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화
이성현과 김요하는 본격적으로 누구의 시선에도 굴하지 않고 각자의 성취감을 얻기 위한 무대를 만들기에 돌입했다.
돌발라운드까지 남은 시간이 길지 않다고 해서, 무턱대고 곧바로 연습에 들어갈 생각은 없었다.
이 상태로 무대에 오른다면 그것은 단지 겉만 번지르르한 개살구에 불과했다.
장르에 대한 이해도가 없다면 뼈대를 세우지 않고 건물을 짓는 것과 다름없다.
그렇기에 성현은 요하의 록에 대한 이해도부터 돕기로 했다.
“요하 네가 생각하는 록의 이미지는 뭐야?”
“음. 초고음 샤우팅이 가장 먼저 생각나요.”
“샤우팅이 가장 대표적인 록의 이미지긴 하지만 록에는 그런 하드록만 있는 건 아니야. 록은 요하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굉장히 다양하거든.”
역시나, 요하는 록에 대한 깊은 지식이 없었다.
그런 사람에게서 록의 재능을 알아볼 수 있었다니, 성현의 안목도 대단하다.
그는 휴대폰으로 무언가 검색을 하더니 이윽고 노래가 흘러나왔다.
Chuck Berry - Maybellene
거장들도 존경을 표한 거장.
미국의 기타리스트였던 척 베리의 첫 싱글이자 첫 히트곡이다.
이 곡은 당시 백인들의 전유물이라 불리던 컨트리 음악에 블루스를 가미한 노래이다.
가사는 터프할 뿐만 아니라 비슷한 구절로 조금씩 변형되는 형식이었다.
당시 흑인뿐만 아니라 백인들에게까지도 큰 인기를 끌었던 곡으로써, 톡톡 튀는 멜로디와 개성 있는 가사가 인상 깊은 곡이다.
음악을 듣던 요하도 이런 종류의 록이 있다는 걸 처음 알았는지 신기해했다.
“1950년대 전까지 컨트리는 백인의 노래 블루스는 흑인의 노래라고 불릴 만큼 두 음악 간 경계는 뚜렷했어. 그리고 이때 혜성처럼 등장했던 사람이 척 베리. 그는 빠른 템포의 블루스에 컨트리 음악을 더했고 지금의 록이 시초가 되는 로큰롤의 시작을 알린 사람이기도 해.”
성현이 요하의 기타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는 엉덩이를 뒤로 빼고는 한 발을 쭉 뻗으며 기타 치는 모습을 보였다.
척 베리 특유의 Ducktail walk(덕워크)를 보여준 것이다.
“덕워크라고 불리는 척 베리 특유의 춤동작은 아마 너도 어디선가 본적이 있을 거야.”
이는 오리처럼 웅크린 자세로 연주하는 자세로, 그의 곡만큼이나 유명한 자세였다.
말로만 할 게 아니라 실제 모습을 보여주며 설명한 탓에 요하는 잔뜩 몰입했다.
“이 사람의 음악은 1960년대 록을 하는 사람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고 비틀즈 또한 무명 시절에 가장 많이 커버했던 곡이 바로 척 베리의 곡이었어.”
실제 비틀즈의 멤버였던 존 레논은 ‘로큰롤의 다른 이름은 그의 이름이어야 한다.’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록의 시초에 대한 곡을 들어보니 관점이 확실히 달라졌다.
그저 소리 지르고 폭죽처럼 터지는 곡이 다인 줄 알았던 요하는 기겁한 듯했다.
충분히 그럴 만하지.
지금껏 제대로 알지 못한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만큼 신선하고 재밌는 일은 드물다.
요하의 반응을 살핀 성현은 말을 끝낸 이후 이번엔 새로운 노래를 틀었다.
Elvis Presley – Don’t be cruel
“이번엔 로커빌리.”
로커빌리는 컨트리 비트에 블루스를 더한 로큰롤이다.
이 분야에서 유명한 가수는 모두가 이름은 한 번씩 들어봤을 앨비스 프레슬리가 있다.
코러스 덮인 반주에 그만이 낼 수 있는 음색이 잘 어우러진 곡은 몸을 들썩거렸다.
“엘비스 프래슬리는 로커빌리 장르에선 독보적인 아티스트였어. 척 베리가 초기 로크롤 장르를 탄생시켰다면 이것을 대중화시켰던 건 엘비스 프레슬리였어. 롤링스톤지는 엘비스 프래슬리의 데뷔 싱글을 최초의 로클론 앨범이라고 칭하기도 했고.”
“록의 뿌리가 이렇게나 깊은 줄 몰랐어요.”
“기본적으로 록이든 재즈든 그 뿌리는 블루스에 있다 해도 무방하니까.”
