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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같은 프로듀서는 없었다-37화 (37/273)

37화

요하의 리허설이 시작되었다.

무대 중앙에 홀로 우뚝 선 요하는 기타 목을 왼손으로 꽉 쥐었다.

이성현이 자신을 위해 편곡해 준 곡을 듣고 자면서 읊을 정도로 열심히 연습했다.

이제 드디어 자신이 무대를 즐길 차례가 됐다.

여러 긴장과 설렘이 요하를 뒤감았다.

그렇게 떨리는 흐름 속에서 무대 곡이 흘러나왔다.

요하는 피크를 쥔 오른손으로 기타 줄을 쓸어내렸다.

그 후 나름 터득한 여유롭게 목을 푸는 모습을 보이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밑에선 각자 맡은 장비를 체크하는 스텝들이 무대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티를 내지 않았지만 요하의 모습에서 멋진 무대가 나올 거라는 기대감에 눈이 빛났다.

그렇게 요하의 리허설은 무사히 끝이 났다.

그가 무대에서 내려오자 스텝들은 곧바로 다음 무대를 준비했다.

“악기 세팅 시작할게요!”

스텝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악기를 세팅했다.

무거운 오디오 기기나 복잡한 드럼 기구들을 옮기는 데도 그들은 평소와 달리 들뜬 모습이었다.

“이번 공연 좀 떨린다.”

“‘더 비기너’ 온다는 거 진짤까? 재결합한 뒤로도 방송 출연 없다던데.”

“기다려봐.”

스탭들은 ‘더 비기너’가 온다는 소문에 모두 들떠있던 것이다.

그중 궁금증을 참지 못한 한 스탭이 한동균PD에게 다가가 눈치를 보며 질문했다.

“PD님. 오늘 ‘더 비기너’ 오는 거 진짜예요?”

“진짜지. 가짜야, 그럼?”

한동균은 확답을 보냈다.

그러자 스텝들은 쾌재를 불렀고 한동균도 미소가 가득했다.

복귀 후에도 당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더 비기너’가 공연장에 나온다?

이것만으로도 사람들의 큰 관심과 화제성을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들의 공연을 직접 보는 것만으로도 크나큰 자랑거리였다.

한동균은 자신에게 평가될 인사고과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한쪽에서 요하와 대화를 나누며 디렉팅 중인 성현을 흐뭇하게 바라봤다

‘더 비기너를 재결합시켜 무대에 세운 것도 모자라서 스폰 제안도 싹 다 거절한 천재 아니면 또라이. 아니면 둘 다 일수도.’

한동균은 성현의 배짱을 높게 샀다.

실력도 없이 배짱 장사를 한다면 모르겠다만 성현은 이미 소문난 실력자다.

보증은 충분히 된 성현이기에 한동균은 더욱 그가 마음에 들었다.

“악기 세팅 끝났습니다!”

때마침, 악기도 설치가 완료됐다.

한동균은 그 어느 때보다 신중하고 각별한 주의를 스텝들에게 내렸다.

“세 번째 무대가 하이라이트니까 카메라 각도 특별히 신경 써서 리허설 들어가라 해.”

“네. 감독님한테 말씀드리겠습니다.”

그야말로 하이라이트다.

오디션 참가자도 아닌데 하이라이트라니, 어긋난 부분이었지만 이 또한 사실이다.

얼마 후, 이들은 세 번째 무대를 위한 리허설이 시작됐다.

***

공연 시간이 다가왔고 사강대 메리홀은 만석이 됐다.

“안녕하십니까. 더 넥스트 슈퍼스타 돌발 라운드 진행을 맡게 된 엠씨 김준하입니다.”

엠씨가 무대로 등장하자 객석에서 박수와 환호성이 들려왔다.

이제 곧 무대가 시작된다는 걸 알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선 날도 추운데 이곳까지 발걸음 해주신 777명의 방청객 여러분들께 감사하단 말씀 드립니다.”

엠씨는 진심으로 허리를 숙여 객석에 있는 사람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방청객들의 호응에 힘입어 본격적으로 돌발 라운드의 시작을 알렸다.

“각 팀에게 주어진 시간은 30분. 그 안에 준비한 무대를 선보여야 하며 더 많은 표를 받은 팀이 승리하는 간단한 룰입니다. 여러분들의 한 표는 10캐시로 누적될 것이며 이긴 팀의 경우 적립된 캐시까지 가져갈 수 있으니 일석이조겠죠?”

엠씨가 오디션을 진행하는 사이 탈락 위기의 이준우와 정호연 팀의 모습이 밑에서 보였다.

그들은 곧 백스테이지에서 무대에 올라갈 준비를 했다.

그런데 그들한테도 전에 없던 다른 참가자들이 합류한 듯 보였다.

“재현이 형, 목 다 풀었죠?”

