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화
돌발라운드를 위한 연습 시작한 지 이틀이 지났다.
즉, 앞으로 돌발라운드까지 남은 시간은 단 5일.
성현은 요하에게 부족한 부분이나 잘못된 부분을 면밀히 체크하며 고쳐줬다.
요하 역시 성현의 말을 곧잘 따르며 연습에 매진했다.
연습을 거듭할수록 ‘김요하’라는 가수에 대한 정성과 애정이 커지는 성현이었다.
요하를 처음 만났을 때 느꼈던 동질감은 여전했다.
똑같이 음악을 좋아했지만, 그들을 응원해주는 사람들은 없었다.
더구나 요하는 아직 성인도 되지 않았다.
그런 아이가 얼마나 상처를 받으며 길을 걸어왔을지, 자신만이라도 요하를 지지해주고 이끌어주고 싶었다.
성현은 그 누구보다 그 마음에 대해 잘 알고 있다.
요하를 보면 거울 속 자신을 보는 듯해 두 번 다시 같은 고통을 주고 싶지 않았다.
“요하야. 잠깐 쉬고 있을래?”
연습을 한참 이어가던 도중, 성현이 잠시 연습을 멈췄다.
편곡이 완성된 곡을 가지고 오겠다는 이유였다.
편곡이 완성됐다는 말에 김요하는 한껏 상기된 얼굴로 기대감을 드러냈다.
그렇게 성현이 연습실을 나선 후에도, 요하는 그 기대감 속에서 더욱 열심히 연습했다.
처음 해보는 록이었지만, 부를 때마다 속에서 알 수 없는 열정이 느껴졌다.
이전에 다른 곡을 부를 때와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그것이 무슨 느낌인지는 말할 수 없었지만, 지금 이 순간이 즐겁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그렇게 요하가 맑고 탁한 목소리를 내며 연습을 하고 있을 때였다.
마침내 성현이 다시 연습실로 돌아왔다.
그런데, 성현은 편곡이 끝났다는 곡 대신 다소 뜬금없는 소식을 가져왔다.
“노래 듣기 전에 요하 네 목소리 듣고 싶다는 사람들이 있는데 합석해도 괜찮을까?”
“제 목소리요? 형 친구분이세요?”
“음, 친구는 아니고 선배님.”
“네. 뭐, 전 괜찮아요.”
어려운 부탁이 아니었기에, 요하는 별 고민 없이 성현의 부탁에 응해줬다.
자신의 실력을 객관적으로 평가받고 싶다는 마음도 있었다.
그렇기에 오히려 이를 반기는 모습이었다.
성현은 요하의 대답이 떨어지자마자 연습실 문을 열었다.
잠시 뒤, 뭔가 북적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한 무리가 연습실에 발을 디뎠다.
“어……?”
그들의 모습을 본 요하는 깜짝 놀라 그대로 굳고 말았다.
“더비기너 형들이 거기서 왜 나와요……?”
그러다.
너튜브 영상으로만 봤던 록밴드 ‘더 비기너’의 멤버들이 들어온 것이다.
“안녕. 네가 요하구나? 얘기 많이 들었어.”
가장 큰 형인 김동우가 요하에게 악수를 청했다.
귀신을 본 것도 아닌데 요하는 너무 놀란 나머지 덜덜 떨며 제대로 된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 모습에 김동우는 장난치듯 친근하게 먼저 다가갔다.
“너 애가 숫기가 좀 없구나? 내가 네 나이 땐 말이야 록하겠다고 눈빛부터가 반항기가 가득 차 가지고 말이야.”
“라떼는 말이야 좀 그만해라.”
팀의 리더인 이재원이 김동우의 뒤에서 말했다.
김동우가 재원을 보며 장난 좀 친 것 가지고 뭐라 그러냐는 표정을 보였지만, 그는 그러든 말든 연습실을 둘러봤다.
“연습실도 제공해주고, 확실히 스케일이 다르긴 달라.”
이재원의 감탄에 요하는 그제야 몸이 풀린 듯 허리를 굽히며 정중히 인사했다.