서서히 다른 색깔의 록 음악이 머리에 번지기 시작했다.
그는 음악이 끝나고 바로 다음 곡을 재생했다.
다음 곡은 제목만 들어도 멜로디가 귓가에 맴도는 노래였다.
Beatles – Hey Jude
“여기서부턴 네가 익숙한 가수들이 나올 거야. 비틀즈. 미국의 로큰롤은 1950년대 말부터 침체기에 빠지는데 이 로큰롤이 새롭게 재탄생한 곳은 미국이 아니라 영국이었어.”
드디어 나올 게 나왔다.
비틀즈.
비틀즈만큼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할 록그룹은 탄생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록에 관심이 없던 사람들조차 입을 흥얼거리게 만든 장본인이다.
요하 역시 그들의 곡은 익히 알고 있듯이 쉽게 흥얼거렸다.
록에 대해 파면 팔수록 개미집처럼 수만 가지 길이 뻗어 다양한 모습이 만들어졌다.
이것이 록의 진짜 모습이었다.
요새처럼 최신 트렌드에 스며든 청춘들 사이에선 잘 모를 수 있는 부분이다.
가요에도 신나는 분위기, 감성적인 분위기 등을 나타내는 곡이 있듯 록도 똑같다.
그들에게도 그들만의 색이 있고, 다양한 형태가 있다.
다르면서도 다르지 않은 것이다.
마지막으로 성현은 하나의 곡을 마저 재생시켰다.
animals - the house of the rising sun
“말했다시피 록 음악의 뿌리가 블루스인만큼 록음악에 대한 얘기를 할 때 항상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바로 블루스야. 정통 록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록 음악에 블루스가 있냐 없냐에 따라 록이다 아니다를 나누기도 해. 비틀즈 또한 그런 비판을 피해갈 수 없었는데 이때 정통록음악을 내세우며 나타난 게 애니멀스.”
“확실히 비틀즈의 곡보단 블루스 그루브가 강하게 나요.”
강하지 않으면서도 임팩트가 꽂히는 곡에 충분히 공감이 갔다.
이를 요하도 느낀 듯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여기까지가 록의 뿌리야. 이 다음부턴 여기서 파생된 하위장르라고 봐도 무방해. 강력한 사운드를 강조하는 하드록, 펑크문화와도 관련된 펑크록, 기존의 락 음악의 구성 방식을 탈피한 얼터너티브 록까지. 내가 줬던 플레이리스트에 있던 곡은 다 들어봤니?”
“네. 다 들어봤어요.”
“그럼 한 구절씩 불러볼래?”
성현은 이미 요하의 보컬을 떠올리며 미리 생각해온 느낌이 있었다.
하지만 노래 부를 가수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느낌을 확실하게 파악해야 한다.
그것이 프로듀서로 갖춰야 할 자세다.
한편 요하는 성현이 시킬 걸 예상이라도 한 듯 곧바로 목을 풀었다.
그리고는 바로 한 구절씩 부르기 시작했다.
‘역시 록이 찰떡이라니까.’
성현이 짐작한 대로 단단한 미성의 보컬과 매력적인 음색이 들려왔다.
요하 또한 자신에게 잘 맞다는 걸 알아챈 듯이 즐거운 모습이었다.
생각할 겨를도 없다.
성현은 빠르게 구성했던 밑그림을 그려나갔다.
‘스튜디오 가자마자 곡 작업부터 들어가야겠다.’
성현의 머릿속엔 온통 요하와 어울리는 곡을 만들 생각으로만 가득 찼다.
“요하야. 좀만 쉬었다 하자.”
그렇게 그들이 쉬는 사이, 성현은 휴대폰을 보더니 커넥트 앱을 실행했다.
그는 곧바로 앱 내에 상점 탭으로 들어갔다.
잠시 무언가를 찾는 것 같더니,
‘여기 있다.’
이내 원하는 것을 찾아내고는 곧바로 구입했다.
현실이 된 ‘더 넥스트 서바이벌’에서 처음으로 ‘캐시’를 사용해보는 순간.
그가 구입한 것은,
[ ‘피처링권’ 구매가 완료되었습니다! ]
‘피처링권’이란 이름의 소모성 쿠폰.
이미 어젯밤에 확인해 둔 것이었다.
그가 공연 참가를 무턱대고 자처한 것은 아니었다.
어젯밤 상점 내 피쳐링권의 존재를 확인했었고, 이번 라운드에서 사용 가능 여부 또한 확인을 끝낸 상태였다.
“형. 언제 노래 시작해요?”
때마침 요하가 다가와 물었다.
아무래도 빨리 노래를 불러보고 싶은 모양이다.
요하가 다시 자리에 위치하자 성현은 다시 자세를 잡았다.
“지금 바로 다시 시작해볼까?”
