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같은 프로듀서는 없었다-38화 (38/273)

38화

관객으로서는 전혀 예상치 못했을 인물, ‘더 비기너’의 김동우가 서 있었다.

그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객석에선 모두 놀라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김동우가 다시 기타를 내리 긁었다.

그러자 중앙 쪽에서 킥드럼 소리와 함께 스네어 치는 소리가 들렸다.

사람들은 설마, 하며 동조했다.

중앙 쪽으로 조명 한 줄기가 떨어졌다.

그들의 예상대로 그곳엔 드러머 최훈이 스틱을 쥐어 든 채 자리 잡고 있었다.

“뭐야? 더 비기너 맞지?”

“대박. 맞아, 맞아. 진짜 더 비기너야.”

객석에서 술렁거리는 소리는 더욱 커졌다.

그러자 그들의 말에 호응해주듯 자연스레 스며들던 허스키한 목소리가 들렸다.

“가는 길이 보이지 않고 내가 날 볼 수도 없어. 나는 상처 받은 애벌레.”

무반주로 노래 한 소절만 불렀을 뿐인데 반응은 금세 뜨거워졌다.

드러머 최훈이 스틱을 세 번 부딪치며 박자를 셌다.

이윽고 김동우와 최훈이 연주를 동시에 시작하자 온 조명이 켜졌다.

그러자 이재원의 모습까지 보이며 ‘더 비기너’의 모습이 환하게 보였다.

신나는 기타 소리에 묵직한 소들이 달려가는 듯한 드럼 비트에 객석에 있던 사람들은 자리에서 모두 일어나 환호했다.

“꺄아아아악-!”

여기저기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아무런 예고 없이 무대에 오른 ‘더 비기너’ 멤버들의 등장에 분위기가 후끈 달아오른 것이다.

그렇게 맛보기 인트로가 끝이 났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이미 곡 하나를 완곡한 것처럼 즐겼다.

이윽고 최훈의 현란한 드럼연주를 시작으로 마지막 무대의 신호탄을 쏘았다.

“날개를 활짝 펴서 하늘 높이 날 거야 춤추고 노래하는 나는 자유로운 나비.”

이재원의 맞은편으로 요하가 걸어 나오며 노래를 불렀다.

요하가 메인 보컬을 맡았고 이재원이 요하의 뒤를 받쳐주며 서브 보컬로 들어갔다.

이 곡 또한 성현이 편곡한 곡이었다.

그는 요하의 록 보컬로서 가진 매력을 여실히 보여주고 싶었다.

그렇기에 이전에 감성적이던 모던록과는 다른 경쾌한 리듬의 멜로디와 시원시원한 보컬이 돋보이는 포크록으로 무대를 이었다.

성현 자신의 꿈을 이루는 무대임과 동시에 요하에게 주는 그동안 노력했던 것에 대한 답례였다.

요하는 성현의 성원에 힘입어 이번에도 무대를 마음껏 즐겼다.

기타를 현란하게 다루면서도 흔들림 없는 보컬을 유지했다.

이윽고 김동우와 함께 합을 맞추는 부분에 도착했다.

김동우는 요하가 길을 곧게 따라올 수 있도록 거칠면서 부드럽게 연주를 했다.

요하 역시 김동우의 리드에 맞춰 기타를 울렸다.

두 개의 소리는 하나로 엮여 고리를 만들어냈다.

빈틈없고 단단한 연주에 객석에서 박수가 절로 나왔다.

기타 소리가 커질수록 사람들의 박수 소리도 커졌다.

“날개를 활짝 펴서 하늘 높이 날 거야 춤추고 노래하는 나는 자유로운 나비.”

합주를 마친 요하는 이번엔 이재원과 호흡을 맞췄다.

재원은 노련미를 뽐내며 마이크를 객석 쪽으로 돌리며 떼창을 유도했다.

모두가 이미 외우고 있을 만큼 친숙하고 외우기 쉬운 후렴에 사람들은 목이 터져라 외쳤다.

그렇게 공연장 안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하나가 되어 무대를 채워갔다.

작은 공연장이기에 오히려 가능한 일이었다.

요하는 공연장을 휘젓는 기타 연주로 온몸으로 에너지를 표현했다.

그의 얼굴에선 땀이 흘러내렸지만, 결코 힘들어하는 표정은 아니었다.

임하나가 성현과 함께했던 무대처럼 요하의 얼굴엔 여전히 설렘과 기쁨이 묻어나왔다.

그렇게 요하가 무대를 즐길수록 객석 또한 더욱 뜨겁게 달아올랐다.

이에 반응하듯 표수 또한 빠르게 올라가며 등불을 밝혔다.

소름이 돋을 정도로 경이로운 무대는 달콤한 꿈처럼 좀체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

준비된 무대가 모두 끝이 나고, 관객들도 여흥만을 남긴 채 빠져나갔다.

