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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같은 프로듀서는 없었다-41화 (41/273)

41화

성현이 요하를 데리고 도착한 곳은 주최측에서 지정한 10개의 공연장 중 하나.

[ 공연장 : 씽크홀 클럽 ]

* 계약 가능 프로듀서 : 0/1

* 계약 가능 가수 : 0/3

* 필수 공연 시간 : 2시간.

* 목표 관객 수 : 100명

* 10대 우대 공간: 프로듀서 참가자 1명과 가수 참가자 2명은 반드시 10대 참가자와 계약.

10대 우대 공연장 중 하나인 이곳은 비교적 규모가 작은 공연장이었다.

우선 분위기를 파악하기 위해 안으로 들어섰다.

성현과 요하가 공연장에 들어가자 이미 그곳엔 도착해 있는 참가자가 있었다.

“어, 그때 그 사람이다.”

어째선지 요하는 먼저 도착해 있던 참가자를 아는 듯 보였다.

경연을 하면서 만난 사람인가 했더니, 성현 역시 알고 있던 참가자였다.

“천소울 씨. 또 보네요.”

훤칠한 키에 남다른 기운이 느껴지던 참가자는 다름 아닌 천소울이었다.

‘역시, 이곳으로 왔구나.’

애초에, 성현이 이곳에 온 이유는 천소울이 이곳에 올 것을 예상했기 때문.

천소울 역시 혼자 이곳에 온 것은 아니었다.

옆엔 처음 보는 한 여성 참가자도 함께였다.

실제로는 처음이지만, 이미 알고 있는 얼굴.

‘주선아. 실제론 처음 보네.’

주선아는 가수 포지션으로 상당한 실력자였다.

성현이 주선아를 처음 봄에도 알 수 있었던 이유는 역시, 그녀도 ‘메이크 유어 스타’에 나오는 캐릭터 중 하나였기 때문.

이쯤되니 게임 속 캐릭터가 실제가 되어 튀어나오는 것도 익숙해지려 한다.

주선아는 게임 내에서도 천소울이 인정하는 몇 안 되는 참가자 중 한 명이었다.

천소울이 굳이 가장 작은 씽크홀 클럽 공연장을 고른 이유도 그녀 때문일 테다.

주선아는 아직 19세, 즉 10대 우대 공연장에서 공연해야 하는 참가자였다.

본선 1라운드는 각기 다른 지역에서 치렀기에, 천소울이 패자부활전에서 돌아온 성현을 직접 보는 것은 오늘이 처음.

천소울은 이곳에 들어온 성현을 보며 놀람과 제법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반면 주선아는 성현과 요하에게 경계심을 드러냈다.

“천소울 씨 동료인가 봐요? 이성현입니다. 반가워요.”

그런 모습의 주선아에게 경계심을 풀어주기 위해, 성현이 미소와 함께 먼저 인사를 청했다.

천소울과 아는 사이로 보이는 남자가 나타나니, 주선아가 천소울을 힐끗 쳐다봤다.

이런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남자가 천소울과 친한 사이인 척 다가오는 게 의심 가는 모양이다.

이내 천소울이 성현과 안면이 있다는 걸 알리기 위해 눈을 감자 그제야 주선아는 고개를 살짝 숙이며 작게 말했다.

“주선아예요.”

주선아는 갑자기 나타난 성현을 낯설어하는 것 같았다.

그렇기에 성현은 천소울과 단둘이 이야기하기 위해 그를 따로 불렀다.

“잠깐 얘기 좀.”

천소울 역시 패자부활전에서 돌아온 성현과의 대화에 관심이 있는지, 군말 없이 성현을 따랐다.

둘은 공연장 한 쪽 구석으로 걸어가 누구의 시선도 받지 않는 곳에 도착했다.

먼저 말을 꺼낸 건 천소울이었다.

“운이 좋았군요. 패자부활전에서 용케 살아 돌아오고.”

성현이 패자부활전으로 향했다는 소식, 그리고 그곳에서 살아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긴 했었다.

“살아 돌아오길 바라고 있던 거 아닌가요?”

“그럴 리가.”

여전히 까칠한 모습이었다.

정말이지, 한 번도 흔들리지 않는 그의 모습에도 나름 줏대가 보여 피식 웃음이 나왔다.

이윽고 성현이 본선 2라운드 미션에 관한 얘길 꺼내 들었다.

“이 공연장에서 공연할 생각인 거죠?”

“아직 고민 중입니다.”

천소울은 무심하게 대답했다.

한편 성현은 멀리서 자신들을 신기하게 쳐다보고 있는 주선아를 힐끔 살폈다.

“저 친구 때문에라도 여기서 공연해야 되는 거 아닌가요?”

성현은 천소울이 주선아 때문에 이 공연장을 고른 것을 이미 알고 있던 상태다.

그러니 그는 직설적으로 천소울의 의도를 정확히 짚어낼 수 있었다.

