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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같은 프로듀서는 없었다-42화 (42/273)

42화

계단을 타고 내려가던 성현은 커넥트 앱으로 공연장 정보를 확인했다.

휴대폰에는 금세 공연장에 대한 정보가 떴다.

[ 공연장 : 오아시스 라이브 바 ]

* 계약 가능 프로듀서 : 0/2

* 계약 가능 가수 : 0/4

* 필수 공연 시간 : 1시간.

* 목표 관객 수 : 70명

공연 시간 1시간에 관객 수는 달랑 70명.

조건만 봤을 때는 이보다 환상적인 조건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파격 조건에도 사람들이 몰리지 않는 것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우선 분위기부터가 일반 공연장과는 전혀 다르다.

좀 전 요하와 함께 갔던 공연장은 주변이 깔끔하고 외형도 신경 쓴 모습이었다.

허나 지금 성현이 있는 이곳은 그에 비해 쓰레기장과 같았다.

깨진 병 조각들이 보이는 건 물론이고, 계단 옆엔 음식물 쓰레기들을 버리는 곳인 듯 퀘퀘한 냄새가 풍겨 왔다.

그 때문에 표정은 절로 찡그려졌다.

이런 곳을 어떻게 공연장으로 선택한 것인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거기에 아까 계단에서 만난 참가자의 모습도 굉장히 불쾌해 보였다.

아무래도 겉으로 보이는 형태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게임을 통해 내부 모습을 대강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다가오니 떨렸다.

하지만 여기까지 와서 돌아설 수는 없었다.

성현은 차갑게 굳어진 문 손잡이를 잡고 돌렸다.

오아시스 바의 문을 열자 꽤 큰 규모의 내부가 눈에 들어왔다.

내부는 일반적인 라이브 바와 비슷했다.

입구 오른편에는 바가 설치돼 있었고 여러 종류의 술이 진열돼 있었다.

또 성현의 반대편에는 나름 목판으로 만들어진 무대가 있었다.

그 위로는 스피커 피아노, 기타 등 악기가 놓여있어 꽤나 공연장다운 모습이 보였다.

다만, 마지막으로 언제 무대에 올랐는지 모를 정도로 철저히 방치되어 있을 분.

입구 왼편에는 오아시스 바를 운영하는 사장님의 작은 공간이 있다.

그곳에는 현재는 거의 구할 수 없는 LP나 앨범들이 벽을 이루듯 세워져 있었다.

국내, 해외 가리지 않는 여러 아티스트들의 작품들로, 이곳 사장님은 음악에 관심이 많은 사람처럼 느껴졌다.

‘인테리어도 게임이랑 똑같네.’

요새 디지털화가 되어 구하기 힘든 LP판들을 신기하게 바라봤다.

예스러움에서 정겨움이 묻어나왔다.

그때, 어디선가 들려온 욕설이 성현의 감성을 깨트렸다.

그와 동시에 술병 깨지는 소리도 들려와 아련한 분위기는 순간 아수라장이 되었다.

“지랄 염병하게 자빠졌네! 너 이 새끼 뚫린 입이면 다인 줄 알어?”

“지랄 염병? 내가 그럼 어디 틀린 말 했냐? 너 마누라 잘 만나서 팔자 핀 거 맞잖아 새끼야.

별 볼일도 없는 놈이 지가 뭐라도 되는 것마냥 허세는.”

“이 새끼가!”

그래, 이래야 성현이 알고 있는 모습이지.

소리가 들려온 쪽은 오른편 바가 있는 테이블이었다.

그곳엔 이미 술을 꽤 거하게 드신 남자들이 얼굴을 붉히고 있었다.

남자들의 말싸움은 몸싸움으로 번졌지만, 그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다.

마치 모두 일상생활이라는 듯 익숙한 풍경처럼 술을 홀짝이고 있었다.

주최 측에서 선정한 공연장이고 하기에는 믿기 힘들 만큼 전혀 관리가 않는 모습이었다.

애초에 관리를 하기라도 하는지 의심이 들었다.

성현이 게임에서 봤을 때도 여기는 보통 생각하는 라이브 바나 공연장과는 거리가 멀었다.

하루 24시간 언제라도 술을 찾는 이들, 술에 취해 클럽에서 쫓겨난 이들.

하도 난동을 부려 다른 술집에선 이제 받아주지조차 않는 아저씨들.

‘오아시스 바’는 그런 망측한 존재들이 전부 모이는 곳으로, 이성현은 게임을 할 때도 이곳을 항상 ‘막장 집합소’라고 불렀다.

‘참 부지런들 하시네. 이 시간에 술을 다 마시고.’

심지어 지금은 해가 중천에 뜬 낮 시간대였다.

다른 사람들은 열심히 살아가고 있을 때인데도 이곳에서 널브러져 있던 거다.