“참가자 전원 모두 무대로 올라와 주세요.”

메인 PD 한동균이 무대에 오르며 말했다.

조은별을 비롯해 상대팀 참가자들까지 모두 무대로 올랐다.

조은별은 어느새 이성현이 준비한 깜짝 선물 같은 무대에 그를 존경스럽게 바라봤다.

“양 팀 모두 만족스러운 무대를 보여줘서 관객들뿐만 아니라 스폰서들의 반응도 뜨겁습니다.”

한동균은 만족스러운 듯 참가자들 하나하나의 얼굴을 살폈다.

특히 성현의 얼굴을 노골적으로 쳐다본 한동균은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더니 곧바로 냉정한 표정을 지으며 결과를 발표했다.

“하지만 서바이벌은 서바이벌. 멋진 승부를 떠나 누군가는 떨어져야 합니다.”

한동균은 마저 하던 말을 마치고 지시를 내렸다.

그러자 무섭게 공연장에 설치된 스크린에 결과 발표가 떴다.

박남길 / 조은별 팀 – 777표.

이준우 / 정호연 팀 – 376표.

결과는 가히 압도적이었다.

아니, 애초에 불가능한 일에 가까운 몰표가 나왔으니 모두가 놀랐다.

이 사실을 알고 있던 한동균과 결과를 충분히 예상했던 이성현을 제외하고.

“축하드립니다. 조은별 박남길 참가자가 다음 라운드 진출권을 획득했습니다.”

한동균 메인 PD의 말에 이준우와 정호연 팀은 절망적인 표정을 지었다.

“본선 라운드 통과했잖아요. 갑자기 돌발라운드니 이딴 걸로 사람 떨어뜨리는 게 어딨어!”

“탈락한 참가자는 조용히 공연장을 떠나주시면 고맙겠습니다.”

“피디님, 다시 한번만 기회를 주십쇼. 제가 왜 탈락입니까!”

본선에서 합격하고도 떨어지게 됐으니 심히 억울한 이준우가 항의를 거듭했다.

그럼에도 한동균 PD는 상대도 해주지 않고 무심하게 무대를 내려갔다.

언제나 그렇듯 안전요원이 무대 위로 올라와 흥분한 그를 말리며 끌어 내렸다.

“이로써 돌발라운드 미션은 공식적으로 끝이 났습니다.”

스탭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성현을 비롯한 팀원들한테 커넥트 알람이 울렸다.

[돌발라운드 미션에 대한 보상이 지급됩니다.]

[3460 캐시]

조은별과 박남길이 받은 78표를 제외한 나머지 표에 대한 캐시를 성현과 요하가 반반씩 받았다.

“득표수에 따라 캐시를 분배해드렸습니다. 다들 수고하셨습니다.”

스텝은 전달사항을 모두 마쳤단 듯이 무대에서 내려갔다.

그러자 캐시를 확인한 박남길이 말도 안 된다며 투덜거렸다.

“390 캐시? 고작 이거 먹고 떨어지라고? 이성현. 넌 얼마 받았어.”

잘한 것도 없으면서 자신에게 내려진 결과만 보고 분개한 것이다.

그는 강제로라도 이성현에게 캐시를 뜯어내기 위해 접근했다.

그러자 조은별은 더는 못 참아 주겠다는 듯 사이에 끼어들며 눈을 부라렸다.

“본부장님은 78표 받아놓고 부끄럽지도 않아요? 평소에 성현 씨 세션맨이라고 무시하더니 뭐 느끼는 거 없나요?”

평소 조은별의 성격을 알고 있던 박남길은 그녀로부터 쏟아진 말에 입이 다물어졌다.

평소 그의 성격이라면 한마디 하고도 남았을 텐데.

그는 스스로도 78표를 받았던 것이 굴욕이었는지 표정이 굳은 채 조용히 찌그러진 것이다.

“저기, 본부장님 그러니까 제 말은.”

생각보다 큰 상처를 받은 표정의 박남길을 보자 은별은 괜히 마음이 미안해졌다.

이상하리만치 꼬인 분위기에 은별은 뭔가 더 말하려 했다.

하지만 박남길은 아무 말 없이 무대를 홀연히 내려갔다.

“놔둬요. 스스로도 충격이 컸을 거예요.”

축 처진 어깨를 한 그를 보며 쫓아가려던 은별을 성현이 말렸다.

그러자 이내 은별도 긴 한숨을 쉬었다.

78표는 박남길뿐 아니라 조은별에게도 충격적인 결과였기 때문이다.

“축하해요. 다음 라운드 진출한 거.”

상현은 진심으로 은별에게 축하를 건네며 기를 세워주려 했다.