이재현. 본선 1라운드에서 락 음악을 선보이며 좋은 평가를 받았던 참가자다.

그는 당시 팀을 이뤘던 프로듀서와 함께 돌발 라운드에 합류했다.

상대 팀에서 이성현이 합류한단 소식을 듣고 급히 데려온 듯했다.

“올라가실게요.”

스텝의 신호에 맞춰 이들은 걸음을 옮겼다.

어두운 무대에 조명이 떨어지며 이준우 팀의 공연이 시작됐다.

이재현은 하드록을 선보이며 나쁘지 않은 활약을 펼쳤다.

조은별네 대기실에도 공연 모습이 나오기에 다 같이 경청했다.

반타작할 거 같았던 성현의 예상대로 그들은 총 376표를 얻으며 공연을 마무리했다.

그렇게 주어진 첫 번째 팀의 30분 공연 시간이 끝이 났다.

“조은별, 박남길 참가자. 준비하세요.”

이제 조은별 팀의 30분이 시작된다.

조은별과 박남길은 격려도 없이 서로 눈도 안 마주치며 대기실을 나섰다.

성현은 은별과 박남길에게 각자 다른 걱정을 하며 지켜봤다.

그렇게 그들은 진행요원을 따라 나갔다.

***

조은별과 박남길은 무대에 올라 객석에 있는 사람들에게 인사를 했다.

환호성을 띠며 우렁찬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

조음별은 크게 심호흡을 하며 피아노 앞에 앉았다.

분위기에 압도당한 탓인지 몸이 떨리는 게 느껴졌다.

다른 멤버들이 있었으면 떨림을 충분히 잡아주었을 텐데.

하지만 이제 와 약한 소리를 할 수 없었다.

조은별은 다시 마음을 먹고 건반 앞에 앉아 반주를 시작했다.

그 뒤로 박남길의 노래도 시작됐다.

노래는 기존 조은별이 기획했던 뉴트로 락 음악이 아닌 어두운 분위기에 팝스러운 락 음악을 편곡한 곡이었다.

사실 편곡이라고 하기에도 민망할 정도로 거의 원곡과 같은 편곡이었다.

이런 결과를 앉게 된 이유엔 오로지 박남길의 보컬에만 의지했기 때문이다.

연습 중에도 박남길은 툭하면 조은별에게 태클을 걸었다.

그러니 피아노를 치는 조은별과 박남길 간 호흡이 맞지 않는 건 자연스럽다.

박남길은 혼자만의 감정에 취해 소리만 고래고래 질러댔다.

그럴수록 조은별의 표정은 더욱 어두워졌다.

두 사람은 그 이후에도 한 곡을 더 불렀는데 그 뒤에 곡 또한 비슷했다.

조은별과 박남길의 불협화음만 더욱 빛이 날 뿐 무대 자체가 눈에 띄지는 못했다.

관객들의 호응 또한 없었다.

공연이 끝난 뒤 그 누구도 박수를 치지 않았다.

앞선 이준우 팀과의 분위기와는 모든 게 정반대였다.

둘은 끝내 고작 78표를 받고 무대에서 내려와야 했다.

‘생각보다 점수가 짠데.’

무대 자체가 훌륭한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성현이 보기엔 78표를 받을만한 무대는 아니었다.

원곡과 비슷한 흐름이었지만 그래도 조은별의 프로듀싱 능력이 엿보인 곡이었다.

‘역시 박남길 본부장 때문인 건가.’

결국, 무난한 편곡에도 78표를 받은 이유는 박남길밖에 남지 않았다.

박남길은 현대 록과 어울리지 않는 살짝 올드한 보컬 스타일을 가지고 있었다.

그 점을 알고 이것을 고치라는 조은별의 조언에도 끝까지 자신만의 스타일을 고수했다.

결국, 그는 이도 저도 아닌 노래를 휘갈긴 것이다.

“조은별 씨 편곡이 엉터리니까 점수가 이따구로 나온 거 아니야. 에이씨.”

그러나 무대를 내려온 박남길은 자신 때문이라곤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역겨울 정도로 조은별의 탓을 해대며 투덜댔다.

이에 조은별은 아예 이어폰을 꽂으며 그의 말을 대놓고 무시했지만, 표정에선 초조함이 묻어 나왔다.

성현에게 아무리 못해도 300점이라는 결과를 바라야 했기 때문이다.

은별은 그에 대한 미안함과 탈락이라는 공포가 그녀의 뇌를 동시에 자극했다.

“형 이제 저희 차례죠?”

반면 차례를 기다리는 요하는 무대에 올라갈 생각에 신이 나는지 긴장감은 전혀 보이지 않고 들뜬 표정이었다.

하기야 이렇게 된 거 점수에 우울한 모습을 보이는 것보다 무대에 대한 설렘을 가진 모습이 좋다.

