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화
돌발 라운드도 기분 좋은 승리로 끝낸 이성현 일행은 다시 모였다.
돌발 라운드에 참여하지 않았던 서지현과 임하나도 경연장에 와 있었기 때문에 다 함께 서강대가 있는 신촌 호프집에 모여 뒤풀이를 가졌다.
그들 또한 무대를 끝까지 보며 관객처럼 열띤 환호를 보냈다.
“다들 수고 많으셨어요. 건배!”
“건배!”
서지현과 임하나는 되려 아직도 흥에 취해 자기들이 더 신나 하며 맥주잔을 들어 올렸다.
그 상황이 마냥 좋기만 한 성현과 조은별도 웃으며 잔을 부딪쳤다.
“요하까지 있으면 더 좋았을 텐데.”
조은별은 이 자리에 없는 이번 무대의 열혈 공신인 요하가 없는 것에 매우 아쉬워했다.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하는 듯 다들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요하는 미성년자이기도 하고 밤늦은 시간이라 함께하지 못한 것이다.
스스로도 같이 있고 싶어 했지만, 그는 어쩔 수 없이 먼저 집에 돌아가야 했다.
아직 어린 요하에겐, 귀엽게도 통금이 있었다.
오디션에서 살아남았다고 법을 어길 수는 없는 노릇이고, 부모님의 말을 마냥 거절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말이다.
때문에, 뒤풀이 참석은 하지 못하게 되었다.
아쉬움을 채우듯 임하나와 서지현은 요하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그나저나 요하 걘 어려서 그런가. 실력이 하루가 다르게 느는 거 같아요. 록을 또 그렇게 잘할 줄은 몰랐어요.”
“요하 깡패예요, 깡패. 음색 깡패.”
팀원들 모두 요하의 공연을 떠올리며 칭찬을 늘어놓았다.
그동안 조용히 있던 성현은 요하의 칭찬에 자신도 모르게 입꼬리를 올리며 동조했다.
아주 그냥 생각할수록 기특하고 대단하단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더 잘할 친구예요. 재능도 있고 노력도 열심히 하고.”
“성현 씨, 너무 요하만 예뻐하는 거 아니에요?”
“네? 아, 그런 건 아닌데. 예선장에서부터 봐서 그런가. 더 눈에 밟히기도 하고......”
은별의 핀잔 아닌 핀잔에 성현은 머리를 긁적이며 무안해졌다.
자신이 생각해도 너무 요하의 얘기만 나오면 표정이 밝아졌던 것 같아서다.
그만큼 성현에게 있어 이제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된 것이다.
‘조카를 바라보는 삼촌의 마음이 이런 걸까.’
성현은 요하가 벌써 자기 가수가 된 듯한 기분을 느꼈다.
그러니 누군가 요하의 칭찬을 하면 괜스레 자신의 기분이 더욱 좋아졌다.
이런 맛에도 프로듀서 하는 거지, 성취감도 더 커지고.
“그나저나 다음 라운드 시작이 언제죠?”
“다음 주 토요일 홍대요.”
은별은 돌발 라운드가 끝나고 시간이 점차 지나자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오듯 했다.
하지만 성현의 대답에 다들 분위기가 전보다 약간 가라앉았다.
돌발 라운드를 준비하느라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시간 때문이다.
다른 팀은 이미 곡도 연습하고, 합을 맞추고도 남을 시간이었다.
허나 성현은 여전히 자신 있는 모습을 취하며 분위기를 이끌었다.
“겁낼 거 없어요. 지금처럼 후회 없이 각자 자신의 음악을 하면 돼요.”
“맞아요. 노력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이기지 못한다잖아요.”
“우리 후회 없이 즐겨요. 파이팅!”
“저도 다음 라운드부터 더 최선을 다할게요.”
부진했던 지난 라운드를 떠올리며 은별도 다시 의지를 다잡았다.
그런 식으로라도 힘을 내려는 그녀의 모습에 성현도 마음이 한시름 놓였다.
저 강인한 마음이 대체 어디서 나오는 건지 알게 모르게 궁금했다.
그때 호프집 라디오에서 곡이 들렸다.
어디선가 들어봤나 했더니, 지난 본선 1라운드에서 조은별과 서지현, 요하가 함께했던 노래 원곡이었다.
“어! 이 노래?”
조은별의 말과 동시에 서지현 살짝 허밍으로 노래를 불렀다.
결코 잊을 수 없는 기억이기에 목소리는 자동적으로 나왔다.
그때
“오오. 소울이 장난 아닌데요?”
익숙한 무리가 성현이 있는 테이블로 오더니 자연스럽게 합석했다.
“어...? 더 비기너...?”
다름 아닌 ‘더 비기너’ 멤버들이었다.