“제, 제가 진짜 팬이에요! 음색도 진짜 좋으시고 제 롤모델입니다!”
성현에게서 ‘더 비기너’의 곡을 들어보라고 추천받은 이후, 요하는 그들의 곡에 완전히 사로잡혔다.
다 옛날 곡이긴 했지만, 그럼에도 현대 나온 곡이랑 비교해도 밀리지 않을 음악이었다.
특히 보컬인 이재원의 노래를 들으며 매번 감탄했다.
“동우 형이 아니라 재원이 형 팬인 갑네.”
자신이 인사할 땐 안 받아주더니 이재원이 말하자 금세 반응한 요하를 보자 무안해진 김동우였다.
이에 최훈이 그를 놀려댔다.
그 모습에 더 당황한 요하는 김동우에게도 허리 숙여 사과했다.
“아니, 그게 아니라 아깐 제가 너무 놀라서. 죄송합니다.”
“에이, 아니야. 괜찮아. 너도 보컬이니까 나보단 재원이가 더 좋겠지. 괜찮아. 아저씨 상처 안 받았어. 그냥 조금 슬플 뿐이야.”
김동우는 진짜로 삐진 듯이 은근 뒷끝을 내비치자 요하는 어쩔 줄 몰라 했다.
결국, 혼자 해결을 못 하겠는지 성현을 바라봤다.
하지만 성현도 그냥 웃어 보일 뿐이었다.
그 모습에 요하는 허둥지둥 말을 꺼냈다.
“저희 아버지가 김동우 선배님 팬이셔서 친필 싸인 앨범도 가지고 계시고 저도 너무 팬이라 선배님 영상 보면서 기타 연습도 하고 그랬는데......”
요하 아버지는 아들이 음악 하는 건 반대해도, 음악을 싫어하진 않은 모양이었다.
한편 황급히 변명하는 요하를 보자 ’더 비기너‘ 멤버들은 모두 요하가 귀엽다는 듯 웃음을 띄었다.
“농담이야 농담. 긴장 풀어. 우리 오늘 너 평가하러 온 거 아니야. 놀러 온 거지.”
정말 심술 궂은 장난기 심한 옆집 형 같았다.
덕분에 요하는 그제서야 긴장을 풀고 그들을 제대로 마주 볼 수 있었다.
“그럼 요하 노래부터 들어볼까요?”
성현은 요하를 보며 말했다.
‘더 비기너’ 앞에서 노래를 불러 보다니, 떨리기도 했지만 이보다 더 영광스러운 자리는 없을 거다.
성현은 요하의 긴장감을 풀어주기 위해 말을 붙였다.
“록은 이제 시작한 친구라 아직 부족한 건 많지만 재능은 확실할 거예요.”
“누구 안목인데. 일단 믿고 들어봐야지.”
팀을 하나로 만들도록 프로듀싱해준 성현 때문인지 재원도 그를 일단 신뢰했다.
그들은 한쪽에 놓인 의자에 편히 앉으며 진짜 놀러 온 듯한 모습을 보였다.
요하는 ‘더 비기너’가 자신만을 바라보자 사뭇 긴장되는지 연신 깊은 숨을 내뱉었다.
하지만 그들의 편안한 모습과 다독이는 듯한 태도에 이내 집중하는 눈빛을 보였다.
“그럼 시작할게.”
이윽고, 요하가 그동안 연습한 노래의 MR을 재생하는 성현.
그리고,
“원하는 대로 사는 거야. 때론 넘어지더라도 내가 너의 뒤를 지켜줄게. 깜깜한 어둠일지라도 주저앉진 않을 거야.”
요하의 목소리로 뱉어지는 ‘더 비기너’의 곡.
데뷔 앨범에 있던 수록곡으로 이재원이 최근 버스킹 공연에서 불렀던 노래기도 했다.
요하는 이재원의 곡을 자신만의 스타일로 맑고 순수하게 재해석했다.
고음 또한 전과 달리 시원시원하게 올라갔다.
‘어려서 그런가. 스펀지처럼 빨아들이는구나.’