그들의 깽판으로 항상 난장판이 되니 가게 역시 청소가 제대로 이뤄질 리 없었다.

“저번에 깬 것까지 하면 총 4 갭니다. 기억하고 있으니까 어물쩍 넘어갈 생각 말아요.”

그때 부엌에서 청소도구를 든 주인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가 이곳 공연장의 관리인이라는 걸 안 성현은 그에게 바로 시선을 돌렸다.

그의 외형이 눈에 들어왔을 때였다.

순간 취객이 던진 술병에 맞기라도 한 듯 머리가 띵했다.

‘혹시나 해서 와봤는데 진짜 심훈영 작곡가잖아?’

오아시스 라이브 바의 주인은 바로 옛날 작곡가로 이름을 날렸던 심훈영이었다.

그는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하는 수많은 명곡을 탄생시킨 일명 히트곡 자판기.

더욱이 수많은 앨범 판매를 이루며 당대 모든 가수들의 존경을 받았던 사람이었다.

그런 위대한 사람이 이곳을 운영한다는 것 자체에 놀란 것은 아니었다.

다만, 성현은 게임 속 오아시스 바에서 등장했던 심훈영이 실제 이곳에서 등장한 것에 대해 믿을 수 없던 것이었다.

게임 ‘메이크 유어 스타’에는 여러 유명인들의 이름을 직접 사용하기도 했다.

게엠을 하면서 저작권상 문제가 되지 않나 생각했지만, 클로즈베타일 뿐이고, 또 자신이 신경 쓸 게 아니기에 깊게 생각하지 않았었다.

‘누가 그 게임을 하고 여기 직접 와 볼 생각을 하겠어.’

오히려 유저 입장에선, 실존하는 유명인이 등장해서 재미가 더 추가되기도 했다.

현실에서 성현은 유명 연예인 혹은 프로듀서와 직접 작업할 수 없는 위치였으니까.

그러다보니 성현은 서바이벌이 처음 시작되고 인물들을 보며 의아심이 들었었다.

천소울, 서지현, 조진석이 진짜 실존해서 나왔다면, 게임 속 인용된 유명인들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그들도 진짜 등장하는 것인지 궁금했다.

그리고 지금, 그 궁금증이 해결됐다.

현재 눈앞에 있는 유명인은 성현이 존경했던 작곡가 심훈영임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

애초에 그는 성현이 이곳에서 공연하려는 이유 중 큰 부분을 차지했다.

“안녕하세요.”

곧장 바닥에 떨어진 깨진 잔을 치우던 심훈영에게 인사를 했다.

그의 외형은 성현이 알고 있는 모습 그대로였다.

그렇게 유명했던 작곡가인 그가 어째서 이런 곳을 운영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성현에겐 그를 만난 것 자체가 영광이자 행운이었다.

하지만 환희에 찬 성현과는 달리, 성현의 가슴팍에 달린 빨간색 뱃지를 본 심훈영은 냉소적인 표정을 지었다.

“공연권 때문이라면 그냥 가는 게 나을 텐데.”

“아니요. 여기서 공연하고 싶습니다.”

심훈영은 참가자들이 이곳에 오는 걸 내켜 하지 않는 듯 퉁명스럽게 말했다.

하지만 성현은 그리 쉽게 물러날 사람이 아니다.

그는 바닥에 널브러진 병들을 치우고 있는 심훈영의 앞에서 물러서지 않았다.

“하아.”

한두 번의 빗자루질이 이어지던 심훈영의 손이 한숨 소리와 함께 멈췄다.

그러더니 한쪽 발로 바닥에 깔린 깨진 병의 일부를 밀어냈다.

가볍게 밀어냈을 뿐인데, 기분 나쁜 소리가 고막을 찔러왔다.

그와 동시에 심훈영이 다소 거친 투로 말했다.

“이 꼴을 보고도?”

그의 마음을 대변해주듯, 산산이 부서진 유리 조각들이 빛을 잃고 널브러졌다.

그런 모습의 풍경을 봤음에도 성현은 전혀 움찔거리지도 않고 확고한 대답을 했다.

“네. 하고 싶습니다.”

그의 망설임 없는 대답에 심훈영은 할 말을 잃은 듯 입을 굳게 다물고 성현을 바라봤다.

심훈영은 분명 음악성이 뛰어난 사람이다.

게다가 한편엔 국적을 뛰어넘는 수많은 LP판들이 쌓여 있다.

그런 그가 이렇게 참가자들을 몰아세우는 데는 이유가 있을 것으로 생각이 들었다.

성현이 눈빛 하나 흔들리지 않고 심훈영을 바라보자, 그제서야 그는 성현의 얼굴을 제대로 마주 보았다.

허나 차가운 말투는 여전했다.

