 헛웃음을 지었다.
“진짜 여기서 공연하시게? 이런 곳에서?”
바닥엔 여전히 온갖 잔해들이 흩뿌려져 있었다.
그런 가게 안을 심훈영이 쭉 훑어봤다.
그의 진심은 여실히 잘 느껴졌지만, 성현의 대답은 같았다.
“네. 하고 싶어요.”
“내가 학생들 걱정돼서 하는 말인데 저 아저씨들 얄짤 없는 인간들이야. 비위 거스르면 한 대 맞을 수도 있다고.”
심훈영의 표정은 더욱 진지해졌다.
안 그래도 무서웠는데 한 대 맞을 수도 있단 소리에 성현을 제외한 일행들은 더욱 겁에 질렸다.
“저 성현씨...... 지금이라도 다른 곳을 알아보는 게 어떨까요?”
“그래요. 여긴 좀......”
조은별이 먼저 조심스럽게 의견을 내자 임하나도 말끝을 흐리며 동조를 했다.
“여기가 왜요? 제대로 된 관객도 없고 시설도 별로라서요?”
“해봤자 제대로 들을 것 같지도 않고 들을 준비도 안 돼 있는 것 같아요......”
“맞아요. 이런 분위긴데 무대에서 제대로 집중이나 할 수 있을까 싶고.”
일행들의 대답을 들자 성현은 잠시 진지한 모습을 보여줬다.
“제 생각은 다른데.”
말을 함과 동시에 그는 외투를 벗으며 소매를 걷었다.
“잘 봐요.”
성현은 그 말 한마디를 남긴 채 홀로 무대로 향했다.
그를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전혀 없었다.
일행들은 단지 빠르게 무대 위로 향하는 성현의 뒷모습을 멍하니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한편, 이 모든 걸 지켜보던 심훈영의 표정에 웃음이 서렸다.
‘모처럼 재밌는 놈을 만났네.’
심훈영 역시 팔짱을 끼며 무대에 오르는 성현을 지켜봤다.
***
성현이 무대에 오르는 판단을 내리는 데는 생각보다 깊은 고민은 필요 없었다.
성현은 그 누구보다 진심으로 믿고 있었다.
음악이 가지는 힘을.
이곳 ‘오아시스 바’에 모인 취객 전부 이유 모를 사연을 품고 있을 테다.
그런 그들의 마음에 닿을 수 있는 방법은, 역시나 이번에도 음악뿐이라 생각했다.
무대로 올라간 성현은 라이브 바에 있는 사람들에게 꾸벅 인사를 한 뒤 피아노 앞에 앉았다. 바를 채운 취객들은 술을 마시고 떠드느라 그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았다.
예상한 반응이었다.
성현은 그들의 무관심도 전혀 개의치 않아 하며 건반 위에 손을 올린 뒤 눈을 감았다.
‘이 곡도 진짜 오랜만이네.’
성현은 호흡을 가다듬은 뒤 지긋이 건반을 눌렀다.
한 번 움직인 손가락은 멈추지 않았다.
이내 밝고 빠르고 경쾌한 클래식 연주가 라이브 바를 휘감았다.
어떤 말도 하지 않고 피아노 연주에만 집중하자 술을 마시던 사람들이 하나, 둘 성현의 무대를 쳐다봤다.
허나, 그들의 반응이 처음부터 좋을 리 없었다.
“뭐야 술맛 떨어지게.”
“야! 시끄러 이 자식아!”
“저 새낀 또 뭐야?”
여기저기서 성현을 욕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마저도 성현과 가까운 테이블에 있는 사람들의 반응이지 먼 곳에 떨어진 손님들은 무대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성현의 연주에도 여전히 욕설과 어수선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구석에 자리를 잡은 성현의 일행들은 걱정이 커지면서 표정이 일그러졌다.
이 중 임하나는 금세라도 무대 위로 뛰쳐나가 한마디 던지고 싶었다.
“너무한 거 아니에요? 사람이 연주를 하면 들어주기라도 해야죠.”
“대체 여기서 무슨 공연을 하겠단 건지.”
“우리한테 뭔가 말해주고 싶은 게 있어서 저러는 것 같은데.”
성현의 일행들은 저마다 성현을 걱정하면서도 지금 상황을 이해하지 못해 혼란스러워했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인 성현은 평온하게 연주를 이어갔다.
그의 현란한 연주에 성현의 일행도 그만의 방법을 시행하고 있다 생각해 무대를 지켜보기로 했다.
“잘 치긴... 잘 치네.”
놀랍게도 이와중에 성현의 연주 실력은 발군이었다.
역시, 어릴 때부터 키워온 실력은 어디 가지 않았다.
성현의 일행들이 모두 성현의 클래식 연주 실력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지만, 관객들은 여전히 전혀 봐주지 않았다.
구웅-
묵직한 베이스 음과 함께 마침내 첫 곡이 끝나고 성현은 자리에서 일어나 마이크 앞으로 향했다.
“아아.”
성현의 목소리가 마이크를 통해 나오자, 라이브바에 있는 사람들이 성현을 못마땅하게 노려보며 소리를 고래고래 질러 댔다.
모두 욕과 의미 없는 비방 섞인 말뿐이었다.
하지만, 성현은 태연했다.
“어때요? 제 연주가 괜찮았나요?”
이런 상황이 저 질문이 맞는 건지.
“개소리 그만하고 꺼져!”
술에 찌들어 제어가 안 되는 손님이 성현 쪽으로 쓰레기를 집어 던지며 소리쳤다.
성현은 오히려 여유롭게 웃어 보였다.
“제 음악이 개소리로 들렸다니 너무 과찬인데요?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성공적인 무대였네요.”
성현의 엉뚱한 반응에 성현의 일행들이 가장 벙쪘다.
평소 성현이 보여주던 모습과 전혀 다른 능청스러움이 보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성현의 말을 들은 심훈영은 혼자 자신도 모르게 웃음을 터트렸다.
성현이 연주한 곡 제목이 손님들의 반응과 너무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방금 제가 연주한 곡은 쇼팽의 강아지 왈츠라는 곡입니다. 쇼팽이 지인의 강아지가 빙빙 도는 모습을 보고 작곡한 곡이라는데 강아지의 발랄함을 넘어서 개 짖는 소리가 들릴 정도면 엄청 성공한 연주라고 보는데. 아닌가요?”
성현의 말에 관객들 모두 어처구니 없단 표정을 지었다.
심훈영은 역으로 손님들에게 한 방 먹인 그에게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진짜 재밌는 놈이네.’
정말 오랜만에 제대로 된 놈을 만난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