성현은 짧은 사이 이뤄진 요하의 성장에 새삼 놀랐다.
요하의 가창에 놀란 건 성현뿐만이 아니었다.
‘더 비기너’ 맴버들은 모두 진지한 얼굴로 고갤 끄덕이며 요하의 노래 실력에 집중했다.
가지고 있는 재능에 확실히 눈길이 가는 모습이었다.
그런데 그때 연습실 문이 거칠게 열리더니 누군가 소릴 지르며 끼어들었다.
“이성현 참가자 제정신입니까?”
누군가 했더니 김인호였다.
피쳐링권 얘기는 다 끝난 거 아닌가.
이번엔 또 뭣 때문인지 흥분해서 들어왔긴 했는데 김인호는 그대로 얼어붙었다.
한창 김요하의 노래에 심취해있어서 그런지 모두가 진지한 눈빛을 띠며 그를 쳐다본 것이다.
갑자기 눈앞에 ‘더비기너’의 완전체가 있으니 당황할 수밖에.
“아하하하. ‘더 비기너’ 분들을 이런 누추한 곳에 부르고 제정신입니까? 아이고 인사가 늦었네요. AD 김인호입니다.”
김인호는 순간 머리가 하얘져 아무 말이나 지껄였다.
그러더니 바로 성현에게 따라오라는 듯 고갤 까닥하며 연습실을 나갔다.
***
“어떻게 된 겁니까?”
“누추한 곳에 ‘더 비기너’를 부른 게 그렇게 잘못인가요?”
김인호의 혼이 나간 말투를 기어이 트집 잡듯 성현이 넌지시 물었다.
한숨을 푹 쉰 김인호가 다시 정확하게 물었다.
“스폰서 제안. 왜 다 거절했냐고 묻는 겁니다.”
그렇다.
오늘 김인호가 찾아온 것은 다름 아닌 ‘스폰서’ 때문.
이성현에겐 무려 총 3곳에서 스폰서 제안이 왔었다.
게다가 그중 2곳은 꽤나 이름 있는 엔터테인먼트 소속의 스폰서.
엄청난 혜택들을 받을 수 있는 기회였는데, 이성현은 그걸 보란 듯이 차버린 것이다.
김인호는 성현의 선택을 전혀 이해할 수 없단 듯, 대답을 듣기도 전에 따져 들었다.
“스폰서 제안은 개나 소나 다 받은 줄 압니까? 그것도 소수한테만 주어지는 기회고 특권이에요. 남들은 살아남겠다고 썩은 동아줄이라도 붙잡으려는 마당에 이성현 참가자는 왜 굴러들어온 복을 차냐고요.”
“선택은 참가자가 하는 거라면서요. 저는 왜 AD님께서 참가자인 저한테 이런 간섭을 하시려는 건지 모르겠네요.”
언제나 그렇듯 이성현의 말에 틀린 것은 없었다.
선택의 자유는 온전히 참가자한테 있다.
하지만, 너무나도 맞는 말에 김인호는 되레 더 답답해졌다.
“하아. 그래요. 선택은 참가자가 하는 거 맞고 AD인 내가 당신 일에 간섭하는 거 오지랖인 거 아는데 다른 곳도 아니고 FTT랑 드로잉 엔터입니다. 메이저급 소속사는 아니더라도 준메이저급은 되는 회사 제안을 깐다는 게 말이 됩니까?”
“혹시 화제성 때문에 이러시는 건가요?”
성현의 물음에 순간 허를 찔린 모양이다.
김인호는 그대로 당황한 채 말을 더듬으며 애써 시치미를 떼며 그를 쳐다봤다.
그러자 성현은 다시 한번 쐐기를 박았다.
“준메이저급 소속사랑 스폰 계약 맺는 것만으로 화제가 되니까 저랑 맺어주려는 거 아닌가요?”
“화제성 때문이라뇨. 다 이성현 참가자 걱정되니까 하는 말이지 갑자기 화제성은 왜 나옵니까?”
“걱정은 감사히 받겠습니다. 다만 제 선택은 변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럼 이만 연습해야 해서 먼저 들어가 보겠습니다.”