천소울은 자신의 속마음을 정확히 알아챈 이성현에게 다시 놀라움을 느꼈다.

성현을 관계자라고 생각했었던 천소울이기에 성현의 정체가 더욱 궁금해졌다.

하지만 지금은 우선 경연이 우선이었다.

천소울은 애써 놀란 표정을 드러내지 않고 주선아 옆에 있는 요하에게 눈길을 보냈다.

“피차 마찬가지 같은데. 당신도 저 친구 때문에라도 여기서 공연해야 되니까.”

“맞아요. 역시 예리하네요.”

성현은 여유롭게 웃으며 반응했다.

그러자 천소울이 살짝 삐딱하게 성현을 쳐다봤다.

그가 잊고 있는 사실이 있는 모양이었다.

“아직 모르나 본데 이곳 공연장의 프로듀서는 10대만 가능합니다. 다른 곳을 알아보세요.”

천소울은 프로듀서인 성현이 요하와 함께 무대에 오를 거라 생각해 일침을 해줬다.

친절히 그런 것도 알려주다니, 그가 보인 성의에 감동했지만 성현은 이내 고개를 저었다.

“걱정해줘서 고마운데 전 여기서 공연할 생각이 없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천소울은 그를 쳐다봤다.

“천소울 씨, 당신한테 부탁하고 싶은 게 있습니다.”

“부탁?”

“저 대신 요하와 함께 공연해주세요.”

갑자기 들려온 말에 순간 어안이 벙벙했다.

이 자가 대체 뭐라는 건지, 천소울은 절로 인상이 써졌다.

“천소울 씨 정도의 실력자라면 믿고 맡길 수 있을 거 같아서요. 요하 이번 라운드 꼭 붙게해줘요. 잘하는 친구니까, 조금만 신경 써주면 실망할 일은 없을 거예요. 제가 특히 아끼는 친구라 오래 보고 싶거든요.”

“그렇게 안 봤는데 조금 뻔뻔하네. 제가 왜 그래야 하죠?”

역시나 살짝 삐딱하게 나오는 천소울의 태도에, 성현은 여전히 여유를 잃지 않았다.

“아티스트의 재능을 알고도 모른 척할 사람 아니잖아요, 천소울 씨는.”

그의 생각은 이미 다 알고 있다는 듯, 성현은 그 점을 파고들었다.

예상대로, 천소울은 눈빛을 흔들거렸다.

“이번에만 부탁 좀 드릴게요. 정말 재능있는 친구라 그냥 내버려 둘 수가 없어서 그래요.”

사실, 천소울 또한 요하의 재능을 알고 있었다.

성현이 패자부활전에 간 뒤 이어진 예선 라운드.

천소울 정도 되는 자가 요하의 목소리와 가능성을 알아보지 못했을 리 없다.

천소울이 성현의 부탁을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부탁 들어주는 건 이번이 마지막일 겁니다.”

확실히 김요하는 여기서 탈락하기엔 아까운 인물이었다.

김요하의 잠재력을 자신의 눈으로 더 확인해보고 싶은 생각도 컸다.

성현이 그러한 것처럼, 천소울 역시 음악 자체를 사랑하니까.

“고마워요. 이번 일 꼭 잊지 않을게요.”

성현은 싱긋 웃으며 감사 인사를 했다.

이제 요하에 대한 걱정은 내려놓을 수 있었다.

공개된 공연장 정보에 따르면, 10대 우대 공연장 중 성현 일행 전부가 계약 가능한 곳은 없었다.

대화를 마친 성현은 요하에게 이 사실을 알리기 위해 향했다.

그런데 그곳에선 요하와 주선아가 투닥거리며 성현이 온 줄도 모르고 있었다.

“성현이 형이 더 잘하거든요?”

“그래봤자 소울 오빠보다는 아래니까 비교 자체를 하지 말라니까?”

요하는 주선아 말에 씩씩거리며 끊임없이 반박했다.

뭐, 아직 어린애들이니 쓸데없는 자존심 싸움이 일어나는 건 당연했다.

성현은 곧장 요하를 부르며 둘을 떼어냈다.

둘은 그제서야 성현과 천소울이 함께 돌아온 것을 알아챘다.

그러더니 주선아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오래 걸렸네요.”

주선아는 평소 다른 사람과 대화조차 잘 나누지 않는 천소울을 옆에서 지켜봐 왔다.

그러니 성현과 꽤나 길게 대화를 하고 돌아온 것이 신기한 것이다.

‘꽤 실력 있는 프로듀서인가?’

천소울이 관심을 보이고 대화를 할 정도면 그 역시 만만치 않은 음악 실력을 지녔을 거라 생각했다.

그때,

[ ‘주선아’의 정보창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

성현의 눈앞에 그만이 볼 수 있는 홀로그램이 나타났다.

주선아가 성현에게 호기심을 보인 덕이었다.

아무래도, 상대방이 성현에게 어떠한 감정을 품을 때 그 상대의 정보창을 볼 수 있는 모양.