서지현이 헛것이라도 본 것 마냥, 눈을 비벼댔다.
몇 번을 비벼봐도 분명 현실이었다.
‘더 비기너’ 멤버들은 동네에 마실 온 차림인 듯 모두 츄리닝을 입고 들어왔다.
거기다 더욱이 모자를 눌러쓴 탓에 사람들도 알아보지 못했다.
그 탓에 처음엔 웬 술 취한 아저씨들인 줄 알았다.
“오셨어요”
성현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들을 반겼다.
나머지 멤버들도 일어나 멤버들과 각자 인사를 나눴다.
이들은 이미 성현의 패자부활전 영상에서 봤고 이번 무대에도 같이 섰다.
하지만 서지현과 임하나는 이들을 실물로 보는 건 처음이었다.
“대박. 저 진짜 팬이에요. 저 진짜 1집 앨범부터 다 들었어요.”
“와, 실물이 더 잘생겼어요!”
그녀들은 거의 기겁하다시피 반응했다.
서지현은 무대 위에서보다 더욱 청아한 고음을 내며 환호를 했다.
이 정도면 이게 팬미팅이 아닌가 싶었다.
그 뒤로 서지현과 임하나는 ‘더 비기너’를 보고 연예인과 술을 마신다며 호들갑을 떨었다.
“성현이 말론 다들 실력자라던데 이왕 시작한 거 우승까지 하셔야죠.”
“우승 가즈아!”
“가즈아!”
최혁도 오히려 자신이 더 호들갑을 떨며 잔을 올렸다.
다들 약간의 취기가 오른 상태로 기분 좋게 잔을 부딪쳤다.
“저 너트뷰 영상 봤는데 목 관리 어떻게 하신 거예요?”
“목 관리? 특별히 따로 하는 건 없고 평소에 가습기......”
“나에게 록은 말이야 단순히 음악이 아니라 삶의 양식이란 말이지. 응? 이 권위적이고 부조리한 사회에 맞서서 말이야.”
“이 자식 취했다. 재원아 얘 술 그만 맥여라. 계속 말씀하세요, 은별 씨.”
“네. 제가 이번에 록 음악을 편곡하면서 느낀 게......”
시끄러운 호프집에서 일행들은 각자 정신없이 대화를 이어갔다.
이런 얘기, 저런 얘기가 어지럽게 퍼졌어도 그들은 각자 대화를 했다.
그러니 밝은 분위기는 끊임없이 이어졌고 더욱 무르익어져만 갔다.
잠시 화장실에 다녀오던 성현은 돌아오는 도중 우두커니 서서 다 함께 떠드는 일행들의 모습을 지켜봤다.
‘역시 참가하길 잘했어.’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
자신에게 벌어진 상황이 그저 너무나 즐거웠다.
이전에 혼자 음악을 하면서는 느끼지 못했던 새로운 경험이었다.
성현의 얼굴에 저절로 미소가 피어올랐다.
***
돌발 라운드가 끝난 다음 주 토요일 오전.
본선 2라운드가 열리는 곳은 알려진 대로 홍대였다.
홍대에서 본선 2라운드를 진행할 참가자들은 모두 홍대에 위치한 아지트라는 곳에 모여야 했다.
아지트는 주최 측에서 준비한 공간으로 각 지역마다 참가자들이 편리하게 회의, 연습, 쉴 수 있도록 준비해둔 공간이었다.
굳이 멀리 떨어진 연습실에 가야 하는 참가자들을 위한 얼마없는 호의적인 태도였다.
“이성현 참가자 왔어요?”
성현이 아지트에 들어가 처음으로 마주한 사람은 김인호 AD였다.
김인호 AD는 성현과 억지로 악수를 하며 손을 세차게 흔들어 격하게 반가워했다.
성현은 이에 극도로 반감을 표했지만, 그는 도저히 말릴 수 없는 모습이었다.
그가 이렇게 성현을 반기는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라운드가 올라갈수록, 참가자 수는 자연히 줄어들게 된다.
이에 따라 촬영에 필요한 AD도 줄어들게 된다.
그런데 김인호는 본선 2라운드까지 살아남은 것이다.
그것도 성현의 일행 덕분에.
게다가 김인호가 담당한 채널에서 성현과 일행들의 인기가 치솟은 덕분에 후원과 스폰서들의 관심도 늘었다.
그 덕택에 김인호는 홍대 지역 AD로 뽑히게 됐다.
그 역시 성현으로 인해 꿈이 실현 중에 있었다.
“앞으로도 잘해봅시다.”
“잘 부탁드려요.”
한편 성현의 입장에서도 김인호의 호의적인 태도가 마냥 나쁠 건 없었다.