더 말할 것도 없단 듯이, 성현은 대화를 깔끔히 종료했다.
성현의 단호하고 자신감 넘치는 모습에 김인호가 되레 당황했다.
“대체 뭐야 저 자식……?”
지금까지 예상 밖 행동들을 했지만, 스폰서 제안까지 대차게 까버릴 줄은 몰랐다.
그럴 것이, 오디션에서 막대한 영향을 끼칠 스폰서 제안을 거절할 정도의 배짱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다.
음악에만 미쳐 사는 줄 알았어도 이 정도까지인 줄은 몰랐다.
김인호는 멍하니 그의 뒤를 보다 머리 아픈지 뒤돌아섰다.
‘모르겠다. 모르겠어. 제발 끝까지 살아만 남아라.’
***
김요하와 ‘더 비기너’가 처음 만난 이후, ‘더 비기너’ 멤버들은 요하의 재능을 높이 산 듯 이리저리 관심을 주었다.
굳이 성현이 계속해서 부탁하지 않아도 요하의 연습을 도와줬고, 그 덕에 요하의 실력 또한 하루가 다르게 일취월장했다.
그렇게 시간을 빠르게 흘렀고, 어느새 돌발라운드 공연 날이 밝았다.
돌발라운드에 참가하는 참가자들은 공연 수 시간 전부터 리허설을 위해 사강대학교 메리홀에 모였다.
‘700명 정도 들어가려나.’
현은 리허설 전 공연장을 둘러보며 공연장의 사이즈부터 확인했다.
그리 크지 않은 규모의 공연장으로, 관객과 무대의 거리가 상당히 가까웠다.
‘관객이랑 호흡하긴 좋겠다.’
성현은 오늘 있을 무대에 관한 생각을 하며 대기실로 들어섰다.
안에는 무대를 앞두고 탈락 위기에 긴장한 조은별이 보였다.
맞은 편에선 여전히 고집 강한 얼굴로 혼자 노래 연습하는 박남길이 보였다.
눈이 마주친 박남길은 노래를 멈추고 성현에게 괜히 틱틱거렸다.
“어이 이성현이. 연습 많이 했냐? 괜히 와서 민폐 끼칠 생각 말고 열심히 하라고. 우리 팀이야 내가 있으니까 걱정이 없다지만 저런 꼬맹일 데려와서 뭘 하겠다고. 쯧.”
박남길은 구석에서 노래를 들으며 연습 중인 요하를 가리키며 말했다.
요하는 당황해 성현을 바라보자 저 사람 말은 듣지도 말라는 듯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러더니 곧바로 잔뜩 표정에 먹구름이 낀 조은별 옆에 앉았다.
“은별 씨도 받았어요?”
은별은 성현이 다가온 지도 몰랐던 듯 놀란 모습을 보였다.
심히 긴장이 되는지 그녀의 생머리는 더욱 쳐져 보였다.
성현은 핸드폰 메시지 창을 은별에게 보여줬다.
-떨지 말고 평소처럼만 하세요. 파이팅!
-만점 받고 오세요! 오늘도 파이팅!
임하나와 서지현한테 온 귀여운 응원 메시지가 보였다.
팀이란 이렇게 서로의 힘이 되어 주는 존재다.
이를 본 조은별이 긴장을 조금 풀며 웃었다.
“네. 저도 방금 연락받았어요.”
그녀의 먹구름에 드디어 햇빛이 살짝 비칠 때였다.
진행 스텝이 대기실로 들어왔다.
“김요하 참가자 먼저 리허설 시작할게요.”
“네, 네!”
스텝의 말에 마지막까지 곡을 들으며 연습하고 있던 요하가 벌떡 일어섰다.
막상 차례가 되니 떨리는 모양이다.
“떨지 말고 우리 준비한 대로만 하면 충분할 거야.”
이제껏 보여준 요하의 재능을 믿기에, 성현은 어느 때 보다 안심되었다.
그 모습에 요하도 마음을 다시 가다듬을 수 있었고, 당찬 표정으로 대기실을 나가 무대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