하지만 조은별의 표정은 밝아지지 않았다.

물론 자신의 생각대로 완벽히 구상한 무대는 아니었다.

솔직히 말하면 그녀의 잘못보단 박남길의 독단적인 잘못이 컸다.

그럼에도 어쨌든 자신이 맡은 무대가 별다른 도움이 되지 못한 건 맞기에 자존심이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너무 상심할 필요 없어요. 앞으로 더 좋은 무대 보여주면 되잖아요.”

“조금 지치네요.”

평소답지 않은 그녀의 모습이다.

요새 계속 심적으로 힘들어한 상황이 많았으니 은별의 마음이 이해되기는 했다.

육체적 고통이면 어떻게 해줄 수 있지만, 심적인 건 홀로 싸워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때, 어색한 적막을 뚫고 누군가 성현을 불렀다.

“777표! 대단하다 이성현!”

대기실에서 상황을 지켜보다 성현의 팀이 이긴 걸 보고 달려온 ‘더 비기너’ 멤버들이 성현과 동료들에게 축하 인사를 건넨 것이다.

성현은 당연한 승리라는 듯 애써 태연한 표정을 짓지만 요하는 즐거움을 숨기지 못했다.

“저 진짜 완전 재밌었어요! 다음에도 또 형들이랑 무대서도 돼요?”

요하는 ‘더 비기너’에게 달려가 여전히 팔팔한 기운을 뽐냈다.

무대 한두 곡은 더 부르고도 남을 기운이었다.

“그거야 너 하는 거에 따라 달렸지. 지금보다는 더 잘해야 할 거다.”

“저 진짜 열심히 할게요!”

***

무대 밖 대기실.

그곳엔 메인 PD 한동균과 탈락한 이준우, 정호연 참가자가 앉아있었다.

그들은 여전히 한동균을 붙잡고 있듯 보였다.

“이성현 참가자가 부정행위를 했다는 게 무슨 말인가요.”

“피처링권이요. 그걸 쓸 수 있는 걸 알았으면 당연히 저희도 썼을 겁니다.”

“그래서요? 왜 당신들이 몰라서 못 쓴 게 이정현 참가자의 부정행위입니까?”

“주최 측 관계자한테 뭔가 들은 게 있으니까 다른 참가자들은 모르는 피처링권을 알고 있는 거겠죠. 관계자랑 내통하는 게 부정행위가 아니면 뭡니까?”

“이준우 참가자는 굉장히 위험한 발언을 하시는군요.”

자신을 탈락으로 내몰리게 한 성현에게 어떻게든 흠을 잡으려 한 모습이었다.

허나 이는 오히려 한동균의 역린을 건드리고야 말았다.

그가 여태껏 보여준 표정보다 더욱 살기가 느껴지는 분위기를 풍겼다.

그러자 이준우와 정호연은 그제야 겁먹은 듯 한풀 꺾였다.

“지금 저를 비롯한 관계자들이 비리를 저지른다고 말씀하시는 건가요?”

“아니 그런 뜻은 아니고......”

“그리고 정말 궁금해서 묻는 건데 이성현 참가자가 피처링권을 쓰지 않았으면 이길 거라 생각하고 이런 컴플레인을 거는 겁니까?”

그의 질문은 이준우 팀의 입을 원천 봉쇄시켰다.

겨우 정신을 다시 잡은 이준우만이 입을 떨며 조심히 반박했다.

“그거야 장담할 순 없지만, 결과가 달라졌을 수도 있는 거 아닙니까?”

“글쎄요. 제 생각은 다른데.”

한동균은 다시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오며 커넥트 앱 화면을 띄었다.

그곳엔 스폰서들 실시간으로 보낸 반응이 도착해 있었다.

그는 하나하나 성심껏 읽어줬다.

- 김요하 참가자 음색이 ‘더 비기너’ 이재원과 비교했을 때 밀리지 않는 것이 대단합니다.

- 김요하 참가자를 돋보이게 한 이성현 참가자의 편곡이 인상 깊었습니다.

- 김요하 참가자는 그사이 실력이 더욱 늘었군요. 록스피릿을 제대로 느꼈습니다.

- 더 비기너의 등장은 상상도 못 했습니다. 역시 무대 구성과 연출로는 이성현 참가자를 이길 자가 없군요.

보다시피 이준우 정호연 팀에 대한 반응은 거의 없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조은별 팀, 특히 김요하의 무대에는 엄청나게 좋은 반응을 쏟았다.

“더 읽어줘요? 관객들이라고 스폰서들과 다른 반응이었을까요?”

이준우와 정호연은 내려진 현실에 둘 다 아무 말도 못 하고 침묵했다.

갑작스럽게 치러진 돌발라운드.

이견을 가질 수 없는 이성현의 완승에 압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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