“네!”
그렇게 그들이 본격적인 연습에 다시 돌입하려 할 때,
똑똑-
“이성현 참가자, 저 김인호 AD입니다.”
그들이 있던 연습실에 노크 소리가 들리더니 김인호 AD가 들어왔다.
“잠깐 얘기 좀.”
김인호의 예사롭지 않은 표정에 성현은 의아심이 느껴졌다.
성현은 요하에게 잠시 기다려달라고 한 후, 김인호를 따라나섰다.
방음벽 문을 닫자마자 김인호가 기다렸다는 듯 질문을 시작했다.
“정말 피쳐링권 구매했어요?”
“네.”
그의 대담한 말투에 김인호가 황당하다는 듯 머리를 쓸어 넘겼다.
“그거 캐시 값이 만만치 않을 텐데.”
“그만한 값어치를 할 테니까요.”
이성현은 이번에도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 태연하게 대답을 내뱉었다.
어플 ‘커넥트’의 상점에는 비단 무대장치나 의상, 소품, 악기 등 물건뿐만 있는 게 아니다.
곡 작업 혹은 무대의 완성에 도움이 될 만한 것들 또한 존재했는데 그중 하나가 피처링권이었다.
[ 피처링권 ]
* 가격 : 1000캐시.
* 내용 : 경연 무대에 참가자 외의 가수를 세울 수 있는 권리를 가집니다. 1회 사용 후 사라지며, 사용 가능 무대에 제한이 따릅니다.
무려 1000캐시.
예선 라운드와 본선 1라운드 보상이 100, 200캐시였던 것을 감안하면 엄청난 가격이다.
후원을 웬만큼 받지 못한 참가자는 아직은 엄두도 못 낼 만큼 비싼 가격으로, 캐시가 있다 해도 빵빵한 스폰서가 없는 참가자라면, 쉽게 지불하기 힘든 큰 금액이었다.
그런 물건을 이성현은 이번 무대를 위해 단번에 결제했다.
‘패자부활전으로 향한 게 여러모로 도움이 되는군.’
다른 참가자였다면 피처링권의 존재를 안다고 해도 쉽게 구입하지 못했을 것이다.
스폰서도 이제 막 생기기 시작할 참이니, 캐시가 넉넉할 리 없다.
패자부활전에서의 압도적인 퍼포먼스를 통해 넉넉한 보상 캐시를 챙긴 성현이기에 행할 수 있는 방식이었다.
‘확실히 이번 오디션은 기존 오디션과는 달라.’
성현은 그것을 새삼 깨달았다.
아이템을 구매하고 사용하는 오디션이라, 확실히 색달랐다.
게임 ‘메이크 유어 스타’ 플레이 중, 지극히 게임적인 요소라 생각했던 것이 실제로도 존재하고, 사용도 가능했다.
한편,
“져도 탈락하는 것도 아닌데 이번 무대에 쓰기엔 아깝지 않아요?”
김인호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물었다.
“이기려고 쓰는 게 아니니까 괜찮습니다.”
“그럼요?”
“더 완성된 무대 만들고 싶어요. 그게 저한텐 가장 중요해요.”
그렇다.
마음에 드는 무대를 완성할 수만 있다면, 애초에 비싼 가격은 성현에게 중요한 게 되지 못했다.
‘최고의 무대. 그게 제일 중요하니까.’
성현은 피쳐링권을 사용할 수 있는 무대가 제한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이번 무대에 사용할 수 있는 지만을 고려했을 뿐. 가격은 일절 생각하지 않았다.
이윽고 가능하다는 것을 알았을 때 곧바로 구매한 후, 이번 경연에 사용 등록한 것이다.
‘맞아. 저 자식 음악에 미친 또라이였지.’
성현의 대답에 김인호가 낮게 탄식을 했다.
여기서 그에게 피처링권에 대한 이야기는 더 해봐야 소용없단 걸 깨달았다.
김인호는 성현에 대해 이미 어느 정도 파악이 끝난 상태였다.
성현의 그런 모습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는, 이에 대해서 긴말하지 않았다.
‘뭐 무대만 잘 만들어주면 나와 땡큐지. 아무튼, 내가 보는 눈 하난 확실하다니까. 칭찬한다 김인호.’
자신의 영역에 성현이란 복덩이를 발견한 것에 스스로 칭찬했다.
저 음악에 미친 자가 남의 구역에 들어갔으면 어땠을지, 상상만으로도 아찔했다.
김인호는 성현에게 이번에도 잘해보라는 격려를 남긴 후 연습실을 나갔다.
그의 뒷모습을 확인한 성현은 곧장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저예요. 부탁드릴 게 있어서요.”
값비싼 피처링권의 주인공이 될 사람과의 통화였다.