자신을 마음에 들어 하고 집중적으로 찍고 잘 편집해줄 AD가 생긴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더 음악에만 집중할 수 있겠지.’
그것은 즉, 오디션을 하며 다른 것에 신경을 쓸 일이 현저히 줄어든 것이다.
부담스러운 태도만 조금 고쳤으면 할 뿐.
김인호 AD 또한 성현의 활약을 눈여겨보고 있다.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행동만 하는데, 다 성공해내 버리니 이보다 더 명확한 일이 필요할까.
성현이 음악에 집중해도 알아서 잘 편집하여 재밌게 방송을 내보내 줄 것은 당연할 터.
그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후원도 늘게 될 거였다.
“그럼 이번 라운드도 잘 해봐요. 프로듀서 참가자는 저쪽 대기실로 가면 됩니다.”
김인호, 친절히 길까지 알려주고 사라졌다.
***
아지트엔 참가자들을 위한 두 개의 대기실이 마련돼 있었다.
프로듀서와 가수에 따라 들어가는 대기실이 다른 것이다.
성현이 김인호의 안내에 따라 프로듀서 대기실로 들어가자 그곳에 있던 조은별이 성현을 반겼다.
“성현 씨, 이쪽이에요!”
“다들 빨리 도착했네요.”
이미 대기실을 가득 메운 참가자들이 눈에 들어왔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있었기에 앞으로의 경연도 꽤 흥미로워졌다.
“춥진 않으세요? 저쪽에 커피도 마련돼 있는데.”
조은별이 가리킨 곳을 보자 대기실 뒤로 마련된 커피와 차가 보였다.
성현은 괜찮다며 조은별 옆에 앉았다.
그 순간, 때맞춰 홍대 지역 담당 PD가 나타났다.
헌데 예선과 본선 1라운드를 함께 했던 PD가 아니었다.
지역이 바뀐 만큼, PD도 바뀐 것이다.
“반갑습니다. 홍대 지역 담당PD 최흥철입니다.”
무미건조한 자기소개였다.
그의 표정에선 어떤 표정 변화도 없었고 모든 것에 무심한 표정이었다.
“이번 2라운드에서도 좋은 모습 보여주시길 바랍니다.”
한동균 PD보다 더 짤막한 소개를 끝으로 진행 요원과 바통터치를 하고 대기실을 나섰다.
“본선 2라운드 미션 공지하겠습니다.”
진행 요원은 이번에도 커넥트 앱을 통해 미션을 하달했다.
동시에 대기실에 있던 참가자들 휴대폰엔 커넥트 알람이 울렸고 다시 핏기 서린 무대에서 살아남아야 했다.
[ 본선 2라운드 ]
* 미션 : 홍대에는 ‘더 넥스트 서바이벌’을 위해 지정된 10개의 공연장이 있습니다. 해당 공연장의 공연권을 따내세요. 이후, 각 공연장에 설정된 조건을 통과하세요.
* 조건 : 1) 총 2번의 공연으로 진행. 각 공연장마다 다른 합격 조건이 주어집니다.
2) 각 공연장에 배정된 목표 관객 수를 달성하지 못하면 해당 공연장은 두 번째 주 지정 공연장에서 제외되며, 해당 공연의 참가자들 모두 탈락입니다.
3) 공연장마다 무대에 설 수 있는 프로듀서/가수 참가자의 수가 지정됩니다.
4) 공연 시작 전까지 공연권을 획득하지 못한 참가자는 자동 탈락입니다.
* 공연 장소 : 주최 측에서 선정한 홍대 내 10개의 공연장. 커넥트 앱을 통해 지정 공연장 위치/정보 제공.
* 공연 시기 : 주 1회. 금요일.
* 성공시 : 다음 라운드 진출.
* 실패시 : 탈락.
꽤나 긴 미션 조건에 프로듀서 참가자들은 이내 크게 술렁거렸다.
2라운드인 만큼 미션도 더 복잡해지며 난이도가 오른 것이다.
“공연권을 따내지 못하면 공연도 못 해보고 그냥 탈락이란 건가요?”
“네. 이번 미션은 공연권을 따내는 것부터가 경쟁이 될 겁니다.”
역시 잔인한 서바이벌이었다.
실력만 있다고 다음 라운드에 진출하는 것이 아니었다.
공연할 기회를 얻지 못하면, 아무리 노래 잘하는 가수가 온다 한들 어떤 것도 해보지 못하고 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오디션 특성상, ‘운’이라는 요소를 완전히 배제하는 건 애초에 불가능.
‘그렇지. 한순간도 긴장을 늦출 수 없게 만든다니까.’
게임을 통해 미션 내용을 알고 있는 이성현이라 하더라도, 탈락을 완전히 면할 수 있는 왕도는 없다는 뜻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