“학생. 여기 이 사람들 음악감상 같은 고상한 취미 없어요. 이 사람들한테 백날 노래 들려줘봤자 음악이 아니라 소음이라고.”

“그래서 더 하고 싶어요. 저 사람들한테 소음이 아닌 음악을 들려주고 싶어요.”

그는 어느새 음악을 소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음악가들이 저런 생각을 하는 덴 이유는 오직 한 가지다.

자신의 마음속 음악에 대한 신념이 바닥에 흩어진 병들처럼 깨져버린 게 분명했다.

성현은 주변을 둘러봤다.

어느새 손님들은 모두 자신에게 시선을 던지고 있었다.

그 모습에 성현은 오히려 욕심이 생겼다.

이곳에 있는 사람들과 심훈영에게 음악에 대한 진심을 심어주고 싶어진 것이다.

관객이 누구든 자신의 곡으로 그들을 사로잡고 싶다는 프로듀서로서의 욕심이었다.

성현의 확고하며 단호한 대답에 심훈영은 피식 웃었다.

드디어 그도 포기한 듯 다시 빗자루질을 시작하며 한 마디만을 덧붙였다.

“정 하고 싶으면 오늘 저녁에 공연 한 번 해봐요. 분위기 봐서 써주든가 할 테니까. 뭐 그전에 학생이 안 하겠다 하겠지만.”

“아니요. 꼭 할 겁니다. 감사합니다.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성현은 마치 이미 심훈영이 오아시스바에서의 공연을 허락해 줄 거라고 확신한 듯했다.

성현은 환한 미소를 보이며 인사를 한 뒤 라이브 바를 나섰다.

그의 자신감 있는 모습을 패기롭게 본 건지, 아니면 그저 허세로만 보인 건지 심훈영은 성현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별 이상한 놈 다 있네.”

도저히 오디션에 참가한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다.

분명 이런 누추한 곳에서 욕을 먹으며 자신의 가치를 깎는 것보다 다른 곳을 알아보는 게 현명한 선택일 텐데.

성현이 나가며 문이 닫히자 심훈영은 혼잣말을 했다.

“어려서 그런가. 패기 넘치네.”

***

성현이 아지트에 도착한 후 얼마 안 있어 서지현과 조은별 그리고 임하나도 순서대로 들어왔다.

헌데 유일하게 자리에 없는 요하를 보자 다들 걱정하는 모습이었다.

“요하는요?”

“그러게. 성현 씨랑 같이 나가지 않았어요?”

“요하는 제가 미성년자 우대 공연장에 데려다주고 왔습니다.”

“그럼 따로 무대를 올리는 건가요?”

“네. 미성년자는 일반 공연장에서 공연이 불가능하니까요.”

성현의 말에 일행들은 이해를 하면서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갤 끄덕였다.

가장 좋은 건 다 함께 무대에 올라가는 걸 테지만, 얼마 없는 미성년자 공연장 중 모두가 무대에 오를 수 있는 공연장을 찾는 건 어려웠다.

성현은 곧장 다른 이야기로 전환했다.

“다들 공연장 답사는 잘 다녀왔어요?”

“네. 홍대에서 제일 크다는 공연장 갔다 왔는데 시설이 장난 아니게 좋더라고요.”

“어! 저 거기 어딘지 알아요. MTT클럽 맞죠?”

“맞아요. 어떻게 알았어요?”

“거기 클러버들 사이에서 유명해요. 워낙 잘 나가는 클럽이라.”

서지현과 임하나는 호흡이 잘 맞듯 대화가 이뤄졌다.

그 뒤로 조은별이 관심 있는 모습으로 대화에 끼어들었다.

“거기서 공연하면 관객 수는 그냥 채우겠다. 혹시 자리 아직 남았어요?”

“자리는 남았는데 들어가기가 쉽지 않아 보였어요. 이번 오디션에 저희랑 같이 참가한 프로듀서 참가자가 직접 오디션을 보고 무대에 세울 가수를 뽑더라구요. 저한테 오디션 날짜까지 알려줬어요.”

“네? 참가자가 뭔데 공연 권한을 가져요?”

임하나는 그 말에 황당해하며 물었다.

“사람들 말론 그 사람 스폰서가 홍대 내 영향력이 엄청나데요. 공연장 주인이 공연 권한까지 넘겨준 것 보면 말 다 한 거죠.”

서지현의 말을 가만 듣고 있던 성현은 그 ‘프로듀서’라는 남자가 누군지 알 수 있었다.

‘드디어 등장하는 건가.’

그는 곧바로 이름을 떠올렸다.

서자명.

그는 게임에서도 등장하는 남자로 스폰서가 막강한 자본력을 가진 남자다.

이번 미션에서 스폰서를 등에 업고 엄청난 권력을 행사하는 인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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