성현이 곧바로 주선아의 정보창을 살폈다.

[주선아]

나이 : 19살

키/몸무게 : 163cm / 47kg.

포지션 : 가수

특성 : [칼군무], [강약 조절], [안정된 호흡], [재능의 습득]

‘역시 재능 하난 타고났네.’

주선아는 확실히 천소울이 데리고 다닐 만한 가치가 있는 참가자였다.

칼군무라는 특성에 안정된 호흡까지 겸비하고 있으니, 아이돌 그룹의 센터 자리 하나는 차지할 만한 재능이었다.

거기에 ‘재능의 습득’이라니.

앞으로 성장이 더욱 기대되는 특성이다.

“무슨 얘길 그렇게 하신 거예요?”

주선아는 궁금함을 못 참겠다는 듯 물었다.

허나 천소울은 질문한 주선아 말고, 요하를 바라보며 말했다.

“요하라고 했나. 넌 여기서 공연을 하게 될 거야.”

“정말이에요?”

요하가 아닌 주선아가 크게 놀라며 되물었다.

천소울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 혼자요?”

요하가 성현을 바라보며 물었다.

“응. 누나랑 형이 잘해줄 거니까 긴장하지 말고 평소처럼만 하면 돼.”

성현은 혼자 남게 되어 불안해하는 요하를 달래줬다.

요하는 성현을 뒤로하고 주선아와 천소울을 힐끔 보았다.

주선아는 아까 투닥거린 탓인지 고개를 돌리며 흥, 하는 모습이었고 천소울은 조용히 서 있었다.

제대로 적응할 수 있을까 걱정이 들었지만 요하는 별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요하 또한 성현이 말해주지 않아도 공연장 조건에 맞추려면 함께하기 힘들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이유라도 물으면 성심성의껏 답해주려 했는데, 그마저도 필요 없게 됐다.

아직 고등학생임에도 불구하고, 상황파악이 빠르다.

생각이 깊은 요하를 기특하게 보던 성현은 천소울 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럼 우리 요하 잘 좀 부탁드려요.”

그와 함께라면 탈락은 하지 않을 터지만 그래도 주의해도 나쁠 건 없다.

성현은 마지막으로 천소울에게 인사를 하고 공연장 빠져나갔다.

그때, 천소울이 성현을 따라 나왔다.

“생각해 둔 공연장은 있습니까?”

“네. 꽤나 재밌는 곳이 있더라고요.”

끝까지 알 수 없는 아리송한 말에 천소울은 그게 무슨 소리냐는 표정을 지었다.

그런 천소울에게 성현이 어깨를 들썩이며 답을 이었다.

“너무 쉬운 길은 재미 없는 법이죠.”

여전히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하는 표정의 천소울이, 괜한 한 마디를 붙였다.

“쉽지 않은 길을 좋아하는 모양이군요. 이번에도 또 탈락 위기에 놓이면 어쩌려고.”

“혹시 지금 그 말, 나 걱정해서 하는 말인 건가?”

“걱정은 무슨.”

능청스러운 대답에 천소울은 괜히 말을 꺼냈다며 인상을 썼다.

그 후 그는 뒤도 보지 않고 공연장으로 다시 들어갔다.

자식, 까칠하긴 하지만 귀여운 구석이 있다.

성현은 그런 그의 뒷모습에 알 수 없는 기분을 느끼며 미소를 지었다.

***

김요하를 천소울에게 맡긴 성현은 곧장 어디론가 향했다.

그의 목적지는 조금 전 천소울에게 말했던 그 공연장.

그곳은 참가자들이 서로 가지 않으려는 공연장으로 공연권은커녕 애초에 무대에 서는 것조차 쉽지 않은 곳이었다.

성현은 그 사실을 앎에도 그곳으로 향했다.

도대체 어떤 곳이길래 천소울의 입에서 ‘쉽지 않은 곳’이라는 말을 나오게 하는 걸까.

성현은 홍대의 후미진 골목을 걷다가 한 건물 앞에 발걸음을 멈췄다.

그때, 건물 지하에서 올라오는 참가자와 마주쳤다.

참가자 가슴팍에는 빨간색 뱃지가 걸려 있었는데, 왜인지 그는 조금 흥분한 듯 보였다.

성현의 뱃지를 확인한 남자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꿈도 꾸지 마세요. 순 술주정뱅이들 천국이니까. 다른 데 알아보는 게 빠를 겁니다.”

바라지 않은 충고 아닌 충고를 해주고는 자리를 떠나는 남자.

그의 표정은 온갖 불쾌감과 분노로 휩싸여 있었다.

‘확실히 정상적인 공연장은 아니지.’

성현은 참가자의 말을 곱씹으며 고갤 들어 조그맣게 서 있는 간판을 확인했다.

[ 오아시스 라이브 바 ]

얇은 네온사인의 빛이 클럽 조명처럼 수없이 깜빡거리며 그를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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