“이성현, 김요하 참가자 준비하세요.”

빨리 무대에 서고 싶은 요하의 마음을 알았는지 무대 셋팅 점검을 끝낸 스탭이 성현과 요하를 불렀다.

성현은 끝까지 요하에게 충고를 아끼지 않았다.

“재밌게 놀다 와.”

“네!”

요하는 듬직한 기타를 메며 큰소리로 외쳤다.

***

무대에 오른 김요하는 객석에 있는 사람들을 가만 지켜봤다.

자신이 돌발 라운드에 참가한 이유.

이성현과의 작업이 어땠길래 임하나가 무대에서 그렇게 즐거운 모습이었는지.

무대를 시작하기 전부터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요하는 눈을 감으며 지나온 일들을 떠올렸다.

‘하나도 안 떨려.’

지나온 나날들은 모두 서바이벌 오디션이란 생각에 무대 자체를 즐기지 못했다.

하지만 오늘은 전과 다르다.

전까진 곡이 끝나고 나오는 결과에 떨렸다면, 지금은 무대를 꾸밀 수 있다는 것에 떨렸다.

그러다 보니 어떤 두려움이나 긴장감 없이 무대에 서 있었다.

성현과의 작업 과정을 통해서 많은 자신감도 생겼다.

‘더 비기너’도 자신의 재능에 칭찬을 해줬으니까.

무대 밑에서 요하의 상기된 표정을 지켜보던 성현도 같은 생각을 했다.

성현 역시 이번 돌발 라운드에 요하와 함께 참가한 이유가 있었다.

‘이번 계기로 확실히 성장할 수 있겠지. 실전만큼 좋은 연습은 없으니까.’

성현은 요하가 이번 기회로 락 보컬로서 가능성에 그치지 않고, 포텐을 터트릴 수 있게 만들어주고 싶었다.

그리고 그 잠재력이 터질 시발점을 이번 무대를 통해 만들어주고 싶었다.

이번 무대야말로 요하의 성장에 있어 가장 큰 기폭제가 될 거란 걸 성현은 확신할 수 있었다.

요하 스스로도 많은 준비를 했다.

또한 그동안 꾸준히 연습을 해도 알아봐 주는 이가 없던 전과는 다르게 많은 인정과 칭찬을 받았다.

누군가에게는 사소한 차이로 보일지 몰라도 그에게 있어 최고의 보물이 되리란 걸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왜,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성현이 확신을 가지며 요하를 바라볼 때, 드디어 반주가 시작되었다.

묵직하게 느껴지는 기타에서 가볍고 잔잔한 멜로디가 새어 나왔다.

이성현이 모던록의 스타일로 편곡한 곡은 많은 이들이 알고 있는 록과 다른 형태였다.

하드록의 상징인 폭발적인 고음과 샤우팅 그리고 테크닉은 없지만, 감성적인 멜로디로 사람들의 감성을 자극하는 음악이었다.

요하는 한국 옛 가요의 특유의 아련한 감성을 모던록 계열로 편곡하여 부른 것이다.

맑으면서 탁한, 상반된 음색이 곡에 적절히 섞이며 시너지를 추가시켰다.

객석에 있던 사람들 모두가 그 아련한 향수에 젖어 음악에 빠져들었다.

여기에 김요하의 음색으로 인해 더욱 아날로그적인 감성이 진해졌다.

그뿐만 아니다.

요하의 담백한 기타연주는 묘하게 사람들을 더욱 매료시켰다.

그의 기타는 어떠한 것에도 얽매이지 않은 모습으로 있는 그대로를 보여줬다.

그의 손에 쥔 피크가 기타 줄 사이를 건너뛰며 소리를 튕겼다.

옛스러우면서 어딘가 애절하고 가사에 묻어난 깊은 진심이 사람들의 마음을 덩달아 감명받게 했다.

확실히 이전 박남길에 무대에 실망했던 관객들은 김요하의 무대에는 완벽히 빠져드는 모습을 보였다.

“감사합니다.”

그렇게 김요하의 무대가 끝이 나자 객석에서 처음으로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

요하는 고개를 숙이며 객석을 향해 인사를 보냈다.

그의 표정은 정말로 행복해 보였다.

자신의 숨겨진 모습을 전혀 감추지 않아 속이 후련해 보이기도 했다.

요하의 무대가 막을 내리듯 무대는 다시 암전에 빠졌다.

그때,

찌이이이잉-

갑자기 일렉기타 소리가 울렸다.

객석에선 당연히 기타를 바꿔 맨 요하가 나올 거란 생각을 했다.

그러나 허를 찌르듯 무대 한쪽에 조명이 떨어지더니 그들의 시야를 반짝이게 했다.

조명 밑에는 ‘더 비기너’의 메인 기타리스트 김동우가 기운에 찬 모습으로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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